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당신은 내게
흐려질 수 없는 것들을 흐리라 하고
지워질 수 없는 것들을 지우라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도 내게는 지워진 우리에 쏟을 한숨이
이렇게나 남아 있는데
아직도 내게는 흐려진 어제에 흘릴 눈물이
이렇게나 남아 있는데
먼 길을 돌고 돌아갑니다.
혹 여로의 가운데서
그 언젠가의 잔향이 맴돌지는 않을까.
혹 애써 내딛는 발길에
그 언젠가의 온기가 스치진 않을까.
부질없는 갈망과 헛된 희망에 온몸을 내어맡긴채
텅 빈 한걸음. 한걸음.
그렇게.
그냥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