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속신앙에 집착해 있었다.
이 말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로 주변을 싹 밀고 신도시가 들어온다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점쟁이의 말만 단순히 믿고서 이 집터를 지킨 부모님을 예로 들 수 있었다.
단순히 점쟁이의 말만 믿고서. 그 어떤 외부의 압박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서 말이다.
집안에 불상사만 생겨도 그의 부모님은 점쟁이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해결책을 구하곤 했다. 그때마다 점쟁이는 자기가 신의 대변인인 마냥
방울소리를 내며 눈을 허옇게 치켜뜨고는 한마디씩 던지곤 했다.
그는 그런 점쟁이가 싫었다. 신의 대변인인 마냥 그 잘난 주둥아리로
한 집안을 좌지우지하는 그런 점쟁이가 싫었다.
어느 날, 동생이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뺑소니를 치었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었고 약간의 타박상뿐이었다.
어머니는 "하늘이 도우셨구나"라고 연신 되풀이하며
이 날도 어김없이 점쟁이를 찾아갔다. 두 손과 발이 모두 닳도록
점쟁이한테 싹싹비는 모습이 그 어떤 파리보다도 능숙해보였다.
초록색 빛이 도는 하얀 봉투를 내밀자..
그 잘난 주둥아리에서 드디어 소리가 나왔다.
"집안에 액운이 끼었어..이걸 가져다가 집에 붙여. 반드시 피로 붙여야 해"
그날 저녁 그는 이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를 도와야 했다.
동물의 피를 벽에 떡칠해가며 집안에 존재하는 벽이란 벽에 모조리 부적을 붙였다.
부적엔 붉은빛 선혈이 도는 알다가도 모를 한문과 온갖 기호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방을 드나들다가 부적을 잘못 건드려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이놈의 자식이!! 니가 모든 걸 망칠 셈이야?? 빨리 도로 붙여놔!!"
몇주가 지나도, 집안의 부적은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방안은 피범벅이 되었고, 집에 들어가기면 하면 붉은색 빛이 감돌았다.
다음날, 어머니가 그에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점집에 가서 부적을 몇십장 더 사오라는 것이었다. 초록색 빛이 도는 하얀 봉투를 손에 쥐어주면서..
미칠 노릇이었지만, 하는 수 없이 점집에 심부름을 가게 되었다.
혼자 점집에 가기는 난생 태어나 처음이었다. 발조차 들이기 싫었지만,
사람이란게 원래 하기 싫은 일도 해야하면서 살아야한다는 사실을 곱씹었다.
약 30여분을 기다린 뒤,점쟁이와 대면하게 되었다.
점쟁이 앞에 앉자 그 날 따라 왜 이렇게 점쟁이의 존재가 커 보였는지 모른다.
그는 말을 걸려고 했지만. 점쟁이는 무언가를 끄적거리며
불안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몇 십분이 지났을까...그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기..부적을 좀 더 사러 왔는데요..."
점쟁이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각사각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방안에는 묘한 분위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의 말을 정말 못들은 건지, 들었는데 못들은 체 하는 건지 그로써는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1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점쟁이가 입을 열었다.
"자네 뱀띠지?"
"네..?"
"묻는 말에만 대답해."
"네.. 89년생 뱀띠인데요."
"기사년(己巳年)이군. 생일이 언제지?"
"새..생일이요?? 양력이요? 음력이요?"
"음력"
"6월...12일이요...."
"확실하군."
"네, 뭐가요?"
"내 말 잘듣게. 자네가 점쟁이를 증오하는건 아네만 이건 자네 목숨이 걸린 일이야. 자네가 나를 믿든 안믿든
그건 결국 자네의 최종선택이지만, 이번 한번만 날 믿어보길 바라네. 알겠나?"
"예..??....예....."
그는 더듬더듬거리며 간신히 대답했다.
대체 이 점쟁이가 무슨 말을 할지, 왜 이러는지 영문조차 알 수 없었다.
잠시동안 이어진 침묵.
점쟁이의 말을 듣기까지 궁금함에 입이 바싹 타들어간 그는 누가 침묵을 금이라 했는지 따지고 싶었다.
"인시( 새벽 3시~5시)가 되기 전 집을 빠져나오게."
"예? 집을 빠져 나오라니요?"
그때 그 점쟁이의 눈동자, 나를 쳐다보는 시선, 내 귀를 파고드는 가녀린 목소리.
내 심장을 통째로 움켜잡고 쥐흔들었던 모든 것들.
잊을래야 잊을수가 없다.
점쟁이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듯이..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경고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냥이 시작 될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