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행복을 꿈꾸다 (단편.실화)

노아22 작성일 14.02.28 18:40:22 수정일 24.12.24 09:4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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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행복을 꿈꾸다. 1편 (실화) ~ 4편까지 합본

 

오래전 마구잡이로 쓰다만 이 글을 다시 써보려 한다.

내 지난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음소리

뿌연 안개 사이로 들어오는 강렬한 빛 하얀 천장과 벽

여기가 어디일까?

흐릿한 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에 왜 우냐 말하려 해도 말이 나오지 않는

내 몸은 힘겹게 허우적거리는 팔 외엔 전혀 움직일 수 없던

왜 그런지 알 수 없던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으로 더듬 거리며 만져본

목을 뚫어 산소 호수가 꽂혀있고 머리와 어깨엔 이상한 물건들이

내 몸을 압박하는 힘겹게 밑을 내려다 본

말라비틀어진 몸과 이상한 호수가 배꼽 아래에 꽂혀 있던

내가 왜 이러지? 알 수 없는 난 팔을 허우적거려 보지만

어머닌 아무 말 없이 울고만 계신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걸까?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이야길 나누고는

내게 주사를 놓는 듯한 흐릿한 영상 아니면 망상?

검게 물들어 가던 형상 그 어느 날

 

집에 온 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어두운 방 안과 침묵 그것이 내 일상이 된 지금

움직여 주지 않는 다리와 손가락 그리고 약간의 우울증 뿐

내 인생은 하루아침에 전신 마비 장애인이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한밤중 끔찍한 악몽에 눈 뜨는 밤이면

혹시 다친 것이 꿈인 걸까? 발을 움직여 보지만...

꿈이 아닌 현실을 자각하며 여지없이 흐르는 눈물. 새벽을 기다리며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다 보면 옛일들이 너무 선명하게 떠오른다

동생이 가르쳐 준 컴퓨터에 내 글을 조금 남겨볼까

다치기 전에도 멍청한 내가 사고의 충격으로

더욱더 멍청해진 것 같다. 내가 봐도 맞춤법도 많이 틀리는...

아니, 좀 더 솔직한 마음은 어린 시절 가르쳐 주는 이 없이

한창 글을 배울 나이에 공포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기에

내 스스로 노력했다면 조금은 나았을 것을

그 부족함 조차 채우려 안 했던 내가 한심할 뿐.

그런 모자람과 사고에서도 그리도 잊고 싶어 하던 옛 기억은 미칠 듯 떠올라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으로 좌판 글 하나하나 누르며

공포의 기억뿐인 어린 시절과 사랑이라 믿었던 내 지난 이야기를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조금씩 써볼까.

칠십이 년 시월 제주도 이호 옆 조그만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이남 삼녀 중 막내로 집을 등한시하며 술로만 사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물질과 밭일로 우리를 먹여 살리시는 어머니

너무 힘겨운 날들은 돼지 사료를 먹어야 할 때도 있었다는 말을...

참으로 가난한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던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 엄마의 모습

왜 엄마가 없는지 이유를 알 길 없던 난 우릴 버리고 떠난 걸까? 생각에

매일 울던 흐릿한 기억

어느 날 엄마에게 가자는 형의 말에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가던

배 안에서 한 아이와 엄마를 보았다

엄마가 사주신 복숭아 통조림을 맛있게 먹고 있던 아이를

그런 복숭아 통조림을 처음 본 그 모습

어찌나 맛있어 보였던지 아이가 먹는 걸 힐끔힐끔 쳐다만 볼 뿐

잠시 후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있을 그때

다 먹은 줄 알면서 마치 배 안을 구경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그 아이를 스쳐 지나가던 내 눈은 통조림 속을 쳐다보고 있는

혹시 남았을까? 남아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눈물이 날 것 같던 맛있는 음식과 엄마 품에 안겨있는  

그 모습이 부럽고 서러운 마음이

어린 생각에서도 우리 집은 돈이 없다 생각했지만 참을 수 없었던지

안될 거라 생각하면서도 형에게 복숭아 통조림을 먹고 싶다고

조심스레 물어봤던 내게 돈을 주며 사 먹으라던

나도 먹을 수 있어. 말하고 싶은 듯 그 아이를 힐끔 쳐다봤던 기억이

입안에서 처음 느껴보는 그 새콤달콤함에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고 있던 난

"너 혼자만 먹을 거야" 날 쳐다보며 말하던 형에게

미안함과 아까운 마음이 교차하며 통조림을 내밀던 내게

웃으며 배부르다며 너 먹으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먹고 있던 나

어디를 가는지 꼬박 이틀이 걸려 한밤중 도착한 그곳  

인천 삼촌 댁에 있던 엄마를 본 순간  

어디 못 가게 하려는 듯 엄마 앞에 앉자 눈물을 훔치던 그 날밤

다음날 형은 내려갔고 며칠 후 엄마와 나도 내려왔다.

이젠 예전처럼 우리 가족 모두 모여 살겠지 생각했지만

얼마 후 학교 다닌 지 얼마 안 된 날 전학을 시키고는 어딘가로 데려가는

어디 가냐. 물어봐도 대답 없는 엄마 손에 이끌려 도착해 보니

인천인 듯했다. 그런데 삼촌 댁이 아닌 이상한 골목 단칸방에 들어선 난

방 한가운데 앉아 있던 아저씨를 며칠 후 아버지라 부르라 하던 어머니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지 의미도 모른 채 처음 아버지라 불렀던 그날

 

인천에서 잠깐 학교에 다니다 다시 제주도로 이사를 했다

친누나들과 이모 앞집에서 살던 이야기는 빼기로 했다 기억도 흐릿하고

너무 복잡해지는 듯해서 그리고 그곳에서의 삶은 차라리 천국이었기에

 

누나들과 같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나마 토요일이면 가끔 누나가 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던

제주도로 이사한 지 며칠 안 된 어느 날

목수 일을 하시던 새아버지는 나무를 하나 가져와 방 한가운데 서

쓰시던 도구를 풀어 놓고 일하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게 뭔데 저리도 정성껏 대패질하실까? 생각하던

길이는 야구 방망이만 하고 그 손잡이보다 두꺼운 몽둥이에

아주 정성스럽게 글을 쓰시고 들어 올리시며

"아버지의 사랑은 하늘. 어머니의 사랑은 바다."라고 쓴 거라

옅은 미소 띤 얼굴로 날 바라보며 말하던

지금도 잊히지 않는 공포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그 미소가

지금 생각나는 건 어린아이에겐 너무도 커 보이는 몽둥이가 두려워

방바닥 울며불며 몸부림치는 기억 속 한 아이의 모습이

매일 같은 공포와 마주해야 했던

그 마음은 작아져만 갔고 하루하루 눈치를 보며 생활해야 했지만

하지만 그런 눈치조차 없던 그 아이는 더욱더...

머리가 좋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좀 모자란다 해야 정확할까

남들 열 번이면 충분히 습득할 지식도

이 삼십 번을 해도 습득이 안 되는 그런 모자란 아이라 해야 할까

그것만으론 부족했는지 태어나면서부터 언어장애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있는 목젖과 입안 천장이 없었기에

그런 모자란 아이가 성적표 받아오는 날은 여지없는 매질과 발길질에

성한 곳 없는 지친 몸을 끌며 학교에 가야 했고. 때릴 적엔 항상

"내 자식들은 장학금 받으며 학교에 다닌다." 발길질하시던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어머닌 이혼도 하지 않은 새아버지와 같이 살았다.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지만

공포의 밤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게 다가오는 공포가 짙어져서일까

집 앞 아이들 군것질하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어머니에게 말하고 싶지만 그건 입도 못 떼본다.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던 대나무 낚싯대로 고기를 잡아

아궁이에 구워 먹는 것뿐

가끔 가족들이 모일 때면 어머닌 그때 일을 말하곤 한다

고기를 구워 먹는 걸 봐도 내겐 먹어보란 소리 안 하더라. 고

하루만 안 맞아도 운 좋은 날이었기에

혹시나 맞을까 눈치 보며 몰래 구워 먹으려 했던 것을

다른 식구들에게 그런 말 할 때면

그때 일을 말하고 싶지만 그냥 가만히 있을 뿐.

 

내 살던 집은 바닷가 옆 굉장히 넓은 마당 있는 큰집에 세 들어 살았다.

세 들어 살던 곳에서 큰 대문까지 창고를 돌아 사오십 미터를 가야 했던

그 집 앞은 큰 부두로 가는 길가라 큰 차들이 많이 지나가는

귀 기울여야 들려오는 경적 소리

백 미터 달리기하듯 대문으로 달려가 빠른 속도로 대문을 열고는

대문 옆 오토바이 타고 들어오시는 새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구십도 인사해야 했던. 매일 같은 극도의 긴장과 폭력 속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날 어두운 방에 앉아 경적 소리를 기다리던 난

긴장이 풀려서인지 지쳐서인지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잠이 들었던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이상한 흔들림 충격과 통증 눈을 떠보니

"왜 대문 안 열어."

방구석 맨방바닥 새우잠 자던 내 허리를 발로 차고 있는 새아버지의 모습

문을 안 열거나 늦게 열면 어디서든 발에 차여야만 했던

그 시절 난 개였다.

내 옆을 지나가다 이유 없이 발에 차여 나뒹굴던 날들

매일 같은 폭력 속 부르면 안 맞을까 공포에 떨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그러고 보면 그때 우리 집은 개를 팔려고 몇 마리 키우셨는데

단 한 번도 개를 때리는 것을 못 봤던 난 개만도 못한 놈이었던가

운 좋게 맞지 않는 날조차 날 앞에 앉혀두고 밤늦도록 설교하시던

새아버지의 말 한마디 작은 손짓만으로도 공포에 떨어야만 했던

금방이라도 바지에 실례할 것 같은 그 많은 밤을 보내면서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단지 무서웠다

너무나 두려운 밤을 보내며 제발 때리지만 않았으면 생각하며 빌던

모자란 어린아이였을 뿐. 새아버지는

바다가 바라보이는 집 담벼락에 앉아 먼바다를 바라보곤 하셨는데

그런 날은 친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내게 풀고 있던 것일까?

 

토요일 오랜만에 놀러 온 막내 누나와 방에 앉아 놀고 있던 그때

방문이 열리며 방 안으로 들어서는 새아버지를 본 순간

아차 했다 경적을 울렸구나.

너무 무서워서일까 몸이 굳어 버린 듯 앉아있던 내게

이어지는 새아버지의 발길질

"내 동생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들려오는 누나 목소리에

잠시 고개를 든 순간 얼굴을 맞고 쓰러지는 누나 모습이

방바닥에 쓰러진 누나는 기절했고 구타는 멈추었다.

어린 내 마음은 쓰러진 누나를 걱정함과 동시에

너무 무서워서일까 기절하길 잘했단 생각이 스치는 나 자신을

누나는 지금도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아 있다는걸...

