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망상의 둥지 0012 - 폭격

NEOKIDS 작성일 07.02.02 15:5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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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괴한 망상의 둥지-폭격



현재 고도 6000m. 온도는 영하 40도 정도로 심하게 떨어져 있고, 산소는 충분하며, 기압유지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독일군 전투기의 모습도 보이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폭탄을 가득 실은 무게 때문에 아슬아슬했던 이륙 역시 깔끔하게 끝냈었다.

그런대로 여느 때와 같은, 목숨을 건 하루다. 다른 날과 똑같이 아침에는 출격하는 조종사들에게 지급되는 진짜 계란-분말 계란이 아니다-을 푸짐한 먹거리와 함께 먹고, 니크롬선이 내장된 조종사용 방한복을 껴입고, 30kg이 넘는 군장을 착용한 뒤, 목표에 대한 브리핑이 끝난 후 이 거대한 덩치의 B-17 플라잉 포트리스를 몰아 독일 나치의 본토를 타격하러 가는 그런 폭격기 편대 조종사 중 하나. 그중에서도 선도기를 몰고 있는 미 제8공군 소속의 린드. L. 그라임즈 라는 이름까지 기억할 정도면,
정말 무엇 하나 이상한 것이 없는 하루다.

그럼 누가 설명 좀 해주길. 대체 다른 대원들은 다 어디에 갔고 나를 뒤따라 박스 형태의 편대대형을 유지하던 우리 편대기들은 전부 어디로 갔으며, 내 옆에 방한복도 없이 평범한 차림으로 앉아서 무릎 위에 중절모를 올려놓은 채 헤드셋을 쓰고는 말을 걸고 있는 내 또래의 젊은 친구. 이 자의 존재는 뭔가?

“혹시....이건 공기부족에서 온 환상인가?”
그는 내 물음에 나를 바라보다가 품에서 뭔가를 뒤적여 꺼냈다.
“이 정도면 대답이 될까?”
그가 내 눈앞에 꺼내든 것은 사진이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보고 놀랐다. 아내와 아들. 아직 보지 못했지만 지금쯤이라면 그 정도로 자라 있을 아들의 모습이었다. 그것을 보여주고서, 그는 미소를 지으며 품안에 사진을 도로 집어넣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여겨도 할 수 없어. 나는 너와 이야기를 하러 온 거니까.”
“이야기?”
“그렇다기보다는, 일종의 선물을 주러 왔다고 할 수도 있지.”
다른 편대기들은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기내에는 혼자만 남아있다. 목적지까지 도달하지도 않아서 자동조종 스위치를 넣을 수도 없다. 나는 계속 조종간을 붙잡고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하늘과 구름 위를 날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왠지 현실 같지 않았다.
“내가 지금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그만 돌아가 주겠나? 모든 걸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도 좀 부탁하네. 다른 대원들도 돌려달란 말이야.”
“그 전에, 메사슈미트부터 피하지.”

그 말과 함께 기체에 진동이 울려왔다. 그것은 내 현실감각을 일깨웠다. 기압계를 보니 기압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기체에 기총소사를 맞은 모양이다. 리틀 프렌즈-폭격기 호위용 전투기-들이 벌써 영국본토 쪽으로 되돌아간 모양이다. 독일놈들은 언제나 리틀 프렌즈가 떨어지자마자 공격해오니까.
잽싸게 왼쪽 창으로 날아가는 메사슈미트가 보였다. 그 조종사도 지금쯤 의아해 하고 있을 거다. 분명히 하복부로 날아와서 제대로 먹이고는 좌측으로 빠져 다시 기동하려 하는데 어떤 반응도 없고 대응사격도 없으니.

“일단 회피기동을 해봐.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 해볼게.”

