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쓰러져 있는 날 누군가 부축인다.
그 와중에 얼떨결에 질문한 한마디,
"이봐, 여기가 어딘 줄 알아?"
어처구니 없는 질문이라는 거 나도 알고 있다.
난 누구에게 물어보는 건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설마 여기가 어딘지 모르고 물어보는 거야?"
"... 그건 아니지."
이 곳엔 사람이 없는데 나하고 대화할 상대가 있다.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내 주위에 널부러진 빈 병이 무색해 보인다.
"저 아래로 떨어지면 아플까?"
".. 아퍼."
"그래.."
사방이 더럽고 추악한 기운으로 덮혀있는 것 같다.
이 자리가 싫다. 이 곳이 싫다.
더 이상 이렇게 있는 것이 무섭다.
"난 떨어질 용기조차 없는 녀석이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보통 아니라는 게 정상이겠지. 하지만 난 용기라 생각해."
난 지금 옥 아닌 옥에 갇혀 있다.
이 좁은 공간에서 내가 택할 길은 그리 많지 않다.
난 지금 그 갈림길 중간에 서있다.
"거기 떨어질바엔 차라리 발악을 하지 그래?"
"할 수 없어... 난 지금 떨어질 용기조차 없다구."
길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난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조차 두려워 하고 있다.
무언가가 조금이라도 뒤틀리면 죽어버릴 것 같다.
하지만 떨어지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 길은 없다고 한탄하며 끝까지 붙잡고 있는 거다.
세상에서 몇 없는 한심한 인간 중 하나다.
"날 따라와 보지 않겠어?"
"네 놈과 어딜 간다고... 분명 재미 없을 거야."
"보지도 않고 판단을 잘도 하는군... 그게 네 삶의 방식이야?"
"... 재미 없으면 당신을 다신 보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구..."
나와 다른 녀석의 뒤를 따라갔다.
그 곳엔 더러운 것들이 깔려 있었다.
숨쉬기 조차 어려웠다.
"이게 뭐야, 누가 이런 곳에 데리고 오래!?"
"주위를 둘러봐..."
"뭐가? 주위에 뭐가 있어!? 난 가겠어!"
그 녀석은 날 잡았다.
"그냥 따라와..."
"..."
아직도 갈 곳이 남아있었나 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계속 따라갔다.
그리고...
"!"
"왜 그렇게 놀라냐?"
"아, 아니... 갑작스럽게 만나니까..."
옛날에 나와 같이 어울려 다니던 녀석들...
허나 몰라볼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다.
모습도... 성격도...
허나... 이제는 나완 다르다는 게 제일 많이 변했다.
"여~ 오랜만이야! 많이 변했구나.."
"변해?.. 아냐, 난 변하지 않았어. 너희들이 변한거야.."
나보고 변했다고 하지만 난 변한 게 없다.
절대로 내가 변하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으니까.
"어쨌든! 우리 오랜만이지? 반갑다!"
"... 그래."
적응이 되진 않지만 인사정도는 주고 받았다.
곧바로 난 그들의 손에 이끌려 또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나 잘하지? 오랜만에 너희들 만나서 실력 발휘 좀 하는 거야!"
이런 거... 예전에는 자주 봤던 것 같은데
어느새 또 다시 이런 장면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그리 나쁘진 않았지만
난 갑자기 내 자신이 변해버리는 것 같아서,
곧 다시 뿌리쳐 버렸다. 그들을...
다시 나만의 세계로 돌아왔다.
그들을 뿌리친 나는 또 하나의 길을 발견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
이 길만이 자신이 있었고...
이 길 밖에 택할 수 없는 난 정말 저주 받았다고 생각했다.
수면제 한 통을 들고 이젠 다시는 바깥에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
.
.
그 때 누군가가 현관을 두드린다.
"야! 빨리 따라와!!"
"뭐야?"
지난번에 다시 만났던 녀석..
갑자기 찾아와선 뭐가 그리 급한 지 날 잡고 밖으로 나간다.
"뭐하는 짓이야!"
"급한 일이 있어.. 네가 빨리 와야 해!"
"귀찮아, 나 같은 건 필요 없어.."
내가 그를 마구 뿌리쳤다
그 순간..
'퍽!'
그의 주먹이 나의 얼굴을 때렸다.
왜?... 나하곤 상관도 없는 일인데...
"갑자기 왜 때리는 거야...!"
"더러운 놈... 넌 걔가 왜 요즘에 널 찾아오지 않는 이유를 모르는 거냐?"
"그녀석?.. 아, 어쩐지 안보인다 했다."
그 녀석은 나를 강제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죽기 전에 세상 구경한다는 셈 치고 그 녀석을 따라갔다.
"!"
... 갑자기 눈이 트였다.
평소와는 다른 감정이 나를 마구 자극하기 시작했다.
왜 그런 거지...?
그리고 곧 병원에 도착했다.
녀석은 상당히 병세가 심각했다.
"헤헤... 왔네?"
"뭐야? 너 이런 큰 병을 앓고 있었으면서 왜 지난번에 나에게 찾아온 거야..."
"흠... 나보다 너가 먼저 죽을 것 같아서 말야. 널 간호해 주고 있었지."
...
"난... 여태껏 몰랐어..."
"그래, 넌 엄청나게 둔해.."
"마지막으로 못 놀아줘서 미안하다..."
.
.
.
"오, 나왔네?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멍청아, 내가 뭐 다리없는 병신이냐?"
"지난 번 까진 그랬던 것 같은데... 킥킥"
그 녀석이 죽은 후 난 되도록이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을 줄였다.
녀석의 죽음을 헛되게 할 순 없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 거야?"
"흠..."
잘하는 것 하나 없이 특별한게 없는 나는..
깨닫지 못했었다.
난 바보라서..
난 바보라서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