어느 늦은 오후 내게 집을 보라 하시고 외출하신 후

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이 놀자 부르는 소리. 유혹을 못 참은 난

잠시만 놀다 와도 괜찮을 거야 생각하며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어린 그 시절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어두워진 것도 모르고 놀고 있던 그때

등 뒤에 서 있는 어머니를 본 순간 내 뺨으로 날아온 손바닥에

넘어 질듯 휘청이며 들려오는

"집안 보고 왜 나와서 놀아 빨리 따라와" 울며 어머니 뒤를 따라온 난

열려있는 문 앞 무서운 얼굴로 날 기다리고 서 있는 새아버지의 모습

눈앞에 마주한 공포 나도 모르게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을 치며 뒤를 돌아본 내 눈에 어둠 속 날 향해 달려오는 두 분의 모습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공포에 질린 듯 소리치며 달리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던 난

큰 대문까지도 못 가 붙들려 다시 집으로 끌려가야 했던

내 양팔은 두 분 손에 붙들려 질질 끌려가면서 그 엄청난 공포에

알아들을 수 없는 도살장 소 돼지가 된 듯 울부짖던 그 날밤

방구석에 웅크린 채, 제발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두 손 모아 울며불며 빌고 있는 아이

그 아이의 존재를 부숴버리려는 듯 발길질하시던 두 분이

초가집 그곳에서의 삶은 가난했지만 조금은 행복했던 듯한데

그 큰집에서의 어머닌 새아버지와 별반 다를 것 없던

공포와 마주하는 밤이면 착각일까 눈물 때문일까 일그러져 보이는 형상

윙윙 울리던 말소리 그 모습이 마치 악마의 형상처럼 느껴지던

어떻게 그 공포의 끝을 지나 잠이 든 건지  

기억을 도려낸 듯 전혀 생각 나지 않는 그 많은 밤들

지금도 그날이 생각날 때면 집에 도둑이 들었던 것도 아니거늘

단지 집앞에 나가 놀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어린아이에게

그런 모진 발길질하시던 두 분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삶에 지쳐서일까? 누군가에게 받은 화를 내게 풀고 있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때릴 구실이 필요했던 것일까?

끝 모를 공포로 다가오는 하루하루 속

공포의 시작을 알리려는 듯 수평선 붉은 노을이 밀려오기 시작하면

신이 뭔지 하느님이 뭔지도 모르면서 빌기 시작하던

오늘 밤은 제발 아무 일 없이 지나가 주기를... 빌고 또 빌어보지만

아무 소용 없는 그곳엔 한 아이의 절규만이 있을 뿐

얼마 후 집에 들어온 나는 방에 앉자 울고 있는 누나를 보았다.

친아버지가 뺑소니차에 치여 돌아가셨다는 말에 아버지와 살던 집으로

버스 안 울고만 있는 막내 누나. 나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죽음이란 게 뭔지 와닿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기 때문일까?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버스 안

창문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 덜컹거리는 버스 소리와 누나의 울음소리뿐.

버스에서 내려 내가 살던 집으로 누나와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눈에 들어온

짙은 어둠 속 내 살던 초가집 불빛이 그 어느 집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집에 다다르며 들려오는 사람들 곡소리

아버지와 낚시하러 가던 옛 생각이 떠오르며 집에 들어선 나를 맞이해 주던

누나들과 친척들 그리고 영정사진 속 낯선 아버지의 얼굴이

장례식을 치른 후 다시 돌아가는 날 누나들이 배웅해 주던

누나들과 같이 살고 싶은데 난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문득 떠오르던 다른 아이들도 나처럼 사는 걸까?

아주 조금만 마음 편하고 행복했으면...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두려움 가득한 그곳으로

그때쯤 내 동생이 태어났다. 늦게 본 친자식이라 그런 건지

참 정성스럽게 동생을 돌보며 생활하던 어느 날 갑자기

새아버지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도망치듯 떠나야만 했던

이젠 가끔 보는 누나들도 바다도 볼 수 없는 알 수 없는 곳으로

 

공포의 기억뿐인 제주도를 떠나  

충청남도 조치원으로 이사한 후 고민이 하나 더 늘어났다

동생을 잘못 보면 여지없는 매질에 신줏단지 모시듯 해야 했기에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날 닭 손질하시는 어머니 모습에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쳐다보던 내게

어머닌 새아버지 약에 쓸 것이라 아이들은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그날 저녁 새아버지와 동생이 닭 먹는 것을 보며

먹고 싶단 생각보단 왠지 모를 서러움 내 눈 속 고이는 눈물

그것을 본 새아버지는 상을 엎고는 발길질하시던

밥 먹다 때리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보란 듯이 티브이를 틀어놓고는

내 고개가 돌아가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밥 먹다 말고 한눈판다. 상을 엎거나 발길질하던 때였으니

얼마나 지났던가 새아버지가 잠시 나가시면 이어지는 어머니의 매질

내게 있어 어머니는 더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새아버지와 같이 때리시던 어머닌 아무 망설임 없이 매를 들었고

너무 억울하게 맞을 때면 억울한 마음에

변명을 하거나 약간의 거슬리는 표정만 비쳐도

어디서 말대꾸 똑바로 쳐다본다.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질 듯한 광기 어린 매질을 수없이 겪다 보니

내 마음에 문을 닫아버렸던 것일까

그 어떠한 억울한 매질에도 변명은 고사하고 무조건 빌기 시작했던

나에게 있어 속마음을 표현한다는 건 더 큰 공포와 아픔으로 내게 왔기에

그때부터였을까 그 어떠한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변명조차 못 하는 내가 됐던 걸까?

 

집 앞 골목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들

그곳에 버려진 책을 우연히 읽게 됐다.

아니 책이 아닌 단 하나의 그림이 내 머리에 각인됐다. 말해야 할까

톰이 뗏목을 타고 여행하는 그림을 보고는

너무나도 그 그림 속 톰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던

마치 선망의 대상이라도 보는 듯 수없이 그 그림을 바라보던 그때를

얼마나 좋을까?

그 그림 속 톰이 너무도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기에

그러고 보면 이런 내 글을 읽으며 답답한 마음에 사람들은 말하고 싶겠지

그리 힘들면 도망이라도 가지 멍청하게 왜 같이 사냐. 고 말이다

지금에서야 변명이라도 해보면. 금붕어는 지능이 낮아

어항 안을 세상에 전부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 또한 그래서였는지 그 모진 압박과 폭력으로 인해 의지조차 죽은 건지

그 지옥 같은 집을 나가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나 또한 아쉬운 건, 아주 조금만 똑똑하지

조금만 똑똑해도 자유란 걸 찾아 떠났을 것을 어쩌면 그리도...

지금도 밤이면 바보처럼 살았던 한탄스러운 기억들과

고통뿐인 현실에 잠을 못 이룰 때면 억지로 그려본다.

넓은 바다를 여행하거나 섬에 살고 있는 나를

만약 지금 내 모습 아닌 사회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난 아마 그 삶에 적응을 못 했을 것 같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보았던 사람들처럼

나 또한 사람 없는 곳에서 나 혼자만의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적응 못 한 것도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막연히 꿈꾸던 삶이기에

그런 하루하루 보내던 중 불안에 떨던 기억도

밤늦은 시간 부모님이 친구분 댁에라도 놀러 가시는 날이면

혹시나 술 드시고 들어와 때릴까

밤이 깊어 갈수록 불안에 떨던 순간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

두려운 마음에 벽 쪽으로 돌아누워 자는 척을 한다.

들어오신 두 분의 말소리가 들린 후 왜인지 무거운 침묵이 흐르던 순간

"얘 지금 자는 거야"

갑자기 새아버지 말소리와 숨소리가 바로 내 얼굴 옆에서 들리던

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자는 얘 그냥 놔둬요." 어머니 목소리

"안 자는 거 같은데" 그 대답은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머리까지 울리는 듯한

지금이라도 일어나 인사를 해야 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하지만 지금 인사하면 자는 척했다 맞을까 숨소리마저 죽이며 자는 척하던

다행히 그다음은 내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때 내 얼굴 옆에서 새아버지의 말소리가 들릴 때 너무 놀라서일까

그만 찔끔 소변까지 실례했던 불안한 시간을 보낸

어느 날 밤의 기억이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중학교를 입학했지만

그 중학교 생활조차 또 다른 괴로움의 연속이었던

언어장애 그것은 학교 아이들에겐 좋은 놀림과 괴롭힐 구실이 되었기에

어릴 때부터 아이들 놀림은 항상 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저기 말병신 걸어간다" 흔히 들려오는 아이들 떠들던 소리

누가 던진 건지 알 수 없게 내게 날아오던 돌들

그러나 중학교에서의 놀림과 괴롭힘은 정말...

토요일 두 시간 연속 미술 시간이 있는 날이면 정말 학교 가기 싫어진다.

그림에 소질이 조금 있어서일까 미술 시간을 좋아했지만

그 준비물을 사 가야 하는 날은 정말 학교 가기 싫던

준비 못 하면 매 맞고 두 시간 연속 앞에 나가 벌을 서야만 하는

다른 애들이라도 있는 날은 좀 참을 만한데 혼자서는 날은 그 기분 참...

참아보다 못 참는 날이면 학교에 안 가고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 적도

어느 날 아침 용기를 내어 어머니를 조르고 돈을 받아냈던 날

돈을 손에 쥐고 수업 시간 전까지 가게 앞을 서성거렸던

준비물을 사 가야 하는데 왜 들어가 선뜻 못 사고 망설이는지

결국 준비물을 살 수 없었다. 아니, 살 수 없는 게 아니라

돈을 쓰고 돌아가면 맞을까 두려웠기에

아니나 다를까 집에 와 돈을 돌려주려 다가가던 그곳엔 어머니가 아닌

마치 사나운 개가 사람을 물기 직전 아무 소리 없이 쳐다보는 듯한

학교에선 힘들었지만 어머니 매질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냥 가져오길 잘했단 안도감과 비참함이 교차하던 순간을

소풍 그런 것에 들뜰 나이도 아니면서 아무런 즐거움이 없어서일까

나 또한 김밥 싸 놀러 간다는 것에 조금은 들떠 있던

하지만 소풍 전날 밤

"김밥 싸려면 준비도 해야 하고 귀찮으니 안 싸가면 안 되니." 말에

"그냥 밥이라도 싸줘요." 말할 수밖에 없던

바보 같은 놈 언제 김밥 싸 소풍 간 적 있다고 싸줄 거라 생각했는지

소풍이라고 계란 올린 밥과 김치 백 원짜리 과자 두세 개

그리고 몇백 원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전부이다.

소풍 간 그곳에서 점심 먹자 삼삼오오 모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뒤로하고 사람 없는 외진 곳을 찾아가

배는 고팠지만 넘어가지 않는 밥을 꾸역꾸역 넘기거나 버리곤 했던

그런 쓰라린 삶 속에서도 자존심 이란 게 조금은 남아 있었나

그 몇백 원 그것도 소풍에서 돌아와 말없이 어머니에게 돌려 드렸다

그곳에서 파는 물건들은 왜 그리도 비싸던지

몇백 원 그것으로는 살만한 게 거의 없었기에. 나에겐 소풍이란 추억은

더 비참한 긴 시간을 버텨야 하는 날일 뿐 아무 의미 없는 날이었다

"김밥 싸 소풍 가고 싶었는데." 티브이 장면에 말했던 내게

"그때는 가난했잖아." 말하던 누나가 생각난다.

가난, 온갖 보약과 개 한 마리 통째로 사 새아버지 드시게 만들던

학교도 안 다니던 동생 학습지 받아보는 그런 수많은 일들을 보면서

내 마음은 어땠을지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 모르겠지 예나 지금이나

누나들이 알고 있는 것들과 너무도 다른 진실이 있다는걸.

이때쯤 제주도에서 누나가 올라왔지만 오랜 이별 때문일까

그리도 좋아하던 막내 누나에게 왠지 모를 서먹함이 느껴지던 만남

그 누나와도 잠깐 같이 지내다 일자리를 찾아 인천으로 올라간

누나가 있는 곳으로 또 이사했지만

이곳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찌 된 게 도시로 나올수록 아이들 놀림과 괴롭힘은 더욱더...

