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스토리 인 스타크래프트 - 제2화-

여자를잘다뤄 작성일 09.09.09 08: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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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대가 출발하기를 노렸구나!’

적의 교활함을 탓할 순간도 없었다.

이미 내 주위는 불길로 가득했다.

아까 남발했던 바람에 스팀팩도 쓸 수 없었다.

 

급성 배탈 설사 환자가 다급히 화장실문을 두들기듯이

벙커를 두드려대는 저글링들 속에서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았지만

죽음이 현실이 된다는 상황이 믿겨지질 않았다.


“크아아악~!!”

낯익은 목소리. 벙커창 밖으로 자욱한 연기 속에 희미하게 보인 건

얼마 전 새로 전입와 나랑 파트너로 벙커에 소속받은 파이어뱃 녀석이었다.

그와 동시에 급하게 뛰쳐나온 scv선배들이 벙커를 둘러싸며 수리하기 시작했고,

내겐 u-238 열화우라늄 탄박스를 던져주었다.


모든 건 본능적이었다.

생존본능, 전투본능.

아직도 명확히 기억해 낼 수 없다.

어떻게 그 많던 저글링들을 막아낼 수 있었는지..

다만,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파이어뱃 녀석의 스팀팩에 취한 광란의 몸짓.

분명 자신도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벙커로 들어오지 않고 화염방사기의 화구를 끝까지 저글링 떼에게 퍼부었다.

희생.

난 이 전쟁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희생자들이 있었는지 관심 없고,

그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에도 공감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마지막 그 녀석의 그 행동은 분명 우리를 지켜주기 위함이었다.


“다음부터는 안에서도 담배 피게 해줘..”

붉은 피가 안개처럼 흩날리는 아수라장 속에서

저글링들의 살점들을 파해치며 찾아낸 녀석의 몸뚱이는 상체만 남아 있었다.

부둥켜안으며 울부짖는 내게 녀석은 붉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안돼, 간접흡연이 얼마나 해로운데!”

웃는 듯, 우는 듯 마지막으로 내뱉은 내 농담에 녀석은 마저 다 웃어주지 못했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덕분에 scv 선배들은 무척 번잡스러워졌지만,

망령처럼 벙커를 붉게 뒤덮고 있었던 어제의 흔적들은 모두 씻겨 내려갔다.

모두에게 무덤 따위는 없었다.

그 전에도, 그 후로도 그런 건 누구도 신경 쓰지 못했다.


작은 돌무더기는 나 혼자서도 반나절 만에 만들 수 있었다.

쿠바산 고급 시거 한 상자를 같이 묻었다.

니코스탑을 같이 묻어주고 싶었지만 전쟁 통엔 담배 구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대신 ‘금연’이라고 새긴 미네랄 한 덩이를 넣어주었다.

그 녀석의 붉은 가슴 속에서 그 미네랄은 왠지 눅눅한 푸른빛을 머금고 있는 듯 했다.

뒷동네, 오래된 pc방 crt모니터에서나 볼 수 있는 미네랄 빛깔이었다.


선발대는 예정보다 이틀이나 지나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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