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nd dog
1-2 Prime
“이 일에서 손 떼겠어.”
비취빛이 엷게 감도는 푸른빛이 어둠을 잘라내고 있었다. 티 없이 새하얀 가루가 영롱한 빛을 내며 모래처럼 흩어지다가 땅위에 내려앉는 순간 마법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사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마법처럼 이라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을 것이다. 마법의 성질을 엄연히 가지고 있는 물질에 마치 삼류 아류 마술사를 부를 때나 써먹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실례임에 틀림없으니까.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싶어서 확인해보는 건데, 어떤 겁에 질린 토끼 새끼 한 마리가 오줌을 질질 싸면서 살려달라고 빌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싶어]
대화는 화자이자 청자인 두 사람이 서로 마주대하고 이야기한다는 조건이 전제될 때에만 그 사전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무언가 상당히 잘못 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다. 푸른빛이 감도는 어둠의 한 구석에서 화자는 분명 하나였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청자도 하나라는 결론이 되고, 곧 대화라는 말은 ‘독백’ 이라는 말로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정할 수도 없는 것은 목소리도 두 개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똑바로 들어. 당신은 거기 편하게 앉아 있으니 상황이 어떻게 변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계획이 수정될 수 없을 만큼 어긋나 버렸어. 내가 임무완수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쳐 죽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무 성과도 없는 일에 개죽음 당할 용기는 없다는 거야.”
억제된 분노가 새어나오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었는지 다니엘의 억양에서 묻어나는 적대적인 의사는 어디에서 듣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대화의 필수요건을 충족시켜주고 있을 누군가에게 막힘없이 전달되고 있었다.
[세상이 다 니 좆 꼴리는 대로 돌아가는 건 아니에요, 다니엘. ‘너무 무서워서 오줌을 질질 싸버렸는데 도망쳐도 되나요?’ 같은 질문을 하려고 너 같이 개밥도 아까운 잡쓰레기가 나라재산인 전음서를 써버린 거라면 설령 거기서 살아 돌아온다 해도 심장을 적출하면 짐승이 몇 초나 더 살 수 있는지 실험해볼 수 있을 거야.]
거친 말을 뱉어내는 데 망설임이 없는 남자의 목소리는 그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처럼 넓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전음서를 쥔 손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푸른빛이 일순간 더 강해진 후에야 다니엘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너 하고는 대화가 안 통해. 헨리를 바꿔.”
[너? 방금 너라고 했나? 이러니까 좆도 없는 양철통 깡패새끼들한테 빠질 대로 빠진 양아치들이라는 소리를 듣지. 왜, 헨리라면 오들오들 떨고 있는 니 똥구멍이라도 긁어줄 것 같니? 고무장갑을 끼고도 니 엉덩이를 만질 일은 없겠지만 나도 네 개 짖는 소리를 들어줄 똥구멍은 성하니까 어디 털리는 대로 지껄여봐라.]
끼익, 하고 낡은 나무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다니엘은 스스로 민망할 정도로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 필시 보스가 물통에 물을 담아오라고 시킨 일을 행하던 녀석일 테지만 대낮처럼 환한 빛을 뿌리고 있는 전음서를 쥐고 있는 다니엘에겐 고양이가 우는 소리도 목숨을 위협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왼손으로 너무 강하게 쥔 탓에 노란 와이셔츠에 손톱에 찢어진 피가 묻어났지만 고통을 느낄 여유는 없다. 다니엘은 호흡을 진정시키고 나서 전음서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안에 기사단에서 파견 된 녀석을 알아내서 접촉했어야 해. 물론 알아내기는 했지. 그 멍청한 새끼가 늙은이한테 붙잡혀 피 떡이 되면서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리고 내일 모레 ‘미스틱 오션 페스티벌’ 에 간부만 모인 만찬에서 오후 다섯 시가 되기 전에 늙은이를 붙잡아 녀석에게 넘기면 녀석은 아마 저희 쪽 기사단에 연결된 루트로 이곳에서 빼내겠지. 아랫것들이 눈치 챌 쯤 이면 늙은이는 아마 우리 쪽이나 기사단에서 피 떡이 되고 있을 테고. 나는 이곳에서 헨리가 마련해준 루트로 안전하게 빠져 나가야만 해. 아니, 그렇게 될 수 있어야만 했지.”
