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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글터] 귀신들린 집 1
심심해서 끄적여 타 사이트에 올렸는데 정작 제가 자주 찾는 짱공에는 안올려 놨네요.
살다 보면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분명 내가 겪은 일인데,
그래서 그 당시 혼란 스러움 이라던지, 공포 라던지 그런 일련의 감정들에 대한 장단고저를 고스란히 기억 하고 있는데,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 보니 '그 일이 정말 내게 일어난 일인가?' 라고 생각 하게 하는.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저에게 일어난,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제 주변에서 일어났던 실제 이야기 입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 이지만 (벌써 십여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정말로 제가 겪었던 이야기 이며,
혹여 그 당시 사람들이 보게 될까봐 여러가지의 가명 처리나 상황은 왜곡 시키는 면이 있을지 모르나 대부분 구체적으로 벌어 졌던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쓸 예정 입니다.
미리 말씀 드리자면 이 글은 '공포'나 '귀신'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귀신이라니요.
제 나이쯤 되면 누군가 '귀신을 봤어' 라는 말에 헛헛하고 공허한 웃음 밖에 나지 않습니다.
세상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실존하기 때문에 '내 눈으로 보지 못한' 신비로운 이야기 보다는 '내 눈으로 목격한 실존적인' 이야기만 신뢰 하게 됩니다.
그런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으로는 절대 설명할수 없는 기이한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 납니다.
이제 제가 하게될 이야기는 제가 겪은 사실에 기반하여 말씀 드릴 작정 입니다.
될수 있는대로 '허구' 라던지 '공상' 이라던지 아니면 글의 재미를 위한 피학적 거짓말은 최대한 거세하도록 하겠습니다.
삶의 또다른 테두리
저는 한때 밤무대에서 노래를 한적이 있습니다.
흔히 이야기 하는 '밤무대 싱어' 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지요.
어떻게 저런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생략 하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참으로 다이나믹 하지요.
어찌됐건 그런 직업을 가진적이 있습니다.
당시 8인조 였던 저희 팀은 계약을 맺었던 가게에서 '통보'를 받고 삼개월 가량 일없이 놀았던 적이 있고, 그 사이에 기타와 베이스가 팀을 떠나 새 멤버를 영입 했습니다.
새 멤버가 왔으니 연습을 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은후 우리는 우리가 가진 레파토리로 연습을 했고 그렇게 비즈니스가 돼서 떠난 곳은 춘천에 소재 하고 있던 나이트 클럽 이었습니다.
삼개월 정도 일없이 쉬다 보면 지방이니 뭐니에 대한 반박도 하기 어렵고,
나름 '공기 좋은 곳에 가서 쉰다고 생각 하지 뭐' 라는 일종의 자포자기 심정도 있었던 터라 군말 없이 춘천으로 향했습니다.
내려 간날이 4월 중순 이었는데, 춘천은 4월 임에도 불구 하고 꽤나 날이 매섭더군요.
새벽에 업장 마감을 하고 저희는 악기 세팅을 끝내고 나서 날이 밝아 저희 숙소로 짐을 옮겼습니다.
숙소는 가정 집을 주더군요.
강원대학교 근처에 위치 하고 있었습니다.
구조는 큰방 1, 중간방2(중간방에 딸린 다락방 1), 작은방 1 거실과 부엌 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숙소에 대한 첫 느낌이나 흔히 얘기하는 '스산한 기운' 이런건 모르겠습니다.
너무 피곤 했고, (잠을 못자고 밤새 악기 세팅을 했습니다)
빨리 눈을 붙이고 그날 저녁부터 무대에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일단 부리나케 개인 물품들만 정리를 하고 난후 김밥을 먹기 위해 멤버 들이 거실로 모였 습니다.
김밥을 먹다 우리 전팀이 지금 가게에서 왜 떠났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마스터 형님은 "글쎄, 그거야 나도 모르지" 라고 대답을 했는데 저희팀 막내 여자 싱어 아이가 그러 더군요.
"근데요, 제가 그 팀 인터넷 카페에 들어 봤는데요………………" 라고 말을 하더니 말 꼬리를 흐리 더군요.
"그래? 근데 왜 내렸데? 그 팀 꽤 잘하는 팀이잖아?" 라고 드럼 치는 형이 말을 하자 마지못한듯 여자 싱어 아이가 말 했습니다.
"그게………..숙소에서 자꾸 귀신이 나온다고……………그래서 더 이상 못있겠다고 올렸던데요"
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때 그 여자 싱어가 그런 말을 하자 저희 모두 참으로 어이 없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드럼 치는 형이 그러더군요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귀신이 밥 먹여 주냐?"
저 한마디에 저희는 모두 고개를 끄덕 거렸습니다.
돌이켜 생각 해보자면 정말 맞는 말이고 무서운 말이지요.
그날은 그냥 그렇게 지나 갔습니다.
석달 동안 일없이, 벌이없이 놀다보면 누구나 그러 하리라 생각 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 것 이라는걸 알수 없었고,
설령 그때 알았다고 한들 별다른 수가 있었을까요?
그렇게 춘천에서의 생활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 집' 에서 저희 멤버 8명에게 벌어졌던 미스터리한 이야기 입니다.
