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장훈이 4일 오후 광화문 광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가족 단식에 동참 농성장에 앉아 있다. 김장훈은 단식에 들어가면서 특별법 제정은 유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우리 모두를, 나라를 위한 것인데 정치공학, 당리당략이란 이름으로 파행과 결렬로만 갈까. 답답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인터뷰] ‘세월호 특별법 촉구’ 국민 단식 합류한 가수 김장훈
폭염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4일 오후, 가수 김장훈(48)씨가 맨몸으로 광화문 광장 단식농성에 동참했다. 공연과 앨범 발매 일정이 겹쳐 있는 상황이었지만,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혹시나 거센 만류에 마음이 흔들릴까봐 지인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는 결단을 하자마자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담담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는 22일째 단식 중인 유가족 김영오(47)씨 옆에 앉았다.
“어머니한테 미안한 말이지만, 죽음도 두렵지 않다. 그만큼 이번 일이 심각하고 처절하게 다가왔고, 깊은 사명감을 갖게 한다.”
세월호 사고 100일이 지나면서 국민들의 관심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관련 보도는 물론 매일 열리는 광화문 촛불 문화제조차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부 새누리당 의원과 보수단체는 ‘의사상자 지정’, ‘피해자 가족 대학 특례입학’, ‘평생 생계 보장’ 등이 유가족들의 주장이라고 거짓 선전을 하기도 했다.
김씨가 굶겠다고 결심한 건 이 때문이다. 가족들이 ‘잘못된’ 여론으로 ‘잘못된’ 비난을 받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했다. 이날 <민중의소리>와 인터뷰에서도 “제 입으로 말하기 우스울 수도 있지만,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이렇게 나섰다”며 “같이 쓰러질 때까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가수 김장훈이 4일 오후 광화문 광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가족 단식에 동참 농성장에 앉아 단식 22일째인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장훈은 단식에 들어가면서 특별법 제정은 유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우리 모두를, 나라를 위한 것인데 정치공학, 당리당략이란 이름으로 파행과 결렬로만 갈까. 답답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단식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건 두가지다. 첫째는 일각에서는 다른 쪽으로 여론을 끌고 가려는 게 있었다.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굴절된 사실들이 사람들을 호도하고 있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의사상자 지정, 대학 특례입학, 평생 생활보장 이런 것들을 유가족들이 요구한 적이 없다. 그런데 마치 유가족이 말한 것처럼 떠들고 이야기할 게 아니지 않은가.
두번째는 특별법 제정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대통령이 사고 이후 말한 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적폐 타파, 관피아 척결이다. 세월호 가족들과 국민들 요구도 마찬가지다. 정부 슬로건과 민심의 슬로건이 같았던 적이 우리나라에 있었나. 세월호 문제는 유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우리 부모, 우리 자식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보장해줄 수 있는 전국민적 과제다.“
“세월호 사고에 관심을 갖는 것이 정치적인가? 전 대한민국을 위해 뛰어든 것”
김씨가 단식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살찌려고 증식은 해봤는데 단식은 처음”이라고 말하던 그는 만류가 부담스러워 주변에 농성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를 아끼는 지인들은 그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활동을 하는 것과 관련해 정치적인 공격을 받을까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의 입장은 오히려 단호했다.
“제가 세월호에 뛰어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제가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는 사람도 아니고,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을 마음 속으로도 지지해본 적이 없다.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게 정치적인 것과 무슨 관련이 있나.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것이다. 정권 퇴진? 지금 누가 그걸 이야기하나.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달라는데 왜 난리들인가?”
미니 총선으로 불렸던 7.30 재보궐 선거를 전후해 세월호 특별법은 표류 위기에 처했다. 애초 유가족과 야당의 요구안보다 훨씬 후퇴하는 안을 내놨던 새누리당은 재보궐선거 압승 이후에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치권의 무책임과 무기력함에 가족들도 지쳐가고 있다. 그는 정부와 정치권이 변하지 않는다면 향후 민심이 제2의 광우병 촛불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새누리당의 소극적 태도는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특별법은 힘든 상황인 것 같다. 결국 역류 현상이 일어나야 한다. 모든 민초들의 힘으로 아래에서 위로 솟아올라야 한다. 월드컵 때 길거리에 730만명이 나왔다고 한다. 광우병 촛불 때 10만명이 광장에 모였다. 이대로 국민들을 무시하고 안하무인격으로 가다가는 큰일난다. 겁박하는 게 아니다. 정권퇴진 요구도 현실화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은 남겨두고 있었다. 선거가 끝났으니 뭔가 해결해보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한번 더 믿어보자. 선거 때문에 정신 없었는데 이제 끝났으니깐 어떻게 하는지 한번 봐야 하지 않겠나. 기소권까지 무리라고 한다면 한발짝 양보해서 수사권을 어디까지 하느냐, 서로 일정 수준 양보하면서 대화해나갈 수 있지 않겠나. 적어도 그런 정도로라도 이야기해보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여기 와서 보라는 것이다. 가족들 단식하는 것 보고, 진도 가서 바지선 타고 나가보면 답이 나온다.”
김씨의 단식 기간은 ‘무기한’이다. 급격히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 오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광화문광장 시복식 때도 농성장에 앉아 있겠다고 했다. 그는 교황 방문 행사를 이유로 공권력이 농성장을 강제 철수시킬 가능성을 우려했다.
“교황이 온다고 철수시킨다고 난리를 칠 수도 있다. 경찰이 (민주노총 지도부를 체포한다고) 경향신문 건물 들어가는 것 보지 않았나? 교황이 오더라도 전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철수시키려면 저 죽이고 머리 깨고 철수시키라는 것이다. 원래 16일 스케줄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 듣고 취소하려고 한다.”
“포크, 락은 저항정신...굶으면서 만든 이번 앨범 필(feel) 충만할 것”
그는 노동운동가도, 시민운동가도 아니다. 단식한다고 활동비가 나오는 게 아니다. 단식이 음악 활동에 차질을 줄 수도 있으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당장 오는 9일로 예정된 공연도 굶은 상태에서 성공적으로 치르고 싶다고 했다.
“공연 기획사 문제 때문에 취소됐는데, 제 팬들이 티켓을 다 샀다. 그들만을 위해서라도 클럽을 빌려서 공연을 해주고 싶다. 무기한 단식이기 때문에 공연, 앨범 계획을 체계적으로 세웠다. 공연이 있는 날은 이틀 전에 철수해 다음날 링겔 맞고, 하루 지나 공연할 것이다. 앨범 녹음은 상대적으로 공연보다는 수월하기 때문에 하루 전 밤에 링겔 맞고, 다음날 하면 된다. 앉아서 쉬면서 할 수 있으니깐.”
굶으면서 앨범 작업을 하게 되면 오히려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아픔과 처절함을 포크와 락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크와 락은 저항정신을 기반으로 하지 않나. 오히려 필이 충만해질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지금 상황과 딱 맞지 않은가?”
아침 10시에 먹었던 밥이 마지막이었다는 그는 “배가 슬슬 고파온다”면서 해맑게 웃었다. 애연가인 그의 허기를 채우는 역할은 담배가 대신 해 줄 것이다. 하지만 단식이 길어질수록 담배가 건강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담배 못 피워서 어떡해요?”
“피워야죠. 담배 끊으면 살 찐다는데, 단식하는 사람이 살찌면 모양새가 좀 그렇잖아요. 담배는 포기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