겨울방학 시작하면서 난 공장에 다니기로 되어있다. 그런데

"고등학교 가고 싶니" 물어보시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가기 싫다." 말해야만 했던

말이 다 돼 있는 지금에 와 왜 물어보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혹시라도 훗날 고등학교 안 보내 주었냐. 원망이라도 할까

내 입에서 고등학교 안 간다는 말을 들어야 했던 것이다.

가고 싶지도 않다. 멍청해 가기도 싫지만 학비 타내는 것도 힘드니

차라리 마음만이라도 편히 살고 싶기에

 

2편에 계속

 

노아 행복을 꿈꾸다. 2편 (실화)

 

어린 나이에 처음 접해보는 사회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한겨울에 물과 쇠를 만지면서 손도 트고 찢어지고

손가락도 기계에 눌려 부러져 본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편했다

일하러 다녀서인지 돈을 벌어와서 인지는 몰라도 때리지는 않았기에

첫 월급 타던 날 집에 가져다주니 용돈이라며 만 원을 주시던 어머니

받자마자 먹고 싶던 걸 사 먹었던

어릴 적 군것질해 본 적이 없던 난 그만 가게 앞 좌판에 올려있던

반짝이던 과자의 유혹을 못 참고 훔쳐먹다 걸려 혼나고

집에서도 알아버려 죽도록 맞았던 기억이

그때는 그 오십 원짜리 설탕 묻은 과자가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그러고 보면 나도 맞을 짓 많이 했던 것 같다

몇 가지 잘못했던 기억들과 철없이 어릴 적이었지만

두세 번 남의 물건에 손을 댄 기억이

그런 사회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내 성격이 참 안 좋은 걸 느끼었다

사람을 대하는 방법도 항상 주눅이 들어있던 나 자신을

흔히 잘 삐치는 사람을 소심하다 하지만 난 그것과는 좀 달랐던 듯하다

회사 사람들이 즐겁게 이야기하며 떠드는 자리에 같이 어울리지도

내 억울함이나 따질 일 있어도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말도 못 하는

그런 내 성격이 정말 싫었지만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 없이 보내던 중

출 퇴근길 지나가는 그곳엔 체육관이 보인다. 그곳을 바라보며

운동이라도 하면 좀 달라질까? 하지만 다가설 용기조차 없이

바라만 보곤 하던 어느 날 핑곗거리가 생겨 다녀야겠다 마음먹었던

그동안 용돈이 올랐지만 학원비 내고 나면 쓸 돈은 없겠지만

마음을 다잡고 다니기 시작했고 참 즐겁게 체육관 다니던 내 모습

운동할 때만큼은 모든 걸 잊고 즐거워하던 기억

내 몇 안 되는 돌아가고픈 추억 중 하나이다.

그 선택이 날 변하게 할 거라고 변했다고 믿었다 그런 줄 알았다  

가까운 곳에 이모가 사신다 이남 이녀를 두신 이모님 댁에 놀러 가곤 했던

그 집 친척 누나를 좋아했다. 왜 그런지 가끔 말을 나눌 적

따듯한 느낌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나도 모르는 늦은 사춘기 호기심?

그래서였을까 이모님 댁 형제들이 아는 사람들과 피서 가는 곳에 따라갔던

그곳에서 이모님 댁 나랑 동갑내기 여자애와

그 친구들과 모여 어울리게 됐다

이모 딸인 나랑 동갑인 그 애와는 조금 서먹서먹한 사이여서일까

내 옆에 서 있게 된 이모 딸에게 장난삼아  

"오늘 너희 텐트에서 놀다 자면 안 되냐."던 내 말에

"우린 친척이잖아." 화를 내는 그 애 모습. 아차 싶었다

오해할 수 있게 말을 잘못했구나. 그런데 이런 바보 같은 놈

그런 뜻이 아니라고 말도 못 하고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왜 말을 못 하는 걸까?

내가 너희 누나 좋아하는 저능아라고 네 오빠 동생도 같이 있는

이곳에서 그런 뜻으로 말했겠냐. 말도 못 하는 나였던

'너랑 같이 자는 친구들 있어 농담 삼아 했던 소리였다'

머릿속 떠오르는 말조차 왜 못 하는 걸까?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지금 생각해도 참 한없이 멍청한 나였다

그 누나도 순수한 마음만이었다 해도 좋아하지 말아야 했나 보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정을 그리워한 것일지도

어릴 적 누나들과 떨어져 지내며

매일 같은 쓰라린 상처 속에서도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정을 그리워한 것 같다.

심지어 그때 같이 살던 누나에게 작은 고민조차 터놓지 못했던 난

내 자신도 모르게 정을 느끼고 싶었던 것일지도

그렇게 밝은 미소로 말을 걸어 주는 사람이 내겐 없었기에

 

그때쯤 체육관 여자 얘들이 있어 그런지 이성에 조금씩 관심을 보였지만

하지만 가끔 여자 얘들과 어울리게 되면

항상 내 외모만 보고 관심을 보이던 얘들도

내 목소리를 들으면 바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그 차가운 시선들

그런 차가운 시선에 아무 말 못 하고 조용히 술만 마시다 오곤 했던

어느 날 체육관 여자 얘들 기숙사 동료들과 술자리에 동석하게 되었지만

그 차가운 시선이 싫어 술만 마시던 난 한 여자 얘가 내게 말을 걸던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술기운을 빌려 몇 마디 대답해 주었던

한참 후 간다는 말에 기숙사로 데려다주겠다 하고

기숙사로 걸었다. 기숙사 앞 왜 그랬을까 둘 다 술에 취해서일까?

그 여자에게 입을 맞추었던. 그 후 숙이와 난 자주 어울렸고

숙이는 내가 언어장애 있는 것도 이해해 주는 것 같다

얼마 후 숙이는 기숙사를 나와 자취했고

집에는 월급만 제대로 가져다주면 그리 신경 쓰지 않으셨기에

숙이와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운동을 그만두었지만 행복했던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게 참 행복하다는 걸 스물네 살이 되어서야 알았다.

숙이는 내 품에 안겨 있을 땐 사랑한다. 말해달라 하지만 난 그 한마디가

입에서 나오는 게 정말 힘들었다 분명히 숙이를 사랑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왜 사랑한단 소리가 나오지 않는 걸까?

숙이는 훗날 날 닮은 아이를 갖고 싶다. 내게 말하지만

난 아이만은 갖고 싶지 않았다. 정말 잘 키울 자신이 없다면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이 그 아이를 위해서도 옳은 일이라 생각했기에

그런 생활을 일 년 정도 흐른 후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 느낀 난

숙이와 정식으로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던

그런데 부모님에게 말을 못 하겠다. 내 월급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단 한 번도 내 통장을 본 적도 보여 주려고도 하지 않는다.

돌아보면 말할 용기가 내겐 없었던 건 아닐까? 생각도

그래서 생각한 게 일 끝난 후 아르바이트 다니기로 마음먹었던

돈보다 뭔가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상태로 계속 공장에 다니는 것도

나중에라도 작은 통닭집 같은 걸 해보면 얼마나 좋을까 경험 뭐 그런 생각에

조금 알고 지내던 형이 호프집을 했고 일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놀라게 해 주고 싶어 숙이에게는 왜 하는지는 말 안 했다

언어장애가 있던 내가 처음 보는 사람들을 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낮엔 일하고 밤엔 아르바이트하는 것이 힘에 겨워 가끔 코피도 나고

잠도 못 자지만 그래도 힘을 내 보았지만 몇 달이 지난 후

처음엔 돈도 좀 모아볼 생각으로 한 거지만 내 모자람은 그것마저...

생각대로 되지 않는 모든 생활이 꼬여만 가는 듯해

그때 하던 일을 끝내고 통닭을 들고 자취방에 들어서니  

아무도 없는 방에 앉자 숙이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

강한 빛 오뚝이 인형이 된 듯 벌떡 일어나 앉는

환한 방안엔 내가 차려놓은 상과 그 옆에 쓰러져 자던 나뿐

왜 숙이 없는 아침이? 숙이는 그날 밤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며칠이 지난 후 아무 일 없다는 듯 집에 들어선 숙이는 내게

다른 남자가 생겼고 나와는 헤어지고 싶다며

그 남자 집으로 이사해야 하니 오늘 중으로 짐 챙겨 나가 달라고.

숙이가 들어선 후 한마디 말없이 숙이 말만 들으면서

아무런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 말을 한 숙이는 그냥 나가 버린

잠시 멍하니 있던 난 뛰어나가니 숙이는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뭐가 뭔지 하얘진 머릿속 아무 말도 나오지도 들리지도

그날 밤까지 멍하니 있던 난 그래 숙이가 좀 화나 그런 걸 거라고

며칠 후엔 화가 풀리겠지 생각했다 그 후엔 내가 왜 아르바이트했는지

말하면 풀릴 거라 생각한 잠시 회사 기숙사에 가 있자 생각하며

짐이랄 것도 없어 그냥 집을 나섰다. 그리고 며칠 후 숙이를 찾아간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숙이를 만났다.

"조용한 곳에서 말 좀 하자." 했으나 할 말이 없다며

거리를 걸어 다니기만 할 뿐 말하려 하지 않는 모습에 화나기 시작한

"정말 남자가 생긴 거냐 그럼 얼굴 한번 보자." 는 내 말에

그녀는 옆에 보이던 공중전화로 어디론가 전화했고 나올 테니 기다리라 한다

설마설마했는데 온통 머리가 복잡했다. 나오면 어떻게 하지? 뭐라 해야 하지?

나온다면 숙이 너도 그 남자와 행복하게 살게는 못 해준다. 결심도 해봤다

잠시 후 그 남자가 나왔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음을 느끼며

설마설마했거늘 숙이가 내 품에서 그리도 날 사랑한다고

우리 행복하게 살자. 말하던 숙이가 그래서 마지막까지도 믿지 못했거늘

내 앞에 있던 그 남자는 내게 앞으론 숙이에게 오지 말라. 한다

숙이를 쳐다보니 내 시선을 피하는

"숙이 착한 사람이니 잘해줘요." 말하고 돌아서며 숙이에게

"너무 하는구나" 말하며 조금 빨리 돌아서 걸었다.

왜냐하면 눈물이 흐르려 하고 있었기에

숙이에게 그 모습을 보인다면 더 비참할 것 같았다.

지금 그때를 생각해 보면. 참지 않아도 될 상대 같았는데

그런데 왜 숙이를 잘 부탁하고 돌아섰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설마...

 

숙이와 헤어지고 밤늦게 기숙사로 돌아온 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 어떻게 해야 할지 미쳐 버릴 것 같은

불 꺼진 샤워실 옷을 입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샤워기 밑에 앉아있던

그날 이후 술에 의존하는 날이 많아졌다. 이런, 또 이곳에 오고 말았다

난 왜 숙이가 없다는 걸 알면서 술에 취하면 이곳에 와

숙이가 자취하던 창문을 바라보는지 한심할 뿐.

술을 자주 먹다 보니 결근하는 날이 많아져

사장실에 불려가기도 했던. 그간 착실하게 일하다 보니

반장이라는 직책 일을 하고 있었고 이젠 정신 차려야 한다 생각했지만

하지만 그때쯤 술이 아니면 수면 보조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어

그 수면 보조제를 약국에 사러 가면 한 알 정도만 팔았기에

매일 약국에 약을 사러 다니곤 하던 날 본 회사 친구 녀석이

다른 여자를 만나보라 했던 일이. 그러고 보니

사랑을 빼앗긴다는 게 얼마나 마음 아픈지 잘 알면서

나 또한 그 아픔을 다른 이에게 주고 말았다. 내가 친하게 지내던

이모네 막내아들 영길과 그 친구 경훈이란 아이

이 둘은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이모네 아들 영길이란 아이 때문에 우리 셋은 자주 어울렸다.

