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 진실 - 기억 하나.

qkrrns 작성일 06.12.20 22: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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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약이 없는 글입니다. 유쾌한 글도, 자극적인 글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억세게 운 없는 일이 벌어졌다 생각했다.
평소 운이 좋았던 터라, 이제야 악운이 내게 온 것이 별로 놀랍진 않았다.
다만 조금 억울했을까?
오늘은 꼭 보고 싶은 채널이 있었는데 그것을 못 본다 생각하니 기분이 좀 그랬다.
부산하고 시끄러워 경황이 없는 그 자리를 걸어 나가며 한 생각이 고작 그것이라니...
어째서 인지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재능일까?
타앙!
귓가를 울리는 총소리와 함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그 사람이 머릿속을 스쳤다.
잊고 싶지 않다.
그 사람들을...
그 사람을...
내 눈 앞에 그를...

사의 진실.

1. 눈을 뜨고...

꿈뻑,
소리가 날 정도로 들려오는 눈꺼풀 소리에 가슴이 놀랐다.
어째서?
어떻게?
왜?
잠시 놀란 가슴을 두드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눈을 뜬 것에 놀란 것인지, 어째서 이렇게 가슴이 뛰는 지 아직 깨닫지 못했다.
일상이 아닌가?
눈을 뜨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해가 뜨는 것만큼 자연스런 섭리가 아닌가?
물끄러미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왜 인지, 어째서 인지 한참을 곰곰이 생각해 보다 버럭 놀라 자라에서 튕겨 일어섰다.
놀라는 게 당연하다.
아니 놀랄 수 있는 것조차 놀랍다.
죽은 몸이 아니던가?
간밤에, 아니 눈을 감은 후 얼마나 지났을지 모르는 오늘 이렇게 일어나 버리다니 놀랍다. 머리에 총을 맞았다.
기억이 날아가는 느낌이 이렇게 생생하게 떠오르는 데 살아있다.
살아 생각하고, 눈을 뜨고, 처한 현실을 되뇐다.
죽지 않은 것일까?
팔팔하게 움직이는 두 다리로 어딘지 모를 방을 헤매어 다녔다.
기억을 더듬거려보았지만, 눈뜬장님만큼이나 굼뜨다.
“나는...”
골똘히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 생각에 머릿속이 끓어올랐다.
용암처럼, 부글거리는 찻물처럼 어딘가 쏟아 붙지 않으면 폭발할 것만 같았다.
털썩-
눈에 보이는 어딘가에 주저앉았다.
푹신한 쿠션과 연분홍빛으로 감싸인 쇼파가 보드랍다.
잠시, 손을 들어 톡톡 이마를 두드려 보았다.
그러자 부글거리는 머릿속 생각을 퍼부을 세 가지가 눈에 들어 왔다.
생각을 받을 흰 종이와, 머릿속 생각을 쏟아 부을 주전자의 주둥이가 되는 펜, 그리고 꽉 들어찬 생각이 그 셋이다.
스윽-
손에 펜을 쥐고 줄을 그어보았다.
잊히지 않는 것,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 생각들을 모아 일필휘지로 적어 내렸다.
조잡하고 두서가 없는 말들이었지만, 한결 머릿속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마지막 눈을 감던 순간 각막에 문신을 박은 듯 잊혀지지 않는 얼굴...
서툰 솜씨를 동원해 마지막 그 모습을 그려보며 길게 잡은 펜을 놓았다.
흥건히 땀으로 젖은 손바닥이 축축하다.
무엇에 그리도 열이 난 것일까?
담담히 하지만 힘차게 뛰고 있는 가슴에 두 손을 올려 물었다.
너는 무엇을 알고 있느냐고, 너는 무엇을 보고 들었느냐고, 듣지 못할 소리에 기대어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머릿속은 처음과 같이 복잡하고, 뛰는 가슴은 그저 말없이 두근거리고 있을 뿐이다.
“하아-”
길게 숨을 뱉어냈다.
뜨거운 그렇지만 끈적거리지는 않는 긴 숨결이 퍼져나간다.
눈에 보일 듯, 손에 잡힐 듯 아스라이 몽롱한 눈을 스쳐지나갔다.
“차가운 것이 필요해.”
마음이 되뇌는 대로 마른 입술을 움직여 보았다. 어딘지 모르는 거친 목소리가 듣기 싫다. 메마른 입술처럼 메마른 입안이 꺼끌해서 그런 목소리가 나오는 모양이다.
슥- 주저앉은 몸을 일으켰다. 복잡한 머릿속 보다 더욱 중요한 게 생각났다.
주린 배, 타는 목, 순수한 식욕에 대한 본능.
꾸물꾸물, 관광을 나온 관광객 마냥 텅빈 집안을 조심스레 천천히 걸어 나갔다.