사실적으로 벌어 졌던 이야기 들만 나열할 예정이니 말초적 재미가 떨어 질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흥미를 위해서 이야기를 부풀리거나 말도 되지 않는 공상과학적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첫번째 멤버 기타
녀석을 처음 봤을 때 인상에 남는 것은 눈 이었습니다.
저보다 몇살 어렸기 때문에 저에게는 꼬박꼬박 형님, 형님' 이라는 칭호를 썻었는데 처음 연습을 하기 위해 녀석과 마주 쳤을때 눈빛이 안 잊혀 지더군요.
흔히 '신 내린 사람' 의 눈빛은 일반인들과 조금 다릅니다.
설명 하기 어렵지만 형용하기 어려운 눈빛이 납니다.
그런데 녀석의 눈빛이 그렇더군요.
하지만 말을 해보니 털털하고 나름 깍듯한 예의도 지니고 있어서 별 생각 없이 친해 졌던 녀석 입니다.
녀석은 레스폴을 다루는데 톤도 잘 뽑아 냈고 실력도 좋았습니다.
레스폴(깁슨) 이란 기타가 톤 뽑아 내기 은근히 까다롭고 어렵기 때문에 밤무대에서는 잘 쓰지 않기 마련인데 녀석은 묵직하고 정확하게 톤을 뽑아 내더 군요.
기타 실력도 손에 꼽을 정도로 잘 치던 녀석 이었구요
여튼,
눈빛은 금방 잊혀 졌습니다.
심성도 나쁘지 않은 것 같고, 실력도 곧잘 있고 일 끝나고 녀석과 닭발에 소주 마시는 낙으로 살았으니 눈 빛이 대수 겠습니까?
그런데 날이 갈수록 조금 이상한게,
녀석이 술만 먹으면 어디론가 사라 지는 겁니다.
둘이 마신후 "형 먼저 들어가 계세요 전 좀 어디 들렀다 갈게요" 라는 말과 함게 사라 지길래 처음엔 어디 피시방 들러서 게임이나 하다 오나 보다 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이나, 오후에 잠이 깨보면 어제 입고 있던 옷 그대로 잠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옷이 어딘가 긁혀서 올이 나가 있다거나, 등에 낙엽을 잔뜩 뭍혀 있는건 예사고 머리는 항상 헝클어져 있고 손등도 어디서 긁힌 자국과 피가 말라 붙어 있는 자국 같은게 보이 더군요.
그래서 제가 어느날 물어 봤습니다.
'너 술먹다 가는곳이 피씨방이 아니었냐?'
'도대체 어딜 갔다 오는 것이냐?' 등을 물어 봤는데 녀석은 묵묵부답으로 일관 하더군요.
이게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심해 지길래 마스터 형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 저희 팀 마스터 형님은 나이대가 꽤 많으셨습니다.
거의 아버지 뻘 이었지요.
요즘도 가끔 가요무대에 심심찮게 나오시더군요. ㅋㅋ
여튼,
마스터 형님도 알고 있었다고 말씀 하시더군요.
형님도 처음에 별거 아닌걸로 치부 했는데 점점 심해 지는 것 같다며, 지금 니가 제일 친하니 옆에서 잘 주시하라고 넌지시 얘기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기타를 불러 "앞으로 일과 끝나서 숙소에 들어오면 날 밝을 때 까지 기타 너는 외출 금지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녀석은 순순히 알겠다고 했고 저는 형님의 그 한마디로 일단락 되었다고 생각 했습니다.
문제는 그날 새벽에 일어 났지요.
보통 일 끝나고 새벽에 숙소로 들어 와서 야식을 시켜 먹는날이 많았는데 그날도 숙소에서 야식을 시켰습니다.
닭발, 닭똥집, 그외 먹거리와 쏘주 등등.
한참 갖은 농담과 함께 야식을 먹다가 마스터 형님이 그러시더군요
"기타 넌 먹고 방에 들어가서 빨리자 또 나가지 말고"
저는 그때 다른 멤버랑 낄낄거리며 농담을 하다 마스터 형님이 그 말씀을 하시길래 기타를 돌아 봤더니 녀석의 표정이 굉장히 이상하게 변해 있더군요.
뭐랄까.
넋이 나간 사람처럼 표정은 무표정 한데 눈 빛은 초점없이 묘하게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웃긴건 입에 닭발 양념을 다 묻힌채 닭발을 먹고 있더군요.
그냥 먹다가 입에 좀 묻은게 아니라 아무 생각없이 닭발을 입에 갔다 쑤셔 넣느라 뭍은듯 하게 입주위에 양념이 다 묻어 있었습니다.
갑자기 녀석이 섬뜻해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라 멤버들이 동시에 다 그렇게 느꼇는지 갑자기 싸한 침묵이 찾아 오면서 멤버 모두 일제히 녀석을 쳐다 봤습니다.
녀석은 아랑곳없이 양념을 입에 뭍히면서 입에 '우겨놓고' 있었구요.
갑자기 마스터 형님이 말씀 하시더군요.
"야 오늘 재 밖에 못나가게 해라. 재 어딘가 이상하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녀석이 벌떡 일어 나더니 현관 쪽으로 걸어 가는 겁니다.
그러자 드럼 치는 형님이 같이 일어나 녀석의 뒷덜미를 낚아 챘어요.
"야 임마 너 나가지 말라는 말 못들었어?"
그때 드럼 치는 형님이 한덩치 하셨습니다.
