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요일 오후

EuGene 작성일 10.08.13 23: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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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이렇게 가슴 속에서 뭉클뭉클 무언가가 피어나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흥얼 흥얼대면서 문제를 푸는데 옆에 앉은 친구가 뭐 좋은 일 있냐 질문을 한다."아니. 전혀" 그렇다. 그녀를 보고 마음이 들떠도 그렇게 좋은 일만은 아니다. 아직 한마디도 안 해본 내가 뭔 빌어먹을 기대를 한단 말인가.
복도에 그녀가 나타나면 내 눈이 그녀를 먼저 발견한다. 이상하게도 키가 큰 편은 아닌데 사람들 무리속에 있어도 눈에 띈다. 그 순간 친구들이랑 태연하게 잘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먼 산을 쳐다보며 괜히 가방을 뒤적 거리거나 가고 싶지도 않은 화장실을 가는 나를 발견했다. 그녀도 내가 피한다는 것을 알아차려도 옛날에 알아 차렸을 것이다. 주위 친구들이 왜 저 여자애만 오면 너 말도 안하고자리 피하냐고 질문을 해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어떻게 알았지?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지만 이제는 그럴 때마다 "진짜? 내가? 몰랐네" 라고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게 답하면 된다.하지만 얼굴에 써 있을 것이다. '나 쟤한테 관심 있어요.' 망할. 이게 다 내가 사춘기 시절을 잘못 보내서 일어난 일이다.
초등학교 때는 여자애들이랑도 장난 하면서 자연스럽게 잘 놀았는데 사춘기와 함께 중학교 올라가면서 점점 내성적으로 변하고 여자애들이랑 이야기도 못하고 눈도 잘 못 마주쳤다. 그 때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요즘들어 생각하니 '내가 과연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내가 과연 결혼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넘어가는 단계다. 다행히 아직 '에이. 개나 키우면서 혼자 살지 뭐' 라는 쪽으로 안 넘어가서 다행인 것 같다. 고등학교 가서는 더 가관이였다. 여자쪽에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 굉장히 건방진 것 처럼 들리지만 실제로 그랬다. 친하게 지내는 4~5명 정도 아이들과 거의 하루를 같이 보내다 했으니. 웃긴건 그 친구들과도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끼리끼리 뭉친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 같지는 않았다. 아 한번 우리끼리 격렬하게 여자 한 명을 두고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모 연예인 H양이 Y군과 결혼한다고 기자발표 했을 때 이야기다. 
정신 없이 공부하다보니 2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는 수업시간에는 굉장히 열중하는 편이다. 내 집중력이 짧은 탓도 있지만 수업시간에 집중을 해야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다. '아 시간 진짜 안가네' 하면서 수업 끝나길 기다리면 더욱 더 길게 느껴질 뿐이였다.
같은 수업을 듣는 여자애랑 학교안에 있는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같이 공부하면 더 좋을 것 같고 말이 통하는 괜찮은 애니까. 나는 사람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잘 몰랐는데 주위사람들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을 보면 그런면이 있나보다. 새로 만나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라고 해야하나? 그런게 남들보다 더 심한가보다. 그러나 이 친구는 편하다. 나이도 많아봤자 한두살 정도 차이나 보이고 왠지 자세한 표현은 못하겠지만 편안함이 느껴진다. 알게 된지 2주 정도 되었는데 말 주변 없는 나에게 먼저 말까지 걸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고 성격도 시원시원하다. 왜 그 여자애랑은 이렇게 안 될까. 젠장할.
1시에 다른수업이 있으니 그 때까지 도서관에 머무르면 되겠군 음 여유로운 날이군.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이런얘기 저런얘기를 한다. 방금 수업 어떠했냐는 둥 이해가 가냐는 둥 희망하는 과가 어디냐는 둥 서로 벽은 없지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우리 친해진지 얼마 안 되었어요.' 라고 써붙인 듯 한 보통 대화를 하며 도서관 입구에 닿았다. 냄새를 맡는다. 흡~ 하아. 이유없이 도서관의 냄새가 좋다. 비록 종이 냄새지만 포근한 향이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내가 가끔 도서관에서 잠드나 보다.
이 친구의 성격을 도서관 자리잡는데도 알 수 있다. 내가 자리를 정한다면 적당히 2~4명 정도가 사용 할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을 찾았겠지만 이 친구는 테이블이 2개가 붙어있어 의자가 8개가 있는 보통 학생들이 그룹활동 하기 전에 회의하는 곳으로 향했다. 분명히 혼자 공부 할 때도 이런 곳에 앉을 것이다. 뭐... 덕분에 이런 곳에 앉아보는군. 방금 바쳤던 수업의 복습을 하면서 잡담이 오고 간다. 그 잡담 덕분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어쩌다가 이야기가 '남자친구있나요', '여자친구있나요' 로 가다가 자기가 남자친구랑 같이 산다고 말한 것이다. 난 놀라면서 좀 이른 것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음. 동거하기는 조금 이른거 아니에요?""아뇨. 저도 이제 30인데요.""네?""네?""30 이라니요? 무슨...""아. 저 서른살이에요""그 쪽이 서른살 이라구요?" 굉장히 놀란 표정으로 목소리가 커졌다."네""정말요?" 더 커졌다."네""진짜?" 아까랑 비슷한 음높이"그렇다니까요" 목소리가 우렁차다. 이봐 도서관이니 자제하라구. 난 주위를 한 번 살핀 뒤 조용히 말했다."그쪽이 23 이나 24이라고 생각했어요""아 진짜요?" 꺄르르르 기분이 좋다는 듯 웃는다. 도서관에서. 자제하라구난 멍하니 바라만 보고있다. 저 얼굴로 서른 이라는 것도 이유지만 저렇게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여자가 얼마나 될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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