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nd Dog 1-1 Prime

아와 월레스 작성일 07.02.09 13: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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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nd dog


 

1-1 Prime

 

 

 

 


 

늑대를 사냥하는 개가 있었다.

몸집은 곰보다도 컸고 이빨은 호랑이보다도 날카로운 사냥개였다.

매우 늙은 주인과 함께 필요한 만큼의 사냥을 하고 나면 어김없이

볼 품 없는 개집에서 잠을 자는 게 전부인 그런 사냥개였다.

어느 날 늙은 사냥꾼은 자신의 사냥개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도 두려워 할 필요 없는 그 몸으로 왜 시시한 늙은이의

개가 되었느냐고.

사냥개는 대답했다.


“주인님 저는 그저 당신의 사냥개일 뿐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죽고 나면,

틀림없이 당신의 시체는 제 먹이가 될 겁니다. 원치 않으신다면 그러지 말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것입니다.“




- 누르인의 108우화 中 -






 “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머물렀던 고향에는 아네모네가 유난히 많았지.”


 달이 타고 있었다. 누군가는 분명히 처음 마주했을 오래전의 달이 그랬던 것처럼, 붉은 치장을 한 달은 소름이 돋는 한기로, 고대로부터 영원처럼 전승되어온 침묵의 속삭임으로, 얼어 죽은 듯 고요한 만물의 잠을 붙들어 깨우고 있었다.

 야화(夜花)가 제일 먼저 밤손님의 인사를 맞았고, 뒤이어 8월의 나무가 바람에 흐트러져 정적을 흔들어놓았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고, 누구의 아낌도 받지 않는 이들이 붉은 달과 함께 저들만의 연회를 준비할 무렵에도 깨어있지 말아야 할 이들의 속삭임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들 역시 누구의 관심도 받길 원하지 않았고, 누구의 아낌도 받길 원하는 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밤의 신사가 초대한 무도회에서 가면을 벗지 않는 걸로 서로의 침묵은 곧 암묵의 계약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에게나 관대한 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그러나 동시에 가장 비밀스러운 신사임에 틀림없으니까.

 

 “젠장, 그런데 나는 그 꽃들이 정말 싫었어.”


 남자는 얼굴을 덮은 손가락 사이로 기억하기도 싫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엷은 미소에 배어있는 희열이 싫지만은 않은 회상에 젖어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아득한 먼 옛날로부터 그리움을 되짚는 노중년의 얼굴에 포근한 기운이 깃들 무렵 남자의 오른손에서 은광이 번뜩였다. 소심하기로 유명한 달의 눈빛에도 소름끼치게 번쩍이는 것이 식사용으로 쓸 법한 고풍스러운 나이프 따위는 아닌 듯 싶었다.. 조금 더 섬세한 용도. 그러니까 신속성과 정확성을 요구하는 칼 본래의 목적을 위한 그런 것이라면 모를까.


 “웬 줄 알아? 열여덟 살 무렵에 정신 나간 파파의 배때기에 이걸 쑤셔 박았을 때 그 작자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기 때문이야. 그래, 음. 맞아. 앞으로 내가 죽어도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너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재수 없는 소리를 했지. 그 고장에는 아네모네가 제일 많았기 때문에 믿진 않아도 재수가 없었던거야. 근데 결국 그 새낀 지가 키우던 돼지 똥이 됐어.”


 남자는 마치 자신을 대하고 있는 이가 같이 웃어줄 걸 기대한 것 마냥 어깨를 으쓱하곤 눈썹을 올려보였다. 그러나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상기된 얼굴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남자에게 조금이라도 미소를 지어보일만한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지 첩을 겁탈 할 때 죽였어야 하는 건데. 사춘기 꼬마한테 생일선물 줬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돌아가신 증조부가 보일 만큼 얻어터졌지만 날 죽이진 않았어. 돈이 있으면 계집이 갖고 싶고, 계집이 있으면 힘을 가지고 싶은 게 남자 아니겠어? 그거 봐. 결국 그 새끼는 아들한테 회 쳐져서 뒤진 채로 후장이 털리고 일생 동안 모아둔 모든 것을 뺏겨버렸지.”


 남자는 사고를 친 아들을 앞에 두고 근엄하게 훈계하는 아버지의 인상으로 칼날을 똑바로 세워 재갈을 누른 채 말을 이었다. 동시에 재갈이 물린 남자의 몸이 흠칫 들썩였다.


 “거기서부터 내가 얻은 교훈이 뭔지 알아? 나는 내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울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짐했지. ‘나는 앞으로 누구에게도 95% 이상의 신뢰를 주지 않겠다’ 고 말이야. 나 같은 놈이 또 없으리란 법이 없거든.”


 허스키한 목소리로 쭈그리고 앉아 말을 잇는 남자의 뒤로 열 댓 가량 되는 남자들이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노 중년에 가장 가까이 있는 두 명의 남자와, 그 뒤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줄지어 서있는 이들. 그것은 곧 이들의 서열을 의미했다.