얼굴도 우락부락 하게 생겼고.
형님이 그렇게 녀석을 집 안쪽으로 밀쳐내자 녀석은 또 멍하게 드럼치는 형님을 바라보다 부엌쪽으로 가더군요,
저희는 멍하게 서로를 쳐다보며 '저 놈 뭐야?' 라는 생각을 할즈음 갑자기 부엌에서 와장창 소리가 나길래 저희 모두 일어나 부엌쪽으로 달려 가 봤습니다.
그러자 녀석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고 부엌 창문에 있던 쇠창살이 뜯겨 나가 있더군요.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그 쇠창살이 약한것도 아니고 (단단한 경질소재의 쇠 파이프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허무하게 짓이겨 놓을 성질의 것도 아니고………….
저희는 난리가 났죠.
닭발이고 나발이고 모두 신을 신고 녀석을 찾아 밖으로 뛰쳐 나갔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 졌더군요.
마스터 형님은 벙져 있고,
한시간여를 녀석을 찾아 동네를 헤매다 포기하고 들어 왔습니다.
녀석이 날이 밝아도 들어 오지 않아 저희는 난리가 난 상태 였는데.
오후가 되니 너털너털 녀석이 들어 오더군요.
제가 골목에 있다 녀석과 마주 쳤는데 꼴이 아주 가관도 아닌겁니다.
옷은 다 긁혀 있고 머리는 산발이고 온몸에 낙엽이 붙어 있고 낛은 나가 있고.
일단 마스터 형에게 '녀석이 돌아 왔으니 걱정 마시란' 전화를 남기고 녀석을 데리고 커피숍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된거냐? 어디갔다 온거냐? 정신이 있냐 없냐? 를 마구 따져 물었죠.
그랬더니 녀석이 긴 한숨을 내쉬고는 상담할 고민이 있다며 털어 놓은 말은 이랬습니다.
일과가 끝나고 술을 마실 때 마다 조금씩 절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처음에는 조금씩 조금씩 생각이 나다 점점 그 생각이 걷잡을수 없이 커질때쯤 기억이 딱 끊어 지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자기가 절 에 와 있다는 거죠.
거기가 무슨 절인지, 거기에 어떻게 왔는지 아무 기억도 없이요.
그렇게 절 바로 위쪽 숲속에서 잠들어 있다는 겁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낙엽더미 위에서 말이죠.
그래서 "어제 큰 형님이 나가지 말라고 소리 지른게 기억 안나냐?" 고 물어 보니 기억에 없답니다.
자기가 쇠창살을 뜯어 낸것도 기억을 못 하더군요.
그리곤 말 합니다.
"형님 저 춘천와서 꿈을 꾸는데 계속 같은 꿈을 반복 해서 꿔요" 라고 말을 합니다.
꿈속에 어딘가를 걷고 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자기가 바다 위를 걷고 있답니다.
하염없이 그 위를 걷다보면 수평선 부근인데 그 수평선에 알록달록한 의자가 일렬로 쭉 늘어서 있고 자기가 그 의자 있는 곳 까지 걸어 가면 갑자기 까마귀 들이 일제히 수천 마리가 하늘로 날아 간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의자에서 뭔가 빛이 솟구치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거기 빨간색 파란색 등의 알록달록한 끈이 매져 있는 방울이 놓여 있다고 하더군요.
그 방울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다 그 장면에서 항상 잠이 깨는데 그 꿈을 춘천 내려오는 날부터 계속 꾼다는 군요.
가뜩이나 저도 춘천 내려와서 이상한 꿈 때문에 시달리던 터라 찜찜하긴 했는데 그 친구의 꿈은 말만 들어도 너무 이상 하더군요.
뭔가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제가 녀석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이제 술을 먹지 말자. 너 술먹어서 이상해 지는 거야" 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녀석이 한동안 한숨만 푹푹 쉬면서 고민 하더니 기절초풍할 말을 하더군요.
"형님 제가 이상한 취급 받을까봐 차마 이얘기는 안할라 그랬는데요…….."
어휴 이거 간만에 뭔가 쓰려니 힘드네요.
