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구멍

에스티엘 작성일 07.02.03 18: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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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스티엘입니다.
이번의 단편은 '구멍'입니다.
이 소설은, 어느 소설 후기에서 구멍에 관한 글이 읽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썼습니다. 그 글의 내용은 '어느 공터에서 구멍을 발견했는데, 어느 순간 막혀있어서 아쉬웠다'였을 겁니다. 오래전에 읽어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찾아보면, 아마 집에 있긴 하겠지만요.

그러면, 소설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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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구멍을 발견한건 정말로 우연이었다.

그날따라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왠지 오늘만큼은 다른 길로 가보고 싶었다. 평소에 다니던 도로가 나있는 큰길이 아닌, 약간은 돌아서 가야되는 샛길로 말이다.
그냥 단순한 변덕,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딱히 무언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특별한 날도 아니었고, 특별한 마음도 없었으니까.
그 길을 걸어갈 때도, 무슨 일이 일어 날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 단순히 평소에 걷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온 것뿐이니까.

그래, 그 구멍을 발견할 때 까지는 말이다..







샛길에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풀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풀들 사이에서 샛길이 자라나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의 무릎정도 오는 들풀들이, 서로 서로 키 재기를 하는 마냥 삐쭉삐쭉 솟아 올라와 있었고, 그 사이로 혹시 짐승길이 아닌가라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로 작은, 길 하나가 나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길을 걸어갔다.

내가 이 길로 오게 된 것도 우연이었고, 평소에 안하던, 가방을 빙글빙글 돌리는 놀이를 하던 것도 우연이었으며, 손에서 빠져나간 가방이, 길에서 조금 떨어진 풀 속으로 날아간 것도 우연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구멍을 발견한 것도 우연이었다.

구멍이었다.
희한하다. 들풀들 사이에서, 약간의 공간이 있는 그곳에서, 평소에는 절대 발견하지 못할 만큼 작은, 구멍하나가 있었다.
크기는 내 손가락 하나 정도일까? 작았다.

외양상의 특별한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동그란 구멍이었다. 물론 구멍이 있는 장소가 신경 쓰이긴 하지만 드릴이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거다. 지금의 나라도 드릴만 있다면, 이딴 구멍 몇 개라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이 구멍이 이렇게 신경 쓰이는 이유는..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 구멍의 깊숙한 곳이 검은색이라는 것을.
그랬다, 구멍의 윗부분은 햇빛을 받아, 흙색 빛이 감돌았지만, 아랫부분-훨씬 깊은 부분-은 빛이 들어가지 않는지, 새까만 어둠을 드러내고 있었다.
깊은 것일까? 각도를 달리하여 바라보아도, 여전히 구멍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작은 돌멩이를 집어, 그 구멍에 떨어트려보았다. 그리고 부딪히는 소리를 기다렸다.
하지만,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어째서일까하고 궁금해 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구멍은 내 손가락 크기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떨어트린 돌도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소리가 난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이 구멍은 손가락 크기 밖에 안 되니까 말이다.

... 손가락이라..
나는 내 검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구멍을 바라본다.
들어갈 수 있을 거 같다..
아니, 들어가고도 남을 거 같았다.
충분히 들어간다.

나는 순간 고민했다.
집어넣어볼까?
넣지 말까?
그래도 한번 넣어보는 편이..
아니, 그랬다가, 저 구멍이 내 손가락을 물어버리면 어떡하지?
어쩌지..?
해볼까..?

나는 내 손가락과 구멍을 번갈아보며 쳐다보았다.
내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저 구멍이 먹음직스럽게 내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 착각일거다..

나는 결심했다. 손가락을 넣어보기로..


구멍에 다가가서, 무릎을 꿇는다.

손가락을 바라보고,

구멍을 바라본다.

침을 한번 삼킨 뒤에,

손가락을 움직인다.

서서히 서서히

움직인 손가락이

구멍에 들어간다.

그리고,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내 손가락!!!”

쏟아지는 비명.
나는 비명을 지르며 급히 손가락을 뺐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손가락이 있었다.

“쳇, 뭐야. 역시 아무것도 아닌 구멍이었잖아.”

나는 약간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투덜대며, 일어났다. 이제 집에 가야할 것 같다. 너무 시간을 낭비했다. 자칫 잘못하면, 유희왕을 놓칠지도 모르겠다.

