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현 연재소설] 백수와 백조 (2)

행동반경1m 작성일 09.09.04 22: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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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조 >

두시 반 비행기라고 그래서 넉넉하게 10시 쯤 집에서 나왔다.
그냥 집에 가서 엎어지고 싶었지만, 어제 재워준 성의를 봐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아침 일찍 이른 시간이라  배달 시킬만한 중국집도 없어 공항에 가는 내내 빈 속이 울렁 거린다.
그나마 일요일이라 시내에 차가 별로 없는게 다행이었다.
근데 그 웬수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실 실실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약같은 것을 하는 놈 같이 보인다.
거기다 라디오에서 핑클 노래가 나오니까  "오! 예~" 하며 따라 부른다.

.....더 이상  잃을게 없는 놈 같아 보였다....
사고에 대비해 안전벨트를 꼭 움켜 쥐었다.

 

 

 

< 백수 >
 
운전을 하고 가는데 자꾸만 새벽에 산발한 모습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왔다.
옆에 앉아있는데, 얼굴을 쳐다 보았다가는 너무 크게 웃을 거 같아서 앞만 보고 운전했다.
마침 핑클의 노래가 나오길래 웃음을 참으려고 크게 따라 불렀다.

도착해서 대충 신공항 건물 좀 구경하고, 빈 속에 국수 한 그릇 때려 넣고 친구 녀석을 들여 보내는데 이놈이 수고했다고 봉투를 내밀었다.
안 받을라 했는데, 이 자식이 자꾸 “같이 데이트나 해." 하고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별로 고맙지가 않았다.
줄라면 저 인간 안 보는데서 줄 것이지.....

 

 

< 백조 >

 

지지배....몰디브로 간단다.
말만 들어본 그 곳....
나도 과연 그런 곳에 가 볼 날이 있을런지 생각만 해도 서러움이 자꾸만 복받쳐 올랐다.
그런데 이 웬수는 신랑이 주는 돈을 자꾸 싫다고 거부한다.

빙신......확 내가 나꿔채고 싶었지만 체면 땜에 참고 있었다.
돌아 오는 길, 둘이 있으니까 쪼끔 썰렁하다.

아....지금 이 길이 신혼여행의 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절대 저 녀석하고는 아니다.

아파트 관리소에 차 열쇠를 맡기고 나더니, 녀석이 뭔가 내게 할 말이 있는듯 한참을 우물쭈물 거린다.
사내자식이 저렇게 용기가 없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 나가려는지 마누라 고생께나 시킬것 같다. 
데이트 하고 싶음, 하고 싶다고 말을 하던가.
분명히 영화 한 편 보자고 할 것 같다.
어떡할까?
음....볼 까 , 말 까......
아까 받은 돈도 있으니 아까워서라도 봐야 되겠지.

그런데 이 자식이 한다는 말이 "저기요.... 요 근처가 충무로 잖아요..."
충무로?  영화보자는 얘기치고는 좀 진부하다.
"거기 돼지 껍데기 죽이게 하는데가 있는데, 우리 껍데기나 먹으러 가죠."
"................!!!"

 

 

 

< 백수 >

 

씨....걍 집에 가고 싶었지만, 받은 돈 때문에 그럴수도 없어 한참을 고민했다.
에이, 이 자식은 5만원 줄거면 그냥 주던지 뭘 봉투에다 넣고 폼을 내는지.....
하는 수 없이 껍데기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쫌 실망한 눈치 같았다.
바보...껍데기가 얼마나 맛 있는데.

막상 들어가 앉아 맛을 보더니 나보다 더 잘 먹는다.....^^;
어제 간만에 술 맛을 봤더니 오늘은 오후부터 술이 땡긴다.
역시, 술은 쉬면 안 된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얘는 어제 많이 먹어서 안먹겠지?
그래도 예의상 "어떻게 한 잔 ....?" 했더니  달란다.
그래 차라리 빼는 여자보단 낫다.

 

< 백조 >
 
황당했지만 이 자식이 자꾸 맛있는 거라고 벅벅 우겨서 따라갔다.
가게도 어디 꾸시시 한데로 끌고갔다.
수 틀리면 확 엎어버리리라 맘 먹었다.