조금 쉬고 다시 돌아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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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유시민 - 대화록의 진실1 "정문헌 의원의 착각 또는 거짓말"
연재를 시작하며처음에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소책자를 출판하려고 했지만 여러 고민 끝에 온라인에 연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날마다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고 몰랐던 사실이 드러나는 중이다. 책으로 내면 그런 것을 반영할 수 없다. 둘째, 조만간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노무현 대통령의 NLL 관련 입장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토대로 책이 나올 예정인 것으로 안다. 핵심 사실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쓴다면 내가 쓰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매주 화요일 내 홈페이지 ‘자유인의 서재’에 한 꼭지씩 글을 올릴 예정이다. 언제까지 연재할 지는 미리 정하지 않았다. 시리즈 제목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이며 꼭지마다 일련번호를 붙인다. 1번 첫 꼭지 제목은 ‘정문헌 의원의 착각 또는 거짓말’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할 것이다. 누구나 익명으로 글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으며 마음대로 글을 퍼가도 좋다. 그러나 심한 욕설이나 타인에 대한 증오를 조장하는 댓글은 삭제할 것임을 분명하게 밝혀둔다. 욕설이 정 하고 싶으면 트위터나 다른 게시판을 활용하면 되니까. 개인 홈페이지에 쓰레기를 투척하는 행위까지 표현의 자유라고 인정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나는 글 쓰는 일로 먹고 사는 시민으로서 이 글을 쓴다. 정계은퇴 했다더니 왜 정치적 발언을 하느냐고 묻지 마시라. 정치 참여는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한 권리이며 정치 현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말하는 것은 시민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정치 참여 방법이다. 나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그만두었을 뿐 시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헌법적 권리를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문필업에 종사하는 지식인으로서 내게 주어진 언론, 출판,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적극 행사하면서 남은 인생을 살 작정이다. 다시 직업정치를 하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다.나는 나를 위해서 내 생각을 쓴다.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서, 또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이나 집권 새누리당 정치인들, 조중동을 비롯한 친정부 언론사의 논객들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라는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어느 대학에서 대입 논술시험 문제를 이렇게 냈다고 하자. “대화록에 드러난 남북 정상의 기본적인 견해 차이와 합의 내용, 그리고 그것이 NLL 등 기존의 군사경계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하시오.” 박근혜 대통령, 정문헌 의원, 김무성 의원, 서상기 의원 등 정부여당 핵심 관계자들과 조중동의 논객들이 지금까지 주장한 그대로 답을 썼다고 하자. 누가 논술 채점을 맡더라도 낙제점을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유는 점잖게 말하자면 ‘텍스트 자체에 대한 오독(誤讀)’, ‘컨텍스트(context, 맥락)에 대한 자의적 해석’, ‘논점 일탈’ 등이 될 것이다. 품위를 버리고 말하면 ‘독해문맹(讀解文盲), 텍스트를 읽고 적절하게 해석하는 지적 능력이 아예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사람들이 국가를 운영하고 여론을 좌우하고 있으니 상식을 가진 선량한 시민으로서 화가 나고 속이 상한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속상한 사람들끼리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어서!문서를 열람해도 싸움은 계속된다10명의 여야 국회의원들이 성남시에 있는 국가기록원의 남북정상회담 관련 대통령지정기록물 열람 작업에 들어갔다. 법률에 의해 최소 15년이 지나야 공개할 수 있도록 해둔 노무현 대통령 지정기록물의 봉인이 갓 5년이 지나 풀리게 된 것이다. 국회는 관련 법률이 요구하는 의결절차를 거쳐 지정기록물을 열람할 권한이 있는 만큼 법률적인 문제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일인지는 토론해 볼 가치가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여야 열람위원들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하여, 특히 NLL과 관련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남겨둔 모든 기록물을 다 열람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서는 2007년 10월 3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약 4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인데, 이것은 국정원이 이미 공개해 버렸다. 열람위원들은 이 대화록과 국가기록원이 보관하고 있는 대화록이 일치하는지 여부도 살펴볼 예정이다. 그런데 7월 17일 열람위원들은 대화록 원본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어쨌든 찾기는 찾을 것이다. 만약 참여정부 청와대가 통째로 넘겨준 ‘e지원 시스템’을 국가기록원이 토막 쳐 보관하는 바람에 검색이 잘 되지 않는 게 원인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이 ‘e지원 시스템’을 복사해 봉하마을 사저에 가지고 갔다가 돌려주었던 하드디스크라도 뒤져 보아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국가기록원 관계자들이 ‘팜스’라는 자기네 자료 보관 시스템뿐만 아니라 그 하드디스크에 든 문서까지 손을 댄 경우가 아니라면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열람 후에 여야가 합의한 내용만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이용해 공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합의가 지켜질 가능성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당을 합칠 가능성과 비슷하다. 여야 열람위원들 가운데 누구라도, 여야합의는 없었지만 국익과 관련하여 너무나 중요한 사실이라고 주장하면서, 임의로 발췌한 내용을 국회 의정단상을 활용해 공개적으로 발설해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10개월 동안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둘러싸고 상식을 짓밟는 폭로전과 비방전이 벌어지는 장면을 이미 싫도록 보았다. 