그러더니 그 자가 부조종석에서 일어나 뒤쪽으로 나갔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어떻게든 이 거대한 덩치를 조종해 회피기동을 하는 동안, 상부의 기관총 사수석에서 총성이 울렸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몇 초 간격으로, 총성이 후미 사수석 쪽에서, 아래 사수석 쪽에서, 울려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는데,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있었던 건가? 그리고 몇 분 후 뭔가가 폭발하는 굉음이 울리자마자 그가 내 옆에 돌아와 있었다. 그는 태연하게 다시 헤드셋을 썼다. 나는 다시 목표지역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떻게 된 거야? 우리 대원들이 있었나?”
“아니. 다시 말하지만, 자넨 이 거대한 깡통 안에서 군인으로서는 혼자 남아있을 뿐이야.”
“그럼 대응사격은 누가.....”
“내가 다 했어. 자넨 조종이나 하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덩치가 작은 사람이라도 하더라도 약간 비집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좁은 기관총좌를, 그것도 거리가 조금 있는 후미석까지 그렇게 빠르게 왔다갔다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빨라봐야 적어도 30초 정도는 자리를 옮기는 데 시간이 소요될 터인데.

내가 그를 믿건 말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그는 아주 느긋하게 손톱을 살펴보고 있다. 그 손톱은 마치 죽은 사람의 피가 고여 말라붙은 것처럼 시꺼멓다. 그에게만 정신을 팔고 있을 수는 없어 진로를 다시 확인했다. 방향은 확실히 맞는 듯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다른 동료들의 경험으로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버리면 목적지는커녕 다른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적도 있다고 했으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자넨 제대로 날아가고 있어.”

한창 그런 걱정을 하고 있을 때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마디를 툭 던진다. 그렇다. 확실히, 이 자는 지금 내 옆에서 존재하고 있다. 그것도 내 마음 속을 읽고 초인적인 능력까지 발휘하면서. 나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럼, 이제 자네가 누군지 제대로 가르쳐 주실까.”
“이제야 이야기할 상황이 된 건가?”
빈정대는 말투가 성질을 긁는 것보다는 이 친구에 대한 호기심이 더 큰 게 지금의 심정이었다.
“그래, 이젠 이야기할 만한 때가 되는군. 그러니까 대답해줘. 자넨 도대체 무슨 존재야?”
“존재라.....”

젊은 남자의 눈이 잠시 초점을 잃었다.
“나라는 존재는 뭐랄까....전쟁의 요정과도 같은 거야. 아니면 하이에나라고 불러도 좋아. 하여간 전쟁터에서는 늘 있는 존재지. 그라임즈 자네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그럼 전쟁 속에서 자넨 뭘 하는데?”
“흠.....일단 영혼을 먹지.”
“뭐?”
“영혼을 먹어.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그들은 어차피 다시 되돌아갈 수 없거든.”
“되돌아가? 어딜?”
“너무 많은 걸 가르쳐줄 수는 없어. 그라임즈.”
그는 고이 무릎 위에 다시 놓았던 중절모의 챙을 매만졌다.
“그럼 자네가 왜 내 옆에 있는지도 말해 줄 수는 없단 말인가?”
“아니, 그건 말해줄 수 있지.”
그의 눈썹이 한껏 올라가 이마에 주름을 살짝 지었다. 입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아까 전에 내가 말한 걸로 미루어 알겠지만, 난 자네 머릿속을 읽을 수 있어. 자네가 입 밖에 한 번도 내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그 생각까지도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그 생각을 내게, 자네 입으로 말해주지 않겠나?”
“설마.....”
“그래, 바로 그 설마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고작 그 생각 때문에 내 옆에 나타나서 메사슈미트를 격추시키고 날 살려줬다고?
“그러니까, 자넨...... 내가 지금 전쟁을 혐오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내 옆에 나타났단 말인가?”
“빙고! 자넨 정말 대단하군. 대부분은 그런 말도 하지 못해서 내가 일일이 지적해줘야 하는데.”
그는 중절모를 내려놓은 채 어린애처럼 박수를 한 번 치며 말했다.
“도대체 그게 자네가 나타날 만한 무슨 이유라도 된단 말인가.”
“이유는 충분히 된다고 생각해.”
그는 조종석 전방에 넓게 펼쳐져 있는 구름들을 보면서 말했다. 그러다 부조종사가 조그맣게 걸어놓은 성조기를 손으로 집어 들었다.

