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지도로 보는 동해

알타비스타7 작성일 14.02.15 14: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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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일본땅 아니다 일본자료 쏟아져

일본서 '독도는 한국 땅' 표시된 고지도 발견

부산=뉴시스】허상천 기자 = 일본이 18세기 개항 당시 자국의 영토를 지키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며 내세우는 국제공인급 지도가 사실상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자료로 판명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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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길 교수(한일문화연구소장)는 18일 "울릉도 표기는 물론 독도 부근에 '조선의 땅'이라는 문구가 적힌 일본의 고지도 '日本 假夷, 朝鮮 三國接壤小圖'가 최근 발견됐다"고 밝히고 고지도 사진을 공개했다.
김 교수는 "이번에 발견된 하야시 시헤이(林子平)의 '삼국접양소도'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권위가 있는 육지측량부에서 발행한 '삼국접양지도'보다 영확하게 울릉도와 죽도(독도)를 표기하고 죽도는 '朝鮮の持'(조선의 소유)로 표시돼있다"고 밝히고 "죽도(독도)를 울릉도와 같은 색을 칠하고 그것을 한국영토로 표시해 독도가 '朝鮮の持'(조선의 소유)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또 하나의 일본증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삼국접양소도'는 1785년에 그려진 것으로 일본 오사카 시립 중앙도서관에 소장돼있는 것을 확인 했다"며 "일본이 서구열강과의 영토 분쟁과정에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고지도"라고 덧붙였다.

이 지도를 그린 '하야시 시헤이'는 서학자로서 많은 지도를 그린 인물로 특히 1785년(天明午年)에 북해도와 아이노 민족을 연구하고 조선학을 연구해 일본 국민들로부터 일본을 지킨 은인으로 꼽히고 있다.

김 교수는 "삼국접양소도에는 울릉도를 분명히 기록하고 있고 현재의 독도 위치에 그려진 섬 옆에는 '조선의 영토'라고 표기했다"고 밝히고 "그동안 '한국이 울릉도를 독도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일본의 주장이 억지주장임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역사적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heraid@newsis.com
뉴시스|허상천|입력2013.05.18 23:20

1905년 발간 '오키신보'… '고유영토 아니었음' 입증

작 성 자: 독도본부 / 작 성 일: 2009-11-07


독도(獨島)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자료는 얼마나 더 쏟아져나올까? 이번에는 1905년 이전부터 이미 독도가 자기들 '고유 영토'였다는 일본의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하는 러일전쟁 당시의 자료가 새로 발굴됐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독도·해양영토연구센터의 유미림 책임연구원은 "독도가 원래 일본의 영토가 아니었음을 밝힌 1905년의 일본 자료 '오키신보(隱岐新報)'를 찾아냈다"며 자료의 사진을 공개했다.

'오키신보'는 시마네현(島根縣) 오키시마(隱岐島)에서 1904~05년에 발간된 잡지다. 1905년 3월 '오키신보' 16호는 '오키 국경의 팽창'이라는 사설을 실었다. "우리 도민이 예로부터 도항하던 두 개의 섬과 많은 작은 섬들이 공식적으로 다케시마(竹島·독도를 일본에서 일컫는 말)라는 이름으로 오키 영토가 된 건 기쁜 일"이라는 내용이다.

이는 '다케시마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글은 또 "섬 자체가 매우 작기 때문에 바다짐승(海獸·강치)과 그 밖의 해산물을 함부로 잡지 말아 무한한 이익을 얻는 섬으로 만들자"고 했다. 현재 도쿄대(東京大)가 소장하고 있는 이 잡지는 1904년 1월부터 1905년 3월까지 모두 16호가 남아 있다. 발행인은 당시 '오키도지(島誌)' 편찬을 주도하던 오키도청의 서기관 오사다 와카지(長田和加次)의 형 오사다 요시이치로(長田能一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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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독도 고유 영토론을 뒤집는 글이 실린 러일전쟁 당시의오키신보(왼쪽)와 독도 전경. / 조선일보 DB19042월부터 다음해 9월까지 계속된 러일전쟁 당시 급박한 국제정세를 도민들에게 각성시킬 목적에서 발간된 이 잡지는 러일전쟁 발발과 진행 상황, 오키 재향군인회, 오키 출신 전사자와 부상자 등을 싣고 있다.