그 싸움은 자료 열람이 끝난 후에도 계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최초의 방화범, 정문헌최소 15년은 유지되어야 할 대통령 지정기록물의 봉인을 불과 5년 만에 해제하는 오늘의 사태는 ‘방화로 시작된 대형 산불’이다. 작정하고 불씨를 던진 방화범은 새누리당 정문헌 국회의원이었다. 그가 여기 저기 불을 지르고 다니자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불을 질렀다. 기름통을 들고 다닌 사람도 있었다. 정문헌 의원이 최초로 불을 낸 것은 2012년 10월 8일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국정감사장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소위 ‘남북정상회담 NLL포기 발언’을 ‘폭로’한 것이다.그런데 정문헌 의원은 단순히 ‘노무현 대통령이 했다고 그가 주장한 발언’의 내용만을 ‘폭로’한 것이 아니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국가기록원에 봉인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유출되었다는 사실도 함께 ‘폭로’한 셈이었다. 아울러 대화록을 열람할 합법적 권한이 없는 자신이 대화록을 열람했다는 사실까지 함께 ‘폭로’했다. 국회의원 면책특권 덕분에 처벌받을 염려는 없었지만,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공개자백’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정문헌 의원의 ‘폭로’는 ‘대화록의 진실’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시사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음미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여기에서는 국회 속기록이 아니라 그날 <연합뉴스> 기사를 인용한다. 정치부 기자들은 후각이 남달리 예민하다. 전체 발언 가운데 정쟁을 부추기고 여론의 동요를 일으키는 데 위력이 큰 것을 정말 잘 골라낸다. 정문헌 의원의 발언은 다음과 같은 정치부 기자의 ‘발췌본’으로 만들어져 국민에게 전해졌다.지난 2007년 10월3일 오후 3시 백화원초대소에서 남북정상은 단독회담을 가졌다. 당시 회담내용은 녹음됐고 북한 통일전선부는 녹취된 대화록이 비밀 합의 사항이라며 우리측 비선라인과 공유했다. 그 대화록은 폐기 지시에도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에 보관돼 있다. 대화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NLL(북방한계선)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며 구두 약속을 해줬다. 이는 북한 국방위 정책국 대변인이 지난달 29일 ‘북방한계선 존중을 전제로 10ㆍ4 선언에서 합의된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박근혜의 떠벌임이나 북방한계선 고수 주장은 남북 공동합의의 경위와 내용을 모르는 무지의 표현’이라고 말한 10ㆍ4 공동선언의 경위와 내용이다. 대화록에는 북핵문제와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이 ‘내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북한이 핵보유를 하려는 것은 정당한 조치라는 논리로 북한 대변인 노릇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북한이 나 좀 도와 달라’고 말했다. 또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한반도 통일 문제 등에 대한 김정일의 발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동의를 표하는 내용뿐 아니라 대규모 경제지원을 약속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이 발언은 결국 9개월 후인 2013년 6월, 비밀정보를 취득하고 관리하는 일을 본업으로 하는 국가정보원이, 남재준 원장의 말에 따르면 국정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비밀기록인 대화록을 공개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비밀을 보호 관리하는 게 본업인 국가정보기관이 스스로 비밀기록을 공개한, 세계 정보기관 역사에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희귀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법률과 상식보다 ‘국정원의 명예’를 중시한 남재준 원장의 ‘결단’ 덕분에 누구나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열람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리고 그 결과 정문헌 의원의 ‘최초 폭로’ 내용 가운데 어떤 것이 사실이며 어떤 것이 사실이 아닌지 알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문헌 의원의 ‘최초 폭로’는 대부분 허위였으며 일부는 왜곡이었다. 사실 비슷한 것이 조금 있기는 했다.무엇보다 남북 정상이 ‘2007년‘10월 3일 오후 3시 단독회담’을 한 사실 자체가 없다. 오전 9시 34분부터 11시 45분까지, 오후 2시 30분부터 4시 25분까지, 두 정상은 양측 배석자를 두고 공식 정상회담을 했다. 이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북의 통일전선부가 만들어 우리 측 비선라인과 공유한 비밀 녹취록’이란 것도 아예 존재할 수가 없다. 공식 정상회담을 우리 측이 녹음해서 나중에 대화록을 만들었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미국의 땅따먹기’,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 ‘북한 핵보유 옹호’의 대가로 ‘북한이 도와 달라’고 했다는 것도 모두 사실이 아니다. ‘주한미군 철수나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한 김정일의 발언에 동의한’ 일도 없었다. 이 모두가 허위였다.대화록 전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과 비슷한 것이 두어 군데 있기는 했다.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는 것은 “서해의 안보군사지도 위에 평화경제 지도를 덮어씌우자” 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취지를 대충이라도 비슷하게 반영한 표현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북한이 핵보유를 하려는 것은 정당한 조치라는 논리로 북한 대변인 노릇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라는 말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어 6자회담에서 핵문제를 풀어나가려는 북측 입장을 가지고 미국과 싸웠다”는 말과 “외국 정상들과 만날 때 북 이야기가 나오면 대변인 변호인 역할을 했다”며 회담 분위기를 풀어나간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앞뒤를 잘라내 짜깁기한 것이다. 이런 것을 ‘작가들의 전문용어’로는 ‘거두절미(去頭截尾)’ 또는 ‘왜곡(歪曲)’이라고 한다.정문헌 의원의 ‘최초 폭로’에는 수많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왜 사실이 아닌 것을 ‘폭로’했을까? 만약 일부러 지어내지 않았다면 무엇인가 ‘문헌’을 보기는 보았을 텐데, 도대체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발췌 요약한 대화록일까, 아니면 대화록 전문이었을까? 누가 그에게 그것을 주었을까? 언제 어떤 경위로 본 것일까? 다른 누가 또 그것을 보았을까? 왜 사실이 아니면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말할 정도로 정문헌 의원은 그 ‘문헌’의 진실성을 믿었을까? 