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양조씨시대인 1830년대의 천주교박해는 그당시 정부에게는 당연했겠죠

맹구대리인 작성일 14.08.16 23: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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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사옥은 정치적인 이유가 , 병인박해는 외교적인 이유가 많이 들어갔으니

진짜 박해는 풍양조씨시대의 병오.기해박해라고 할수있는데요..

열강의 침입이 아직 덜 본격화된 신유사옥때와는 달리

1830년대이후는 열강의 침략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시기입니다.

천주교 전파가 열강의 침략에 이용된것도 있었고.,.

당시 사회기본인 성리학을 흔드는것도 나라의 뿌리가 흔들릴것같다며 위험하게 느꼈겠죠..

그리고 신유사옥때 와는 다르게..

기해.병오박해때는 천민. 상민등 신분이 낮은쪽에서 순교자가 더 많이 나왔고

처벌도 더 가혹했다고 하더라구요..

집권세력과 유림도 백성들에게 그 사상이 크게 번졌으니 위험하다 뿌리를뽑자

조선의 정신을 지켜야한다

사람을 바위위에 들고 내쳐 죽게하는등 철저하게 가혹한 형벌을 내려야한다

그리고 나라의 질서를 흔들지 않는 개혁을 해야한다고 말했는데요,,,

여러분들 생각에도 당시의 기준으로는 천주교 대박해와 여러 가혹한 형벌은

외세의 침략을 막기위한 하나의 필요한 조치였다고 보시는지?

위정척사파나 풍양조씨의 외세에 맞서 조선을 지켜라에 대해 본받을 점이 있다고 보시는지?

그리고 외세의 침략을 막고

나라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온건한 개혁을 하는

좋은 방법이 있었을거라고 보시는지 궁금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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