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했던 형 이야기 Vol.[8]

한국조폐공사 작성일 21.10.01 19:3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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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는 내가 모르는 번호였지만 끝자리가 익숙했던 번호라 나는 잠시 뜸들이다 전화를 받았다

 

덕훈 : 여보세요

 

형 : 덕훈아 형이야. 형 전화번호 바꿨다. 이걸로 저장해놔~

 

덕훈 : 아 어쩐지 전화번호가 많이 낯익더라구요 ㅎㅎ. 무슨일이세요?

 

형 : 너 뭐하고 지내는가 싶어서 연락해봤지. 뭐하고 있었어?

 

덕훈 : 집에서 요양중이죠 ㅎㅎ. 당분간 좀 쉬려구요.

 

형 : 그래. 고생 많이했는데 좀 쉬어도 돼. 여행도 좀 다니구 리프레시좀 해.

 

덕훈 : 네 형. 내년 시험까지는 시간이 좀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충전좀 해야죠

 

형 : 잘 생각했어. 마음 좀 진정되면 형 있는데로 놀러와라. 형이 기분전환 시켜줄게~

 

덕훈 : 형 여유좀 있으시면 그 때 제가 찾아갈게요 ㅋㅋㅋ

 

형 : 그래. 다담주 쯤에는 형이 시험도 다 끝나니까 여유 생기거든. 그때 또 연락하마. 푹쉬고 있어~

 

덕훈 : 네 형. 그때 봬요

 

통화를 끊고 나서 나니 한숨이 푹 나왔다. 형은 이제 졸업이 얼마남지 않았는데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뭔가 다른 세계에 사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어차피 고민해 봐야 답도 안나오는데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면서 어떻게 할지나 생각하는 것이 생산적일 것 같았기에 나는 끊었던 피시방과 주점을 내집처럼 들락거리며

 

나태하게 늘어졌다.

 

그렇게 2주쯤 지났나, 형의 콜을 받고 짐을 간단하게 챙겨 형이 있는 도시로 가는 차표를 끊었다

 

초저녁 쯤이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고 형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버스 터미널 주위를

 

뱅뱅 돌고 있었다.

 

덕훈 : 형 저 도착했어요!

 

형 : 형도 너 봤다. 얼른 타라~

 

덕훈 : 여기도 서울만큼 시간 많이 걸리네요 ㅎㅎ.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요?

 

형 : 형이 누구냐. 형 자취방에 너 좋아하는거 많이 시켜놨으니까 그거 먹으면 돼 ㅋㅋㅋㅋ

 

덕훈 : 아 역시 형밖에 없어요 ㅋㅋㅋㅋ. 다먹고 뭐할까요? 오랜만에 나이트나 갈까요? 여기도 나이트 있긴 있죠?

 

형 : 나이트는 무슨 ㅋㅋㅋㅋ. 형이 이제 나이가 있어서 그런데 가면 쫒겨나 ㅎㅎ 그리고 여기 시골이라 그런것도 없어

 

나는 조금 실망했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노가리나 까는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재충전하면서 형의 공부 노하우도 

 

듣고, 정보도 좀 알아보면서 술이나 실컷 마시면 이때까지 힘들었던 기분이 좀 풀릴 것 같기도 했다.

 

형은 중간에 마트에 들러 내가 생전 듣도보도 못한 위스키나 보드카 종류를 장바구니에 담았고 덤으로 토닉워터도

 

왕창 구매했다. 평소에 비싸서 먹지도 못하는 술들을 이참에 마셔본다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자취방에는 형의 말대로 고급 모듬회와 양장피 등이 세팅되어 있었고 몇 시간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내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일단 자리 세팅을 하고 편한 옷을 갈아입자마자 음식들을 폭풍흡입했고 형은 위스키 잔에

 

얼음을 넣고 술 맛을 조금씩 음미했다.

 

형 : 녀석. 배고팠나보구나. 냉장고에 치킨도 있으니까 편하게 먹어~

 

덕훈 : 오랜만에 기름칠 하니까 위장이 춤을 추는데요 ㅋㅋㅋ

 

형은 비어있는 내 잔에 위스키를 따라주면서 건배를 청했다

 

형 : 덕훈이 너 고생했다고 형이 쏘는거야. 이거먹고 또 힘내서 열심히 한번 해봐. 형은 다음학기부터 이제 실습나가서

 

더 바빠질거야. 형이 연락 못받아도 섭섭해하지 말구

 

덕훈 : 네 형 바쁘신데 제가 방해하면 안되죠. 와… 도수가 높아서 그런지 열이 확 오르는데요 ㅋㅋㅋ

 

형 : 술은 적당히 먹고, 안주 많이 먹어. 형은 요즘 많이 안먹어서 니가 다 먹어줘야 돼~

 

덕훈 : 네, 횽. 잘먹겠습니다!

