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장군 신분 첫 사병묘역 안장
지난 25일 87세를 일기로 별세한 초대 주베트남 한국군사령관 채명신 예비역 중장(사진)이 국립서울현충원 사병묘역에 안장된다.
채 장군이 생전에 “나를 파월 장병이 있는 묘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데 따른 것이다.
위 사진이 일반사병 밑 사진이 장군묘
장군이 사병묘역에 안장된 전례가 없고, 국방부도 난색을 표하자 유족과 부하들이 채 장군의 유언을 받아달라는 민원 편지를 청와대에까지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육사 5기 출신인 채 장군은 육군 5사단장과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을 거쳐 39세이던 1965년 주월사령관 겸 맹호부대장에 임명됐다. 1969년까지 3년8개월간 베트남의 밀림에서 한국군을 지휘했다.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에 반대해 그해 중장으로 예편했다. 이후 스웨덴·그리스·브라질 대사로 해외 공관을 돌았다.
채 장군의 영결식은 28일 서울현충원에서 육군참모총장 주관하에 육군장으로 치러진다.
어떤 분이냐면
6.25때 김일성에게 사상 설명을 듣고 5 !~공산주의 신박한데..? 햇다가
소련군산하에서 밥먹는데 1-6등급으로 계급을 나눠 배식하는거 보고 이거뭐임? 하는중에
친하게 지내던 소련군 대위가 공산주의 계급없다는거 사실 그거 구라임 " !!! " 이 소리 듣고
김일성이 직접 "젊은 친구가 필요하다 " 손내미는걸 "울 엄마 아파요."라고 핑계대고 월남, 반공주의자가 됨
후에 국내 최초 특수 유격전(게릴라) 백골병단을 지휘 / 카운터 부대인 북한 대남유격부대 길원팔 총사령관을 생포함 --
5.16쿠테타 때는 1개연대를 빼내서 서울 입성한 5인위원회의 핵심인물
하지만 쿠테타 성공후 바로 "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부대원을 복귀시켜버렷고 박정희의 정계입문 권유도 계속 뿌리침
잦은 직언으로 박정희의 눈밖에 나서 외국으로 돌앗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고민이 잇을때마다 수시로 불러서 독대함
삼선 개헌후 박정희가 고민에 빠져 따로 부른자리에서 " 각하 세 번하셧으면 충분합니다. " 햇다가 내쳐짐..
박정희의 베트남전도 참여 권유도 "미국의 용병 "이란 이유로 거부하다
군 총수권자인 박정희가 월남 초대 사령관으로 임명하자 / 미국에게 작전 지휘권을 인정받을 브리핑 기회를 요구하는 조건으로 출국함
그리고 미 총사령관 앞에서 6.25당시 경험을 기반으로 "중대전술 기지전략" 원거리 사격은 배제한 완전 근접공격 전법을 설명함
베트남에서도 채장군의 특기인 게릴라 전술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우리군의 피해를 줄임
전쟁후에 " 베트남전에서 미군은 게릴라전을 무시해 실패햇다. "라고 게릴라 사랑을 보여주심
장례는 육군장으로 오늘 오전7시에 발인 햇음
울 아버지도 월남전 무공훈장자로 대전에 묻히 셧는데 현충일날 가면
공로자 묘역에 친일파랑 정치인 ?들이 자꾸 들어와서 갈때마다 데모 하고 잇음
더러워서 사병묘역 가신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