유미림 책임연구원은 "이 사설은 일본이 당시 독도 편입을 '영토의 팽창'이라는 인식하에 강행했음을 드러낸다""일본 정부가 주장해 온 '고유영토론'의 허구성을 다시 한번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유영토론'이란 무엇일까? 독도가 300년 전부터 일본 땅이었다는 억지 주장이다. 일본은 1618년 요나고(米子) 주민 오야 진기치(大谷甚吉) 등이 돗토리(鳥取) 번주를 통해 막부로부터 울릉도 도해(渡海)면허를 받은 뒤 17세기 중엽까지 독도 영유권을 확립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도해 면허'가 외국에 나가 고기잡이할 때 발급했던 것이므로 오히려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 영토로 보지 않고 있었다는 입증이 된다. 일본에서 독도를 처음 기록한 1667년의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紀)'는 일본의 서북쪽 경계가 오키시마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일본은 러일전쟁 중이던 1905128일 내각회의에서 독도를 일본 영토에 편입하기로 결정하고 시마네현의 현보(縣報)에 슬그머니 고시했다. 일본은 이것이 "다케시마 영유 의사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1905'시마네현보 고시'는 정당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보다 5년 전인 19001025일 대한제국은 '칙령(勅令) 41'를 통해 울도군(鬱島郡)의 관할구역에 석도(石島=독도)가 포함된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울릉도 주민들은 '석도'를 훈독해 '돌섬'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변해서 '독도'가 됐다. '오키신보'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최근 일본 시마네현의 '웹 다케시마문제연구소' 홈페이지에 실린 글이 계기가 됐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발굴한 사료가 오히려 일본의 '고유영토론'을 뒤집는 역할을 한 것이다.

최근 한국측 사료에 나오는 우산도(于山島)가 독도임을 증명한 조선 후기 박세당(朴世堂)의 기록 독도를 조선의 고유 영토로 표시한 19세기 일본 고지도 '조선국도' 독도를 조선의 부속 도서라고 밝힌 제정러시아 해군 지도 독도 동쪽에 해상 경계선을 그은 1894년의 프랑스 신문 '르 프티 주르날' 등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하는 자료가 속속 나오고 있다. 1월에는 독도를 '일본의 부속 도서'에서 제외한 1951년의 일본 법령 '대장성령 4''총리부령 24'의 존재가 밝혀졌다.

200911  7일자   조선일보   유석재기자 

 

 

 

"독도는 조선령", 국경 명기한 일본측 지도 발견

영남대 독도연구소, '일로청한명세신도'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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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1]독도를 일본영토로 나타낸 지도를 실은 일본초등학교 5,6학년 사회승인을 받음에 따라 일본의 국가기관 편찬 지도가 최초로 공개됐다.

대만은 ‘일본계’(日本界)에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 김화경 영남대 독도연구소장은 "일본 스스로 국경선을 그어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인정한 명백한 증거까지 나온 만큼 일본의 독도영유권교육은 당장 중지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2010-04-01 18:38

 

 

 

 

 

 

 1946년 일본 대장성이 발표한 고시6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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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영 의원 문건 입수
일본이 대한민국 광복 다음해인 1946년에 스스로 '독도(獨島)는 일본 땅이 아니다'라고

인정한 사실을 담은 법령 자료가 발견됐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실이 익명의 일본 고위관료를 통해

15일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1946년 8월 15일 일본 대장성(大藏省)이 발표한 고시(告示) 654호에서

독도(竹島로 표기)는 조선, 대만, 사할린, 쿠릴열도, 남양군도 등과 함께 외국(外國)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박 의원실에 따르면 "일본은 패전 직후인 1946년에 일본 기업들이 부담할 배상 및 노무자들에 대한

미지급 임금 채무 등의 해결을 위해 '회사경리응급조치법'을 제정해 회사가 실행 중인 사업 및 전후

산업 회복에 필요한 동산, 부동산, 기타 재산 등을 정했다"며 "이 법의 칙령에서 '재외(在外) 자산'의

범위를 규정하고, 대장성 고시에선 패전 전 점령했던 영토 중 외국으로 분류한 지역을 규정했는데

여기에 독도가 포함돼 있다"고 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독도학회장)는 "1946년 1월 일본 도쿄에 설치된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지령(SCAPIN) 제677호에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에서 제외되는 곳으로 명시했다"며 "이번에 발견된

1946년 대장성 고시는 당시 군정하에 있었던 일본이 연합국 방침을 추인하고 실행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史料)"라고 했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광복 이후에 독도를 자국(自國) 영토가 아니란 것을 처음으로

인정한 법령 자료로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지난해

12월 청와대에 보고한

  ▲1951년 6월 6일 공포된 ‘총리 부령(府令) 24호’와

  ▲1951년 2월 13일 공포된 ‘대장성령(大藏省令) 4호’ 등 두 개의 일본 법령이었지만,

이번 자료는 이보다도 5년 앞선 것이다.