경훈이와 잠깐 사귀다 헤어진 여자와 다시 만나는 자리에

나와 영길은 같이 어울렸고 경훈과 그 여자아이가 서먹해 보이길래

농담 삼아 한 그 말장난부터가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말이 나가며 꼬이기 시작한 난

그 여자와 사귀게 되어 버렸다. 사귄다 말했지만

솔직히 사귄다 안 사귄다. 고도 말할 수 없는 그런 사이로

처음 만나던 그날 내 호출 번호를 알아간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면

만나러 나가보긴 하지만 경훈이와 사귀던 여자친구여서일까

왜 그런지 다가가기 힘들었다

겉으론 여자친구라도 되는 듯 말하고 행동하지만, 상당히 부담스럽던

그 여자아이와 밤을 보낼 기회가 많았지만 왜인지 부담스럽던 난

아예 그 기회조차 만들지 않았다.

그 말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안다.

아니, 아무 일 없었다 해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어차피 난 나쁜 놈이니까. 그 여자아이는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고 겉으로만 맴도는 내가 싫어졌던지

어느 날부터는 연락해도 받지도 연락도 없던 그러면서 그렇게...

그러고 보면 여자 친구들과 모여 어울릴 때

내가 자신들 여자친구에게 장난이나 관심이라도 보이면

또 다른 목적이라도 있는 것처럼 날 쳐다보던 시선이

분명한 건 내 잘못이다. 난 확실히 머리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상황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 내 의도와는 다른 말이 나가는

그런 말과 장난치면 안 되는 거였어 때늦은 자책도 해보지만

다 거짓 핑계라 할 아무도 믿지 않을 이 말을 남겨볼 뿐

내 지난 삶을 완벽히 깨달은 지금도 가족들에게 마저...

 

친구 말에 나 같은 놈을 누가 좋아할까. 그냥 웃고 말았지만

그 말 때문일까? 회사 경리가 점점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수정은 우리 회사 사원인

정환이란 아이와 만나고 있어 멀리했지만

나도 모르게 신경 쓰이기 시작하던.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혼자 좋아하는 것도 임자 없는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는 걸

오래전 운전면허를 따놓은 것이 있었다.

숙이와 헤어지기 전에도 난 매형 차를 자주 몰아보곤 했었고

집에서도 내가 차를 갖고 싶어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입에서 차를 사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숙이와 헤어지고 얼마 안 돼 차를 사주는 것이 아니던가

남들이 다 웃는 중고에 제일 작은 차였지만

내가 처음 가져보는 내 거라는 물건이 생긴 거라 난 너무 좋았다.

가끔 퇴근길 수정이를 태우고 전철역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즐거움이 되던

그러던 어느 날 회사 후배 민정과 단둘이 술을 마시다 나온

수정이 괜찮은 것 같다. 말했던 일이 아니 하지 말아야 했던 말을

회사 기숙사 사람들 모두 모여 술을 마실 일이 있었다.

다들 술을 마시며 나오는 여자들 이야기에

정환인 수정이 이야기하며 그 많은 사람 있는 곳에서

수정이와 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었다.

심지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남자애와 같이 시내 가출한 아이들에게

밥을 사주고는 밤을 보낸 이야기를 즐겁게 말하고 있는

정환이를 바라보며 수정이를 사랑하긴 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사랑은 몰라도 좋아는 하는 걸까?

매일 사무실 가면 보는 회사 아이들 있는 데서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말들을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일로 크게 싸워 둘이 헤어졌다는 말을

민정이에게 들었다.

 

비 오던 날 수정과 단둘이 퇴근길 갑자기

"오빠 좋아하는 사람 있다면서요"

난 아무 말 못 한 채 민정이 생각이...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한강 구경 가자는 말에 그러자 하고 처음 한강이란 곳에 가봤던

그날 수정이 사는 곳에 데려다준 그날 이후

수정이와 어울리는 시간을 보낼 때면 마음 한구석엔

수정은 정환이와 가까운 곳에서 일하기 때문에 내 마음은 더 복잡했다.

헤어졌다 하지만 둘이 어떤 마음인지 몰라

수정을 멀리해 보려 여러 가지 노력도 해 보았다.

일부러 수정이 퇴근하는 시간 한참 지난 뒤에 차를 몰고 나가면

회사 골목에 수정은 서 있었다. 그럼 별수 없이 사는 집으로 갔고

그런 날은 자신이 사는 근처 공원에 날 데려가 시간을 보내기도 했던

날 만나면서 다른 곳을 보고 다른 사람을 그리워하며 말하는 것도 싫었지만

솔직히 정환이 때문일까? 막상 다가오는 수정이 좀 부담스럽기도

그러던 어느 날 수정이 내게 정식으로 사귀자고 한다.  

그 말을 하고는 뭔가 다른 할 말이 있는지 머뭇거리는  

수정에게 괜찮으니 말해라 했던 내게

결혼식까지는 같이 밤을 보내는 것은 못 하겠다는 것과

목소리 수술할 수 없냐고 그 대신 나 싫다고 하기 전엔

자신이 먼저 헤어지자는 말 안 할 거라. 말하던 수정이를 보며 생각하던

얼마 전 나에게 정환이와 잤다고 말한 수정이

내게는 그런 조건을 다는 그리고 정환이와의 지난 일들이 생각났지만

미안해하는 수정이에게 별거 아닌 듯 대답해 주던 순간

왜 이 약속이 그리 오래 못 갈 거란.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던 걸까?

그 일이 있고 가끔 사무실에 다른 경리와 회사 형이 사귀고 있어

일이 끝나면 아는 사람들끼리 모두 모여 술을 마시곤 했는데

난 항상 계산할 적엔 돈이 없어 못 내었다.

전철과 버스 두 번을 갈아타며 먼 거리를 퇴근하는 수정이 힘들까

매일 데려다주던 것이 상당히 부담스럽던. 퇴근 시켜 주던

내 몸은 항상 지쳐있었지만 다른 곳에 쓸 여유가 없었기에  

계산할 적에 항상 피해야만 하는

하도 피하는 날 뒤에서 수군거리는 걸 느끼면서도

같이 어울리기 싫은데 수정이 있어 피할 도리가 없던

그런 날 보던 그녀는 몰랐겠지 그 치욕을 당해야만 했던 이유를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너무 치욕스러운...  

어느 날 사무실 뒤쪽에 볼일이 있어 건물 모퉁이를 도는 순간

뒷문 앞 수정과 정환이 웃으며 이야기 나누고 있던

동시에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잠깐의 고요가 흐르고

난 아무렇지 않은 듯 그 둘을 웃는 얼굴로 지나쳐 내 갈 길을 걸었다.

하지만 복잡한 내 속마음은...

얼마 후 사무실 직원들이 모여 술을 마시는 자리

그런데 수정이 술을 좀 많이 마시는 듯해 술 좀 천천히 마셔라. 말에

"나 사랑하는 사람 생겼으니 신경 쓰지 마요."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들은 후 그곳에 앉아 있을 수 없던 난

그때 스쳤던 그 생각이 참 빨리도 왔구나 생각하며 그곳을 나왔다

매일 편하게 퇴근할 수 있어. 내 말 같지 않은 한심한 말이나 행동에도

내게 싫은 말 안 하려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부담스럽거나 하면 말해 달라고 그럼 널 편하게 놔준다. 할 때

솔직히 말해줬다면 시작도 안 했을 텐데 아무 부질없는 지난 기억들이...

다음날 알면서 확인해 본다

"어제 말한 사람이 정환이니."

"맞아요" 대답에 난 아무 말 없이 수정을 뒤로했다.

알면서 물어본 건 확실하게 내 마음을 끊고 싶었기에 그런 치욕을 받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조차 아무 소용 없다는 걸

그날부터 수정이를 피해야만 했지만

사무실 월급 받는 나에게 수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하게 웃으며

"봉급도 탔는데 맛있는 것 좀 안 사줘요" 말에 아무 말 없이 사무실을 나왔다

아쉬운 게 있더라도 관심 없으면 제발 흔들지나 말아달라 생각하며

 

그때쯤 회사 후배 정호란 아이가 대천에 사는

자기 고향 친구를 소개해 준다며 만나 보라는 것이었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아 싫다. 했지만

자꾸 만나보란 말에 수정과의 마음도 정리할 수 있고

멀리서 사니 가끔 만나 부담도 없을 거란 생각에 소개받았다

그런데 가끔 현진을 만날 때면 정호가 항상 같이 나오는 모습에

아직은 서먹하니 그런가? 생각했던

현진은 내게 편지를 자주 했다.

편지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자기가 필요한 책을 말하거나

물건들이 쓰여있어 난 그것들을 사서 부쳐 주곤 했던

어떤 동기였던지 생각은 안 나지만.

아니 그녀를 못 잊어 내가 먼저 그녀에게 다가갔을지도

알고 있다. 사람과의 인연을 자르지 못하는 내가 가장 큰 문제란 걸

어느 일요일 저녁 무슨 일인지 먼저 연락이 와

수정을 만나러 나가보니 배고프다는 말에 같이 분식집으로 갔다

일요일 밤에 인천까지와 날 불렀는지 의아해하는 내게

"오빠 보고 싶어 왔지" 말하던 수정의 눈가엔 왜 그런지 알 것 같은

눈물의 흔적을 보면서도 기분 좋은 것처럼 웃어 주어야만 했던 나

그 무엇도 정리되는 것 없이 더욱더 복잡하게 흘러가던

어느 날 우연히 카드를 만들었다 손대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댄

카드를 쓰다 보니 숫자 개념이 없어진 것 같았다.

난 제대로 돈 관리해 본 적이... 아니 멍청해서 생각 없이 쓴 것 같다.

나중에는 결국 이런저런 문제를 더 만들고만. 그해 구십칠 년도

회사 직원들을 감원했는데 그때같이 일하던 공장장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모진 강압 속에서 살아온 내가 힘으로 날 다스리려 하는 공장장을

그리 좋아할 수만은 없었기에 감원 대상인 직원들과 같이 그만두어야 했던

집에는 써버린 카드값 때문에 말도 못 하고는

아는 사람들 집을 전전하면서라도 회사를 알아보려 했지만 그 또한

작은 자신감조차 없는 내가 스스로 찾아가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람을 구한다는 말에 찾아가면 언어장애가 있다는 걸 안 순간

무시하는 투의 말과 행동들... 그런 나를 보던 사람들은

스물일곱 먹은 놈이 몇천만 원도 아닌 몇백만 원 가지고 전전긍긍하냐

들어가서 혼나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내게 말을 하지만

난 이상했다. 병적일 만큼 정말 싫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별것도 아닌데 바보 같은 난 왜

그러고 보면 내 지난날 문제가 생기면 그걸 해결하려 노력하는 게 아닌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듯 피하기만 했던 지난날들이. 항상... 그랬다

그런 와중에도 수정이 가끔 연락이 와 수정을 데려다주곤 했다.

이용당하는 줄 알면서

 

3편에 계속

 

노아 행복을 꿈꾸다. 3편 (실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영길이 강원도에서 올라온

여자친구 어머니를 모시고 강원도 가는 데 같이 가자 한다.