“자네가 사랑하는 이 나라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커질 거야. 앞으로도 수많은 피들을 이 전쟁이라는 상황에 몰아넣고, 그것으로 자신의 힘을 더욱 불려가겠지. 그 피의 댓가로 다른 나라들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강대한 권력과 부를 가지게 될 거고. 그 다음 더 많은 전쟁을 수행하겠지. 마치 멈추지 않는 나선의 상승처럼....”
“그럴까.”
“반드시 그렇게 되어 있어. 그런데, 자네 같은 사람들은 조금 위험해.”
“내가?”
“그래. 자네 말이야.”
“내가 왜 위험하다는 말이지? 나도 이런 식으로 애국을 하고 있는데.”
“애국? 흐흐~”
잠깐 흘겨보니 그의 눈빛이 섬뜩해졌다.
“자네도 내가 일일이 설명을 해줘야 하는군. 전쟁을 시작한 이래 자네가 가져왔던 그 생각들에 대해서.”

그는 성조기를 내려놓고는 코트를 뒤적여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는 법정에서 심문을 하는 말투로 시작을 열었다.
“린드. L. 그라임즈 대위. 미 제8공군 소속. B-17 플라잉 포트리스 폭격기 조종사. 1942년 8월경 영국에 배치. 독일점령지 및 본토 폭격 임무를 수행 중. 여기까지는 똑같은 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지. 안 그런가?”
“......”
“그런데 자네는 1942년 10월경에 아주 엉뚱한 걸 보고 말았어. 자네가 보지 말았어야 할 서류를. 그건 자네가 몰고 간 폭격기에서 폭격수가 정밀조준해서 폭격한 곳의 사진이었지. 영국 쪽의 정보요원이 가져온 대외비의 그 사진들, 그게 자네의 머릿속을 뒤바꿔놓은 거야.”
그 사진들. 이제야 다시 생각이 났다. 그 사진들의 참상.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이제야 기억이 나는가 보군. 하여간에 자네는 다시 폭격기를 띄웠지만 이젠 정밀 조준 따위를 할 수 없게 만들기로 했어. 자넨 일부러 폭격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곳만 먼저 골라 들어갔지. 자네의 폭격수가 늘 투덜댔을 거야. 왜 선도기가 하필이면 이런 곳만 가는지. 하지만 자네는 그 참상을 다시 되풀이하기는 싫었을 거야.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비행기만 모는 게 좋아서 뛰어든 전쟁인데, 이런 것까지 겪어야 한다니. 오오 불쌍한 린드!”
안 그래도 비밀을 들켜 기분이 좋지 않은데 숫제 셰익스피어 연극이라도 하는 듯 지껄여 대는 그 말투에 점점 신경이 거슬려졌다. 그는 수첩을 덮어 다시 코트에 넣었다.
“하지만 오늘 내가 주는 선물은 색다른 것이지. 피할 수 없을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선물이란 건 뭔가?”
화가 난 말투로 쏘아붙이자, 그의 앞니가 드러났다. 송곳니도 함께.

“자넨 이제 조종을 할 수 없게 될 거야.”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조종간의 느낌이 이상해졌다. 계기를 보니 자동조종의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불길한 느낌에 조종석에서 일어나 밑으로 내려갔다. 다시 빈정대는 그의 눈빛이 내 등을 뒤따라왔다.
두꺼운 옷 덕택에 잘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기를 쓰고 움직여서 기체 맨 앞의 창에 장비된 노던 조준기가 있는 자리로 가니 조준기의 레버가 저 혼자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노던 조준기와 연동이 되면 기체를 조종사가 운전하는 게 아니라 이 조준기의 레버에 연동되어 조종된다. 나는 미친 듯이 조준기의 조정레버를 움직여보려 했지만 그것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귓가에 그 녀석의 숨결이 느껴졌다.

“여긴 지금 벨기에 상공이라고.”