[내가 지금 너 같은 똘빡 이라고 생각해서 다시 말해 주는 거냐, 아니면 전음서를 통해 너 같은 잡쓰레기를 돌보는 신한테 과거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빌고 있는 거냐]
뱅의 것이 틀림없을 비명이 아무도 들을 이 없는 산 속에 울려 퍼지고 보스의 노성이 뒤를 이었다. 녀석에게는 고문을 견딜 근성도, 의리를 지킬 충성심 같은 것도 없다. 더 심하게 쪼아댈 필요도 없이 뱅은 다니엘이 그를 쫓았듯이 그 자신도 경찰의 흔적을 찾아 조직을 파고들면서 얻은 증거를 모두 털어놓을 것이다.
잡히는 건 시간 문제였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내가 그랬던 것처럼 브라이언, 당신한테도 없다면 이 일에서 손 떼겠어. 그 잘난 특수경찰 뱃지는 너나 하나 더 달아도 상관없으니.”
다니엘은 마치 브라이언이 이 자리에서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힘을 실은 오른손가락으로 허공을 찌르며 격한 어조로 말을 내뱉었다.
[지금 다 늙어가는 노친네 하나 못 잡아서 무려 십 년 가까이 왕국의 인력을 잡아먹었던 사건을 다 말아먹겠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내 말 잘 들어, 네가 거기서 아무 것도 시도 안 해보고 달아난다면 난 네 말대로 그 잘난 뱃지는 잠시 서랍 속에 집어넣고 나타나서 죽여 달라고 할 때 까지 니 애미를 겁탈 해버릴 테니까. 그러고 보니 참. 너는 고아였지? 너 같은 천출 쓰레기를 공무직에 뽑아놓으니 이딴 일이 발생하는 거야. 일손이 없다고 똥냄새 나는 것들한테 민중의 목숨을 맡겨놓는 건 미친 짓 이지.]
“이 개자식 !! 다시 돌아가면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
[그건 듣던 중 마음에 드는 말이군.]
피가 거꾸로 솟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내질렀던 소리였지만, 비명소리가 가득한 헛간에서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는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의 이성, 그 한 가닥의 냉정이 다니엘의 목을 움켜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안심하기에는 밖으로 홀로 나간 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게다가 전음서가 발하는 푸른빛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소멸하기 직전의 몸부림 같은 것이었다. 의도적으로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면 마지막 순간에 뿜을 그 섬광, 그 만큼은 감출 도리가 없다.
알아주기라도 한 것처럼 지금까지의 차분한 어조를 조금 달리해 조금 빠른 어조가 된 브라이언의 음성이 어둠을 울렸다.
[너에게 말할 보안등급은 아니지만, 상황을 이렇게 개판으로 만들어놨으니 어쩔 수 없지. 조직 내부에 너 말고도 다른 특수경찰이 하나 더 있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면, 아베토 그 늙은이를 붙잡아. 사방으로 조직이 깔려 기사단이고 경찰이고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지만 머리통을 잡고 있다면 빠져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지. 놈이 널 도와 퇴로를 만들어주길 빌어라. 마지막 순간까지 녀석이 목숨이 아까워 조직의 졸개로 남는다면 넌 아베토 하고 같이 개죽음 당하겠지만.]
흘리는 말에라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에 다니엘은 순간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가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이성을 찾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빌어먹을, 처음부터 내가 실패할 것을 염두에 뒀군. 그래서 누구야? 지금 정체도 모를 녀석한테 목숨을 내건 일을 진행시키란 말야?”
[똥개 훈련 받는 기분이 더럽지만 다시 말하자면 너한테 알려줄만한 보안 등급이..]
파앗,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인기척을 느끼는 것과, 브라이언의 말이 사라지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에 다니엘이 전음서를 찢어 제끼는 순간이었다. 너무 집중을 하고 있었던 까닭에 너무 늦게 눈치채버리고 말았다. 등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다니엘은 그가 빛을 보지 못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푸른 빛, 새하얀 발광 가루. 대륙에 사는 지성 있는 생물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전음서의 흔적이다. 그리고 너무도 적나라한 섬광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수 없는 빛이었다.