정호 현진이랑도 다 약속했다고 가자고

영길은 정호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현진이와는 사귀는 것 같지 않은

가끔 만날 때면 내게서 현진이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항상 같이 나오며

참견하는 게 정말 싫어져 그만 만나고 싶어 일부러 연락 안 하던 때였는데  

갈 때 가더라도 미리 좀 물어봐 주지란 생각과 아직 회사도 못 다니는

어려운 시기에 놀러 가는 건 아닌 것 같다. 생각하면서도

싫은 건 싫다 말해야 했지만 사람들 말에 따지거나 싫다는 말조차 못 했던 난

항상 그랬듯 또 아무 말 못 하고 가야 했던

강원도 집에 도착한 우리는 다들 모여 밥을 먹으려는데

정호 현진 둘이 따로 어울려 멀리 가게로 가는 걸 보았을 때 내 기분은

내가 현진을 건드릴까 참견하는 거 같은데

나를 질 안 좋게 뭐 그렇게 생각해 불안해 그랬다면

왜 싫다는 사람 그리도 만나보라 했는지? 지금도 묻고 싶다

그냥 이용해 먹다 끝내도 될 놈이라고 나를 소개해 준 건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마음에 있던 것이라면 둘이 사귀던가

끝내려 했었지만 막상 그 모습은 기분이 영 그랬다.

다들 모여 밥을 먹은 후 개울가 옆

안 좋은 기분에 술을 더 마시면서 많이 취한 듯 흐릿한 기억의 조각들

....

알 수 없는 뿌연 영상들. 뭐가 이리 요란스러운지?

그때는 몰랐다. 그게 내 인생이 바뀌는 순간인 것을

 

엄청난 공포, 현실 꿈 무엇인지 도저히 구분이 안 되던

생각나는 건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뿌연 기억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조각 나 있는 영상들

그것이 사고 때인지 병원에서 느낀 건지는 모르나

지금 생각해 보면 병원에 온 후로는 혼수상태와 현실을 왔다 갔다 한듯하다

내게 말을 걸던 목소리 뿌연 형체 목과 머리에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을 느낄 수 있었으니. 병원에서 기억은 뒤죽박죽 조각나있었지만

하지만 한 가지는 정확하게 생각했던 그 상황이 너무 힘든 공포로 다가와

꿈인가? 제발 이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나기를...

그래서였을까 점점 희미하게 들려오는 사람들 말소리와 울음소리

너무나도 밝은 빛에 눈이 아플 정도였다.

건 한 달 만에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고는 하나 며칠이 지난 후부터 조금씩 생각나던

목을 뚫어 산소 호수가 꽂혀있고 머리와 어깨엔 이상한 물건들이

내 몸을 압박하고 있던.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내 환자복을 갈아입혀 줄 때 눈에 들어온

배꼽 밑 호수가 꽂혀있는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내 몸을 볼 때 그 충격은...

중환자실 어머니에게 들은 말로는

영길이 차로 시내로 나와 술을 더 마시려 했다고

그러다 영길이 졸면서 논두렁에 구르는 사고가 났다던

그러던 어느 날 울면서 내게로 온 어머닌

"의사선생님이 이젠 걷지 못할 거라 말했다." 며 울던

급히 따라온 간호사는 환자에게 그런 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렸지만

하지만 이상했다 난 아무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을 믿지 못했던 것일까

사지가 멀쩡하던 내가 못 걷는다는 그게 도저히...

얼마 후 일반 병실로 옮기고 얼마 안 돼

수정이와 사무실 직원들이 병문안을 왔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러워 그냥 가라. 말하고 싶었지만

목이 뚫려있어 말을 할 수 없던. 때마침 수정이 자리를 비울 기회가 생긴 난

어머니에게 손짓으로 표현해 수정이와 다른 직원들을 보내 버렸다.

내 망가진 육체가 구경거리가 된 듯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병문안 오는 것이

영길과 정호가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일까?

안 좋게 나온 회사 사람들과 병문안 온 사람들이 날 내려다볼 적마다

너무 싫고 치욕스럽던 마치 정육점 고깃덩어리가 된 듯한

내 육체가 너무 치욕스럽던 순간들이

그 마음을 숨기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웃는 얼굴로 맞이해야만 했던

점점 현실의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던 어느 날 경훈이 친구들과 병문안을 온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내게. 형 여자 친구들은 병문안 안 오냐며

사귀던 여자들 앞에 세워 놓고 내가 입고 있던 원피스형 환자복 아이스케키를

해야 한다며 웃던. 웃자고 하는 말들 하지만 그 속엔 비아냥이 있다는 걸

웃긴척했지만 그 비아냥거리는 경훈이를 볼 때면 목구멍까지 올라오던

'난 남자친구 앞에서 대놓고 찝쩍거리지만 너처럼 몰래 변태 짓은 안 해.'

말하고 싶었지만... 정말 미안함이 있다가도 그 비아냥거릴 때면 떠오르던

숙이와 같이 있던 자취방에 찾아와 술을 마신 뒤

내 옆에서 자던 자신에게 변태스러운 짓을 했다던 숙이 말에 어이없던 일이

그 일 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영길이 처음 만나던 여자에게도 몰래 안 좋은 짓을 했다던

설마 했던 그 일이...

생각해 보면 다치기 전에도 내게 비아냥거리거나

사람들에게 날 비난한다는 걸. 그 말을 듣고는

대놓고 비난하진 않지만 날 대하는 말투와 표정

장난인 것처럼 내 차를 발로 차던 기억이 왜 그런지 알면서 바보 같은 난...

하지만 그때 난 피눈물 날 것 같은 현실 앞에 따지고 싶지도 할 수도

아니 다 내 잘못 때문이지만 죽을 만큼 힘든 사람에게 꼭 그래야만...

 

피눈물 날 것 같은 날들의 시작

중환자실에선 그리도 날 걱정하며 슬퍼하던 분이

이젠 아들의 역할을 못 하고 짐이 됐다.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그리도 아끼던 동생과 새아버지를 못 돌보고 내 뒷바라지해서일까?

중환자실에서 보던 어머니는 오간 데 없고 어릴 적 그 모습만이

다른 중환자들은 보호자가 휠체어를 밀고 운동 치료실에 가지만

난 힘없이 허우적거리던 팔과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손잡이를 누르듯 밀며

혼자 운동 치료받으러 다녀야 했지만 그런 육체적 힘듦을 떠나

어머니에겐 너무 죄송스럽던

못난 아들놈 때문에 대소변 다 받아 내시는 어머니에게 죽을 만큼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신경질과 욕은 그 미안함을 이빨이 갈리는 분노로 변하게 했다.

정말 힘들어하는 내게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 아닌

"네가 병신 돼서 내 신세 망쳤으니 죽을 때까지 천대받으며 살아봐"

말과 욕을 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던

병실을 나와 매번 슬픔을 달래던 비상계단으로 갔다.

그곳에서 슬픔을 짓누르며 생각했던

눈앞에 보이는 계단에서 뒤로 떨어지면 끝을 볼 수 있을까?

유난히 높고 긴 비상계단 앞에서 휠체어를 뒤로 돌리던

그 순간 떠오르는 환자들

온몸이 마비되고 머리만 살아있는 환자 머리까지 죽어있는 듯한 환자들

끝을 본다는 것 그건 전혀 무섭지 않았지만 공포스럽기까지 한 그 모습은

더 이상 바퀴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질까

두려웠기에 도저히... 그런 삶 속에 미치도록 떠오르던 단 한 가지

확실히 갈 수만 있다면 제발 그 방법만 내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만이

이젠 걷지 못할 거란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우습게 생각하며 부정했지만. 하지만 현실은

거북이 뒤집히면 돌아눕지 못하는 것처럼 나 또한 전혀 움직일 수 없던

그나마 팔 신경이 조금은 살아있어 힘겹게라도 허우적거릴 수는 있었지만

손가락을 움직이는 건 더 복잡한 신경들이 살아 있어야 가능하다던

그리도 부정하던 암담한 삶의 시간이 현실로 다가오는

내 몸은 지렁이가 된 듯 꿈틀거리며 참 느리게도 회복됐다.

몸을 내 힘으로 겨우 돌아눕는 그걸 해내는 일에 거의 일 년이 걸리던

두 명의 운동치료사를 거치며 깨달은 게 있다.

치료사들은 환자가 걷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길어야 이 삼십 분 그 시간만이라도 노력해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해주자

아닌, 그 시간만 채우면 그걸로 자신들 할 일은 다 한 것이기에

땀 흘리며 노력하는 그 모습은 말 그대로 영화나 드라마일 뿐.

운동치료사와 말을 많이 하며 알았다

그때 내 몸 상태는 어려워도 노력하면 걷게 할 수도 있다는 말투를

난 발에 약간의 감각이라도 느낄 수 있지만

감각 없는 걷지 못한다 판결 난 환자 걷게 한 적도 있다며

하지만 굳이 그 시간을 더 고생하며 걷게 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걸

그 마음이 눈치 없고 모자란 내가 느껴질 정도니

난 남들보다 빨리 운동 치료받는 곳으로 간다. 빨리 가면

다른 환자가 없어 치료받는 테이블에서 나 혼자 돌아눕는 운동이라도

해볼 수 있으므로 걷는 것과 연관된 운동 방법은 모르기에

머리 위로 팔을 올리거나 힘주어 움직일 때면 찢어질 듯 고통스러운 어깨

손잡이에 쓸려 손바닥은 핏빛 진물이 나면서도 팔힘이 조금이라도 생길까

밤늦도록 휠체어 바퀴를 돌리며 병원을 헤매보던. 또 다른 목표

이 고깃덩어리 육체를 버릴 수 있을 만큼만이라도 나아야 한다는

내 힘으로 앉지도 못한다면 내 삶을 끝낼 시도조차 해볼 수 없을 것 같아

날 죽일 그날을 위해 닥치는 대로 해보던 고통에 몸부림치던

어느 날 내게 옆 병실 환자가 건네던

한 가족의 가장이 병원 근처 건물에서 투신하여 끝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집안 사정과 난치병에 힘겨워 투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옆 병동 환자가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안타까운 감정보다는

나도 창문이라도... 부러움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눈을 뜨니 짙은 어둠 속 창문 가득 함박눈이 내려오는

아침이 오면 사람들이 놀라겠다. 생각하던 그 순간

아무런 예고 없이 내 눈엔 다른 녀석들이 가득 흐르기 시작하던

스물일곱 살에 나 구십칠 년도 초여름에 사고 난 그해 겨울을 맞이하며

고통스러운 생각과 악몽 한밤중 눈 뜨던 그 많은 밤들

참 많이도 숨죽여 울고 참 많이도 그때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던

슬픔과 고통으로 신음하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던 나

그런 밤이면 내 동생에게도 참 미안했다

못난 형 때문에 병원 보호자 병실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

형으로서 힘이 돼주진 못할망정 그런...