벨기에? 벨기에라면 연합군에 우호적인 독일점령지이므로 함부로 폭격하지 말라고 명령이 내려오던 곳이 아닌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 지경에서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어느새 기체가 날고 있는 상공의 바로 밑에 보이는 것은 민간인들이 사는 도심지역이었다.
“조준기는 어디를 맞추게 될까요~”
흡사 노래라도 부르는 듯 그놈의 말투가 장난기를 담았다. 내 머릿속에서 다시 사진을 떠올렸다. 그런 일은, 안 된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말했잖아. 선물을 주겠다고.”
“그 선물이 민간인 지역에 대한 폭격이냐!”
“시끄럽군!”
그 놈의 말투가 격해지기 시작했다.

“넌 전쟁을 하고 있는 인간이야. 어차피 사람을 죽이게 되어 있다고. 그런데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 그런 짓거리나 하고 있다니. 우습기도 해라! 너의 그 알량한 반전주의와 행동이 당췌 뭘 어떻게 바꿀 수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전쟁은 일어나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죽게 되어 있어. 이건 적어도 네가 앞으로 100년가량, 아니 그 이후라도 막을 수가 없는 현실이야. 그런 현실에 순응하셔야죠. 대위님. 다른 사람들 모두와 똑같아져 버리라구요!”

나는 그놈의 손을 막으려 했지만 그 놈은 승리에 도취된 사람처럼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팔을 활개친 채로 버튼을 눌렀다. 폭탄 한 발이 폭탄창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비행기가 가볍게 상승을 시작했다. 그 바람에 비틀거리는 몸의 균형을 다시 바로잡고 조준기 안구에 다급하게 눈을 갖다댔다. 민간인 구역의 공원 공터에 정확히 그 한 발은 떨어졌다.

이상한 건 그 뒤였다. 분명히 단 한발만 떨어졌는데, 그 뒤에 갑자기 폭탄 여러 발이 떨어진 것처럼 그 주위가 폭약의 폭풍에 휩쓸리고 있었다. 민간인들의 집이 모두 박살이 나고 있었고..... 그리고 그 집안에 있을 사람들도 역시.....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분노에 가득 차서 그 놈을 올려다보려는 찰나, 그 놈은 발길로 내 턱을 걷어찼다. 나는 그렇게 정신을 잃어갔다. 그 놈이 내 귓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인 것도 같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다시 보게 될 지도 모르지. 어쨌든, 잘 지내라구. 린드.”