 

그렇게 형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안주발을 세우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고 두어 시간이 지났나,

 

형의 전화기가 울렸다. 형은 전화를 받고 몇 마디를 주고 받더니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형 : 지금 혜라가 터미널에서 택시 탔다고 하거든? 형이 데리고 올테니까 안주먹고 쉬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덕훈 : 아 혜라누나 와요? 완전 오랜만인데요! 5년만에 얼굴 보겠네요 ㅎㅎㅎ

 

형 : 그래. 옛날에 재밌게 놀았잖아. 혜라한테도 너 왔다는 이야기 해놨어~ 금방갔다올게

 

덕훈 : 네 형.

 

오랜만에 혜라누나를 본다는 사실에 기분이 살짝 묘해지면서 좋아졌다. 사실 누나의 이야기는 형을 통해 몇번

 

듣긴 했지만 최근에는 언급이 없어서 헤어졌나 싶어 굳이 케묻지 않았었다.

 

세월이 오래 지났지만 내 기억속의 혜라 누나는 순진했던 새내기 시절 내 기준에서의 아이돌이였고, 형과 함께 있으면

 

정말로 잘 어울리는 커플로 보였었다. 깊은 대화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형을 생각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앞서 있었고

 

형도 그것을 잘 알았기에 근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인연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왠지 모르는 긴장감을 뒤로하고 나는 위스키를 조금씩 마시며 안주 찌꺼기들을 정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어락이

 

해제되며 형과 누나가 함께 들어왔다.

 

형 : 덕훈이 혜라 오랜만에 보지? 오늘 너 온다고 혜라가 선물도 사왓어 ㅋㅋㅋㅋ

 

혜라 : 덕훈이 오랜만이네. 잘 지냈지?

 

덕훈 : 누나 진짜 오랜만이에요 ㅋㅋㅋㅋ. 이런거 안사오셔도 되는데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누나가 건넨 선물이 뭐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는 누나가 날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이 많이 기뻤던 것 같다.

 

누나는 옆방에서 간편하게 옷을 갈아입은 뒤 형 옆에 자리를 깔고 술잔을 채웠다.

 

형 : 봐라. 남자 둘이서 칙칙하게 있다가 분위기가 얼마나 좋냐. 덕훈이 오랜만에 누나 만났는데 넌 뭐 선물같은거 

 

준비안했어?

 

덕훈 : 아니 형, 미리 말을 해주셔야 제가 학이라도 접어오죠 ㅋㅋ 이런 서프라이즈가 어디있어요? 누나한테 죄송하게 ㅋㅋ

 

형 : 덕훈이가 말발이 많이 늘었네~ 형한테 대들기도 하고 ㅎㅎㅎ 너도 이제 20대 꺾였다 이거니?

 

혜라 : 마음만이라도 고마워~~

 

형 : 야 혜라야 너 그거 아냐? 이녀석 여자친구랑 2년 사귀고도 진도도 다 못나가고 올해 초에 차인거?

 

덕훈 : 아니거든요! 제가 헤어지자 했거든요! 어차피 롱디라서 몇번 만나지도 못했거든요!

 

누나는 말없이 웃기만 했고, 나는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형의 어퍼컷에 얼굴이 붉으락해지며 취기가 확 올랐다. 이유도

 

없이 누나의 눈치가 보였고, 이유도 없이 뭔가 창피해졌다. 형은 분위기가 재밌었는지 내 치부를 하나하나씩 혜라누나에게

 

까발리기 시작했다.

 

형 : 덕훈이 이녀석 썸타면서 형한테 어떻게 해야하는지 하나하나 물을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ㅎㅎㅎㅎ. 여자친구랑

 

엠티는 갔었다며??? 근데 아무것도 못하고 나왔었지 아마??? 형이 그렇게 순진해서 널 좋아하는거야 인마~

 

형도 술기운이 조금 돌았는지, 비밀로 하겠다던 이야기를 누나 앞에서 녹음기처럼 나불거리며 내 반응을 즐겼다

 

덕훈 : (유사성행위까지는)했거든요! 왜그러세요 형 취하신거에요? 정신차려요 형 ㅋㅋㅋㅋ

 

형 : 어쭈, 너 형한테 대드냐 지금? 덕훈이 진짜 많이 컸구나 ㅎㅎㅎㅎ. 그래그래 알았어 오버하지마 ㅋㅋㅋ 혜라도

 

알고 있어 ㅋㅋㅋㅋ 재밌으라고 한 거야

 

누나는 형 옆에서 재밌다는듯 조용히 웃으면서 위스키를 조금씩 음미하고 있었다. 나는 뭔가 잘못한것도 없는데

 

쪽팔림과 부끄러움이 몰려들었고 독한 위스키를 연거푸 들이켰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머릿속이 백지장이 된 것처럼 필름이 끊어졌고 다시 눈을 뜬 것은 새벽 2시가 넘은 한밤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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