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도 회군은 민족의 운명을 건 거대한 Show 였을수도 있습니다.

보현행원 작성일 14.04.11 00: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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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이 원-명 교체기인데

 

여기서 명나라를 치겠다고 나서는것 자체가 .....

 

명나라가 철령 이북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이유가

 

고려왕조를 원나라와 한패라고 보기 때문인데.

 

그도 그럴것이 고려 왕들이 대대로 원나라왕실의 부마노릇을 하고,

 

대대로 원나라수도에서 눌러앉아 살았고

 

고려인들이 고려왕 따라서 원나라 수도로 들어가서 원나라의 개노릇을 하면서

 

중국 한족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데 앞장섰는지라,

 

당시 상도(현재 베이징 원나라의 수도) 인구의 절반이 고려인이라는 풍월도 있었던 터.

 

이런 상황이 요즘 기황후라는 드라마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하였는지라.

 

중국인들이 몽골인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고려인들에 대한 악감정이 수세대에 걸쳐 쌓이고 있었던 터에

 

원-명교체기에 한족과 명나라는 고려에 대한 보복을 준비했고,

 

그랬기 때문에 그 빌미를 잡으려고 고려 땅이지만

 

잠시 원나라가 고려에게서 빼았았다가 돌려준 철령 이북(강원도 철원 이북)을

 

그러니까 지금 평안도와 함경도 지역을 전부 내놓으라고 한 것인데

 

이것은 고려에게 선전포고를 한 거나 다름 없는 것.

 

어짜피 먼저 공격 받느니, 선제 공격이 났다고는 하나

 

고려는 다 끌어모아야 5만이고, 명나라는 그 열배는 될터.

 

그래도 위화도까지 대군을 몰고 가니까 명나라에서 초 긴장.

 

명나라에서도 아직 북원 잔존세력이 몽골에 남아있는 상황에서 고려의 대군이 국경지역에 몰려오니

 

협공의 위협에 요동에 진출해 있던 명나라 군도 당황.

 

이때 고려가 털고 털어서 나름 대군을 동원하자 명나라도 고려와 정말 싸워야 되나 고민하게 됨.

 

이때 고려군이 회군하여 고려왕조를 폐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다음에

 

명나라에 와서 우리는 고려왕조와 다르니까

 

철령 이북을 내놓으라는 애기는 하지 말라고 하니까.....

 

명나라도 고민하던 차에 OK~!!!

 

고려에 보복하겠다던 여론도 수그럼 듬.

 

친원 왕조를 친명 왕조로 체인지 하는걸로 서로 타협을 본거라고 봐야합니다.

 

명나라를 치자는 것은,

 

명-청 교체기에 청나라를 치자고 하는것과 똑같은 소리.

 

청나라와의 전쟁을 피한 광해군은 칭찬하면서, 명나라와의 전쟁을 피한 이성계는 욕할 필요 없다고 봅니다.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고 싶어서 세운것이 아니라,

 

대세가 고려를 무너뜨려야 명나라와의 관계가 정상으로 회복될수 있었고,

 

고려가 존재하는 이상 명나라와는 전쟁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려가 자주국이였다고 생각하겠지만,

 

세계사적으로 볼때 고려는 원나라의 일부이고 우리나라 사회과 지도처럼 고려를 독립국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시 명나라와 한족들도 고려는 북원세력과 똑같은 원나라의 잔당으로 보았습니다.

(강남에서 일어난 홍건적이 두번이나 고려까지  몰려온 것이 우연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고려는 원나라의 일부이기 때문에 명나라는 고려를 가만 놔둘수가 없었던 겁니다.

 

이때 나타난 이성계는 동북쪽에 기반을 가진 원나라에 대대로 벼슬을 하던 다루가치 출신이고

 

그 출신이 여진족으로 매우 의심되는 자인데

 

이성계를 왕으로 세우면 덤으로 그 휘하의 여진족들도 전부 끌어들일수 있고,

 

실제로 이성계의 사병들은 (북청출신 퉁두란-이지란을 비롯해서) 대부분 동북면쪽의 여진 출신들이고, 대부분 기병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성계의 군대는 고려에서 가장 강했고 홍건적, 왜구들을 격파하고 다닌거죠.

 

따라서 그의 집안에서 지배하던 함경도 지역땅도 고려땅으로 편입 시킬수 있으니 일석이조.

 

상술했듯이 이성계 집안은 대대로 동북면 지역에서 몽골의 다루가치를 하던 집안으로

 

만주,간도지역의 여진인들과도 매우 깊은 유대가 있었는데

 

이성계 덕분에 여진인들이 많이 귀화하여 함경도 남쪽지역까지 영토가 확장되었고

 

(이성계가 늙어서 고향인 함흥으로 갔죠.)

 

훗날 압록강,두만강까지 영토를 확장시킬수 있었던 바탕입니다.

 

물론 결과론적인 얘기지만요.

 

결국 요동정벌은 명나라에 보여주기 위한 것 거국적인 Show가 아니였을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부터 요동정벌에 나서면서부터 명나라를 치기위한 목적이 아니였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성계의 회군 결정에 전부 따라나선 것을 보면

 

이미 민심은 고려왕조를 살리자고 명나라와 민족의 생사을 걸고서 싸우겠다는 생각이

 

고려 백성들 대다수에게 없었다는 것입니다.

 

P.S

 

최영장군의 묘에 풀이 자라니 않아서 적묘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가 사실은 그 안에 최영장군의 시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시체 안에서 인이 나와서 풀이 자라는 것인데,

 

시체가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위화도 회군은 최영-이성계 그리고 군부,신진사대부에서 함께 작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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