다니엘은 자신의 와이셔츠가 땀에 완전히 젖고 있다는 것조차도 눈치 채지 못했다.
“다니엘.”
보았을까, 아니 보지 못했을까. 만약에 그 빛을 봤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여야 할까? 아니 그전에 등을 보인 이 상태로 그를 죽일 수 있을까. 그를 죽인다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간부가 열다섯 명도 넘게 있는 이곳에서? 빠져나가면 수 백 명이 지키고 있을 이 도시에서?
심장이 제 멋대로 요동치고 있다. 모든 것이 엉망이다.
“일을 너무 오래 보는군.”
싸늘한 어조. 듣는 이의 심장을 얼려 버릴 만큼의.
“클라드.”
그가 답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허리 뒷 춤에 있는 단도를 뽑아내려면 자신의 등을 바로 보고 있는 클라드의 시선을 피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방법 따위, 있을 수 없다.
숨이 막힐 듯한 정적이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꿈처럼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보스가 부른다, 일을 마쳤으면 들어와라.”
클라드의 걸음소리가 점점 멀어져가고, 이윽고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까지 다니엘은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
“저 녀석이야! 저 녀석이 확실해!!”
본래의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악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뱅은 잘도 똑바로 외치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한 손가락으로는 방금 클라드와 함께 들어선 다니엘을 가리키면서.
오른손으로 뱅의 머리칼을 움켜잡고 있던 아베토가 다니엘을 돌아보았다. 어이없다는 웃음을 띄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아베토의 얼굴이 일순간 이 모든 것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라는 군.”
다니엘은 말을 잇지 못했다. 거의 완전히 찢어진 손으로 바닥을 피범벅으로 만들어놓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뱅은 확신하고 있었다. 다니엘 그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기사단의 긍지 따위는 저 어딘가 모를 먼 곳에 묻어버린 채.
즉각 반응을 보였어야 한다고 후회할 틈새도 없이 다니엘이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무언가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아베토의 오른손이 다시 한 번 그의 머리통을 휘어잡아 자신의 코앞에 바로 위치하게끔 했다.
“알고 있는 걸 다 말한다면 혹시라도 목숨을 살려줄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단 말야. 이 친구, 이렇게 택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말이야.”
배시시 미소 짓는 아베토의 얼굴을 바로 눈앞에 두고 뱅은 겁에 질린 얼굴로 아까의 당당하던 기세는 모두 잊어버렸는지 처절하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 분명 해요…. 보스, 저에겐 딸이 둘이나 있어요… 제발…”
아베토는 당황해 하는 것처럼 보이려 미간을 찌푸렸다. 뱅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지는 몰라도, 조직의 모든 이는 알고 있었다. 그 표정이 희생자를 가지고 놀기 위해 위장된 일종의 잔인한 장난 같은 것임을.
“이, 이 친구 왜 이래, 이거? 기사의 긍지는 어디 갔어, 응? 이거 보게. 가슴의 휘장에는 왕관을 쓴 독수리가 두 날개를 벌리고 있고, 굳게 쥔 두 손에는 하늘도 찔러 베는 클레이모어에 끝없는 용맹함이 묻어난다네!”
그리고나서 아베토는 벨 마르도 왕국의 국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기사 취임식을 할 때 울려 퍼지는 편곡된 멜로디였다. 뱅은 도취된 얼굴로 오른손을 들어 올려 보이기까지 하는 아베토를 앞에 두고 서럽게 흐느끼고 있었다.
한도 끝도 없는 잔인함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 같잖지도 않은 연극 같은 장난을 관람하고 있는 이들은 알고 있었다. 뱅이 실제로 조직 내부의 첩자를 알고 있고,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아베토가 그를 멀쩡하게 살려둘 리가 없다는 사실을. 의심의 여지도 없이 확고한 사실이었고, 또 뱅이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다는 현실이 이 잔혹한 연극에 절정을 더하고 있었다.
