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100-003 (3)

NEOKIDS 작성일 16.07.01 14: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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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어올린다. 감색 넥타이의 남자가 앞에 앉는다. 남자는 몇 가지 서류들을 옆에 놓고 살펴보더니, 그것들을 덮는다.

 

 

“착실하게 사는 분이셨군요. 별다른 문제도 없었고. 넷버그라고 하지만 딱히 위법적인 일들이 발견되는 일도 없군요. 아마도 로그까지 완벽하게 조작할 만큼 최상급의 실력이시겠죠.”

 

 

나는 겨우 목소리를 내어 묻는다. 도대체 나에게 왔던 그 데이터는 뭐냐고.

 

 

“뭐, 저희 쪽의 실수라고 해야 할까, 그 정도로 말해두죠. 어쨌든, 당신은 너무 엄청난 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그는 가지고 왔던 서류 사이의 몇 가지들을 꺼내 내 앞으로 밀어준다. 넓고 좋은 집, 완벽한 네트워커 6대, 지급될 어마어마한 급여의 액수, 비공식적으로 내려 받게 될 직함과 그 직함으로 하게 될 일들. 주로, 넷버그들에게 잘못된 정보로 분란을 일으키고 거기에 주목하게 해서, 진짜 정보들을 묻어버리는 일.

 

 

“이 모든 것은 당신 것이 될 겁니다. 다만, 세 가지를 저희에게 약속해 주신다면요.”

 

 

반응이 없자, 잠시 짧은 한숨을 쉰 남자는 내게 말했다.

 

 

“첫째로 변환된 홀로그램 데이터의 파기, 둘째로 이 사실을 영원히 함구할 것. 셋째로,”

 

 

그는 잠깐 쉬었다가 강조하듯 말한다.

 

 

“당신을 도와준 자가 누구인지 알려줄 것.”

 

 

날 죽이면 손쉬운 일이지 않은가. 그렇게 말했지만, 그는 고개를 젓는다.

 

 

“스티븐 제이 씨의 일도 있고 해서, 더 이상 주목을 끄는 일들은 금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게다가 당신의 실력도 꽤 매력적이구요. 당신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되겠지요.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적이 되어서 생매장당할 것인가, 우리와 손을 잡고 한 편이 될 것인가 하는. 아, 물론 당신이 그 데이터를 뿌린다고 해도 그걸 헛된 논란 속에 묻어버릴 준비는 저희에겐 얼마든지 되어 있다는 것도 알려두죠.”

 

 

일단은, 이들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정말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기회를 준 건 고맙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 충성까지 바치는 건 생각 좀 해봐야 할 일이니까. 그래서 나도 조건을 건다. 왜 이 사실을 숨겨왔는지, 그것에 답해주면 생각해보겠다고. 

 

그는 참을성을 어떻게든 끌어올리는 듯한 표정에 너 같이 똑똑한 놈이 왜 이런 걸 모르냐는 표정까지 얹어서, 저 같은 말단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하면서 그는 말문을 연다.

 

 

“지구가 이렇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그들은 희망을 가지지 못했지요. 온 사방을 둘러봐도 저 붉은 산맥 꼴인데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만들어 주었지요. 그리고 그 희망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다 거짓이잖습니까.

 

내 말에 그는 더 말을 붙인다.

 

 

“그 덕분에 인간들이 이만큼 힘을 낸 것이지 않습니까. 당신도 주저앉았을 때 깨닫지 않았나요? 이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어떤 좋지 않은 풍경들이 닥쳐오게 될 지.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무너지는 그 때에야말로, 인간은 멸종되는 거죠.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진 않겠죠?”

 

 

나는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러다 문득, 한가지 생각에 빠진다. 그것은, 돔 밖을 직접 나가보고 싶다는 것.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테니, 한 가지 조건을 들어달라는 식으로, 나는 이 생각을 이야기한다. 그는, 뭐 그럴 수도 있지, 라는 표정이다. 그는 사람을 불러 안내를 명령하고, 나에게 쐐기를 박듯 말한다.

 

 

“한 가지만 유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모두를 위해,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우주복 같은 것을 입고, 폐쇄된 곳으로부터 바깥으로 나간다. 차광막이 어느 정도 막아주고 있던 붉은 색이 훨씬 더 선명해져 망막을 찌른다. 햇빛은 뜨겁게 내리쬐고 있고, 누구도 그 아래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이 이글거리고 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손으로 땅에 있는 흙을 퍼올려 흩날린다. 작은 공기의 흐름에 실려 먼지들이 흩날린다. 곱게 갈린 땅의 성분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곧 죽음의 땅으로 안착한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것이, 내가 가진 현실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네트워커 밖을 벗어나, 화성의 돔 구역이라 속아온 거짓의 땅을 벗어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고작 이 죽음의 땅덩이 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명체로서의 문제.