근데 돼지 껍데기가 생각보다 맛있었다.
첨 먹어보는건데 굉장히 고소하고 씹는 맛도 좋았다.
녀석이 "거봐요~~ 등소평이 그것만 먹었다니까요." 하고 자랑을 한다.
확실히 입맛이 도니까 짜증이 봄눈 녹듯 확 가라 앉는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매너도 제법 있는 놈 이다.
의자를 빼주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맞춰 주고 그 밑에 냅킨까지 깔아 주었다.
고기도 잘 구워진 것은 내 앞으로 밀어주며 드시라고 한다.
그래서 안 마시려던 술을 한 잔 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 백수 >

나는 전생에 웨이터였나 보다.
어디 들어가서 앉기만 하면 자동으로 식탁 세팅을 해야 직성이 풀리니 말이다.
고기도 남이 뒤집기 전에 내가 먼저 뒤집어야 직성이 풀린다.

근데 이상하다.
아까 그렇게 껍데기 생각이 나더니 몇 개 먹고 나니까 별루 땡기질 않는다.
그래서 걔한테 다 밀어줬더니 우걱우걱 잘도 씹는다.
배가 몹시 고팠나 보다.

난 술이 고팠다.
따끈한 어묵 국물에 소주가 잘도 넘어간다.
소주 일 병을 하고나니 약기운이 조금씩 도는거 같다.

무슨 일 하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지 고민이 된다.
짤린 직장을 댈까.....
혹시, 제수씨가 저 녀석 논다고 벌써 말해 버렸으면 어쩌지....
분명히 말했을 것 같았다.
젠장 이래서 여자 만나는게 싫다.

< 백조 >

무슨 일 하느냐고 물어 보고 싶었지만 내 처지 땜에 그럴수도 없었다.
회사에서 짤리기 전에 내 발로 걸어 나올 때는 내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땐 정말 괴롭다..ㅜ.ㅜ

어느덧 소주가 2병째 비워지고 있었다.
이제 결혼 한 애 얘기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름기를 먹어서 그런지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난다.
저 놈이 맥주 한 잔 더 하자는 얘기 안하고 그냥 집에 가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별 수없이 캔맥주나 사들고 가서 신세한탄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우울한 상상을 하고 있는데 저 놈이 맥주 한잔 어떠시냐고 물어본다. 
당근 O.K 였다!!

아차차....넘 좋아하는 티를 내면 안되지......

 

 

< 백수 >

 

먹는것 앞에 놓고  빼지 않고 잘 먹는게 마음에 들었다.
그래 다시 안 볼 앤데.... 시원하게 맥주나 한 잔 하고 헤어지자고 했다.

내 전공 분야였다. 
오백cc 한 잔을 시원하게  원 샷 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젠장....내 친구들은 천짜리도 원 샷 하는데.
네잔 째 마시고 화장실에 가는데 띵~ 했다.
아무래도 어제 한 잠도 못 자서 그런 거 같았다.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다크써클에 눈까지 퀭하다.
으~~ 저 웬수....
그래두 얘기를 나눠보니 괜찮은 애 같았다.
문제는 나 자신에 대한 얘기를 회피하니까  대화가 자꾸 빙빙 겉도는 것 같았다.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다.
내가 노는데 쟤가 보태준게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리에 돌아가서 솔직하게 얘기했다.
나 백수 생활한지 6개월 째라고.

순간 걔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사실은 자기는 회사 나온지 2년 넘었단다.
백조란다.....그랬구나.....

한바탕 웃었다.
노는 사람들끼리 뭐가 좋다구.... 몇 잔을 거푸 들이 마셨다.
그리고,  필름이 끊어지고 말았다.....ㅜ.ㅜ

 

 

< 백조 >

 

놈이 맥주 500을 원 샷 하는걸 보니 내 학창시절이 기억난다.
지금은 체력이 딸려 도저히 안되지만 한 때는 나도 저런 것쯤이야  조족지혈(鳥足之血)이었다.
생각보다 술을 잘 마셨다.
자식이...어제 좀 그렇게 마시지.

나 한잔 마실 동안에 500을 네잔이나 먹더니 화장실에 물을 빼러 간다.
그 틈을 이용해 집에 전화를 때렸다.
"엄마 나야."
"어~ 왜?"
"엄마는.... 딸이 전화 했는데, 어, 왜가 뭐야. 걱정도 안 돼?"
"어제 은미가 전화해 주더라...너 은미네서 자고 갈꺼라고."
"아유, 알았어. 끊어. 쫌 있다 갈께."

