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사랑합니다 - 4

지금은짝사랑 작성일 11.01.24 12: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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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사마군은 막사에서 나와 한숨을 쉬었다.

 

"항상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단 말이야."

 

머리가 지끈거리는듯 관자놀이를 꾸욱누르는 제갈군의 모습에 남현호는 동의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항상 예상을 벗어나는 분이긴 하죠. 그래도 설담대장이 '청룡대'를 맡은 후 불필요한 희생이 줄어든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건 나도 부인할 생각이 없어. 하지만..."

 

".....?"

 

"강해지기 위해서 마공까지 익힌 남자야. 나와의 비무 이후 자신이 마교출신이 아님을 밝히긴 했지만. 그에 대한 불신이 완전히 풀린건 아니야."

 

현호는 비무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어떤 사건이 떠올랐는지 손을 탁치며 말했다.

 

"아, 비무...혹시 그 일방적 구타 말씀...."

 

아차 하며 현호는 말을 멈추고는 제갈군의 눈치를 살폈다. 제갈군은 현호의 말을 들었는지 화가 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곰방대에 연초를 넣고는 불을 붙이더니 두눈을 감고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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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담은 3년전 전투가 끝나고 나서 빠르게 '청룡대'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전투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무위에 눌린 대다수 대원들은 무언가에 홀린듯 설담을 따랐지만 제갈군은 예외였다. 정파에서 태어나 길러진 제갈군은 비록 그들에게 버림 받았지만 정과 마의 이분법적인 구분에서 완전히 자유롭기에는 제갈군의 마에 대한 생각은 깊고 순정했다. 더구나 그당시 제갈군은 일종의 자기파괴 충동처럼 자신을 죽음으로 강하게 밀어붙이고 싶은 충동과 흡사한 간절하고 강력한 욕구가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가 전장에서 경험했던 설담의 모습은 제갈군의 머리속에 강하게 남아 그를 붙들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물론 설담을 바라보는 만향의 눈빛이 호감에서 점차 선망의 감정으로 바뀌어 나가는 것도 한 몫했다. 결국 제갈군은 설담에게 비무를 신청했다.

 

"머? 비무? 그 애들 장난 같은거? 난 그런거 안 키워. 남자라면 생사결이지."

 

피식웃으며 교차한 손락으로 우두둑 뼈소리를 내며 건들거리는 설담을 보자 더욱 불쾌해진 제갈군은 지금 생각하면 그떄의 자신의 입을 잡아 좌우로 쫘악 찢어버리고 싶은 말을 내뱉고만다.

 

"바라던 바다."

 

그 이후의 일은 끔찍했다. 만약 도중에 만향이 울면서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자신은 맞아 죽었을지도 모른다. 얼마후, 온몸에 붕대를 감은채 누워있던 제갈군에게 설담은 찾아와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갈세가의 버림받은 서자, 제갈군. 마인에게 목숨을 구명받은것이 치욕스러웠던거냐? 아니면 스스로 죽기는 무섭고 내손을 빌려서 죽고 싶었던 거냐? 정말 궁금해서 말야."

 

설담의 비웃음섞인 말에 제갈군은 온몸을 내리누르는 묵직한 무기력감을 느꼈다.

 

"만약 전자가 이유라면 나는 마교 출신은 아니야. 단지 강해지기 위해서 만검출해를 익혔을 뿐이야. 후자가 이유라면 너는 전장에서 사치를 부리는 멍청이다. 자격이 있는 자만이 죽을 수 있다. 자기 삶을 바닥 끝까지 다 퍼내어 사용한 자만이 진실로 죽을 수 있다. 너 같이 죽을 자격에도 이르지 못한 미숙아에게 죽음은 사치다."

 

"...."  

 

"왜 내 말이, 내 기준이 맘에 들지 않나? 그렇다면 나보다 강해져라. 강한자만이 남에게 자신의 기준을 강요할 수 있고 남의 기준에 흔들리지 않는다. 만약, 제갈군 네가 나보다 강해진다면 그때 그 잘난 사치 내게 부려봐. 그떄까지 이 몸이 돌봐주도록하지."

 

이후 설담의 훈련을 가장한 구타와 욕설은 3년째 이어졌다. 단 한번의 말실수가 부른 엄청난 재앙이었다. 제갈군은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게만든 현호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제갈군의 몸에서 발해진 아주 미세한 살기. 현호는 그 미세한 살기에 반응하여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을 보며 제갈군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겁이 많은건지. 감이 좋은건지. 하긴 너와의 첫 만남도 어이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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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만군과의 소모전이 더욱 치열해질 무렵, 현호는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들을 방패막이로 삼는 행위를 서슴치 않고 할정도로 삶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그 강한 욕구는 현호의 감을 비약적으로 발달시켰다. 죽음의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피하게 되는 이능력. 하지만 현호의 이능력이 강해질 수록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강박으로 그의 내면은 칼로 헤집어 놓은 상처처럼 벌어지고 있었다. 그 날의 전투에서도 현호는 살기위해 가장 안전한 장소를 찾아 안쪽으로, 더 안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어느새 현호는 시체들 사이에 누워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의 귀에 계속 해서 울리는 동료들의 비명. 

 

"용서해줘. 미안해. 어쩔 수 가 없었어. 미안해. 살고 싶어."

 

현호는 전투가 끝날때까지 손가락을 피가 날정도로 쥐어뜯으며 씹어뱉듯이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현호가 제정신이 들었을때, 그의 몸은 침수된듯 피로 눅눅해져 있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누워있는 현호의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머야, 이녀석 살아있네. 야 일어나봐."

 

"........"

 

"어쭈 쌩까냐. 일어나보라고."

 

"........"

 

"야, 이녀석, 찔러봐."

