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쉽짱 작성일 20.01.09 08: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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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참을 걷는데, 문득 맑은 겨울 바다에서 스며드는 작은 냄새 하나가 20대의 나를 기억하게 한다.

 

조용한 바닷가에 들려오는 작은 파도소리, 그 소리에 얹여 내 코를 간지럽히던 바다냄새…….. 그리고, 밀려드는 한 없는 나른함과 무기력함…..

 

참으로 고단했던 시절……  일상이 늘 앞을 가로 막았던, 그 때에 ‘이겨 내야지.  할 수 있어.’라며 스스로를 희망의 구덩이로 자꾸 밀어 넣었지.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제 그 세월에 두 배가 되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이겨 내야지… 할 수 있어’라며 스스로를 속이는 어리석은 자위를 하면서 한 시간, 하루, 일주일을 버텨간다. 

 

많이 넘어졌었다.   무릎도 많이 까졌고, 손바닥도 많이 상했지.  그 덕에 작은 성공이라는 산을 쌓았지만, 그 작은 산 위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성공의 희열, 만족도 삶의 충만함도 보질 못했다.  여전히 힘든 하루의 일상이 나를 맞이할 뿐.  아무것도 보질 못했다.

 

한참을 걷는다.   아무런 생각 없이 한참을 걷는다.   

내 정수리에 내리 꽂히는 태양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 뺨을 할퀴듯 지나가는 겨울바람에 답하지 않고, 한참을 그렇게 걷는다.

 

문득, 난 내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였는지 질문을 던져본다.   

이런 저런 지나간 세월들이 영사기의 필름처럼 촤르륵~ 흘러간다.

순간 순간 부여잡는 좋지 않은 기억에 몸서리가 쳐지지만, 이내 날 변호하기 시작한다.

   

‘그건 그 녀석이 문제였어.  그 때는 상황이 그랬잖아.  아니 아니, 난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이렇게 한참을 변호하다가 드는 생각은….. 

‘너 참…. 쓰레기구나……’   ‘그럼 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겠네……’

 

걷던 발 걸음이 무거워 진다.   

잠시 벤치에 앉아 담배 한 개피를 꺼내 입에 물고 깊은 한 숨을 쉰다.   

여전히 햇볕은 따갑고, 겨울 바람은 차갑다…….

 

담배 한 개피를 다 피워 갈 무렵…   스스로를 책망한다.

‘병신 새끼…. 용기도 없고, 목표도 없는 병신 새끼…. 그게 너다.’

‘찌질한 놈……  다 버려! 그 작은 동산이 뭐가 그리 소중하다고 부여잡고 또 괴로워하냐?  못난 놈!.’

 

가슴이 뛴다.  얼굴이 화끈거려 오히려 차가운 겨울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부끄럽다.  

 

부끄러워서 다시 걷는다. 

이제는 햇살이 느껴지지 않고, 차가운 겨울바람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집에 들어왔다.

늘 그렇듯, 여전히 일상은 나를 맞이한다.

 

낮에 있었던 산책(散策)은 이내 잊은 채 다시 일상에 빠져든다.

 

깊은 번뇌(煩惱)를 뒤로하고, 다시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거라는 것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선, 잠자리에 든다.

 

내일도 같은 번뇌가 나를 괴롭히겠지.   

하지만, 내일도 번뇌의 사슬을 통해, 나에게 보다 솔찍해지고, 담대해 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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