 

‘총리 부령 24호’는 일본이 옛 조선총독부의 소유 재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대장성령 4호’는

공제조합 등에서 연금을 받는 자를 위한 부속 도서에서 ‘울릉도, 독도, 제주도’ 등을 일본의 섬에서

제외했다.

박선영 의원은

“이 자료는 일본 정부가 패전 직후에 영토의 서쪽 경계로 독도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독도 영유권 논쟁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법령 자료”라며

“정부는 적극적으로 이런 법령·역사적 자료를 발굴하고 활용해서 일본과 독도 영유권 분쟁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독도 전문가인 귀화 일본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일본이 패전 이후 독도를 자국 영토에서 제외시킨 최초의 법령 자료로 보인다”고 했다.

호사카 교수는 “일본은 연합국과의 종전 협정을 통해 자치권을 회복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1952년) 이후부터는 태평양 전쟁 패배에 따라 반환해야 할 영토목록에서 독도를 삭제했는데, 그 시점 이후에도 독도를 자국영토에서 제외한 일본 정부 법령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했다.

 

1721년 영국왕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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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영국왕실에서제작된 a new map of India & China.

일본과 한반도사이의 바다가 Eastern sea로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1877년 일본육군참모국제작 대일본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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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메이지시대에 일본, 조선, 청나라의 전도를 제작했는데 이 지도는 그중 가장 먼저 만든 것이다.

당시 육군참모국은 지도에 일본의 영토 전체를 자세히 나타냈지만 독도는 나와 있지 않다.

당시 일본은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또다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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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주장은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1908년에 제작된 대일본분현지도의 시마네현전도에서도,

1910년판에서도, 1935년판에서도 (직접확인한건 이세개) 독도는 포함하지않았다.

이는 사회에서도 학계에서도 한국의영토로 인식하고있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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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5년 지리학자 하야시시헤이의 지도.

독도와 울릉도가 한국과 같은색깔로 표시. 당시조선의 영토였음을 입증.

 

 

1809년 일본변게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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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타카하시 카게야스가 제작한 일본변계약도.

독도가 조선땅임은 물론 동해도 "조선해"로표시.

 

1877 태정관 지문령 & 기죽도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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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정관과 내무성이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영토가아님'을 확인하는 공식문건과 그에 첨부된 약도 '기죽도약도'.

일본은 다케시마외한개섬(竹島外一島)이라는 표현에서 나머지한개의 섬이 독도를 나타내는것인지 확실치

않다는 어줍짢은 궤변을 주장했으나 문건중에 묘사되어있는특징으로보아도 독도가 맞으며, 문건중에

송도(松島,옛독도명칭)라고 명시되어있음에 독도를 나타내는것이 맞음.

 

 1870 관판 실측일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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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타다타카(伊能忠敬)라는 유명한 지도학자가 작성한 관선지도(서일본 부분).

이노 타다타카는 17년간을 들여서 일본전국을 측량했고 1823년에 실측지도를 완성시켰다.

그 지도를 기초로 하여 작성한 것이 이 관판 실측일본지도이다.

이노 다다타카의 열도측량작업은 에도막부 주도의 관제지도 작성 작업이었다.

그러므로 이 지도는 당시의 에도막부의 영토인식을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작성한 지도는 메이지 정부에서도 사용되었고 많은 메이지 시대의 관제지도가

이노 타다타카의 지도를 기초로 하여 작성되었다. 이 지도도 그런 지도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지도에도 오키 섬은 있지만 독도는 어디에도 없다. 

1870년에 메이지 정부가 울릉도와 독도가 어느 나라 소속인가를 조사하였고 그 결과,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영토라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의 그러한 인식이 잘 반영된 지도이다.

 

 

 


   

독도가 한국땅임은 역사적사료에서는 더욱 확실하다.

근대기와 그 훨씬 이전부터 독도는 한반도의 땅이었음을 나타내는

여러가지 자료들을 모아보았습니다.

이것들은 대표적인것이고 찾아보시면 이외에도 많이있습니다.

 

독도가 한국땅인 증거들 

http://blog.daum.net/anthas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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