 남자의 뒤로 가장 선두에 서 있는 두 명의 남자가 대조적이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새카만 머리를 뒤로 넘긴 눈빛이 날카로운 남자가 자못 여유롭게 미소까지 띄운 반면에 탁한 블론디 빛의 머리칼을 가진 20대 중 후반쯤으로 되어 보이는 남자는 무엇이 그리 초조한지 다 피우지도 않은 담배를 털어내고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노중년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곤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뱅,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게 다네. 자네는 저기 있는 클라드하고 다니엘과 더불어 내 아들 같은 존재였지.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나는 내 친아들보다 자네들을 더 신뢰 했었 다네. 일이 이렇게 된 건 정말 유감이야. 자네를 100% 신뢰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나도 내 숨겨둔 이야기를 털어놓았으니 이제 자네도 내게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하게.”


 날이 선 칼이 재갈을 베어내는 데 거의 힘이 작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뱅이라 불리운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뗐을 때 새어 나온 목소리는 절박하다 못해 처절하기 까지 한 음성이었다.


 “보스, 보스! 저는, 저는 정말 아닙니다! 제가 보스랑 삼년이 넘게 일하면서…”


 “오, 어, 아냐, 아니지 그건. 그건 내가 듣고 싶었던 대답이 아니네, 뱅.”


 칼의 손잡이로 두통이 이는 머리를 지탱하고 보스는 검지손가락을 침과 피가 범벅이 된 뱅의 입에 조심히 붙였다. 금방이라도 울컥 피를 토해내고 죽을 것처럼 공포에 질려 제 자신도 주체 못하는 떨림이 남자의 손가락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자네가 의외로 멍청한 구석이 있는 것 같은데. 조금 자세하게 설명해보도록 하지. 자네가 기사단의 끄나풀로 삼년 넘게 쥐새끼 짓을 해온 것을 내가 두 번 다시 입에 담기는 싫었는데 말야. 왜냐하면 나는 뱅, 자네를 너무 많이 아꼈기 때문에 그 배신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때마다 머리가 지끈지끈하거든. 근데 그러던 와중에도 슬프게 나는 깨달아버렸어. 분명히 내가 뱅, 자네를 이렇게 붙잡았는데 말야….”


 크게 치뜬 두 눈이 뱅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입가에 서린 절제된 분노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와 뒤섞여 끔찍한 공포로 다가오고 있었다. 뱅은 코앞까지 다가온 보스의 눈에서 죽음을 보고 있었다.


 “…어디서 아직도 쥐새끼 냄새가 난다는 것을…”


 보스는 뱅의 코앞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코를 킁킁거리는 흉내를 냈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분명 이자는 자신을 죽인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니 오히려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뱅은 더욱 목구멍까지 솟구쳐 오른 그 말을 되삼킬 수 없었다. 분노와 서러움 그리고 공포와 슬픔이 한데 뒤섞인 간절한 말이 터졌다.

 “보스 저는 정말로 아닙니다!! 저는..”


 콰악-!


 하고, 불쾌한 소리가 정적을 뒤엎는 순간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분명 소리가 나기 전에 그 날이 뱅의 손을 찢어놓았으리라. 그것이 인과임에.


 “틀렸어!! 빌어먹을 쥐새끼 같으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흉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노중년의 보스는 듣는 이가 기가 질릴 정도로 끔찍한 노성을 내질렀다.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의도적인 기술이 있었는지, 그럴 리 없을 텐데도 반쯤 찢어져 덜렁 거리는 손에서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피가 튀었다. 오른쪽 뺨에 타인의 피를 가득 묻히고 찢어죽일 듯 노려보는 남자의 얼굴이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가득했다.


 “니가 기사단에서 파견 된 쥐새끼라는 건 이 바닥에서 기는 네 발 달린 짐승은 다 아는 사실이야, 빌어먹을 새끼 같으니. 모르는 건 너 하나야!! 그리고 내 품에서 그 더러운 이빨을 남몰래 갈고 있던 쥐새끼 한 마리가 경찰로부터 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쥐새끼가 내가 가장 아끼는 이 애들 중에 있다는 것도 알았지!! 알만한 건 너뿐이다!! 그 자존심 높은 기사단하고 거지같은 짭새 들이 나 같은 노친네 하나 잡으려고 엉겨 붙었나?! 이 다 늙고 힘없는 노친네 하나 잡으려고 서로 뒷구멍이나 뚫어주고 있었나?!”


 “으허… 으허허… 빌어먹을… 빌어먹을… 어째서…”


 뱅의 눈과 입에서 흘러나올 수 있는 모든 것이 새어나왔다. 피와 눈물, 침이 범벅이 된 얼굴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서러움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보스, 더 이상 하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끄나풀 짓거리나 하는 녀석인데 뭐 얼마나 버티겠습니까.”