흥얼거림이 다 끝나고 나서 질렸다는 듯 입맛을 쩝 다신 아베토는 다시 험상궂게 일그러진 얼굴로 돌변해 그의 목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고통에 콜록거리는 뱅의 입에서 핏덩어리가 토해져 나왔다.
“살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하네만, 뱅. 이 자리에서 자네의 그 개풀 뜯어 먹는 소리를 경청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네. 다니엘과 클라드는 내 오른팔과 왼팔이란 말일세. 아니면, 응? 너는 내가 날 배신할 만큼 한심한 녀석들을 끌어안고 있을 만큼 멍청하게 보이는 건가?”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는지 얼굴이 빨갛게 상기 된 뱅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컥컥 대며 죽을 것처럼 몸을 발버둥 치던 뱅이 입에 게거품을 물자 아베토는 그를 바닥에 내팽겨 쳤다.
뱅이 한동안이나 피에 절은 흙바닥에 몸을 비비며 고통을 호소하자 여태껏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던 이들도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배신의 댓가가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할 수도 없다는 것을 뼛속 깊이 알고 있음에 아무도 마음 깊이 그를 동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알고 있다. 이러한 처사 없이 아베토의 거대한 조직이 유지될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믿어보게 하려면 조금이나마 확신이 갈 만한 미사여구를 붙여 보란 말야. 뱅, 지금의 자네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좀 벌레로 밖에 안 보이네. 좀벌레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지.”
귀 기울일 필요도 없다는 소리를 하면서도 아베토는 뱅을 죽이지 않고 있었다. 다니엘은 계속 그 사실이 거슬렸다. 이 바닥에서 육십 평생을 썩혀온 몸은, 생존의 위협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분명, 저 자는 그 진동하는 냄새가 자신으로부터 연유한다는 것을 몸 속 어디에선가부터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 한줄기 본능만으로 반응하기에, 아베토는 지나치게 신중한 남자였고, 게다가 깊게 다니엘을 신뢰하고 있었다.
물론 지속되기 위해서는, 현 상황의 유지라는 쉽지 않은 전제가 있다. 귀결은 뱅의 죽음. 서둘러서라도 다니엘은 그의 죽음을 앞당길 필요가 있다. 이쪽에서 보면 어차피 그도 이중으로 배신을 한 셈이고 살려둘 만한 이유가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다니엘은 아베토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항상 하던 대로, 다혈질적인 면모를 보이면 의심을 살지라도 최소한 보스의 선택을 재촉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처럼 불분명한 상황에서 보스가 누구를 선택하리라는 것은 그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었다.
거슬리는 것이 없지만은 않았다. 좀 전의 푸른 섬광. 미처 감출 수 없었던 전음성의 소멸을 클라드가 보지 못했을 리가 없다. 일부러 늦게 헛간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그가 브라이언이 말한 다른 한 명의 특수경찰이 아닐까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추정하기에 클라드는 너무 오랫동안 아베토의 옆에서 그를 보좌해왔다.
5년. 있을 수도 없는 잠복기간이지만, 설령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5년이나 그의 옆에서 일해 오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위치에 회의해본 적이 없을까? 5년간이나 감추는 것이 가능한가는 둘째치더라도 그 시점에서 이미 신뢰하기 어려운 아군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클라드의 본심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것만이 변수였다. 오로지 외길 밖에 없는 지금에 와서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건 그것뿐. 안타깝게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보스.”
무거운 한 마디를 내딛고 그는 살아남기 위해 외길에 발을 내딛었다.
스르릉-.
낯설 수 없는, 무시할 수만은 없는 소리. 심장이 얼어붙는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멈춰선 건 다니엘만이 아니었다.
섬뜩한 은의 비명을 번뜩이는 검이 위협적인 풍채로 한 남자의 손에서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짙은 회색의 말총머리를 한 중년의 남자였다. 홀랜드라는 이름이었지, 아마. 활동 반경이 적어 경계 리스트에서 제외되었던 몇 안 되는 아베토의 간부. 그러나, 그것은 지금, 분명 수정되어야만 할 사항이다.
“그 남자의 말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닌 것 같군요.”
다니엘의 손에서, 미처 털어내지 못한 새하얗게 빛나는 가루가 흩어져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