오 맙소사.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안색이 변했다.
유희왕이다. 잘못하면 푸른 눈의 백룡, 그 위엄에 찬 모습을 놓칠지도 모른다.

나는 유희왕을 보기 위해, 급히 집으로 달려갔다.





##


나는 오늘도 샛길을 걷고 있다.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간대. 그때는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지금은 학원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제는 자의였지만, 오늘은 타의라는 것.

어제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몽둥이로 맞았다. 그 이유는 가방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너무 급하게 집으로 달려오느라 가방을 챙기지 못한 것이다. 가방은 아마도 어제 봤던 구멍 옆에 놓여 있을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화를 내면서 내일 당장 찾아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지금, 나는 가방을 찾기 위해, 그 구멍이 있는 장소로 걸어가고 있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그 구멍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헤매지는 않았다.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구멍이 있는 장소를 바로 알 수가 있었다. 마치 구멍이 나를 위해서 길 안내를 해주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 구멍을 향해 어기적 어기적 걸어갔다.

그리고, 그 구멍을 발견했다.


나는 맨 처음에 내 눈을 의심했다. 구멍이 어제와는 조금 달라졌기 때문이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금세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크기였다.

어제는 손가락 하나정도의 크기였던 구멍이, 지금은 손가락 세 개는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졌다.
신기했다. 어떻게 하루 만에 이정도로 커질 수 있을까?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처에서 공사를 하는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흔적도 내가 찍은 발자국 이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사람이 한 것이 아니란 것은 확실하다. 이 구멍 옆에는 내가 어제 놓고 간 가방이, 아무런 변화 없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구멍은 스스로, 커진 것이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구멍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여전히 깊숙한 부분은 빛이 닿지 않아서인지, 검은색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돌을 떨어트려보았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큰 돌멩이다. 여전히 소리는 나지 않는다.
나는 약간 긴장하면서, 이번에는 손가락 세 개를-검지, 중지, 약지를- 집어넣어보았다.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당연한 거겠지만, 약간 실망한다.
나는 흥미를 잃고,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흙이 묻은 무릎을 털었다.
그리고 미련 없이 구멍을 떠나려고 했다. 아마도 이번을 마지막으로 이곳에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어째서일까.
나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어서, 돌멩이 하나를 주위에서 찾았다. 그리고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를 찾아, 구멍 위에 올려놓았다. 구멍보다 약간 큰 돌멩이였다.
어째서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단순한 변덕이었다.
그래, 내가 처음 이 샛길로 들어오게 만든 것과 비슷한, 단순한 변덕이다.

나는 그 행동을 끝으로, 미련 없이 학원으로 향했다.



##



그리고, 다음날.

나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날씨로 시작해서 하루의 다짐으로 끝나는, 일기를 보는 것처럼, 틀에 박힌 하루였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잠을 자고, 집에 와서 녹화된 유희왕을 다시보고, 교재 준비를 끝마친 뒤, 학원으로 간다.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한 뒤, 집으로 가기 위해서 학원을 나온다.
거기까지는 평범을 분무기에 담아, 주변에 칙칙 뿌려놓은 듯한, 일상이었다.

그래, 그 구멍을 떠올리기 전까지는..

나는 문득 그 구멍에 올려놓은 돌멩이가 생각났다.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졌다. 도로가 있는 큰 길이 아닌, 샛길을 통해서 집으로 간다고 해도, 그다지 시간을 손해 보진 않을 것이다.

한번 가볼까?
나는 잠시 고민한 뒤, 결정했다. 샛길로 가기로 말이다.

그리고 나는, 세 번째로 구멍을 발견했다.


돌멩이가 없어져있었다. 아니, 추측하건데 구멍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손가락 세 개정도의 크기였던 구멍이 지금은 내 주먹 크기로 커져 있었다.
주위에 내 발자국 말고는, 다른 사람이 온 흔적도 없다.

이제 확실해졌다. 구멍은 스스로 커지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했던 행동을 취했다.
구멍을 자세를 바꿔가며, 이리저리 관찰해보고, 돌을 떨어트려본다.
그리고, 주먹을 쥔 뒤, 구멍에 집어넣어 본다.
결과는 똑같았다.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구멍은 내일도, 크기가 커질 테니까.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구멍은 도대체 무엇일까? 지구가 숨을 쉬는 콧구멍? 미지의 생명체가 살고 있는 둥지? 지구공동설을 증명할 출입구? 아니면, 이계로 향하는 통로?
어느 것이든지 상관없다. 이 구멍이 무엇이든 간에, 이 구멍은 나의 평범한 일상에 일침을 가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지각변동에 의한 균열이더라도 상관없다. 이 구멍이 있는 한, 그리고 이 구멍의 크기가 커지는 한, 나는 평범이란 단어에서 한발자국 물러설 수 있기 때문이다.