나는 그 다음의 상황을 잘 기억할 수가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어느 곳에 서 있었다. 누군가 앞에서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린드. L 그라임즈 대위! 내 말 듣고 있습니까?”
“아, 예.”
급히 대답을 하고 나서야 내가 서 있는 곳이 군사법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앞에 있는 군사재판관 3명과 속기사들 따위가 있는. 방청객 따위는 아무도 없다.
“대위는 지난 12월 2일 출격했던 폭격비행에서 폭격수 제임스 굿윈 중위에게 벨기에 민간인 구역의 공원에 폭격지시를 내린 사실을 인정합니까?”
“네?”
“인정합니까, 인정하지 않습니까?”
갑자기 군사법정에 서있는 내 모습도 희한했지만, 지금 상황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건 어쩌면 지옥의 풍경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폭격명령을 내린 건 아니지만 그 폭격기에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이 사람들은 내가 명령을 내려 그렇게 된 줄 아는 모양이다. 어떤 말을 하든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 안에서 중절모의 사내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본들 정신병자라고 하여 불명예제대나 떨어지겠지. 어차피 이대로라도 불명예제대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정신병자라는 딱지를 달고 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 그냥 순순히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유는.....”
나는 잠시 말끝을 흐렸다. 뭐라고 이유를 대야 한단 말인가. 기체의 연료가 생각보다 강한 옆바람 때문에 일찍 소진되어서 할 수 없이 기체를 가볍게 하기 위해 폭탄을 비운 게 거기였다, 이렇게 말을 하면 그럴듯 해보였다. 아마도 정밀 조사나 들어가야 그 거짓말이 탄로 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맘을 먹고 대답을 하려고 할 때, 누군가가 급히 법정으로 들어왔다. 그는 나를 보면서 딱히 눈치를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군사재판관장 쪽으로 다가서서 몇 마디를 소곤거렸다. 꽤나 오랜 소곤거림 후에, 군사재판관장도 그 사람과 마찬가지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법정의 망치를 들었다.
“이 재판은 잠시 휴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밖에 나가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있었다. 여기는 지옥도 무엇도 아닌 그냥 현실의 공간일 뿐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분명히 거기서 정신을 잃었고, 연료를 소진한 기체는 영불해협의 어딘가에서 추락하든가, 아니면 다시 메사슈미트의 공격을 받던가 해야 했다. 그런데 지금 멀쩡하게 살아서 군사재판이라니. 주머니에는 마침 담배가 있었다. 그것을 꺼내 물고 불을 붙이려는 데 누군가가 달려왔다. 그건 놀랍게도 나와 같이 그날 폭격기를 타고 출격을 했던 그 폭격수, 굿윈이었다.
“대위님! 도대체 어떻게 그걸 알아낸 겁니까?”
그는 오면서 다짜고짜 내게 물었다. 영문을 모를 소리에 그를 계속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가 답답한 듯 다시 물었다.
“어떻게 아셨냐구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뭐.....뭘 말이야?”
“시치미 떼시기는. 대위님이 명령을 내려서 단 한 발만 폭격했던 그 공원 말이에요. 대위님이 희한한 명령을 내리시길래 전 장난인 줄 알고 노던조준기의 조준연습도 해볼 겸 폭탄을 떨궜는데, 뒤에 오던 폭격기들이 전부 폭격을 해버렸잖아요. 저랑 대위님은 이제 볼장 다 봤구나 싶었는데.”
그럼, 그 여러 발의 폭탄이 터지던 그 광경은 그래서였던가.
“그런데, 그게 뭐가 어떻게 된 거라는 말이야?”
“아우 참. 그게 벨기에 점령 독일군 위관급들의 숙소라는 건 어떻게 아셨냐구요. 그 근처가 고급주택가라서 그놈들이 그걸 징발해서 쓰고 있었나 봐요. 그 쪽 정보원이 정보를 보내왔는데, 실제로 민간인들 피해는 적고, 독일군 위관, 영관급들만 다 아작사리가 났어요!”

선물. 이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 놈은 그 죽음의 선물 이외에 내게 전공이라는 선물도 함께 안긴 것이다. 나에게 사람을 더 죽이는 사람이 되라고. 격려의 차원에서.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그것 때문에 지금 사령부 쪽은 난리가 났어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미안해. 지금은.....잠시 좀 쉬고 싶어.”
나는 어리둥절하고 있는 굿윈을 뒤로 하고 일어나 건물 밖을 나왔다. 결과적으로, 내가 한 짓이 되어버린 그 황당한 전공. 나는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직, 본토로 돌아가기 위해 채워야 하는 폭격비행의 횟수는 23회 정도가 남아있었다.

1943년 가을경, 나는 고사포의 파편에 부상을 당하고 후방으로 후송되었다가 본토로 돌아갔다. 전쟁의 속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폭격에 죽어갔고, 나와 같은 폭격기 조종사들 역시 30회의 출격비행횟수를 채우지 못하고 무수히 죽어나갔다. 나의 부상은 꽤 운이 좋은 편이었고, 나의 그 내막을 알 수 없는 전공들까지 합쳐져, 진급한 계급장을 단 채로 부상에서 회복되어 다시 폭격기를 조종할 수 있었다.

1945년 전쟁의 막바지, 부임한 태평양의 한 작전에서 일본의 어느 도심지에, 나는 딱 한 발의 폭탄을 떨어뜨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전보다 더 커진 폭격기의 조종석에서 기계들을 체크하고, 수많은 바늘과 숫자들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천천히 활주로를 미끄러져 나갔다.

그리고 내 옆에는 다시 중절모의 사내가 앉아있다. 그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생각보다 빨리 만날 거라고 했지? 흐흐.”
나는 그의 너스레를 떠는 모습을 보면서, 빙긋이 웃고 있다. 그 놈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이번엔 마음이 편한 게 괜찮다.

폭탄이 조금 크긴 하지만, 이번에도 딱 한 발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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