 

그해 겨울 몇 달 만에 병문안을 온 영길은

날 데리고 공원 벤치로 나와 사고 때 이야기를 내게 하던

"형이 괜찮다고 해서 다친 형 몸을 움직인 거야"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형이 다친 건 미안하다." 고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던

완전히 만취한 상태에 사고 충격으로 아무 말이나 하는

심지어 구급차에서 자장면 시켜달라 말했다던 그런 제정신이 아닌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나 아쉬움이 남던.  하지만

"괜찮다." 말했다 지금에 와 무슨 소용 있겠나. 애써 생각하던 내게

"근데 내가 다쳤다면 난 자살했을 걸 형은 형네 엄마가 병간호해 주지만

우리 엄마는 몸이 안 좋잖아 그러니 내가 다쳤다면 난 자살했을 거야"

내 귀를 의심케 하는 생각 없이 말하는 애라지만 참 어이없다. 생각만 들던

아무리 고의로 사고 낸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으로 인해

마지막을 꿈꾸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그게 할 말인지

아주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거늘

그 말뜻은 자신이 아닌 내가 다친 것이 다행이란 말인가

피눈물 날 것 같은 고통으로  

헤아릴 수 없이 끝을 볼 수 있길 빌고 있던 난 정말 묻고 싶었다

병원에서 전신 마비 환자가 죽는 방법 있다면 제발 가르쳐 달라. 고

어쩌면 조금도 다른 사람 생각할 줄 모르는지. 오늘 온 이유도

단지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함이었구나 생각하게 만들던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영길은 항상 그랬다

뭐든지 자기 말과 행동을 자기 합리화시켰던 지난 일들이

잠시 후 영길은 가고 또 혼자 남았다.  

영길이 오고 간 뒤였기 때문일까? 영길과의 옛일들이 미친 듯이 떠오르던

돌아보면 그런 영길이와는 몇 번 끝을 볼 기회가 있었다

영길은 내게 자신보다 잘하는 게 뭐가 있냐 말하거나

심지어 여러 사람이 모여 술을 마실 때조차

"형은 형 동생만도 뭐 할 줄 알고 잘난 게 없냐." 서슴없이 말하던

집에서 친자식이라고 그리도 사랑받는 동생

그것도 친동생과 비교하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화나던

'멍청하지 하지만 너처럼 말 한마디로 상처 주는 그런 놈은 아니라고'

목구멍까지 올라오던 말을 해야 했고 약간 화도 냈지만. 아니나 다를까

마음속 치밀어 올라오던 말조차 탁 막히던. 더 바보 같은 난

정말 참지 말아야 할 일도 사과를 받기보단 내가 먼저 풀어 버리곤 했다.

누가 뭐라 해도 바보 같은 미소만 지으며 나 자신을 숨기는 것 같은

지금 생각하면 영길의 생각 없이 말하는 걸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멍청한 나와 다른 한편으론 부러움도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의 이익과 손해 보는 일 없게 계산적인 성격

다른 사람 상처받는 것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영길의 그 성격, 비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조금이라도 그런 성격이었다면

난 내 속마음을 말하지 않아 오해를 많이 사고 피해를 많이 봤다.

그런데 유일하게 내가 입이 싸고 험담을 잘한다. 말하던 사람이 영길이다.

왜 그런 말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아주 오래전 두 가지 일들이

영길이 잠시 사귄 여자와 만나 다 같이 밥 먹으러 가는 길

그날 영길은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고 그걸 말하지 말라. 했는데

영길이 안 좋은 표정을 보곤 내게 너무 걱정돼서 그러는 거니

아무 말 안 할 테니 가르쳐 달라 왜 사람 말 못 믿냐. 화까지 내며

붙들고 물어보던 그 여자애를 믿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영길에게 달려가

"너 왜 그러는지 난 아는데" 말하는 그 모습

하얘진 머릿속 멍하니 쳐다만 볼 뿐.

경훈과 셋이 같이 술을 마실 때 일이다. 영길이 잠시 자리 비운 사이

영길이의 집안 사정을 물어보던 경훈이에게 대답해 주던 난

영길이 모습에 시집간 누나들 없이 집안일 다하며 일하러 다니는 영길이

집 생각하면 우울해할까 경훈에게 그만하자. 표정 짓는 것을 보고는

자신을 험담하다 멈추는 것이라 오해했다.

오해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서 그 또한 그런 게 아니라고

변명조차 안 하고 소리 없는 미소만으로 앉아만 있던 나를

그러면서 항상 나중엔 오해가 풀릴 거라 내 마음을 달래던. 그냥 바보였다

한 번에 실수와 한 번에 오해로 난 그런 놈이라고. 차라리...

영길은 고등학교 시절 돈이 없어 비참한 일이 있었다. 말했던 일이

그런 이야기를 하며 형처럼 편안하게 살던 사람은 그런 아픔을 모를 거라는

말투와 표정으로 내게 말하곤 했던. 겉으로 보이는

내 삶을 조금 보고 듣고는 그것이 진실이며 나에 대해 전부 알고 있는 듯 말하던

생각 못 했겠지. 들은 그 말들이 정반대이며 다 거짓으로 포장된 말이란 걸

병문안 온 그날 그 끔찍한 병원 생활 속 내 어머니를 안 좋게 말하기 싫어

나 또한 정반대로 말했던 일도 있으니. 돌아보면

그리 대놓고 무시하던 영길이 자신도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해도

말 한마디 못 하는 날 한심하게 쳐다보던 시선이... 그래 맞다

저능아였다 나도 뼈저리게 후회하지만. 하지만 그걸 알까 내가 할 말 다 하는

그런 놈이었다면 그 누구보다 제일 먼저 자신과 인연 끊었을 것이란 걸

지금 한으로 남아있는 건. 영길과 인연을 끊고 살던 그때 그냥 내가 참고 말자

넘어간 그 일이 이리도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줄은 정말...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았을

내 옛 생각에 어린 나이에 고생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항상 데리고 다니며 챙겨주던 같이 일하던 아이마저 내 부족함을 알고는 이용하던

그걸 다른 아이들에게도 알려 날 이용하게 만든 것 같은 그 씁쓸한 기억

미안한 생각이 드는 애들도 있지만 다 모자란 내 탓이지만 그 아이들에게

정말 인간적으로 대해준 것 같은데 돌아온 건... 정이니 누군가를 위해준다느니

그게 얼마나 소용없는 것인지 아무 소용 없는 지금에서야

내 자신의 한심함에 도저히 쓰지 못할 미칠 듯 떠오르는 수많은 기억들

난 왜 그런 무시와 농락당하면서 대꾸도 사람들과의 인연도 끊지를 못했을까

나약한 내가 싫어 운동도 해보았지만 그런 노력도 아무 소용없는

난 그저 모자란 저능아였다.

 

그러고 보면 변명조차 못 하는 나 자신이 정말 죽도록 싫었던 일이 있었다.

내가 중학교를 나와서 처음 다니던 삼정 정밀이란 회사 그곳에 계시던

예전 공장장님을 난 무척이나 따랐다.

그분은 어릴 적부터 모진 폭력과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살아온 내게

처음으로 날 인정해 주시던 그분 난 그분을 무척이나 따랐고 좋아했다.

그런 날 보는 다른 사람들은 그분에게 아부한다며 날 안 좋게 볼 정도였으니

난 그게 아니었는데. 말 한마디라도 따듯하게 말해주고

내가 한 일들을 칭찬해 주시던 공장장님이 좋았을 뿐.

그러다 몇 년 후 그분은 회사를 퇴사하셨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일요일 회사 다른 간부진들과 같이 있다 혼자

식당에서 점심밥이나 먹으려 생각하는데

그분 전 공장장님이 트럭을 몰고 회사에 오신 것이다. 난 너무 반가웠다.

다른 간부진들과 인사를 건네곤 빨리 식당으로 가 밥을 먹으려 했다.

멍청한 난 빨리 밥 먹고 가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밥을 차려 먹으려는 데 한 간부가 와서는

날 찾는다는 말에 전 공장장님에게 가보니 가려 하고 있었다.

"뭐 하니"라고 내게 물어보시는 말에

다른 핑계라도 댔어야 했지만 거짓말조차 못 했던 난

"밥 먹으려 하고 있었다." 고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는 쓴 미소를 띠며 트럭을 몰고 가셨다.

그분의 차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빨리 말을 해야 해. 그게 아니었다고 공장장님이 오신 게 너무 좋아서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 밥 먹고 내려오려 했다고

하지만 그 말은 내 안에서만 맴돌 뿐.

바보 같은 놈 밥 먹으려 했던 일이 뭐가 그리 급한 일이었다고

그 일이 있고 사람들이 날 안 좋게 생각할 거란 걸 알고 있다.

회사 사람들이 날 욕하는 건 그건 상관없었다

다만 그분에게 변명 한마디 못 한 멍청한 나 자신이 죽도록 싫을 뿐.

삼정 정말 퇴사 후 고물상 하시는 그분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나 같은 멍청한 놈을 따듯하게 대해주신 공장장님에게

정말 마음속 깊이 감사하고 존경했다. 고 말이라도 전하고 싶을 뿐.

그분이 그리워 고물상이라도 좋으니 그분 옆에 같이 있고 싶다.  

생각하던 내가 무슨 짓을

 

막 일반 병실로 온 후 경찰인가 어디서 나와 조사했던 일이 생각난다

조사 마지막에 사고 낸 사람 처벌을 원하느냐는 말에 난 원하지 않는다.

지장까지 찍어야 했던. 처벌해서 뭘 하겠는가 어찌 됐든 놀러 가서 생긴 일

더욱이 친척인걸.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뒤 영길의 모습이 뜸해지더니

나중엔 아예 오지 않는. 회사 다닐 테니 그럴 거라 그리 생각하면서도...

오래 지난 어느 날 어머닌 집에 볼일이 있다며 집으로 간 후

휠체어에 앉아있던 그날 너무 외롭고 우울하던

같은 병실 보호자에게 동전을 얻어 공중전화기로 갔다.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으로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전화 걸 수 있던

이모네 집이었다. 이모가 받기에 이런저런 이야기 하고는

오후에 영길이 놀러 왔으면. 물어보던 내 말에

"영길이 회사 다녀 바쁘거든 이젠 연락해도 가기 힘들 거야"

이상하게 말을 돌리는 것 같은

그 느낌은 앞으론 영길이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소리처럼 들리던

이모에게 마지막 인사한 후 잠시 멍하니 있던

나도 나였다 아무리 외롭고 우울하다고....  

지금은 차라리 영길이를 안 보고 사는 것이 좋다.

건강하게 날 보러 오는 영길을 볼 때면

썩어가는 내 고깃덩어리를 불 질러 버리고 싶을 테니

휠체어에 앉자 스쳐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일과였던 어느 날 숙이 수정의 일들이 떠오르던

숙이는 남들이 다 비웃는 못난이였지만 남들에게 항상 무시당하는 날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행복을 알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지금 숙이를 생각하면 그녀와 헤어진 건 나 때문이다

숙이는 고아였기에 어려서부터 고아로 자란 숙이를 외롭게 둔 것이

헤어지는 빌미가 된 것이라는 생각이...

다만 지금에 와 아쉬운 건 그때 왜 사랑한단 말을 못 해줬는지

아니 그 말 한마디 못해준 내가 너무 아쉽다.

남들은 참 쉽게 사랑한단 말 하던데 뭔 대단한 말이라고

그 한마디를 못 해주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한심할 따름이다.