기다리자. 이 구멍이 조금 더 커질 때까지.
지금은 구멍이 주먹정도의 크기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구멍의 정체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호기심으로 인해 미어터질 것 같은 가슴을 억누르고, 집으로 향했다.




##



그리고 다음날.
구멍은 내 머리 크기로 커져있었다.

이제는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도 구멍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정도로 커진 것이다. 하지만 역시, 구멍 깊숙한 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랜턴을 들고 와서 빛을 비추었는데도 말이다. 약간 큰 돌멩이를 던져 넣어도, 역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머리를 구멍에 집어넣어보았다.
깜깜하다. 내 몸이 햇빛을 가리고 있어서인지, 더욱 안 보이는 것 같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어이!! 들리세요??”

크게 소리쳐보았지만, 구멍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메아리도 치지 않았다. 내 목소리를 빨아들이는 듯,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허리를 펴서, 머리를 구멍에서 빼냈다.
아직 이다. 이 구멍의 정체를 알아내기에는, 구멍의 크기가 아직 작다.
적어도.. 적어도, 내 몸이 들어갈 정도는 돼야 할 듯하다. 그래, 내 몸이 들어갈 정도는 말이다.
나는 아쉬워하며 다음을 기약한 체, 집으로 향했다.



##



그리고 마침내, 다음날이 와버렸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바로 학원을 갈 준비를 끝마쳤다. 구멍의 상태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온종일 구멍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무슨 구멍일까, 만약 더 커진다면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그곳에서부터 무언가가 나오지는 않을까.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들이 기차놀이라도 하듯 머릿속에서 줄줄이 기어 나왔었다.

나는 준비를 끝마치고 구멍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나는 구멍을 발견했다.


크다.
구멍은 대단히 커졌다. 저 구멍이 원래는 손가락 하나 정도의 크기였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크기였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아마 맨홀 뚜껑을 찾으리라 생각될 정도였다.
나는 신기함과 호기심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아무 것도 없는 들판에, 검정색 무언가가 시커먼 이빨을 드러내면서,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크기라면, 나 따위는 한 번에 잡아먹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구멍이 이렇게 계속 커진다면, 언젠가는 지구 자체를 집어 삼킬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무언가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이, 나는 구멍 곁으로 다가갔다.


구멍을 확인한다.
이리저리 각도를 달리하며 확인한다.
여전히 깊숙한 곳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초조해졌다.
확인하고 싶다. 알고 싶다.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다. 못 참겠다.
나는 주위에 있는, 조금은 큰 돌을 집어 들어, 구멍으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구멍을 이루고 있는 벽에 부딪히는 소리만 조금 날뿐, 내가 기대하던 쾅-땅에 닿는 소리-이라던가, 첨벙-물에 떨어지는 소리-과 같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알고 싶다. 알고 싶어. 무엇이지? 어떻게 하면, 이 구멍의 정체를 알 수 있지.
더 기다릴까? 말도 안 돼. 충분히 기다렸어. 더 이상은 못 참아.
나는 저 구멍의 정체를 알아야해. 반드시, 무조건, 어떻게 하든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알아야해.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알고 싶다. 어째서이지, 어째서 나는 이 구멍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지? 아.. 알고 싶어. 알고 싶어. 알고 싶어. 알고 싶어. 알고 싶어. 알고 싶어!!!!!!!!!!


...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저 구멍은 내 허리보다 크기가 크다는 것을.


나는 웃는다. 어째서 이렇게 쉬운 방법을 깨닫지 못한 걸까. 간단하다. 돌을 떨어트리듯, 나 자신을 구멍 속으로 떨어트리는 것이다.
그러면 알 수 있다.
구멍에대한정체를알수있다그렇게되면나는편하게되고기분이좋아져서날아갈거같아서기쁠거다아아..좋다알수있는것이다기쁘다나만이할수있어오직이세상에서나만이할수있는일이야저구멍은내가발견한것이니까내꺼야내꺼야내꺼니까당연히나는저구멍의정체를알아야해그래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리고, 나는 구멍으로 떨어졌다.
