 

"살려주십시오!!"

 

칼이 남현호의 가슴에 점점 다가오자, 남현호는 벌떡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청룡대 조장 만향의 악명은 익히 보고 들었었다. 설담이 대장을 맡은 후 성격이 변하기 시작 하더니 점차 설담대장의 축소판이 되어버렸다. 말투는 물론이고 행동마저 설담대장과 닮아 버린 만향은 현재 '청룡대' 악질 순위가 존재 한다면 설담대장 바로 다음이었다. 남현호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았다. 험상궂은 사내들이 주위에 가득 서있었다. 만향이 현호를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뭐, 이런 녀석이 다있어. 동료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죽은 척을 해?"

 

만향은 분노에 가득찬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 순수한 만큼 쉽게 상처받고 쉽게 흥분하는 만향이었기에 이런 부류의 인간들을 참아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현호를 발견한 순간부터 만향은 감정이 격해지는 것을 참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육1시랄, 엠1병1할, 천하의 잡놈아."

 

이어지는 만향의 욕설. 그때였다.

 

"빠악!!!!!!"

 

"악!!"

 

갑작스런 타격음과 함께 만향이 비명을 지르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꽤나 충격이 컸는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 와 함께 이런 전장에서 어울리지 않는 미성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와 함께 내 주위를 둘러싼 사내들이 부동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만향, 내가 설담대장같은 말투 고치라고 했지!"

 

"아, 군이형 부하들 보는데 쪽팔리게."

 

남현호는 고개를 살짝들어 미성이 들린쪽을 바라보았다. 피에젖은 흑갑주를 두른채 서있는 한 남자가 보인다. 만향부장도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인상이었지만 이 남자의 경우 사납게 치켜올려진 눈을 제외하고는 여인이라해도 믿을 정도의 상당한 미모였다.

 

"너 정말 왜이렇게 되버린거냐. 하아, 꽃과 난을 좋아하고 눈물 많던 예전의 만향으로 돌아와줘."

 

미모의 남자의말에 주위는 큭큭거리는 웃음 소리로 가득해졌다.

 

"아 진짜 형. 예전의 그 모습은 잊어줘."

 

만향은 벌떡 일어나 얼굴이 벌개진채 식은땀을 흘리며 제갈군의 입을 막기위해 발버둥을 쳤다.

 

"이 녀석은 또 뭐야?"

 

"아, 시체들 사이에서 죽은척 하고 있는것을 발견했어."

 

"재밌는 녀석일세."

 

흥미로운듯 제갈군은 현호를 빤히 쳐다보았다. 보통 이런 이들이 제일 먼저 죽는 것 아니었던가? 제갈군은 이내 흥미를 잃은듯 몸을 돌리며 말했다.

 

"어서 정리하고 돌아가자."

 

만향은 제갈군의 말에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따져물었다.

 

"형, 이녀석 그냥 둘거야?"

 

"살려줘. 기특하잖아.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 모습이. 대신 이곳에 두고간다."

 

제갈군의 말에 만향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분이 풀리지 않는듯 내공을 실은 발로 현호의 복부를 걷어차려고 했다. 현호를 내려다보는 만향의 눈빛은 평소와는 달리 깊은 살의를 담고 있었다. 3류 낭인인 현호가 내공을 실은 발차기를 맞는다면 단숨에 숨통이 끊어질 것이다. 그 순간 현호가 두손을 들어올려 만향의 발을 잡았다. 자신의 공격을 무로 돌린 현호의 행동에 만향은 당황했다.

 

"제발 저를 이곳에 버려두고 가지 마십시오."

 

이어서 현호는 만향을 발을 붙잡은채 빌기 시작했다. 당혹감 속에서 만향은 그 손을 신경질적으로 쳐 내고는 재촉하는 제갈군을 향해 걸어갔다. 돌아서서 걷는 만향의 눈빛은 조금전의 살의가 지워지고 이내 의문으로 채워졌다. 만향의 상식속의 3류낭인은 자신의 공격을 읽고 무로 돌릴 수 있는 능력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흐음, 에이 설마."

 

남현호는 자신을 두고 돌아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절망했다. 그리고 억울했다. 자신도 이렇게 구차한 방법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동료들의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숨을 죽이며 죽은척해야 했던 자신의 심정또한 매번 칼로 베여 오려져 나갔다. 숨이 끊기고 심장이 꿰뚫려야 죽는것이 아니다. 마음이 죽음을 택하면 결과적으로 사람은 더이상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은 단지 이 빌어먹을 몸이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매달 가족에게 보내지는 그 빌어먹을 돈 떄문에 이렇게라도 살아남아야만 했다. 

 

"야 이새끼들아 누군 이러고 싶었겠냐? 너희들은 좋은 스승밑에서 아무런 부족함없이 무공을 익혔겠지. 주위선 '아 도련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떠받들어주고 말야. 그러니 세상이 만만히 보이겠지. 웃기지마! 그리고 내가 먹은 칼밥이 너희들보다 배는 더 많이 먹었다. 이 씨1발 지1랄같은 세상. 니기미, 내가 죽으면 원혼이 되어서 너희들 한테 꼭 찾아간다!!"

 

그 후에도 현호의 악담과 욕설은 계속되었다. 뒤돌아서 걸어가던 제갈군은 현호의 울부짖음을 듣더니 만향에게 물었다.

 

"청룡대 자체가 원래 미친 놈들이 모인거냐, 아니면 청룡대에 들어와서 애들이 전부 다 미친거냐?"

 

"둘다가 아닐까 싶어."

 

"설담 대장의 교육을 우리 둘이서 견뎌내는게 참 힘들긴해. 한명 추가시키면 우리 몫이 좀더 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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