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의 금메달 3개
아이러니 하게도 종합우승 탈환을 위한 러시아의 총공세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대한민국이었다. 4년 전 밴쿠버 올림픽에서 러시아가 거둔 종합성적은 11위. 금메달이 총 3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소치 올림픽에서 러시아가 거둔 금메달의 숫자는 총 12개. 4년 전에 비해 4배로 늘었는데 그 중 귀화한 선수가 차지한 금메달이 무려 6개로 절반을 차지했다.
그 중 일등공신을 한 선수가 바로 빅토르 안, 안현수이다. 8년 전 올림픽에서 3관왕에 올랐던 그가 다시 소치에서 3관왕을 재현하며 러시아에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안겨주었다. 쇼트트랙 사상 러시아의 첫 메달이었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까지 나서 안현수를 모셔간 이유가 있었다. 러시아의 종합우승을 위해 안현수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고 미국 귀화를 고려하던 안현수의 마음을 돌릴만큼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안현수가 네 개의 메달을 목에 거는 동안 대한민국은 남자 쇼트트랙에서 사상 초유 한 개의 메달도 수확하지 못했다. 그것이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했기 때문은 아니지만 금메달을 목에 건 안현수가 러시아의 국가를 부르던 모습은 아쉬울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김연아 유종의 미에 흠집을 남긴 얄미운 러시아
안현수 보다 더욱 씁쓸했던 것은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이었다. 사실 마지막 은퇴 무대를 앞두고 마음을 비운 김연아에게 어느 누구도 메달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미 올림픽을 제패한 그녀였기에 그저 마음 편안히 즐기며 유종의 미를 거둬주길 바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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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가 쇼트 프로그램에서 넘어졌을 때 안도 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메달이 중요하지 않은 무대 은퇴를 앞 둔 아사다 마오도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랬다. 하지만 국민들을 들끓게 한 것은 김연아가 올림픽 2연패를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정확히 페어플레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해외언론에서 '피겨 스캔들'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할 만큼 심판 판정은 불공정 했고 피겨전설 독일의 카타리나 비트를 비롯한 피겨 선수들도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고 했다. 특히, 카타리나 비트의 분노 영상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피겨 스케이팅이 아직 심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승패가 갈라지는 경기라고는 하지만 심판 선임 자체가 러시아의 유리하게 배정된 것이 페어하지 못했다.
러시아가 얼마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밀어주기 위해 고심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습게도 소트니코바의 금메달 수상 사실이 확정된 순간 러시아 심판이 그녀에게 달려가 포옹한 것은 중립이어야 할 심판의 소임을 망각한 한 편의 코미디였다. 사실 러시아의 종합우승을 위해 금메달 하나하나가 분수령이었다. 결국 금메달 하나 차이로 노르웨이를 따돌리고 종합우승을 차지했으니 말이다.
판커신의 나쁜손, 심판의 페어플레이도 실종
여자 쇼트트랙 1,000m 결승에서 나온 판커신의 나쁜손은 또 어떤가? 몇 차례나 선두에 있던 박승희를 잡아채기 위한 행동을 했음에도 은메달을 차지 했다. 명백히 페어플레이가 아닌 비신사적인 행동이었지만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불성설이 따로 없다. 결과에 영향을주지 않은 반칙은 반칙이 아니라는 논리인가? 그렇다면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반칙은 허용한다는 말인가? 올림픽 정신이 그렇지 않은 것을 피겨에 이어 심판의 페어플레이가 실종된 사례였다.
판커신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당시 중심을 잃어 신체접촉이 일어났다고 해명했다. 자신의 과오가 고스란히 영상으로 기록되었는데도 판커신은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 올림픽 정신이 실종된 올림픽이 21살에 불과한 그녀에게 거짓말을 허락한 셈이 되었다.
하지만 올림픽 정신은 살아있다! 박승희와 이승훈
그럼에도 올림픽 정신은 살아 있었다. 우리의 태극전사들이 이를 증명해 보여주었다. 하마터면 판커신의 희생양이 될 뻔 했던 박승희는 이번 올림픽에서 유일한 2관왕에 올랐지만 그녀가 500m에서 목에 건 동메달도 값지게 느껴졌다. 500m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던 박승희는 상대 선수에게 걸려 넘어졌지만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질주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무릎에 부상이 갈 만큼 또 한번 넘어졌지만 끝까지 포기 하지 않았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였다.
포기 하지 않고 3전4기로 도전해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건 이승훈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올림픽 디펜딩 챔피언으로 부담이 지나쳤던 탓인지 5,000m와 10,000m 개인 종목은 세계 최강 네덜란드의 벽에 막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후배들과 팀을 이뤄 호흡을 맞춘 팀추월에서는 포기하지 않고 저력을 발휘하며 은메달로 명예회복을 했다. 올림픽 사상 팀추월 첫 메달을 획득하며 스피드스케이팅 중장거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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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음 동계올림픽은 대한민국 평창에서 열린다. 세계의 이목이 평창으로 집중되는 만큼 4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다시 종합순위 10위권을 목표로 태극전사들은 굵은 땀방울을 흘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당하지 않은 수단으로는 곤란하다. 수단과 목표는 구분되어야 한다. 국민들은 목표한 순위에 오르는 것보다 페어플레이로 빛나는 올림픽을 진심으로 원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활약으로 울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