명탐정이 아니라도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떠올리게 되는 의문이다. ‘확신범’ 정문헌, 그는 누구인가?비록 내용의 대부분이 허위로 판명나긴 했지만, 국회의원 정문헌은 적어도 주관적으로는 ‘진정성’을 가지고 ‘국가안보와 국익을 위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폭로’했다. 그것은 ‘정치적 확신’에 입각한 행위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의 경력과 배경, 정치활동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렇게 판단할 만한 근거가 충분하다.국회의원 정문헌의 지역구는 강원도 속초시와 고성군, 양양군이다. ‘공식적으로’ 정문헌 의원은 1966년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아직 40대인 젊은 정치인이다. 그의 부친이며 새누리당 상임고문인 정재철도 같은 선거구 국회의원이었다. 사무직원과 부학장 등 부산여대에 재직했던 정재철은 박정희 장군이 5.16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직후 보건사회부 공보관으로 처음 공직에 진출했다. 대단한 친화력과 업무능력을 발휘해 출세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총애 덕분이었다는 말도 있다. 그게 사실인지 나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그런 말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정재철은 전매청차장과 재무부기획관리실장, 산업은행 부총재 등 여러 직책을 거친 다음 유신정권 막바지에는 한일은행장이 되었다. 그런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10.26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전두환 장군이 군사반란과 광주학살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다음 예편해 유신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헌법을 개정해 다시 대통령에 취임했다. 소위 제5공화국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새로운 집권당 민주정의당을 조직했을 때 정재철은 정계에 입문했다. 네 번 국회의원을 하면서 국회재무위원장과 예결위원장을 지냈다. 정재철은 2007년 서울 신라호텔에서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전두환을 “민의를 수렴하며 정도(正道)를 걸은 대통령”이라고 찬양해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정문헌 의원은 2003년 정치에 입문하면서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2004년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엄청난 탄핵역풍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속초 고성 양양 유권자들은 정문헌을 선택했다. 2008년 재선에 실패한 후 2009년부터 2년간 이명박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을 지냈으며 2012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런데 정문헌 의원의 성장과정에는 무척 특이한 면이 있다. 강원도 고성군은 공식 출생지일 뿐이다. 그가 태어난 1966년, 부친 정재철은 서울에서 잘 나가는 공직자였기 때문에 그가 실제 고성군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서울에서 다녔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 한국에서 대학을 가지 않고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시카고대학교에서 정책학 석사를 받았다. 그런 다음 한국에 돌아와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보통은 대학을 한국에서 마친 뒤 석사와 박사 공부를 하러 미국으로 가는데, 정문헌 의원은 정확히 반대경로를 걸은 것이다. 군복무는 ‘6개월 방위’를 했으며 사유는 ‘독자(獨子)’라는 것이었다. 그는 박사 학위를 딴 후 잠깐 동안 강원대학교와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강의를 했으며 고려대학교 평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이름을 올렸다가 곧바로 정계에 데뷔했다. 두 번 국회의원을 하면서 새누리당의 대북정책과 안보정책 관련 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원래는 친이명박 성향이었지만 부친의 권유로 친박계로 전향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부자지간의 일이니 사실인지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어떤가? 이 정도면 ‘진정성’을 가지고 ‘국익을 위해서’ 소위 ‘NLL포기 발언’을 ‘폭로’할만한 인물이 아닌가. 그는 ‘NLL전선(戰線)의 돌격대장’이며 ‘모사(謀士)’였다. 이 싸움은 ‘박근혜 대통령후보’나 ‘참모’들이 정밀하게 기획했다고 보기 어렵다. 박근혜 후보,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 권영세 종합상황실장 등 박근혜 캠프의 주요 인사들은 설계도 없는 공사현장에 끌려든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을 끌어들인 인물은 시끄러운 싸움이 벌어진 무대 위와 아래를 부지런히 오가면서 불을 지르고 다닌 정문헌 의원이었다. 그는 오로지 ‘국가의 안위와 국익만을 생각하면서’ 불법행위로 처벌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가 사실이라고 믿은 ‘NLL포기 발언의 진실’을 폭로했다. 그는 누군가의 하수인이 아니라 스스로 ‘거사’를 한 ‘확신범’이다. 나는 그렇게 판단한다. 정문헌 의원은 기밀누설 범죄를 저질렀다2013년 6월 28일 <서울신문>이 정문헌 의원 인터뷰를 냈다. 여기에서 정문헌 의원은 대화록을 보고 발설한 경위를 주섬주섬 이야기했다. “10·4 정상회담 1주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상회담록을 가져오라고 국정원에 지시했다.” 정문헌 의원의 말이 옳다면 이때 이명박 대통령은 대화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된다. 그 사실을 누가 말해 주었을까? 당시의 김성호 국정원장이었거나 따로 청와대에 줄을 댄 국정원 간부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때는 정문헌 의원이 통일비서관이 되기 전이다. 그도 직접 본 게 아니라 누구에겐가 들은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이어지는 발언을 보면 정문헌 의원의 기억력은 그리 믿을 만한 수준이 아닌 것 같다. “이때 NLL발언 등이 담긴 발췌록 보고서가 올라갔다. 작성 시점은 대화록이 2급 비밀 공공기록물로 낮춰진 시점을 고려하면 2009년인 것 같다. 내용을 보고 노한 이 대통령이 원본을 요청했고 보고에 앞서 비서관 신분으로 일독했다.”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10.4공동선언 1주년이면 2008년이어야 한다. 2009년이 아니다. 기자가 이 중요한 기사를 잘못 작성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정문헌 의원이 자기가 대화록을 열람한 경위에 대해 분명하게 말한 것은 다음 대목이다. “이후 2010년에도 이 대통령이 발췌록 보고서를 재요청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용보고를 들어 숙지했다.” 결국 정문헌 의원이 본 것은 발췌본이었다는 이야기다. 그가 본 발췌본이 지난 6월 국정원이 공개한 바로 그 발췌본인지는 알 수 없다. 