죽었다 깨어난 탓일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롭다.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문고리 하나, 손에 쥔 컵 하나에도 장시간 눈을 두고 마음을 둔다. 아니, 어쩌면 새로운 것이 아니라 부분부분 기억이 나지 않는 탓일 수도 있다. 기억해 내기 위해, 끊어진 기억을 잇기 위해 열심히 생각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문은 끊이질 않는다.
왜? 라고 묻는 것이 지칠 만큼 많은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부엌의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정수기 위로 컵을 밀어 넣었다.
지잉- 익숙한 소리가 귓가를 흐른다.
들어 본 기억에 있는 소리, 차갑게 식은 냉수를 받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기억나는 자잘한 부분들을 이어 붙인다.
기억나지 않는 잘린 것들은 그대로 묻어 두기로 마음먹었다.
억지로 생각해봐야 머리 만 아플 뿐이다.
언젠가 기억나겠지.
짧게 생각한다.
본래 이렇게나 낙천적인 성격이었을까?
아니면 더는 머리가 아픈 것이 싫은 것이었을까?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결정을 내린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편해졌다. 그것이면 됐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죽었나?”
빈 잔을 내려놓으며 중얼 거렸다. 짧게 잘라낸 단편적인 생각들, 생각나는 것을 잔득 던져 놓은 노트를 향해 걸음을 돌렸다. 살아 있다. 죽었을 것이 당연한 총격이 기억에 남는 데, 살아 있다.
‘탄두가 머리를 관통하고도 살아날 확률이 몇이나 될까?’
계산 할 수도 없을 만큼, 전문지식이 필요한 물음을 던지며 노트에 그려진 그림을 향해 눈을 돌렸다. 익숙한 얼굴? 아니 잊지 않기 위해서 버둥거린 얼굴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외에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인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 무엇도 생각나질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오직 하나, 그의 얼굴과 기분 나쁜 돌이키기 싫은 상황의 재현이다.
“후웁-”
숨을 가득 들이킨다. 가득 부풀어 오른 가슴을 보며 입을 닫아 숨을 멈춘다. 하악-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숨이 부풀어 오른 볼을 붉게 상기 시켰다. 참는다. 숨을, 복잡한 생각을 참는다.
“푸확!”
더는 참을 수가 없었는지,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숨이 거칠게 방안을 울렸다. 호흡, 생각, 멈춰졌던 것이 한순간 고속으로 감긴다.
빠르게, 빠르게, 빠르게...!
결승점을 향해 달려 나가는 육상선수 마냥 급하게 뛰던 생각이 한순간 깨어졌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숨을 뱉는 순간 눈앞에 것을 보는 순간 심장이 튀어 나올 만큼 놀랐다.
“저거...!”
말문이 턱 하고 막혀 버렸다. 후다닥- 소리가 날만큼 발을 놀려 고개를 돌린 그 곳으로 다가섰다. 익숙한, 그래서 너무나 끔찍한 얼굴이 두 눈에 들어왔다. 놀란 눈을 하고 입을 쩍하고 벌린 채 바들바들 몸을 떤다.
어떻게 이런 일이...
줄리엣의 죽음을 목격한 로미오처럼 비틀 거리는 걸음을 가누지 못한다. 털썩 자리에 쓰러져 풀린 다리를 매만진다. 거울 속, 자신과 똑 같은 짓을 따라하는 사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내가... 내가... 내가...”
같은 말을 되풀이 하며, 했던 말을 곱씹으며 끔찍한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이건 말도 안 돼!”
미칠 듯 요동치는 심장에 튕겨지듯 몸을 일으켰다. 두 손을 들어 올려 거울 속 얼굴을 더듬는다. 차갑게, 매만 질 수 없는 거울 속 사내의 얼굴에 손을 뻗으며 비명에 소리쳤다.
“이건... 나... 나잖아!”
노트위로 그려 넣은 얼굴이 거울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 기약이 없는 글입니다. 유쾌한 글도, 자극적인 글도 아닙니다.
다만 즐겁게 적고 있는 글이니
보시고 흥미가 있다거나, 궁금하다거나, 즐거우셨다면은 작은 감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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