슬펐다.
이젠 체념한 듯, 초연한 엄마의 목소리가 날 아프게 했다....ㅜ.ㅜ

놈이 화장실에 갔다 오더니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날 똑바로 쳐다봤다.
갑자기 무슨 약물 같은 것을 투여하고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여....물어 볼게 있는데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는 집에 가서 먹었어야 하는 걸, 하는 후회가 밀려 들었다.

"제가 뭐 할 거 같애요?"
".........??"
"제가 사실 놀거든요. 회사 짤린지 6개 월 됐어요."
"예....."
"근데 제 얘길 안하려니까....그 뭐랄까....웬지 답답하더라고요. 뭐, 물론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더라구요. 누군가를 만나서 이렇게 짧지 않은 시간 대화를 하는데.....괜히 큰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도 같고요. 그냥 저에 대해서 솔직하고 싶네요."

솔직히 의외였다.
은미 그 지지배도 그런 얘길 안 해줬었다.
하긴 물어볼 틈도 없었지만........그래도 솔직한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다.

자식, 근데 벌벌 떨면서 얘길하냐...^^ 무슨 큰 죄 지은 것 처럼.
내 얘길 할까 ,말까.....?
그래 나도 솔직해 지자.

"저겨....짤리신지 6개월 됐다구요?"
"예?...아 예. 그 뭐....곧 일 들어가야죠."
요놈아...^^ 직장 잡기가 그렇게 쉽냐...그럼 내가 2년 넘게 쉬고 있겠냐....
"사실 전..... 짤린지 2년 넘었어요."
미쳤나 보다...이런 말을 이렇게 쉽게....

"예?!!!"
아~ 그자식 사람 민망하게.....
"사실 저도 백수 아니 백조예요."
"......................"
이 자식이 왜 이러나.......

"푸하하하하~~~ !!!!"
"아우, 뭐가 그렇게 웃겨요...."
"악수 한 번 합시다!  아~ 사람이, 진작 얘기하지...암튼 반갑습다!!"

웃기는 놈이었다.....뭐가 그리 좋다구 악수까지....
암튼 홀가분한 맘으로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역시 사람은 거짓말 하고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놈은 백수라는 사실을 털어 놓으니까 엄청 홀가분한가 보다.
술을 마구 들어 붓는다.
그러더니.....그냥 잠들어 버렸다.

마치 삶의 모든 긴장을 일순간에 놓아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좀 안 돼 보였다.....하긴 남 걱정 할 때가 아니다.

간신히 부축해서 밖으로 나왔다.
힘이 딸려서 잠시 계단에 앉혔다.
웬수가 내 어깨에 기대어 다시 잠이 들었다.

많이 취한 것 같진 않은데 피곤에 지친 모습이다.
잠시 그대로 있었다. 
코까지 골며 자는데 깨우기가 미안 할 정도로 곤히 잠들어 버렸다.
왠지 모를 측은함에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낄낄거림에  정신이 번쩍 든다.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들이 참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쪽 팔렸다.....
놈의 핸펀을 꺼내서 집전화번호를 찾아 봤는데 아무것도 입력된 것이 없었다.
갑자기 고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갑을 꺼내 뒤졌다.
복권이 나왔다.
눈물이 났다....꿈도 야무지게 40억 당첨금 짜리였다.

내가 막 지갑을 뒤지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무슨 빽치기 보듯한다.
여러가지로 쪽 팔린다.
간신히 수첩에서 집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했다.

여동생인거 같았다.
누구냐고 하길래 얼떨결에 여자친구 라고 했다.
그럴리가 없다는 듯 의심스러워 했다.
아무튼 집이 대림동 이라는 걸 확인하고, 여동생 보고 나와 있으라 그러고 택시에 태워 보냈다.

집에 들어와 생각하니, 집까지 바래다 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핸드폰에 찍힌 놈의 집 전화번호가 보였다.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머니이신 듯한 분이 받았다.
여보세요~~ 하시는데, 수화기 저 너머에서 "아우~ 오빠 정신 좀 차려~~" 하는 여동생의 괴성이 들려왔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전화를 내려 놓았다.
길고도 험한 1박 2일 이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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