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했던 형 이야기 Vol.[5]

한국조폐공사 작성일 21.09.25 13:5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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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동안이나 연락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형의 전화번호는 바뀌지 않았었고 몇 번의 통화음 이후에 오랜만에 낯익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형 : 여보세요

 

덕훈 : 형 오랜만이에요 잘지내셨어요?

 

형 : …아 덕훈이구나!! 오랜만이다야. 형이야 잘 지냈지~ 넌 어떻게지내냐? 제대는 했어? 왜이렇게 연락을 안했냐 

 

형이 목소리 잊어버릴뻔 했잖니. 형이 너를 그렇게 키웠어?

 

오랜만에 농담하는 형의 목소리를 들으니 1년반이라는 시간이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고 며칠만에 연락하는 것 같은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덕훈 : 네 ㅎㅎ 열심히 살다보니까 어떻게 이제 제대할 때가 다 됐네요. 내일모레면 이제 말년휴가 나가요 ㅎㅎ

 

의경은 말년휴가를 나가면 사실상 군생활은 거기서 끝이기 때문에 제대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미리 따놓은 외박을

 

쓰지 않고 휴가에 붙일 수 있어서 운 좋게도 크리스마스 4일 전에 휴가를 떠나 민간인이 될 수 있었다.

 

형 : 이야 우리 덕훈이 이제 민간인 되는구나~ 축하해~ 형이 한턱 쏴야겠네~~

 

덕훈 : 역시 형밖에 없어요 ㅋㅋㅋㅋ. 안그래도 서울 한번 올라가려고 했는데 휴가받으면 시간내서 찾아뵐게요 ㅎㅎㅎ

 

형 : 그래 임마. 형이 차비 줄테니까 KTX타고 올라와~ 크리스마스 전에 얼굴 한번 보자~

 

덕훈 : 아녜요 형 괜찮아요. 버스타고 올라가면 얼마 안나와요 ㅎㅎ

 

형 : 그래도 편하게 올라오면 좋지~~. 안그래도 형이 좋은 일이 있어서 너 한번 부르려고 했는데 신기하게 이렇게

 

연락이 되는구나~.

 

덕훈 : 아 형 결혼날짜 잡으셨어요 ㅎㅎㅎㅎ?

 

형 : 덕훈이~ 형이 요새 안보인다고 개념도 안보이는건 아니지~?

 

덕훈 : 그럼 무슨일이신데요?

 

형 : 형 합격했어~. 이제 내년부터 지방으로 내려가서 또 대학생활 해야된다 ㅎㅎㅎ. 형 다시 1학년이야

 

잠시 잊고 있었던 형의 수험생 신분이 다시 머리속에 상기되었다. 작년에 졸업한 형은 올해 1월부터 수험생이 되어

 

8개월간 수험 생활을 했고, 합격자 발표가 난 12월 언저리쯤 우연히 내가 전화를 했고 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어렵다는 시험을 한번에(보통 4학년때 준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두번이지만) 패스하고

 

합격한 학교로 다시 내려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형의 말을 들으니 마치 내가 합격한 것처럼 기뻤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었다.

 

덕훈 : 형 정말 축하드림다!! 역시 형 될줄 알았어요! 이제 닥터케이라고 불러야 됩니까 ㅋㅋㅋㅋㅋ

 

형 : 우리 덕훈이가 군대를 가더니 헛소리가 많이 늘었구나~~ 어쨌든 정말 고맙다. 그러니까 내일 모레 기차타고

 

얼른 서울 올라와. 형이 제일먼저 너랑 축하주 한잔하고싶구나 ㅎㅎㅎ

 

덕훈 : 네 형. 기차 없으면 파발마라도 빌려서 타고 갈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형 : 그래 형이 널 위해서 좋은자리 마련해 놓을테니 이번주말에 올라와, 시간 말해주면 형이 기다리고 있을게~

 

덕훈 : 네 횽. 그때 뵐게요 ㅎㅎ

 

전화를 끊고 나서, 형이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에 대해 다시 한번 감탄하며 지금의 내 자신을 반성할 수 있었다.

 

이전에 말로는 다 못했지만 형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계발을 하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었고, 무슨 일이든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항상 노력이 전제로 깔려있었다.

 

농구를 할때도 최선을 다했고 봉사활동을 할때도 최선을 다했고, 항상 요령없이 정도의 길만 걸었고,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공부 역시 내가 보기엔 적당히 하는 것 같았지만 안보이는데서는 누구보다 피나는 노력을 했으리라.

 

의대 시험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얼마나 피터지게 노력했는지는 자기 자신 외에는 모르겠지.

 

아마 내가 중간에 전화했어도 받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형은 천재는 아니니까, 끊임없이 노력이라도 해야 이미 한발 앞서있는 사람들의 옷자락이라도 붙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결과가 모든걸 말해준다. 형은 그 노력의 보상을 받은 것이다.

 

물론 합격 자체가 또다른 시작일 수 있고, 더 힘든일도 많아질 수 있다. 의사가 되었다고 해서 인생의 모든 것을 이룬것도

 

아니다. 다만 그정도의 노력을 통해 의사가 되었다면, 다른 어떤 일들도 무리없이 잘해낼 수 있지 않을까

 

형이 한없이 부러워지면서 1년간 아무 계획없이 놀기만 한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다만 인간이란 무엇인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욕망의 동물 아니던가

 

자기반성은 잠시뿐이요, 불과 이틀만에 나는 형에게 어떤 비싼걸 얻어먹을까 하는 행복회로를 돌리며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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