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냐 물었을 뿐인데... 정보과 형사들 다녀갔다"

돼지왕 작성일 13.12.13 19: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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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온도 -10°C. 하얀 입김이 나올 만큼 추운 13일 오전,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는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로 넘쳐났다. 고려대 재학생 주현우(27)씨가 "안녕들하십니까?"라며 지난 10일 붙인 대자보 이후 응답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관련기사: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찌 다들 이리 안녕하신건지").

13일 오전부터 현재 대자보가 붙은 고려대 정경대 후문 게시판 앞에서는 주씨를 지지하는 학생 20여명이 모여 KTX 파업을 지지하는 선전물을 나눠줬다. 주씨의 대자보 옆으로는 "안녕하지 못하다"며 답한 대자보가 30여개를 돌파했고, 만든지 하루도 채 안된 페이스북 페이지<안녕들하십니까>에는 13일 오후 6시 현재 약 14000명 넘게 '좋아요'를 눌렀다.

주현우씨는 1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아까 정보과 형사 2명이 후문에 찾아와 철도 노조와의 연관성에 대해 묻고 갔다"며 "누군가 14일에 모인다고 한 것을 불법집회라고 신고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자보는) 개인적 생각에서 시작한 거라 반향이 이렇게 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사람들이 각자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생각들이 이걸 계기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주씨와 한 인터뷰를 1문 1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 대자보가 처음에 어떻게 시작됐나?
"그저 개인적인 생각에서 쓴 글이었다. 그런데 11일 아침부터 다른 친구들이 찍어서 올린 사진들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고 하더라. 사실 온라인 상 '좋아요'나 '공유하기'만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추가적으로 700여명이 또 직위해제가 되면서 더 확산이 됐던 것 아닌가 싶다. 내 대자보를 보고 연락한 강태경씨와 지난 11일 수요일 밤 11시쯤에 만나서 새벽 4시까지 어떻게 할지 얘기를 했다."

- 반향이 이렇게 클 줄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다만 대자보 뿐 아니라 사람이 서 있으면 한 번 더 쳐다보게 되지 않나. 그래서 이렇게 나와서 서 있던 것이다. 지금 내 곁에서 함께 응원하는 학생들 중에는 아예 처음 보는 학생들도 있고, 원래 얼굴만 알던 학생들도 있다. 어제(12일) 6시 반쯤 됐을 때는 거의 20명 가까이 서 있었다."

- 손으로 대자보를 쓴 이유?
"사실 우리는 타이핑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손으로 쓰는 글이 더 진심이 묻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인터넷에 올리는 글은 너무 가볍게 보이거나 익명성이 강해서 현실적이지 않다고 봤다. 그래서 직접 손으로 쓰는 게 내 감정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다른 학교에서도 한다던데.
"그렇다. 페이스북과 지인들 통해서 연락이 많이 왔다. 서울대와 한양대, 중대, 성균관대, 서강대 등에서도 대자보를 붙인다고 연락 받았다. 한 한양대 새내기는 페이스북 메시지로 나한테 "종북이라고 몰리는 게 두렵지 않았냐, 낙인찍기나 색깔공세가 무섭지 않냐"고 묻더라. 근데 그런 두려움은 사실 내가 더 크다고 봐도 될 것이다. 특히나 그 학생은 새내기지만 나는 졸업반이니까. 그러나 월가 오큐파이(Occupy) 운동도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됐듯이, 뭐가 됐든 시작하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친구나 지인, 졸업생들 반응은 어떤지?
"많이들 응원해주신다. 커피나 케익, 핫팩 등도 계속 쥐어주고 간다. 어제 눈이 올 때는 직접 우산을 씌워주고 간 친구도 있었고. 교수님들도 고생 많이 한다고, 수고한다고 한 마디씩 꼭 해주고 가신다. 어제 교우회라며 민주화 운동하신 분들, 고대 졸업생 분들이 학교에서 모인다고 잠깐 연락이 왔었는데, 88학번이라는 분이 내게 힘내라고 하더라. 아까도 한 사회대 교수님이 맛있는 거 사먹으라며 지갑에 있던 돈 53000원을 다 털어주고 가셨다."

- 이렇게 많은 곳에서 응답이 나타나는 게 어떤 의미인 것 같나?
"학내에서 '안녕 못하다'며 수십 장의 대자보가 붙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내가 쓴 대자보의 '안녕하냐'는 물음이 힘을 가졌다기보다는, 다들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질문이 이걸 계기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은 거다. 우리가 국정원처럼 댓글을 수천 개 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나기 어렵다. "

온·오프라인으로 이어진 지지운동은 고려대를 넘어 다른 학교로까지 전파됐다. 중앙대, 성균관대, 가톨릭대, 광운대, 용인대 등 각 학교 게시판에도 "나는 침묵했다", "우리 학우님들은 안녕하시냐"며 손으로 쓴 대자보가 붙었기 때문이다.

고려대 정경대 후문을 지나는 재학생들은 "멋있다", "힘내라"며 음료수와 간식거리들을 손에 쥐어주고 갔다. 한 사회대 교수는 후문 앞에 서있던 학생들에게 "고생한다, 밥이라도 사먹으라"며 지갑에 있던 돈 5만 3000원을 모두 털어주고 가기도 했다.

고대 학생의 학부모라는 50대 여성은 "이런 학생들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되살아나지"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다.

게시판 앞에서는 이들을 응원한다는 학생 밴드 '상추와 깻잎'이 모여 한 시간 가량 지지공연을 열었으며, 아예 밀양에서 송전탑을 반대하다 돌아가신 고 유한숙 어르신을 추모하는 분향소도 옆에 설치됐다.

분향소를 지키고 있던 고려대 재학생 김성빈(25, 노어노문학과 09)씨는 "원래 교내 생태주의 등을 공부하는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주씨의 대자보 중 '송전탑' 관련 내용이 나오는 걸 보고 우리도 이렇게 나오게 됐다"며 "밀양도, 우리의 전기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시각 대자보가 붙은 게시판 앞에서는 한 학생이 '○○○해서 나는 안녕치 못합니다'라는 내용으로 페이스북 포토 서명을 받기도 했다. 지나가는 학생들은 각각 '이명박 가카가 그리워지려고 해서', '현실에 무관심했던 내가 창피해서', '귀를 막는 정부, 닥쳐오는 시험이 답답해서' 안녕하지 못하다며 답을 달았다.

이를 지켜본 미국 교환학생 코디(Cody)씨는 "미국에도 대자보가 있긴 있지만 활성화되지는 않았다"며 "(철도) 파업으로 인해 불편을 겪을 수 있는데도 이렇게 지지하는 학생들이 감동스럽다"고 말했다.

대자보를 읽어본 재학생 조효정(가정교육 12)씨도 "대학 들어와서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최근 진보와 종북 이미지가 겹치면서 부정적인 시각들이 많았는데 이런 계기를 통해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경대 후문 앞에서 원래 13일 오후 5시까지 진행될 예정이었던 지지·관심 촉구 운동은 오후 3시경 끝이 났다. 주씨는 "30장이 넘는 자보가 붙었는데 이걸 학우들이 볼 수 있는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며 14일 오후 3시에 있을 '서울역 나들이'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36873&isPc=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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