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을 위한 시간(1)##

양은이파 작성일 06.10.27 01: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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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은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서 시작한 글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회)

삐이-삐이-

페이저가 울렸다. 의국에서 저널을 보고 있던 찬규는 응급실에서의 호출에 의아해 하며

전화기를 들었다. 응급실 간호사가 전화를 받았다.

"내과 정찬규입니다. 호출했습니까?"

"아, 정찬규 선생님. 좀 전에 환자를 한 명 전원 받았는데 환자 분이 선생님을 찾고

있어서요."

그를 아는 사람인가. 그는 의아했다.

"날 찾는 다구요? 누구라고 합니까?"

"저, 내려와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부인이라고 하는데요."

"....."

"정찬규 선생님?"

"알았습니다."

수화기를 놓은 그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누군가 못된 장난을 하는 것일까.

그러나 말을 전하는 응급실 간호사의 말투는 꽤나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이진이라면 아파서 죽을 지경이 되더라도 결코 그를 찾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는 더욱 좀 전의 대화 내용을 믿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녀라면 스스로 혐오스러워 마지않는 그의 부인이라는 호칭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으리라.한때는 몹시 사랑하던 사이였으나 2년 전의 말다툼을 끝으로 그들은 차갑게

돌아서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이혼을 위해 서로 마주 보는 것조차 그녀는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2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무슨 일로 그를 찾고 있단 말인가.

그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서둘러 응급실로 향했다.

그가 응급실에 들어서자 그와 눈이 마주친 인턴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도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전화를 받았던 간호사가 그를 보고는 하던 일을 멈추었다.

"어디 있습니까?"

"복도 바로 왼편 요. 커튼을 쳐주었어요. 불안해하고 있어서요."

"상태는요?"

"교통사고인데, 외관상으로는 별로 상처가 없어요. 대구에서 올라오던 중이었대요. 그곳

응급실에 도착했

는데 잠깐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후로 남편이 있는 병원으로 가겠다고 해서 우리

병원으로 옮겼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커튼을 걷고 안으로 들어가자 불안스럽게 앉아 있던 낯익은 얼굴이 그를 보고는 안도의

숨을 쉬며 환하게 웃었다.

"찬규씨, 나 무서웠어요."

이진이었다. 그녀가 맞았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시금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을 뿐 그는 의사로서의 직업의식에서 그녀의 전신을 훑어보며 다친

곳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나 괜찮아요. 찬규씨.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머리가 좀 아프지만....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거죠, 그죠?"

짧은 웨이브 섞인 갈색 머리칼이 내려온 이마에 희미하게 멍든 자국이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마를 만져 보았다.

"정말 괜찮니?"

"음. 그냥..눈을 떴는데 모르는 곳이잖아. 낯설고 좀 무서웠어. 그래서 찬규 씨한테

가야겠다고 생각했거든. 나, 좀 신경질적이었을 거야. 찬규씨, 나 좀 안아 줘요. 그럼 좀

편해질 거 같애."

이진이 어리광을 부리듯 그의 품속으로 밀착되며 안겼다. 그는 보호하듯 그녀의 등을 쓸어

주었으나 속으론 그녀의 태도 변화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교통사고의 충격이 그렇게 컸던 걸까? 그에 대한 의심과 미움을 떨쳐 버릴 수 있을 만큼?

"이진아."

"음?"

"정말 괜찮니? 어디 아픈데 없어?"

"음..머리만 조금 아프고 아직도 멍한 거 같아. 숨쉴 때 가슴이 좀 결린 것 같기도 하고,

깊게 숨쉬기 힘들긴 해도 ...괜찮아."

"어디가 결린 것 같은데?"

그가 억지로 그녀를 떼어놓으며 물었다.

그는 냉정해질 필요가 있었다. 2년만에 맡아보는 그녀의 체취에 그는 이성을 잃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다정한 이진을 보는 건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진이 왼쪽 가슴 아래쪽을 가리켰고 그의 긴장한 얼굴을 바라보며 안심시키듯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여전히 굳어진 표정으로 청진기를 그녀가 가리키는 부위에 대며 그녀에게

심호흡을 하도록 지시했다.

상태는 그녀가 말한 것 보다 심했다. 늑골이 부러지며 폐에 손상을 입혔고 혈흉이 생겨

그녀가 숨쉴 때마다 결린 것이 당연했다.

응급조치가 필요했다. 그녀의 이마의 상처 또한 미심쩍었다. 어쩌면 그녀의 태도 변화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진아, 사고 났을 때 의식을 잃었었니?"

"음..잠깐 캄캄해졌던 것 같기도 하구. 모르겠어. 핸들에 머리를 부딪혔던 것 같은데 눈

떠보니까 병원이었던 거 같아."

"오늘이 몇 월 몇 일인지 아니?"

"뭐야, 찬규씨. 놀리지마."

"말해 봐. 이진아."

이진은 잠시 기가 막힌 듯 그를 바라보았으나 찬규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바보가 된 거 같아."

"김이진"

"12월 24일"

"몇 년도?"

"기가 막혀, 정말."

"....."

그가 여전히 대답을 요구하며 그녀를 바라보자 이진도 결국 지고 말았다.

"1995년. 이제 됐어?"

"...그래"

그가 이진의 머리를 끌어당겨 가슴에 안았다. 이진이 그에게 다정한 이유를 그는 알았다.

"잠깐 혼자 있을 수 있지? 곧 치료를 해야겠어, 이진아. 이대로 두면 점점 더 숨쉬기가

힘들어 질 거야. 흉부외과 의사와 얘길 해 볼께."

그는 달래듯 다정하게 그녀의 짧은 머리칼을 쓸어 주었다. 이진은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놓아주었다.

이진에게서 떨어져 스테이션으로 돌아온 그는 X-Ray를 찾아 View box에 걸었다. 그리고

신속하게 흉부외과에 연락하도록 지시하고는 신경 외과 의사도 찾도록 덧붙였다.

곧 도착한 흉부외과 의사와 흉관 삽입에 대해 상의하고는 이진을 진찰하고 나오는 신경

외과 의사와 마주쳤다.

"CT를 찍어 봐야겠지?"

찬규가 물었다.

"제가 보기엔 신경학적으로 별 이상이 없는데요."

3년 아래인 신경 외과 의사가 그를 안심시키며 대답했다.

"2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있는데도?"

후배의 표정에서 낯선 호기심이 이는 것을 찬규는 놓치지 않았다.

찬규가 미간을 찡그리며 그를 쏘아보자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한번 찍어 보죠. 하지만 CT에서 별 이상 소견이 안보인 다면 신경 정신과에

의뢰를 해야 할겁니다."


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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