##





문득, 정신이 든다.
여기는 어디지? 주위가 새까맣다. 거기다가 왠지는 모르지만, 굉장한 폐쇄감이 느껴진다.
나는 몸을 움직여보았다.

“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소리. 입에서 절로 비명소리가 삐져나왔다. 온몸이 아픈 것이다. 머리부터 팔, 다리, 몸통까지 안 아픈 곳이 없다. 특히 발목에서 찌릿 찌릿 나오는 아픔은, 눈물을 머금게 만들었다. 삔 것일까? 부어있는 모습이,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나는 주위를 손으로 더듬어보았다. 단단했다.
벽인건가? 나는 단단한 벽에 몸을 기대고 앉아있었다.
고개를 들어본다. 저 멀리서 희미한 무언가가 보인다. 저것은.. 둥그런 하늘이다.
그제야 깨닫는다, 내가 구멍에 빠졌다는 것을.

나는 고개를 흔든다.
어째서이지? 구멍에 빠질 때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그때의 기억은 없다.
발이라도 미끄러져서 빠진 걸까. 나는 한숨을 내쉰다. 어찌되었든 빠진 것은 빠진 것이다. 원인을 찾기보다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 훨씬 좋을 듯하다.
나는 벽에 손을 짚고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출렁거리는 바닥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다시 쓰러졌다.

“이.. 이것은..?”

앉은 상태로 바닥을 눌러본다. 누른 곳이 움푹 들어갔다가, 손을 때니 원상태로 복귀한다. 이것은, 스펀지인가? 아니, 스펀지보다는 젤리 쪽에 가까울듯하다.
신기했다. 아마도 이것 덕분에 저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날 수 있었으리라.
나는 구멍의 신비를 한 가지 더 깨닫고, 기뻐했다.
하지만, 이내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좋아할 것이 아니라,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안 그러면 나는 여기서 비참하게 굶어죽을 것이다.
나는 구멍의 벽을 살펴봤다. 울퉁불퉁하며, 손으로 짚을 곳이 꽤 있다. 그 곳을 손으로 짚으며 암벽등반 하듯이 올라간다면?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리이다. 평범한 학생인, 로프도 없이 저 벽을 맨손으로 타고 올라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거기다가 이 벽의 각도는 거의 수직이었다. 그리고 구멍의 입구도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다. 맨손으로 올라가다가 만약 떨어진다면, 반드시 죽는다.
사실 내가 저 구멍에서 떨어지고도 살아있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그만큼 입구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거기다가 아까부터 시큼 거리는 발목이 나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구조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핸드폰은 없다.
그저 소리를 질러, 지나가는 사람이 구멍을 발견하게 만드는 방법밖에는 없다.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 여기 사람이 갇혔어요!!!”

나는 그렇게 계속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당연한 것이다. 이 구멍이 있던 곳은 한적한 샛길이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곳이다.
거기다가 이 구멍의 깊이는 꽤 깊다. 내가 지르는 소리 따위는, 밖에서 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아..”

나는 한숨을 내셨다.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여기서 평생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목을 조아온다. 두렵다. 무섭다. 나는 여기서 죽는 것일까?

“으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주위에 있는 벽을 손톱으로 긁었다.

무섭다. 무서워. 살고 싶다. 살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죽기 싫어. 무서워. 어두워. 깜깜해. 나가고 싶어. 내보내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나를 살려줘.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머리를 벽에 갖다 대었다. 손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딴 아픔은, 이곳에서 나갈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으아아아아!!”

나는 주먹을 쥐고, 팔을 휘둘러 벽을 쳤다.
아니, 치려고 했다. 하지만, 팔꿈치가 뒤에 있는 벽에 부딪혀 나는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구멍이 생각보다 작았기 때문이다.

“......”

팔꿈치에서 느껴지는 저린 아픔도 잠시.
나는 무언가를 깨닫고, 미친 듯이 벽을 양손으로 더듬었다.
더듬고 더듬어서 형태를 확인한다.
더듬던 손길이 벽을 한 바퀴 돌아, 시작한 자리에 왔어도 무시하고 계속해서 더듬는다.
얼마나 그렇게 더듬고 있었을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아아. 이 구멍은 원래 크기로 되돌아가는구나.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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