이별의 아픔이 버거워 원망도 했었지만. 지금은

너만이라도 네가 원하던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길. 생각해 본다

수정과의 일들도 내 젊은 날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정환이를 못 잊어 그랬을 뿐이지 날 조금은 좋아했었다고 믿고 싶었지만

하지만 그 바람은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얼마 후 어머니가 회사에 물어보라는 일이 있어

병원에서 회사로 전화해야만 했던. 옆에서 전화번호를 눌러 주실 때

제발 수정이 받지 않았으면 빌었지만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그녀 목소리에 물어보라던 걸 물어보곤 빨리 끊으려는 순간

"오빠 나 병문안 가야 돼요" 물어보던

"내가 언제 너보고 병문안 오라고 했니."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아무 말도 하지 말지 아무리 이용 가치 없다는 걸 알았다고

그냥 한 말일지도 모를 그 말에 왠지 모를 비참함이 느껴지는 그 한마디

억지 좋은 추억이라 생각하고 싶던 일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

 

집에 갔다 온다는 말에 몇 시간을 휠체어에 앉자 기다리기 힘들어

침대에 누워 있던 난 어머니가 가시고는 바로 배가 아프기 시작하던

적당한 햇살 따스하게 비추는 창가 옆 내 얼굴엔 식은땀이 흐르며

제발 참아줘 제발... 하지만 밑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느낌. 혹시나

엉덩이 밑으로 손을 밀어 넣어 본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그건... 젠장

차라리 침대 위에서 이러고 있는 게 휠체어에 앉자 기다리던

그때보단 나은 거라 애써 생각하며 제발 어머니가 빨리 왔으면 생각하던 순간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나..." 옆에서 들리던 말소리에 자는 척할 수밖에 없던

자는 척했지만 사람들 수군거림과 일 분이 한 시간 같은 시간을 보내며

느껴야만 했던 내가 싼 똥오줌 위에 누워있던 일이 한두 번도 아니거늘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 비참함은...

몇 시간 뒤 오신 어머닌 내 뒷정리를 해주었고 휠체어를 타고 공원에 나온 난

벤치에 앉자 담배 피우고 있던 내 또래로 보이는 한 남자에게 가

담배 하나만 얻어 피자. 부탁했던 내 말에

"그러고 담배 피우고 싶어요." 한심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말하던

"담배가 아니라 쥐약이라도 먹고 싶어요." 애써 웃으며 얻은 담배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입에 물며 코끝이 찡함 눈물이 나는 걸 겨우 참으며 들던

정말 쥐약이라도...

얼마 후 의사 선생님이 휠체어 탄 환자 몇 명이 필요하다고

홍보용 사진 촬영을 하자고 몇 명을 데리러 왔다

내게도 사진 촬영하자고 하지만 난 싫다 했다. 홍보용 사진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바로 창문에서 뛰어내려 이 고깃덩어리를

버리고 싶은 내가 뭐가 자랑스럽다고 이 모습을 남기고 싶겠나. 생각에

의사는 다른 환자들만 데리고 사진 찍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화를 내시며 욕을 하시는 어머니

"왜 안 찍어 빨리 가서 찍어" 뒤로 넘어갈 듯 휠체어를 떠밀던

할 수 없이 사진 찍는 곳으로 가보니 끝났다는 내 말에

"그거 찍으면 도움받을지도 모르는데 왜 안 해" 화를 내시던

티브이에서 보는 사람들의 도움에 손길 뭐 그런 걸 보고 그러나 본데

하지만 이건 병원 홍보 책이다. 아무리 많이 찍어도 병원 안에서 보는 그런

그것 때문에 다른 환자 보호자들 있는 데서 욕하고 떠밀고

참 미치고 싶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환자가 부럽기까지 하던

얼마 후 내 사고 보상금 합의가 끝났다

보상금이라고 해봐야 병원 보험으로 안 되는 치료비와 빌린 돈 갚고 나면

동생 대학교 다닐 학비 정도 남았다. 나야 중학교 밖엔 못 나왔지만

그나마 이 꼴이 되어서라도 동생 학비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

고생한 동생에겐 그나마 다행이라고

 

4편에 계속

 

노아 행복을 꿈꾸다. 4편 (실화)

 

건 일 년 반이 지나서야 집에 들어선 순간

내가 살던 집인데 왜 이런 기분이 들까? 병원과는 완전히 다른

병원은 휠체어 타고 사람 구경이라도 하지만 딱 막힌 방안에 들어앉는 순간

아! 이래서 사람들이 우울증 걸리는 걸까? 느껴지던

내가 너무 우울해하자 퇴원하는 날 보러 온 큰누나가 어머니에게 잘 말해주어

하루에 담배 세 개비 피워도 되게 해주었다.

그러다 가끔 저녁 기분이 우울할 때면

"담배 하나만 더 주면 안 되나요." 말에 어머닌 있는 대로 욕을 하시고

방문 앞 동물에게 먹을 걸 주듯 던져주는

방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주워 피우고 있는 나 자신이 정말...

많이 사정하고 다툰 후 지금은 나흘에 한 갑을 피우며 위안 삼고 있지만

남들이 보면 비웃을 그 담배 하나에 이리도 연연하는 나 자신이 싫지만

침묵의 내방 안 유일한 낙이기에

심지어 내 마지막 담배 한 대 피우고 갈 수 있기를 생각마저도

새아버지는 내가 퇴원하기 전 다른 여자와 살림 차리고 살고 있다고

참 뭐라 해야 할지 오십 대 후반에 그것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자기 친자식을 배신다니 그러면 안 된다 생각하는데

나야 친자식이 아니니 상관없다 하더라도 안쓰러운 내 동생

표현은 안 해도 많이 힘들고 복잡하겠지

 

이 일은 안 쓰려고 했다. 안 봤으면 하는 사람들이 볼까

아무리 병신이 되었다고 자존심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

난 대 소변을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게 해결해야 하는

소변을 보려면 배꼽 옆을 안마하듯 두드려 야만 소변이 나온다.

목 밑은 마비로 인해 소변을 참거나 밀어낼 수 없었기에

잠잘 때면 소변 마려운 걸 느끼지 못해 실수라도 하는 날은

"멍청하게 아무 생각 안 하고 자니 실수하지 그걸 왜 몰라"

바닥 작은 천과 바지를 갈아주며

한참을 야단치시던 어머니 낮에도 거의 느낌이 없는데

나도 실수하기 싫은데 정말 미치겠다.

극도의 노이로제에 실수라도 하면 티 날 줄 알면서도  

불 꺼진 어두운 방에서 일어나 그 흔적을 말려보려 참 별짓을 다 해본다.

대변은 말 그대로 피눈물 날 것 같은

배 밑쪽 돌처럼 단단한 게 걸린 듯한 아픔. 그 또한 내 힘으로 밀어낼 수 없어

한 시간 심한 날은 서너 시간을 변기 위에 앉자 배를 주무르며 두드리다 보면

몸에서 나와야 하는 그 녀석은 위로만 올라오는지

한겨울 그 얼굴 가득 흐르는 녀석으로 인해 온몸은 젖지고

작은 온기조차 없는 차디찬 집안 공기는 그런 내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게 하던

아무것도 모르게 차라리 미치게라도 해줘 제발... 빌어 보지만

그마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닌 현실이 더욱더 슬프게 하던

고통의 시간이 흐른 후 자리에 누우면 온몸은 땅속으로 녹아내리는 듯한

어두운 천장을 쳐다보다 잠을 청하려 눈 감으면 한없이 흐르는 눈물

내 모습은 내가 택한 내 선택의 결과라 다 내 탓이라 생각하려 하지만

그런 날은 영길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던 차라리 그때 그냥 죽여 버리지 왜...

수없이 되뇔 수밖에 없던 날들과

퇴원하기 전부터 조금씩 보이던 사고 후유증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내 일상은 매일 매 순간 떨림 경련

엉덩이 욕창에서 흐르는 핏빛 진물도 불편했지만 이 후유증은

마치 물고기의 마지막 숨을 토하듯

온몸이 움찔거림과 내 뜻과는 상관없이 발광하듯 움직이는 다리

힘겨움이 덜할까 잠을 청해보지만 불현듯 나타나 잠 못 들게 만드는

진찰이라도 받아보면 좋았을 걸  

이 또한 안고 가야 할 삶인 줄 알며 버텨보지만

아무도 없는 집 쉼 없는 경련에 지쳐갈 때면

'제발 부탁이니 날 죽여줘. 어떻게든 해달라고 제발...'

형체 없는 누군가에게 미친 듯 소리치던

고통의 시곗바늘 같은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날카로운 칼날이 내 안에서 춤추는 듯한 고통으로 병원에 실려 간 난

위가 터져 수술을 해야만 했던

매일 누워만 있다 보니 위 뒤편 급성 파열 그 고통은 상상 이상의 고통이

웬만한 고통은 느끼지도 못하는 내가 데굴데굴 몸부림치며

"제발 날 좀 죽여줘요" 어머니에게 애원하며 소리 지르던

내 살면서 그런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아야만 했던

그날이 지난 후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배 숨조차 가빠 오던 고통

퇴원한 며칠 후 구급차에 실려가 장 협착으로 다시 수술해야만 했던

수술 후 장이 서로 붙지 않게 병원 복도를 걸으며 운동을 해야 하거늘

자유롭게 운동할 수 없는 몸이기에 장이 붙어버린

집에 돌아온 어느 아침 누군가 날 쳐다보고 있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해골 모습을 한 유령 같은 노인이 날 바라보고 있는

정신을 차려보니 문 옆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놀란 것이다.

내 모습이 보기 싫어 외면하던 거울 속엔 내가 아닌 곧 생을 마감할 것 같은

두 번의 수술과 금식 고통으로 인해 뼈와 가죽만 붙어있는 초췌한 노인이

그런 내 모습과 배를 완전히 가르고 내려간 수술 자국을 볼 때면

넌 도대체 왜 안 죽고 사냐? 더욱더 나 자신에게 묻곤 하던

그래도 얻은 것도 있었다.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그 시간을

그리도 날 괴롭히던 그놈을 달랠 수 있는 약을 타 먹을 수 있었지만

하지만 그 약이라는 게 마약류의 약이었기에 불안한 마음이

이 약은 너무 독해 오래 복용하면

내장 기관들이 녹는다며 약을 처방해 주는 걸 무척 꺼렸을 정도니

낫는 병이 아닌 약을 복용 안 하면 바로 경련으로 고통받기에 하루 두세 번

한 알 한 알 먹을 때마다 삶을 단축한다는 걸 알면서 먹을 수밖에 없는

자신 안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야 한다 생각하면

끝을 보고 싶어 하면서 그 생각이 날 때면 두려운 마음이

만약 아무도 없을 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난 그 고통을 빨리 끝내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으로라도

끝을 보려 할 것 같다. 그 고통은 정말 끔찍한 고통이었기에

제발 빈다. 나에게 있어 어떤 끝이 기다리던

내 마지막이 너무 고통스럽지 않기를

 

숨 막히는 나날들

작은 일 하나하나 닦달하며 날아오는 가시 돋친 말들

죽을 때까지 천대받아봐. 말하는 어머니를 볼 때면

내가 정말 어머니 인생을 망친 걸까?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면 어땠을까 생각도

얼마 전 여자아이가 어떤 약을 과다 복용하고 사망한 뉴스를

그 약으로도 끝을 볼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나중 더 큰 고통으로 피눈물 날 듯 후회할지도 모르면서

지금 당장은 몸이 좀 편안해져서일까 이젠 두려운 마음이

그냥 아무것도 없이 깊은 잠을 자는 걸까?

사고와 혼수상태에서 느낀 그 엄청난 공포 때문일까?

아니면 내 안에 두려움이 가득한 놈이라 단지 그 이유뿐 일지도  

그 지옥 같은 매일 수없이 빌고 빌었던 그 시간을 지나고 나니 이젠...

문득 아주 오래전 일이 생각난다.