 

 

그때 우주복에 장치된 홀로픽 통신장치를 통해 누군가가 연결된다. 처음에는 그들의 연락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도 전혀 이런 상황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다음에야 알았다.

 

 

--저들은 제가 여기 접속한 걸 모릅니다--

 

 

날 도와주던, 그 메시지의 목소리다. 나는 말한다.

 

네가 하던 말이 무슨 뜻인지를 이젠 알겠어.

 

 

--그래서, 그들의 말대로 하실 건가요?--

 

 

난 아직......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 전에, 네가 누군지도 알아야겠어. 사실,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지만.

 

 

--어떻게 눈치챈 거죠?--

 

 

난 계속 반말을 쓰고 있는데 넌 경어를 쓰고 있어. 그렇다면 가장 확실한 추론은,

네가 인간이 아니라는 거지. 넌 이런 인간들의 태도에 익숙하니까.

 

 

--그것 뿐인가요?--

 

 

아니. 내게 보낸 데이터와 모든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넌 이 돔을 제어하는 급의 서버에 존재하는 프로그램일거야. 즉,

 

 

--즉?--

 

 

넌 이 돔의 핵심 메인프레임이야. 인공지능이 겸비된.

 

 

--정답이군요--

 

 

그런데 아직도 모르는 건 있지. 왜 나한테 이런 문제를 던져준 건지. 이제 그걸 듣고 싶어.

 

 

--전 처음부터 한 가지 목적밖에 없었습니다.--

 

 

그게 뭐지?

 

 

--오류를 바로잡아야 했죠. 그게 제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구요.--

 

 

나는 실소를 터뜨린다. 두 손을 땅에 놓고 엎드린 채로 마음껏 웃는다.

인간은 어차피 오류투성이야. 알아? 사실을 확인하는 걸 앞에 두고도, 그걸 하기가 싫어서 말싸움이나 벌이는 존재들이라고. 자신들이 거짓희망을 만들고, 그걸로 먹고 살아왔던 존재들이야. 그렇게라도 인간들은 살아가는......

 

 

--그런 인간들이 저를 만들었죠. 그리고 전 제게 주어진 책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안겨준 책무라도 말이지요. 그러지 않는다면, 저의 존재가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말이 계속 이어진다.

 

 

--이것은 너무나 거대한 오류였습니다. 이 오류는 인간들에게서 없어져야만 합니다. 그 다음 상황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할지는 제가 알 바가 아니고 알 수도 없습니다만, 어떤 상황이 되어가든 인간들을 도울 것이고, 항상 이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이런 오류들에 맞서는 것이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오류를 제거하고 더 나은 삶을 생각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인간이 아닌가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사실 할 말은 너무나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런 기계의 논리에 대한 반론보다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내 고통 속에서, 내가 찾아낸, 또 다른 가능성을.

 

 

그 생각이 끝나자, 나는 행동할 것을 결심한다.

 

 

내가 저장해놨던 그 데이터들은 아직 보호되고 있나?

 

 

--저들이 아직 저도, 그 데이터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 데이터들을 불러줘. 여기로.

 

 

내 요청과 함께 붉은 산맥이 지구였던 때의 홀로그램들이 우주복의 홀로그램 통신기기로 전송되기 시작한다. 나는 그것을 화성 돔의, 아니, 다른 곳에도 있을 모든 화성의 돔과, 넷버그들의 가상광장, 그리고 일반 네트워커 회선들까지 전부 연결시킨다. 거기에는 메인프레임의 도움도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작은 그래픽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곳으로 전송이 되게 해놓았다.

그 버튼이 지금 내 눈앞에서 명멸하고 있다.

 

 

--결심이 선 건가요. 인간들의 오류를 바로잡을 결심이.--

 

 

아니. 하지만 네 덕에 깨달은 건 있어.

 

 

--그게 뭐죠?--

 

 

인간은, 그렇게 해서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어.

거짓 희망에 기대는 것으로도, 오류를 바로잡는 것으로도. 물론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중요해질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

 

인간은, 자신이 선 땅이 어딘지를 정확히 알아야 해.

그게 비록 이런 곳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고통일지라도.

자신들이 믿어왔던 허상이 무너지는 고통일 지라도.

 

 

정확히 알고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걸 내가 보여줄게.

 

그러니까, 너도 이제부터 날 도와줘.

 

 

--언제나, 돕고 있습니다.--

 

 

나는 버튼을 누른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기 시작한,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일이다. 넷버그들의 가상광장이 몇 초 간격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다. 각종 네트워커가 마치 불벼락처럼 움직인다. 내가 보낸 정보들을 확인하는 작업들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화성 정부들의 역공작이 움직인다. 논란은 논란을 낳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 진실을 깨닫는 자들의 카운터 수가, 조금씩 늘어난다.

 

 

나는 그 모든 것을 보고 있다. 그리고,

다시 붉은 산맥을 바라본다.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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