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 말썽 피우는 아이의 등짝을 때렸다.
( )가 말썽 피우는 아이에게 무릎 꿇고 손을 들게 했다.
( )가 말썽 피우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야단을 쳤다.
문장성분 중 주어는 괄호처리했습니다.
저기에 “엄마”와 “담임교사”를 번갈아 넣어보겠습니다.
엄마가 말썽 피우는 아이의 등짝을 때렸다.
엄마가 말썽 피우는 아이에게 무릎 꿇고 손을 들게 했다.
엄마가 말썽 피우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야단을 쳤다.
먼저 엄마가 주어일때는 대부분의 정서상 크게 문제없어 보입니다. 저걸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저 정도는 부모로서 정당한 훈육으로 보는거죠. 특히 첫 문장의 사례 같은 경우 등짝 스매싱으로 희화화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아직도 집에서 체벌을 당하고 있습니다.(손바닥 맞기, 벌 서기 등)
담임교사가 말썽 피우는 아이의 등짝을 때렸다.
담임교사가 말썽 피우는 아이에게 무릎 꿇고 손을 들게 했다.
담임교사가 말썽 피우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야단을 쳤다.
이 경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많은 교사들이 위의 사례로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고 또 유죄 판결을 받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형법에 저촉되는 죄는 “주어”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누가 했든 간에 사람을 죽였다, 돈을 훔쳤다라는 목적어와 서술어가 형량과 죄의 성립 유무에 더 영향을 끼치죠. 그런데 왜 유독 아동학대죄만 주어가 교사냐, 부모냐에 따라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결과가 다를까요?
교사가 아이에게 행한 “행동” 자체가 아이에게 정신적으로 심각한 데미지를 주고 아동학대로 판단되는 문제라면 부모가 똑같은 행동을 했을때도 같은 판단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부모)는 자식한테 소리 지르고 혼내도 되지만 교사가 내 자식한테 그래선 안돼”라는 심리기제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부모들이 자녀를 소유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식한테 감히?”라는 소유물에 투영할 법한 감정을 투영하는 겁니다.
이번 주호민 사건의 녹취록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되는 “너 싫어”, “너 미워”라는 식의 다소 감정이 들어간 특수교사의 말을 부모가 똑같이 했더라면 애초에 아동학대를 운운할 정도로 문제 자체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특히나 해당 아동은 말이 통하지 않는 중증의 특수아동이고요.
실제로 아이가 너무나 말을 듣지 않을 때 저런 식의 감정표현을 아이에게 내뱉는 엄마들을 길거리에서도 수도 없이 봅니다. 그들이 전부 법정에 서야할 아동학대범일까요?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선생이 선생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 명백히 아동학대다 등등의 비판을 합니다.
이런 분들은 자기 자식이 저런 일을 당했을 때로 상정하고 감정이입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인간이 로봇이 아닐진대 과연 “훈육”이라는 행위가 과연 일말의 감정 표출도 없이 즉, 화도 내지 않고 부정적인 감정 표현(설령 그게 부적절한 실수라 한들)이 전혀 없이 가능한 것일까요?
내 자식 1~2명 훈육하는 것도 속을 긁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특히나 교사는 한두명이 아닌 많게는 30명, 적게는 20명 정도의 아이를 집단으로 훈육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특수교사는 대략 4~5명 정도이지만 그 대상이 전부 장애가 있는 학생들이기에 일반학생과의 절대적 비교는 무의미합니다.
이건 교사의 전문성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교사가 감정 없는 ai가 아닌 이상 어떻게 보면 우리는 불가능한 행위를 교사들에게 요구하고 있는게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물론 어느 직장이든 말실수, 섣부른 감정표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훈육”이라는 업무행위를 주로 하는 직업군에게 순간적인 감정표현을 문제 삼아 아예 밥그릇을 뺏을 정도로 엄격한 법적 책임을 강요하는 곳은 학교 말고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