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이켜보니 그당시 많은 곳에 가서 많은 것을 보고듣고경험했었네요. 주말에 짧은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비행기, 기차, 버스, 지하철/지상철, 트램, 승용차 등 여러 교통수단을 다양하게 이용했어요.
혼자 다니기도 했고, 오페어 모임이나 커뮤니티칼리지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같이 다니기도 했습니다.
5.돈은 많이 들었나요?
3년동안 제가 3천만원 정도 벌었고, 부모님께서 2천만원 송금해주셨습니다.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돈으로는 미국에선 ESL 수업 학점인증서? 같은 거 받는데 일부 썼고요, 비행기타고 여행 참 많이 다녔습니다.
독일에선 타국(이태리)으로 2주가량 여행가는 데 부모님이 주신 돈 썼어요. 감사한 줄 알고 살고 있습니다.
6. 외쿡인이랑 연애는 해봤나요?
아니요. 남자외쿡인들과 그닥 어울리거나 엮일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클럽 등의 유흥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 곳은 가보지 않았습니다.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뭐 그런데만 좋아했었지요..
지금은 똑같은 남자 만나서 아기랑 셋이 잘 살고 있습니다.
7. 대우는 어땠나요? 막 부려먹었나요?
입주베이비시터도 가족으로 여겼던 두 가정에서 사랑 많이 받고 안전하게 잘 지내다 왔습니다.
생일 챙겨주고, 크리스마스엔 침니에 제 양말도 걸어주고 선물도 주더군요.
미국에 있을땐 애들 친조부님들이 엔젤스스타디움에 데려가서 야구 보여준 적도 있습니다.
물론 남의 돈 먹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지요. 애들 관련한 사고는 치지 않았지만 다른 사고는 쳤네요..
혼자 울기도 하고 싸이월드에 갬성돋는 글쓰면서 회복하고 그랬었어요.
제가 가고싶다고 우긴거라 부모님껜 하소연하지 않았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오페어의 경우는 그 집의 규칙을 숙지하고, 문화차이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8. 잼난 에피소드 있나요?
아무래도 3년이나 외국에 있었으니… 여러 사람과 얽힌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만났던 외국인 친구들을, 독일에 갔을때 찾아간 적이 있어요.
브라질인친구랑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재회했던 일이 있었고, 독일인친구가 대학다니면서 자취하던 뮌헨 그리고 그 친구 본가에 방문했던적도 있습니다.
사실 그 친구 부모님은 미국에서 먼저 뵈었어요ㅎ 그때 제가 한인마트가서 재료 사다가 한식 대접했었는데. 저 독일 왔단 소식듣고 부모님이 꼭 초대하라고 해서 본가에까지 간 거였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영국으로 가서 살던 슬로바키아인 친구보러 멘체스터 다녀왔었습니다. 맨유경기장 투어가서 박지성선수 유니폼 앞에 서서 셀카를 찍었지요. 잔디가 너무너무 고와서 한번 만져보고 싶었는데 양복입은 가드가 지키고 서있던 기억이 납니다.
9.외국인이라고 차별받거나 해꼬지당한 적 있나요?
미국에서 애들 데리고 놀이터갔는데, 다른 엄마들이 저를 보고 속닥이더라고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LA 중앙역(유니온스테이션)에 있는 카페에서 주문하는데 니가 뭔 말 하는지 모르겠다더라고요. 그래서 메뉴번호로 얘기한 적 있네요. LA에는 다양한 인종이 살고 특히 동양인이 더 많으면 많았지 딴데보다 적지는 않았을텐데.. 씁쓸했습니다.
독일에선 그런 일은 없었네요. 큰 도시 시내에서 스킨헤드같이 보이는 청년들이 있길래 지레 겁먹고 크게 돌아갔던 적은 있습니다.
그래도 위에 쓴 정도면 양호했지요.
10.다른 오페어 친구들이 살던 집
브라질인 친구가 일하던 집은 오페어가 두명이었습니다. 애들이 버릇없다고 하소연했던 기억이 있네요.
슬로바키아인 친구가 있던 집은 애들아빠가 재미교포였습니다. 근데 소시오패스 기질인지 짖궂었던 건지 애견인인 제 친구앞에서 한국에선 개 잡아먹는다는 얘기를 했다네요 그것도 자기네 집에서 키우는 개 앞에서. 문화적상대성이야 인정할 수 있지만 굳이 그 친구한테 그런 얘기를 할 필요는 없었을텐데.
그리고 그 집 아이들이 마른 오징어를 간식으로 먹고 있었는데 냄새가 이상해서 당황했었단 에피소드를 들은 적도 있네요.
11.오페어 경험이 인생에 도움이 됐나요?
초등학교서부터 대학교까지 집에서 통학한터라 부모님의 보호를 많이 받고 살았었습니다.
근데 첨으로 부모님과 오래 떨어진게 외국, 거기다가 남의 집에서 일하면서 사는 거여서ㅎㅎ 시행착오가 많았지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눈치가 생겼고, 밥먹을때 쩝쩝거리던 습관같은 경우는 지적을 받아 고쳤습니다.
그리고 가족들, 친척들 다 떨어져서 나를 나로써만 보는 환경 덕분에 어릴적 트라우마가 치유되었습니다.
친할아버지가 저를 딸이라고 좀 차별하셨었는데, 그래서그런지 제가 좀 남자같이? 행동하고 옷도 중성적으로 입고 그랬었어요.
사춘기부터 이성에 관심있는것도 당연한거였는데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제약하면서 누가 나한테 관심을 보여도 관심없는 척하고 그랬었더랬죠.
근데 미국에 가니 참 자유롭더군요. 그래서 머리도 밀어보고, 연분홍색 블라우스도 사입어보고, 화장품도 사보고 하면서 나를 있는그대로 인정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일주일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쇼핑센터가서 맘에드는 가죽가방도 사봤고, 영어로 된 만화책도 사서 천천히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해외체류하고 한국에 오니 가족들이 저한테 성격이 많이 유해졌다고 하더군요ㅎㅎ 저도 인정합니다.
그리고 한국와서 취업한 후에 소개팅도 적극적으로 했었습니다ㅎㅎ 소개팅으로 잘 된 적은 없지만서도요.
남편과는 두번째 회사에서 같은 부서 다른 팀으로 만나 연애하고 결혼했습니다ㅋ
오페어 얘기하다 별 말씀을 다 드렸네요ㅎㅎ
폰으로 쓰니 손가락과 팔꿈치가 아프군요.. 혹시 더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댓글 남겨주시겠어요? 본문에 추가해서 더 적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