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그리나 - 십자가 (3)

NEOKIDS 작성일 09.04.19 03:5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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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그리나는 피비린내가 나는 방향으로 초영을 인도했다.

아파트 뒤편의 으슥해서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공간, 그 중에서도 아파트 1층 밑의 화단 공간이었다.

 

그곳에 아이가 있었다.

자기 또래 아이 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의 시체에서 팔 하나를 잡아뜯어 근육과 신경줄을 우적우적 씹으면서.

 

“젠장.......아이까지 물들였단 말인가?”

 

초영이 손짓을 하자 예그리나는 아이의 뒤로 가서는 그 아이의 신체를 구속했다. 촉수처럼 뻗어나온 영체의 줄기가 아이의 몸을 감싸고 묶어놓다 시피 했을 때, 초영은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불사제석 오실 적에 서풍불어 동이 틀 제

아기나리 힘을 빌어 무복영생 비시리니

도는 무레 어깃돌 괴어 저승길을 막아서매

어느 것이 삶이고 어느 것이 죽음이뇨

 

 

“끄아아아아악!!!!!!!!”

전의 목사 때와 마찬가지로 괴상한 소리가 아이의 입에서 울려나오고 있었지만 그건 예그리나의 영체에 의해서 완전히 봉쇄되고 있었다.

 

 

극락왕천 하신 귀의 내림손을 보우하니

삼신님이 임하시어 모든 허물 감싸웁고

옥수를 천상수 감로수 만드시옵는 손 따라

어둔 하늘 해맑기로 감싸옵소

 

 

초영의 타령이 끝남과 동시에 계속 소리를 질러대던 아이의 몸이 실신하듯 축 늘어졌고, 초영은 예그리나가 봉인하듯 끌어안고 있는 아이를 업어서 프라이드에 태웠다.

그리곤 다시 여자아이의 시체 근처로 와서는 품 속에서 꺼낸 치성수를 주변에 뿌리고 역시 굿거리의 약식을 행했다.

 

보통 옛날 어머님들이 치성을 드리기 위해서 정갈하게 그릇에 담던 물. 어머님들의 치성이 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신들에게 전달되던 방식이었다면 초영의 치성수가 틀린 것은 진짜 무당들의 제대로 된 치성이 듬뿍 담겨져 있다는 것.

그 치성과 위로의 기운은 먹힌 아이의 맺힌 원한을 달래고 고이 이승을 떠나도록 아이의 원혼을 따스하게 인도해줄 것이었다.

 

초영의 지하 당실.

이미 몇십 개의 부적이 붙여져 고이 잠들어 있는 아이.

가만히 뜯어보니 이제 초등학교 2학년 정도 되었을까. 앳된 기가 가시지 않은 아이였다.

부적으로 인해 포악한 기운이 사그러든 아이는 불그레한 홍조를 띄면서 잠잘 때처럼 숨을 쉬고 있었다.

하지만 부적과 치성수 정도로는 이렇게 진정시키는 것이 고작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초영은 잠시 아이를 바라보다가 예그리나를 보았다. 예그리나 역시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아이의 몸까지 이용하다니. 정말 악독한 기운들이야.”

“그러게.”

 

예그리나가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초영의 말에 대답했다. 초영은 예그리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예그리나의 영체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윤기 있는 긴 머리, 호리호리한 몸매, 맑은 두 눈. 무교에 연관되어 신내림을 받고 능력을 가진 사람 외에는 절대 보일 리 없는 그 영체의 모습.

 

그 모습은 초영이 알고 있던 그녀가 죽기 직전의 바로 그것이었다. 품 속에서 죽어가고 있던 그녀, 그리고 울부짖으며 빗줄기 속에서 삼신에게 구원을 청하던 자신.

 

제대로 결혼했다면 이만한 아이가 있었을 지도 모를 8년 전. 그녀와의 미래, 즐거움. 살아간다는 것.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을 터였지만, 이미 그녀는 죽어 예그리나가 되어버렸다. 예그리나도 이런 것을 알고 또 생각하지만, 초영을 생각해서 가타부타 많이 입에 말을 담지 않는 것이리라.

 

“건석이보고 빨리 오라고 해야겠어.”

 

상념을 떨치려고 괜스레 큰 소리로 말하면서 초영은 핸드폰을 열고서 버튼을 눌렀다.

건석의 핸드폰 신호가 아주 오래 울렸다. 벨소리가 1분여를 넘기자 초영은 문득 불길함을 느꼈다.

이렇게 건석의 신호가 오래가진 않았다. 언제, 어느 때건 건석은 세 번의 신호음이 가기 전에 전화를 받았었다.

초영이 그런 불길함을 애써 지우는데 갑자기 신호음이 끊기며 건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잡아왔어.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더군.”

--그런가?

“이미 악령이 몸을 잠식한 상태야. 부적으로 막아놓긴 했어도 언제 부적이 힘을 다하게 될 진 몰라.”

--그렇군.

“우리도 아이 때문에 지금 좀 불편해. 언제 데려갈꺼야?”

--계획이 좀 바뀌었어.

 

건석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수화기 너머로 울렸다.

 

--협회에서는 아이를 네가 직접 데려오길 원해.

“뭐?”

--경찰에게 네가 아이를 데려갔다는 제보가 들어간 모양이다. 너도 위험하니까 같이 오라는 거야. 장소는 핸드폰으로 약도를 남겨주겠다. 되도록 빨리 데려와.

 

무뚝뚝함이 넘쳐흐르는 건석의 목소리. 그리고 전화는 급히 끊겼다. 초영은 핸드폰을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오는 문자를 보고는 미간을 찡그렸다.

 

장소는 아주 외딴 곳의 산장으로 되어 있었다. 초영의 차가 프라이드이기에 망정이지 아주 협소한 길로 되어 있는 산길을 따라 가야만 하는. 이미지에는 그런 것들까지 친절히 가르쳐주고 있었다.

 

초영은 그 이미지를 꼼꼼하게 살펴보고는 결심을 굳혔다.

 

“예그리나. 아이를 데려가야겠어.”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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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써보려고 무교에 대해서 나름 공부를 하면서,

많은 재밌는 것들을 접했습니다.

하나하나, 다 전달해 드릴 수는 없을진 몰라도

노력해보도록 하죠.......

 

아......중간의 타령은 현존하는 실제 굿거리 타령이 아니라

제가 지어낸 겁니다........(-_-);;;

나중에 현존하는 실제 굿거리 타령 가사들도 삽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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