체육관 가는 길 목발을 한 나이 많은 아저씨가

오토바이 리어카에 폐지를 주워 모으는 것을 보면서 눈물이 나려 했다

한쪽 발이 없어 의족을 한 그 사람을 보며 차라리 죽어 버려라. 생각하던

난 언어장애 만으로도 이리도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데

저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며 차라리 죽어 버리라고

언어장애 그건 아무것도 아니거늘

그때는 혼자 버텨야 하는 외로움과 고통이 버거웠기에

끝을 본다는 것 그게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그때는 몰랐기에

지금 당장에라도 내게 다리 하나 주면 건강하게 만들어 주겠다. 한다면

당장에라도 내 다리를 잘라 가라고 제발... 그런 부질없는 생각마저

이런 생활을 너무 오래 하다 보니 별생각이 다 난다

다시 돌아보면 참 존경스럽다

그런 삶일지라도 당당히 헤쳐 나가는 그 아저씨가

 

참 오랜만에 놀러 온 매형에게

한때 안 좋은 생각 했었다. 고 형에게만 말하는 것이니

절대 누나에게 말하지 말라고 다짐을 받았던 일이

하지만 그 약이 무슨 약 인지에 대한 물음엔 말하지 않았다.

가끔 어머니와 난 우스갯말을 하곤 한다

자신이 죽으면 다른 식구가 널 돌봐줄 거 같냐는 말에

그때는 내가 끝을 봐야죠.라는 그런 걸 우스갯말이라고 그런 말을

어느 날 아침밥을 다 먹은 내게 갑자기 자신이 쓰러져 병원에 갔고

그 후에 누나들 눈빛이 이상하면 자신이 잘못돼 있거나 죽은 줄 알라고

그때는 알아서 끝을 보라는 소리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옆벽을 향해 머리를 있는 힘껏 서너 번을 박는다

번쩍이는 섬광과 짙은 어둠이 눈앞을 교차하는 충격을 받으며

"걱정하지 말라고 죽어줄 테니까."

용기 내어 살아봐라. 거짓으로라도 말해주지는 못할망정

자식에게 끝을 볼 때를 자세히 말하던 그 소리가 정말...

"네가 먼저 죽는다고 해서 말하는 건데 그거 갖고 난리야" 말하면서도

머리 박고 있는 날 밥상 앞에 앉자 쳐다만 볼 뿐.

우스갯말로 하던 때와 진심 어린 말로 끝낼 때를 말하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의미인 것을. 어린 시절

매일 같은 폭력과 압박 속에서도 단 한 번도 나쁜 생각 안 했던 내가

정말 역겹다.는 생각과 어린 시절 모든 슬픈 감정이 떠오르던

매형이 누나에게 말한 것 같다

그 말을 듣고는 약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끝낼 때를 말하는

그런 날이면 더욱더 잠을 못 이루다 날이 밝아온다

어릴 적 여린 성격에 언어장애까지 있었던 날

어머닌 그 모진 압박과 폭력으로 키우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내 앞에서

자신의 약 먹는 모습을 보란 듯이 보여주곤 하시던 어머니

자신이 많이 아프니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처럼

그리도 날 잡아 훗날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신 걸까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순종적인 그런 아들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만약 그런 아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성공하신 것 같다.

다만 매일 같은 쓰라린 삶 속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충분하셨는데. 정말 충분히...

내 지나온 사람들을 돌아보면.

언어장애 있다는 걸 알면 무시하고 깔보는 사람들

날 힘으로 압박하려 하는 사람들이 정말 싫었다.

난 이런 내가 싫다.

조금이라도 현명하게 살지 멍청하게 살아온 나 자신을

사람들의 무시와 농락당해도 말 한마디 못 하는 나약한 나 자신을

그리도 소망하던 그 시간마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가 싫다

하지만 정말 다행이다.

전신 마비 장애인이 되고 마음이 여려 내 안에 품은 한을

나와 그 사람들에게 되돌려주지 못함을

정말 다행이다.

 

어머니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 봤다.

가난과 고달픈 삶이 어머니를 그렇게 만든 거라고

부족함이 가득한 날 보다 보니

모든 걸 충족시켜 주던 그런 동생을 아끼는 건 이해해야 한다고

남들도 다 그런 거라고 억지로라도 그렇게 사라져 주길

돌아보니 내 삶이 조금은 행복해지길 빌었던 것 같은데

너무 모자란 놈이어서 소원을 못 이루었나 보다. 믿지는 않지만

아니 신이니 뭐니 그런 믿음조차 없는 나지만 내가 소원하는

다른 가족들에게 마저 짐이 되지 않기를

내가 끝을 봐야 할 그날이 온다면 그때만큼은 소망을 이룰 수 있기를

마지막이라도 편히 가고 싶은데 그것마저도 내겐 과한 욕심일까?

부질없이 흐르는 눈물 눈뜨는 것마저 고통스럽기까지 하던 날들의 연속

내 안에 슬픔이 가득 차 도저히 감당할 수 없던 어느 날 결국 난...

점점 흐려져 가는 기억 속 이젠 쉴 수 있을 거라 생각 때문일까

끝을 본다는 공포보단 왠지 모를 평온함이 느껴지던

하지만 바람과는 다른 그 또한 눈을 뜨니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오며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건네던

뿌연 시야에 들어온 낯익은 형상들

"저 퇴원 좀 시켜줘요" 몽롱한 머리에서 나오는 첫마디

여행을 못 갈 거라면 이 낯익은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던 걸까

내가 먹던 약이 잘못돼 며칠간 사람도 몰라봤다 생각하는지

의사들은 모르나 가족들은 내가 여행을 가려 했다는 걸 모르는 듯하다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아픔을 덜 주며 여행을 갈 수 있는

완벽한 기회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집에 돌아온 후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후회가 아닌

이젠 아무 흔적 없이 가는 방법은 모르는데 아쉬움뿐

부질없이 흐르던 눈물이 정말 싫었는데 그날 이후 눈물이 나지 않는다.

내 안에 쓰라린 마음을 다 쏟아내고 나면 속이라도 시원할 것 같은 마음인데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그렇다고 가라앉지도 않는

그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텨간다는 것이 그게 얼마나 엿같은지

시곗바늘 같은 그 엿같은 시간을 보내던 난 또다시 마지막 이길 잠시 빌었다

그곳에선 상처 입거나 아파할 일 없기를

조금씩 첨부해 오던 내 삶의 글도 이 밤 이 글이 내 마지막 첨부 글이 되기를

빌며 눈 감았지만. 젠장! 그냥 좀 쉬게 해 주지

간 일부 절개해야만 하는 사고를 치면서도 여행을 못 간

손가락이라도 내 뜻대로 움직여 주었다면 쉴 수 있었을까? 아쉬움을 남기며

삼 주 후 낯익은 그곳에서 또다시 시곗바늘 같은 내 방으로 돌아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멍하니 내방 천장을 바라보며

'제발 이 고통에서 날 좀...' 또다시 미친 듯 소리치기 시작한다

어쩌면 나 자신에게 소리치는

다시 그날이 온다면 조용히 쉴 수 있기를 바라며

미련이 남지 않도록 조금씩 주변 정리하고 있는 내 모습과

지난 기억들

지난날 결함투성이로 태어난 나 자신을 원망하며 한탄하는 날들뿐이었지만

지금의 난 원망하고 싶지 않다 내 삶은 공포와 아픔의 시간이 크지만

잠시나마 사랑도 즐거움도 느껴 봤으니

내 삶을 한탄하며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기에

다만 그곳에 가면 그리도 바라고 바라던

신이 뭔지도 모르면서 빌던 소망이 이루어 지길

그것이 변해버린 내가 바라며 꿈꾸는 또 다른 행복일지도

소망한다 쓰라린 삶을 버텨온 피폐한 육체도 지친 내 영혼도

이제 그만 평온함에 닿을 수 있기를

 

....... 노아 행복을 꿈꾸다 완결 .......

 

밑글 아닌 (노아 행복을 꿈꾸다 번외 글귀 모음) 글 하나 더 있는데.

 

글을 쓰며 생각하던

내 부족함이 부끄러워 거짓으로라도 포장해 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하나의 거짓 글을 쓰면 내 양심과 다른 글도 거짓이 될까

내 부족함을 비난할 걸 알지만 솔직한 마음. 단 하나의 거짓 글도 쓸 수 없었다.

한밤중 잠을 못 이루어 천장만 바라보다 보면 지나간 옛일들이 너무 선명하게

생각나 미칠 것 같은 제발 사라져 줘 빌던 그 옛 기억들이

점점 더 또렷하게 떠올라 미칠 것 같던 날들

그러다 생각한 그리 잊는 게 힘들고 마음 아프다면

차라리 기억나는 대로 글을 써보자 어쩌면 마음이 편할지도... 생각에

이 글은 내 삶에 상처를 준 사람들을 비난하려고 쓴 글이 아니다

한 저능아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지 못한 말을 조금 떠벌려 본 것일 뿐.

아니 그리 생각하면서도 내 깊은 마음 한구석엔 어떤 마음 인지는 나도 잘...

어쩌면

내가 이 세상을 등 진 후, 그 어떤 사람들이 자이든 타이든

이 글을 읽어볼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지도

그래서 그때 못한 말들을 서두 없이 썼는지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초등학생이 쓴 역사책 수준도 안 된다.

혹은 죄다 변명의 글들 뿐이냐. 한심해하겠죠.

내 한심한 삶과 형편없는 글이라 비난해도 괜찮아요.

이 글을 쓰면서 내 모자람과 과거에 얽매여 살았던 날 돌아봐

마음 아팠지만 늦었다는 것도 잘 알지만

내 속마음을 이런 글로라도 남길 수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기에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내 흔적이 아무것도 없어 서운할 것 같았는데

이런 형편없는 글이라도 어딘가 있을 거란 생각이 조금은 위로가...

이젠 그 기억들 잊고 싶은데

새로운 추억이 쌓이지 않아 옛 기억을 미친 듯 파헤치는 걸까

그 추억이 쌓이지 않아서일까

그해 그 나이에 머물러있는 듯한 나를 볼 때가

그렇게도 모자란 나 또한 다른 이들에게 크나큰 아픔을 준 기억의 시작

내 지난 삶을 정리하고 나니

이젠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준 기억에

매 순간 고통 속에 내가 받은 상처 그건 며칠이면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지만

그 기억은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이 완벽하게 떠오르며 괴롭게 하는

끝을 봐야만 내 머리에서 사라질 것인지. 내 자신의 한심함과

그 사람들에게 상처 준 미안함에 뼈저리게 자책하며 살다 가는 게

내 남은 삶이란 생각이 너무나 서글퍼진다

순희에게. 너에게만은 어떤 비난과 벌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는 걸

이곳에 쓰려 했지만 나 자신이 부끄러움과 한심함에 도저히 쓸 수조차 없음을

미안하다는 말뿐 용서해 달라는 말조차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생각해도 이해도 용서도 안 되는

어쩌면 지금 내가 힘든 게 너에게 준 상처 그 죗값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현생에서 다 못 받는다면 내가 두려워하는 그곳에서 받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와 미안하다는 말뿐이구나.

 

이 형편없는 글 읽어주신 고마운 분들. 제발 부탁드려요

자신이 힘들다고 삶에 지쳤다고 아이를 폭력으로 키우지 않기를

아이는 그 마음에 상처를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제발 부탁드려요.

 

이 글은 금전적 목적이 아니라면 퍼가든지 올리든지 마음대로 이용해도 돼요

금전적으로 쓸 글도 못 되는 글이지만 혹시나 수정 후 구걸용으로 쓸까 노파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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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님, 이 형편없는 글 묻혀 사라지지 않게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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