■ 최근 살인 등 강력범죄 사용 급증
[동아일보]
올해 1월 편의점주 이모 씨(34)가 서울 용산구 갈월동 자신의 가게에서 유흥업소 종업원을 흉기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6월에는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박모 씨(44)가 사업문제로 갈등을 빚던 지인 3명을 같은 종류의 흉기로 찔렀다. 지난해 8월에는 유모 씨(39)가 의정부 역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같은 종류의 흉기를 마구 휘둘러 시민 8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 ‘흉기’는 길이 100mm, 너비 18mm, 두께 0.45mm가량에 7개 안팎의 마디가 있는 강철 날이 달려 있는 커터(커터칼)이다. 흔히 공예품을 만들 때 쓰인다. 사무실 등에서 보통 사용하는 문구용 커터보다 칼날과 손잡이가 약간 길고 두껍다.
편의점 문구점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이 공업용 커터가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흉기로 둔갑하고 있다. 지난달 용인 모텔 살해사건에서 범인이 피해자를 위협하고 시신을 훼손하는 데 쓰인 도구도 커터다.
공업용 커터는 심야에 술에 취하거나 흥분해서 남을 해치려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흉기다. 도시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편의점에서 신분 확인 없이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성년자도 아무런 제약 없이 살 수 있다.
안산에서 지인 3명을 찌른 박 씨의 경우 전날부터 피해자들과 술을 마신 상태였다. 피해자와 대화 중 격분해 인근 편의점에서 흉기를 사와 오전 2시경 범행을 저질렀다. 갈월동 편의점 살인 사건의 범인 이 씨도 주점에서 범행 직전인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이 씨는 술값을 주겠다며 종업원을 편의점으로 데려왔고 “빨리 달라”는 종업원과 말다툼을 벌이다 편의점 내 커터로 범행을 저질렀다. 2011년 대전 중리동 술집에서 대리운전사가 함께 술을 마시던 동료 2명을 공업용 커터로 찌른 사건이 벌어졌다. 범인은 언쟁 끝에 가까이 있는 편의점에서 구입한 공업용 커터를 범행에 사용했다.
공업용 커터를 사용한 범죄가 잇따르고 있지만 공업용 커터를 ‘총포·도검·화약류 등 단속법상’ 소지 허가를 받아야 하는 흉기로 분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부엌칼을 사용한 범죄가 적지 않지만 일반인이 집에서 부엌칼을 쓰는 것을 제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하지만 공업용 커터가 범죄에 사용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유흥가 주변의 편의점에서 야간에 판매하는 것을 제한하거나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업용 커터가 사용된 범죄 중 상당수가 ‘야간’과 ‘술’, 그리고 ‘편의점’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오승진 경찰청 강력계장은 “강력범죄 중 우발적 범행은 대부분 야간에 술을 마신 채로 벌어진다”며 “유흥가 주변 편의점들이 공업용 커터를 야간에는 매장에서 치우는 등 판매를 자제한다면 이런 범죄를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업용 커터로 사람을 찌르거나 베면 살인이나 살인미수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다. 1월 발생한 갈월동 편의점 살인사건에 대해 법원은 “공업용 커터 칼은 사용방법에 따라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흉기인 점 등에 비춰 살인 의도가 있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