제3, 제4의 다른 발췌본이 있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는 비밀기록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대화록 전문과 발췌본은 1급비밀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비서관은 1급비밀을 열람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정문헌 비서관은 발췌본을 열람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1급비밀을 직접 열람한 게 아니라 취급인가도 없는 비서관을 통해 보고받은 셈이니, 이것도 ‘국격(國格)’ 추락이라면 추락이라 하겠다. 소위 대화록 발췌본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었다는 문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발췌록을 열람한 것이야, 대통령을 잘 모시려고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가자. 그러나 그것을 누설한 행위는 중대 범죄여서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정문헌 의원은 <서울신문> 기자에게 자신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술술 풀어놓았다. “김무성 의원이 지난해 10월 선대위 총괄본부장이 된 직후 전화를 걸어와 만난 자리에서 내가 아는 대로 다 구두보고를 드렸다. 김 본부장은 부산 유세 전에 노무현 대통령의 NLL관련 발언을 유세에 써도 법적 문제가 없느냐고 확인을 요청해오기도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정문헌 의원은 청와대 통일비서관 시절에 본 비밀기록 내용을 박근혜 후보 총괄선대본부장 김무성에게 ‘아는 대로 구두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2012년 10월에는 이것이 심각한 기밀누설 범죄였음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으로 덮을 수 없는 행위였다.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이 아는 것을 박근혜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이었던 권영세(현재 주중대사)가 몰랐을 리 없다. 김무성과 권영세의 범죄행위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게다가 김무성은 그 내용을 유세에서 말해도 되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정문헌 의원이 뭐라고 대답해 주었는지는 모르지만,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2012년 12월 14일 부산 서면 유세에서 박근혜 후보도 듣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을 줄줄 읽었다. 그가 읽은 내용은 발췌본이 아니라 대화록 전문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 김무성은 어디에서 대화록 전문을 입수했을까? 박근혜 후보도 대선 기간에 대화록을 읽어보지 않았을까? 이런 것을 전문용어로는 ‘합리적 의심’이라고 한다. 언젠가 어떤 경로로든 밝혀지고 말 것이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모든 것을 보았으리라고 추정한다. 일단 추정이다. ‘깨알 리더십’을 자랑하는 박근혜 대통령 아닌가? 경험칙에 비추어 그렇게 추정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정문헌 의원에게 행운이 있기를!다시 정문헌 의원에게로 돌아가자. 그는 자기가 ‘폭로’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면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말했다. 전문이 공개된 후에는 해설집이라고 이름 붙인 소책자도 냈다. 그런데 열심히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작년 10월 8일 국정감사장에서 그가 ‘최초 폭로’한 내용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거나 원래 취지와 다르게 왜곡한 것으로 밝혀졌다. 왜곡한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2007년 10월 3일 오후 3시 두 정상이 단독회담을 했고 북의 통일전선부가 녹취록을 만들어 남의 비선라인과 공유했다”는 주장 그 자체가 허무맹랑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제 ‘정치생명을 걸고’ 책임을 져야 마땅한 상황이 되었다.그렇다고 해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정계은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뽑아준 속초 고성 양양 유권자들이 있는데 자기 마음대로 의원직을 사퇴하는 게 옳은 일인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사과는 해야 한다. 국정감사장에서 한 ‘최초 폭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허위사실을 유포한 소위 해설집 소책자도 수거하거나 정정해야 한다. 왜곡된 발췌본과 흐릿한 기억력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면 경위를 소상히 밝혀야 한다. 진실한 마음으로 사과하면서 앞으로는 더 신중하고 책임성 있게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하면 된다. 만약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고 보수표심을 결집할 목적으로 알면서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착각 때문에 본의 아니게 허위 폭로를 한 것이라면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무리 의지가 굳센 ‘확신범’이라도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는 자세는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국정감사장에서의 발언은 면책특권의 보호를 받는다고 해도 박근혜 후보 총괄선대본부장 김무성에게 ‘아는 대로 구두 보고’했다고 밝힌 것은 면책될 수 없는 범죄행위를 ‘자백’한 것이다. 그는 너무 많은 사람에게 왜곡되거나 허위인 대화록 내용을 발설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 안다. 적어도 주관적으로는 사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애국심 때문에 저지른 범죄라는 것을! 그것은 판사가 형량을 정할 때 참고해 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이 기소할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형법상의 비밀누설죄 범죄구성요건을 충족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야 할 것이다.정문헌 의원님, 행운을 빕니다.2013년 7월 23일자유인의 서재에서유시민http://www.usimin.net/?p=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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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다] 청년취업아카데미사업
2013년도 청년취업아카데미 사업 (국비100%) 교육진행 확정
* MOU체결대학 일부학점 인정*
“한국클라우드 서비스협회”와 공동 주관으로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관리공단이 주관인
“청년취업 아카데미”사업이 확정 되었습니다.
◎ 사업 목적 :
산업계(기업,사업주단체) 주도로 학교 졸업예정자(교육과정 수료 후 6개월이내 취업가능한자 포함/
14년02월 졸업예정자 포함) 및 졸업자(만 29세까지, 군필자는 만 31세까지)를 대상으로
특화된 취업역량 향상 프로그램을 지원, 실전형 인재로 양성하여 취업으로 연계하는 사업입니다.