 머리를 뒤로 넘긴 흑발의 마른 남자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보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로 쏘아보며 초조하게 담배연기를 연거푸 뿜어내는 다니엘, 그리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건넨 클라드가 있었다.

 보스의 시선이 힘겹게 침과 눈물을 삼키는 뱅을 향했다.


 “기사단 새끼들은 지독한 놈들이 많지만… 뱅, 옛정을 생각해서 지금이라도 말한다면 편하게 보내주지. 하지만 아직 꼴같잖은 자존심이 남아있다면 자신의 내장이 쏟아지는 걸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겠네.”


 말을 맺음과 함께 보스는 뒷 춤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그 것’ 을 꺼내들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생에 걸쳐 구경한 번 해보기도 어렵다는 ‘그 것’. 제대로 겨누고 손가락에 가벼운 힘을 넣기만 한다면 살상력이 보장된다는 그 물건이었다.


 “제길… 빌어먹을… 이따위 일은 하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끊어질 듯 이어지는 뱅의 어조가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억양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뱅의 말에 아직까지도 그의 배신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던 자들이 있었는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열 댓 명의 남자들이 술렁였다. 그리고 동시에 원성이 가득 담긴 뱅의 절규가 헛간에 울려 퍼졌다. 죽음을 문전에 둔 상황에서 고통과 슬픔이 끝없는 분노와 서러움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왜 하필 나지?! 정말 여기 경찰 쥐새끼가 있어도 그저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겠지!! 하하, 그래… 사실 네 놈이 데리고 있는 녀석들 중에 수상하지 않은 녀석이 어디 있기나 한가? 다니엘, 그래 너냐? 네 놈도 혼자 전음서를 여러 번 썼었지!! 젠장, 천애고아로 태어난 새끼가 그렇게 비밀스럽게 연락할 곳이 많아? 말할 것도 없이 짭…”


 멀찌감치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다니엘이 달려와 뱅의 찢어진 왼손을 걷어찬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암산을 탈 때 쓰는 딱딱한 신이 덜렁거리던 손을 완전히 찢어발기는 순간이었다. 사람의 귀로 듣기에는 너무 끔찍한 비명이 헛간을, 아니 어둠 전체를 뒤흔들었다.


 “다니엘!!”


 클라드의 외침과 보스의 시선이 그 자신에게 향해있는 것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니엘은 담배를 털어내고 정신없이 뱅을 걷어차고 있었다.


 “이 정신 나간 쥐새끼가 이젠 아주 조직와해를 노리고 미친 소리를 쏟아내?!”


 클라드가 달려와 다니엘을 뒤로 끌고 가기 전까지 얻어터진 뱅은 끔찍한 고통에 정신을 놓은지 오래였다. 뱅을 노려보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다니엘과 그를 붙잡고 뒤로 물러난 클라드. 그리고 가볍게 미간을 찌푸린 보스의 날카로운 시선만이 남아있었다.


 “내가 너를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뭐냐, 다니엘. 지금처럼 과민반응을 보여서 의도하지도 않았던 의심을 사게 하지 마라.”


 다니엘은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붙잡고 있던 클라드가 들썩일 정도로 몸을 당겼다.


 “보스까지 의심하는 겁니까? 빌어먹을, 못해먹겠군!!”


 행여 라도 뛰쳐나갈까 다니엘을 붙잡은 채로 클라드가 말했다.


 “보스 말을 못 알아듣는 것뿐이다, 너는.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 들일정도로 보스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네 덕분에 뱅이 기절해버려서 심문할 시간만 늘려버리고 말았다. 경솔하게 굴지마.”


 “젠장…”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보스가 몇 번 신호를 보내자 뒤에 있던 몇 명의 남자가 헛간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물을 가져오라는 의미였다.


 “놔. 일이나 보러가게.”


 붙잡힌 채로 담배에 불을 붙여 입에 물은 다니엘이 침묵을 깨고 꺼낸 첫 마디였다.


 “…….”


 다니엘의 얼굴이 더욱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찢어진 눈은 아니었지만, 그 이상으로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기 때문에 찌푸린 얼굴이 위압감을 주기에는 충분한 인상이었다.


 “저 새끼 말대로 배신자니까 일보다가 똥 묻은 바지로 도망 갈까봐 겁나나 보지?”


 “놔줘라.”


 보스의 말이 떨어지고 나서도 클라드는 한동안 다니엘을 노려보다가 그를 놔주었다. 그것이 항상 그러했듯 거칠게 행동하는 다니엘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는지, 혹은 그것과는 다른 무엇이 있었는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어느 쪽이 정답이었던 간에, 다니엘이 다 피우지도 않은 담배를 털어내고 헛간 문을 나서고 나서도 클라드가 다니엘이 사라진 방향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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