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건 어디서 어디까지의 균형이었던가. 나의 더욱더 좁아진 어깨까지인가, 아니면 나의 얼마 안 되는 17년의 짧은 인생인가. 더 이상 깨어진 것을 찾다가 포기한다. 벌써 몇 일째 깨어져 버린 것을 찾아보고 있지만, 그런 건 인제 의미가 있던가. 그래도 여태껏 안타까운 건 나의 좁은 어깨. 나의 불쌍한 왼어깨, 17년 동안 왼 어깨의 동반자였던 왼팔. 그 왼팔의 부재, 그가 사라지고 난 자리는 이 불쌍한 어깨에는 시릴 만큼 서늘함만이 남아서 나는 병실 속 따뜻했던 겨울을 그렇게 춥게 보내야했다. 너무나 안타까워 눈물이 나왔다. 나 는 그렇게 서늘하고 욱신거리는 왼쪽 어깻죽지를 더듬거리면서 눈물을 흘려야 했다, 너무나 추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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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생활은 그다지 괴롭지 않았다. 나만 괴롭지 않았는지 원래 괴롭지 않은 건 지 잘 모르겠지만 중학교와 다른 건 아이에서 학생으로 변한 친구들과 약간은 갑갑한 학교생활 뿐. 딱히 힘들다, 할 정도로 갑갑한 건 아니었지만 정말로 불편한 건 따로 있 었다. 그건 김소랑, 그 아이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우리 윗집의 동갑내기인 여자아인데, 거의 10살 때부터 알아온 사이 이다만, 보통남녀일이라는 모두 그렇듯이 그 아이와 나는 나이를 먹어 가면 갈수록 서먹서먹해지는 그런 불편한 사이였다. 중학교 들어가서는 졸업할 때까지 나누어본 말마디가 10마디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아이와 다시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1학년에는 운 없게도 2년 만에 같은 반이 되었다. 별로 기쁘지 않은 일이었다. 그 아이는 나를 매우 불편하게 여기는 듯하였고 (같은 반이 지정되는 날 김소랑은 같은 반에 있는 나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나 역시나 김소랑이 불편하였다. 사람 마음이 그러한 게 불편해지니 불만이 생기고 불만이 생기니 그 아이가 싫어지기 시작한다. 옛날엔 그렇게 친했는데 왜 이리 사이가 나빠졌나? 가 아닌 어떻게 저런 애랑 친했을 수 있나? 라고 역전 되는 상황까지 가버렸다. 덕분에 서로가 안보일 때 면 서로를 헐뜯곤 하였다. 굳이 시작을 따지자면 그녀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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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엔 조용히 사과 깎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친척, 그러니까 나의 3촌과 4촌 되는 분 들이 병실에 도착하자말자 10분도 채 안되어 병문안 선물만 두고 짧은 변명과 함께 후다 닥 나가버렸다.
“음.”
그렇겠지. 누구라도 이 꼴을 보자하면 말문이 막힐 터이다. 어머니는 그저 깎을 필요가 없어진 사과만 계속 깎으신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깨달은 것이 있어 생각하였다. 나는 칭찬받을 만한 짓을 한 건가, 하고. 그렇다. 그 누구도 나에게 칭찬을 해주지 않았다. 딱히 칭찬받기 위해 한건 아니었지만 어머니도 아버지도 소랑이 부모님도 할머니도 고모도 이모도 삼촌도 그 누구도 그 아무도. 그저 그들은 아무 말 없이 하얀 병실을 채웠다가 비울 뿐. 그래서
“엄마.”
묻는다. 사과 깎는 소리가 멈추고 조금의 공백 후에,
“왜?”
나에게도 공백이 필요하다. 물을 것인가 묻지 않을 것인가. 대답을 하실 것인가 안하실 것인가. 고민 끝에 말문을 연다.
“나, 잘 한 걸까?” “......”
엄마는 말이 없다. 난 혹시 실수한 걸까.
사각사각
엄마는 다시 사과 깎기를 시작하신다. 조금 뒤 상당히 많은 량의 깍은 사과를 접시에 가지런히 놔두시곤 아무 말 없이 병실에서 나가신다.
“......”
어깨가 쑤시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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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리 밝지 않은 내용입니다. 독백 투성이라 글자가 빽빽하군요. 저라도 읽기 싫겠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