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6.25때 남편을 보내고 평생을 혼자 살아오시다가 몇 주전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2년 전쯤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후 여기가 싫다며 전화로 나 좀 데려가라는 말이 사무쳤지만
별다른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여서 그냥 참고 계시라는 말만 하며 2년여를 보내왔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한달에 한번 비대면 면회만 1년여 정도 해오다가 올해 8월쯤 증세가 악화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서야 우리 가족은 온갖 방호복을 착용하고 할머님이 누워계신 곳을 한명씩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갔을때, 할머니는 산소호흡기에 코에는 수액 주입줄을 달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뒤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그때부터 할머니는 의식이 없으셨다고 합니다.
2년여만에 처음으로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으니, 참 오랫동안 혼자 힘들게 계셨구나...라는 생각이 밀려와서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우연히도 그 때 할머니께서 누워계신 머리 맡에 있던 TV에서 노사연의 '바램'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처량한 섹소폰 소리에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낸 노래인데 그 노래속에 누워계신 할머니가 투영되어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저는 죽을때까지 이 노래를 잊지 못할 겁니다.
이 후 옆에 계신 다른 할머님께 우리 할머니 일어나시면 손자 왔다갔다고 꼭 전해달라고 말씀드리고 입원실을 나왔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때 어떻게든 할머니를 깨워서라도, 그래도 의식을 찾으셨을지는 모르지만, 할머니께 손자의 얼굴을 보여드렸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그 뒤로 의식을 찾지 못하신 채 이틀 뒤에 매우 위독하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지방에 살고 있는지라 부랴부랴 할머니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마음에 할머니 병실에 올라가지는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돌아가시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마음, 진짜 위중하시면 임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마음의 부담감, 어찌보면 올라가서도 의식이 없으시니 마음의 한켠에서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을 시간이 빨리 '결정' 내려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뒤로 40분 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때서야 말로 못할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할머니는 인생의 마지막 끈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저를 기다리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올때까지 그 끈을 놓지 않으셨지만, 어떤 마음인지 자신의 임종을 외면하는 손자를 보고 힘없이 그 끈을 놓아 버리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그 때 임종을 보지 '않았다는' 후회가 저를 조금도 놓아주지 않고 있어 애써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 뒤 할머니 시신을 보고, 장례식장까지 가는 앰뷸런스에 시신을 싣고 그 옆에서 할머니를 지켜드렸지만,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반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은 나중에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낼 때 꼭 그 옆을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오늘따라 너무너무 할머니가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