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다음날.
도서관의 홀로그램 휴식과 돔 바깥의 붉은 산맥 감상도 팽개치고,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이번에는 가상광장도 들어가지 않는다.
데이터와 관련된 것들부터 철저히 훑어본다. 일단 JPG가 고대급 단말기들에서나 쓰이던 이미지 파일이라는 사실은 알아낸다. 지금이야 모두 홀로그램으로 입체화된 이미지들이지만, 1세기 쯤 전에는 도트 급의 색상 정보들과 그 내부의 정보를 또 다시 압축해서 만든 평면적 이미지들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미지 파일이라. 그렇다면 일은 손쉬워질 수도 있다.
내부의 정보를 극소단위로 계속 천천히 읽어내야 하는 변환 명령 제작이 1시간 정도 걸리는 관문이지만. 예전에 부렸던 실력을 다시 부려, 그 이미지들을 천천히 재조립한다. 따뜻한 차 한잔을 하면서 천천히 현재의 데이터 크기로 재조립되어 가는 파일들을 살펴본다. 마치 교통체증에 짜증을 부리고 있는 운전자처럼, 네트워커는 천천히 조금씩 엑셀을 밟아간다.
한 100여 장 정도의 데이터들이 홀로그램으로 컨버팅(변환)되었다. 그게 끝난 걸 확인했을 즈음엔 날밤을 꼬박 새고 출근 시간이 다가온 뒤였다.
어떻게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를 하루의 시간을 보낸 후, 도서관에도 돔 외곽의 벤치에도 들르지 않고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네트워커를 켜고 저장되어 있는 폴더를 열어 데이터를 확인하려 하는 순간, 갑자기 뭔가 알람이 수십 개가 동시에 뜬다. 빌어먹을. 혹시 악성광고 같은 건가 싶어 지우려는 순간, 발송된 곳을 표시하는 기록이 이상하다. 이 마커대로라면, 이건.
이 돔의 행정부 메인프레임에서 보낸 것이다.
나는 급히 창을 하나 열어본다. 거기에는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가 쓰여져 있었다.
--당신은 추적당하고 있습니다. 당장 백업하고 거기서 나와요--
순간 등골이 싸늘해진다. 행정부에서 보냈다는 것도 위험하고, 메일 같은 형태가 아닌 알람창 같은 형태로 바로 메시지가 왔다는 것도 위험하다. 사태는 최고로 심각해져 있다. 말 그대로 당장 백업을 해놓고, 여차하면 불특정 다수에게 발신할 수 있는 상황까지 만들어놓는다. 그리고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주변이 곧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경찰이 오고 있다는 이야기. 그 와중에도 기기들만은 압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적겠지. 최대한 그곳에서 멀어지는 일 외에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집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게끔 모노레일을 타고 나서야, 생각들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행정부에서 보내진 메시지. 그렇다면 내 모든 것이 추적당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홀로픽폰도 마찬가지. 게다가 경찰이 왔다. 그 말은 내 모든 것이 공식적인 뉴스화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비밀리에 일을 처리하는데서 왔다면, 그만큼 모든 것이 비밀리에 이루어졌겠고, 내가 도망칠 수도 없었겠지.
이 모든 일은 내가 데이터를 바꾸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상에서 내가 그걸 외부적으로 연결해서 일 처리를 한 적은 없다. 정말 그런가? 나는 작업의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본다. 뭔가를 다운로드 받은 일도 없고, 외부에서 조언을 구한 적도 없다. 그렇다고 그 명함같은 데이터에 추적프로그램이나 발신프로그램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내 작업은 철저하게 독립적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들켜버린 걸까?
네트워커가 연결되어 있지 않은데 네트워커 안의 내용물을 열람할 수 있다면?
그 생각까지 미치자, 그 어떤 네트워커도 안전하지 않다는 확신이 서면서, 동시에 가상광장 같은 곳의 문제들도 상당히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프라이버시들이 오픈되어 있다. 뭐든 협박의 내용으로 쓸 수 있다. 행정부는 이걸 노린 건지도.
4.
모노레일이 화성 북단의 종점에 다 와닿을 때쯤에 나는 길을 내렸다. 일단 홀로픽폰의 모든 칩들을 빼버리고, 폰 자체를 부숴버리기 위해 폰을 꺼냈다. 그런데 거기에 메시지가 와 있었다.
--당신의 전자화폐 계좌는 안전합니다. 당신의 폰도 안전해요. 내가 로그들을 모두 바꿔놓았으니까요.--
전자화폐칩과 폰의 상태를 확인하는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고 나서야, 나는 메시지를 보며 잠깐동안 멍하니 서 있는다. 그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유동주소로 되어 있는 내 폰은 완전히 다른 사람의 소유기록으로 되어 있고, 전자화폐칩과 연동된 계좌도 번호가 모두 바뀌어 있다. 메시지는 사실인 것이다.
이것에 응답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살행위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사실도 확실하게 느껴진다. 응답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응답한다면? 적어도 내게 메시지를 보낸 자가 아군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게 된다. 확률상으로 따지면, 뭔가를 할 수 있는 방향이 생기는 것은 응답을 했을 때의 이야기다.
--당신 누구야?--
떨리는 손가락으로 메시지를 보내자, 조금 시간을 둔 후, 벨이 울린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목소리를 듣는다.
--정확히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당신의 친구인 건 확실합니다--
그걸 어떻게 믿지?
--믿기 힘들다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아니면 안 됩니다. 나도 당신이 아니면 안돼요. 그 데이터를 흘려놓은 것이 바로 나입니다.--
흥분과 불안이 꼬리를 물고 춤을 추는 걸 억누르며 나는 말한다.
어째서 그런 데이터를 전달하려 한 거지?
--누군가가 보고 깨달아주기를 원했습니다--
무엇을 깨달아주기를 원한 건데?
--그건 데이터가 답해줄 것입니다. 그보다 시간이 없습니다. 나도 당신도 노출되어 있어요. 나는 그나마 위장하면서 시간을 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시간이 없어요. 언론조작, 모든 홀로그램 보안카메라, 공권력의 추적까지. 모두가 당신이 가진 데이터를 뺏으려고 혈안이 될 겁니다.
도대체 그게 뭐냐고! 그냥 말해주면 안되는 건가?
--그랬다간 이쪽 필터링에 걸려서 제 존재가 확실하게 노출되고, 전 위험해집니다. 그래서 말하는 겁니다. 나도 당신이 필요하다고.--
그럼 너는 그 데이터가 노출되기를 원하는 건가?
이 질문에 또다시 응답이 늦어지고 있다. 노출되기를 원한다면 왜 그런 형식으로 데이터를 노출시켰을까? 그냥 뿌려도 될 텐데.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굳이 그런 형식으로 데이터를 만들어 뿌렸나구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 정도의 문제를 풀만한 사람이 나타나 주길 바랬던 것이구요, 두 번째는......--
이런 운을 뗀 후 나온 대답은 애매했다.
--이 문제를 푼 사람 정도라면, 선택권을 맡겨도 되겠다 싶어서입니다. 이 정보를 노출할지 말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쪽과의 접속이 종료되어 버렸다.
이 정보를 노출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내가 결정한다니. 나는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손댄 ‘그 정보’를 봐야만 한다.
나는 홀로픽폰으로 홀로그램화 해두었던 그 문제의 정보를 불러낸다. 옛날의 JPG 이미지 파일. 그것이 홀로그램화 된 것은, 어느 산맥의 모습이었다. 눈이 쌓여 있고, 험준한 바위산처럼 보이고, 도서관의 지구 홀로그램에서 먼 배경으로나 쓰일 법한, 그냥 산맥의 모습이었다.
처음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곧 뭔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이 산은, 그래,
낯설지가 않다.
그 느낌을 붙잡고 계속 기억해내려 애쓴다. 나는 어디선가 분명히 이 산을 본 적이 있다. 옛날의 사진에 있던 지구의 산을 도대체 내가 이 화성의 어디서 본 것일까. 정말 도서관의 홀로그램에서 본 것인가? 그건 아무리 기억을 짜내봐도 아니다. 지구의 풍경을 홀로그램으로 불러올 때 이렇게 눈 덮인 산을 풍경으로 불러온 적은 없기 때문이다. 이 산맥을 어디서 본 것일까? 어디서?
나는 순간 떠오르는 생각으로 온몸에 전기가 오르는 듯 했다.
나는 다시 모노레일을 탔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건 거기서 본 거다. 확실히. 하지만 그 생각은 두려움도 불러왔다. 내 생각이 정말로 맞다면? 그렇다면......그렇다면.......확인해보기 전까지는, 이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 내 생각이 과민해서 그럴 수도 있어. 그렇게 자신을 다독여가면서, 나는 모노레일의 덜컹거림에 맞춰 같이 흔들린다.
모노레일은 내가 자주 가는 곳 근처에 도착한다. 나는 걸음을 빨리 한다. 아니, 이제는 뛰기 시작한다. 미친 사람처럼 달려서 내가 도착한 곳은 화성 거주지의 돔, 그 벤치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그리고 저 차광막이 걷혀서 유리 바깥으로 명확하게 보이는 그 곳,
화성의 붉은 산맥을 쳐다본다.
떨리는 손으로 홀로픽 폰을 꺼내고, 홀로그램 데이터를 불러온다. 내가 보았던 정보가 홀로픽 폰 안에서 홀로그램으로 투사된다. 나는 지금 열려있는 홀로그램과 바깥의 붉은 산맥을 시각상에서 일치시킨다. 그리고 그 둘의 유사성 검사를 프로그램으로 돌린다.
숫자들이 빠르게 움직인다. 구조들을 나타내는 라인들이 이리 저리 밝은 빛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마침내 퍼센테이지가, 명료한 불빛으로 표시되기 시작한다.
98%.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다.
내 생각은 역시 맞았다. 그 맞았다는 것이 더 큰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내가 감당할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다시 찾아온다. 나는 너무 큰 비밀을 알아버렸다. 이 곳 사람들의 희망을 부숴버리고, 수많은 다른 사람들을 전부 혼돈의 도가니로 빠뜨릴만한 사실을.
여기는 화성이 아니다.
여기는, 지구였던 것이다.
내가 깨달은 것으로 인한 충격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은 그 때,
누군가가 내 어깨로 손을 올린다.
“여기로 오실 줄 알았습니다.”
깔끔한 정장차림과 정돈된 머리. 감색의 넥타이.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경찰차의 무리들.
“강제로 연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되도록 자발적으로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