◎ 교육과목 :
1.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엔지니어 과정 : MS엔지니어양성과정 - 1회 30명
2. 클라우드 시스템 보안 엔지니어 과정 : 정보보안 엔지니어 양성과정 - 1회 30명
3. 빅데이터 기반 하이브리드 웹과 앱 프로그래밍 과정 : 자바개발자 양성과정 - 2회 60명
◎ 교육시간 : 총 360시간 1일 6시간 * 60일(3개월)교육입니다.
◎ 협력대학 : 한신대학교, 대진대학교, 우송대학교, 산업기술대학교, 강원대학교
(상기대학 졸업예정자는 학교쪽에서 일부학점 인정이 가능하도록 조치함)
◎ 개강예정일 : 2013년 6월 말일 (여름방학과 동시개강)
◎ 특전 : 각 기수별 성적우수자 선발하여 테블릿PC - 각각 2대 지급
각 기수별 워크샾 실시
◎ 선착순마감 예정이오니 예약을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 세부 운영계획
가. 총괄표 (연수기간 : 대학교 여름방학기간 동안 실시)
순번
분야
연수내용
연수
인원
지도 강사
연수기간(예정)
연수
시간
교육장소
1
MS취업반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엔지니어 과정
30명
백승찬,김성대,김정우
2013.6월말 2013.9.20
360 시간
솔데스크
2
자바취업반
빅데이터 기반 하이브리드
웹과 앱 프로그래밍 과정 1차
30명
설진욱,오정원,이영희,윤대명,하만석
2013.6월말 2013.9.20
360 시간
한신대학교
자바취업반
빅데이터 기반 하이브리드
웹과 앱 프로그래밍 과정 2차
30명
설진욱,오정원,이영희,윤대명,하만석
2013.6월말 2013.9.20
360 시간
주) 네모
커머스 교육센터
3
정보보안
취업반
클라우드 시스템 보안 엔지니어과정
30명
김석 ,박찬주, 장성균,
임종혁
2013.6월말 2013.9.20
360 시간
산업기술
대학교
합계
120명
※상기 교육의 강사 및 학교 상황에 따라 변경이 가능합니다.
※요청하시는분들에게는 상세 교육자료를 보내드립니다.
◈전화문의 : 02.6901.7068 [무료상담가능]
◈홈페이지 : http://www.itsoldesk.info
◈네이트온&이메일 : aquarius12@nate.com
◈수강혜택 : 청/ 장년층 희망찾기사업, 취업성공패키지, 내일배움카드(미취업자계좌제, 재직자계좌제) 및 재직자환급, 학생할인, 무료재수강, 1과목무료지원, 국제자격증시험자료 덤프지원, 취업지원 등
◈시험센터운영 : VUE국제공인시험센터, 노동부지정 고용보험 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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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독립투사 후손과 친일파 후손
친일파 후손특징: 학계, 재계, 관료, 문화예술계 인사가 많으며 정계 진출자는 적음 (친일경력 부담 때문일 것으로 짐작) 정계진출자 이회창(전 한나라당), 정두언(한나라당),박근혜(한나라당),김무성(한나라당) 등등 민영휘(조선왕족/ 조선병합지지/ 자작/ 매국공채 5만원/ 부정축재- 조선최대갑부 반열)손 민병도 : 제일은행장, 한국은행총재 지냄증손 민웅기 : 남이섬 소유 증손 민인기 : (대치동) 휘문고교 이사장(현/ 교정에 민영휘 동상 세워져 있음)현손 민경현 : (인사동) 풍문여고 이사장(현) 이완용을사오적. 한일합병 공로로 백작작위 및 은사금 15만원 받음.손자 이병길(귀족작위 및 재산 승계), 증손 이윤형(광복후 숨어지내다 60년대말 대한사격연맹 사무국장 역임, 17년간 캐나다 생활후 80년대말 귀국, 이후 땅찾기 소송 승소로 수십억원 챙김) 손자 이병주(62년 일본 밀항, 일본정부가 귀화시키고 환대), 증손 이석형(79년 이완용 부부 묘를 파내어 화장) 이병도: 실증사학으로 유명한 친일사학자. 이완용의 친척으로 알려짐. 화장 후 관 뚜껑 태워버림.송병준을사오적. 일진회 총재. 한일합병 공로로 백작작위 받음. 아들 송종헌(작위 및 재산 승계, 중추원 참의, 조선농업주식회사 설립), 손자 송재구(홋카이도에서 조선목장 경영) 증손 송돈호(역삼동 건설회사 운영, 90년대 중반 이후 송병준 명의 토지 상속소송 주도. 사기 혐의로 07년 4월 구속. 최근 친일재산 특별법 위헌소송 냈으나 기각)이근택을사오적. 형 이근호, 동생 이근상 등 총 6명의 일제 귀족을 배출한 대표적 친일집안. 아들 이창훈(자작작위 승계), 증손자 이상우(전 공주대 총장), 이춘우(공주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2005년까지 선대의 친일재산을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총 9건의 소송.민영휘한일합병 공로로 자작작위 받음. 관직자리에서 모은 재물로 일제시대 최대 갑부가 됨. 휘문고교 상속. 증손 민덕기(풍문여고 설립), 민인기(휘문의숙 이사장), 고손 민경현(풍문학원 이사장) 손자 민병도(제일은행장, 한국은행 총재), 증손 민웅기(남이섬 소유)이병무정미칠적. 해산된 군대가 일으킨 의병 진압. 한일합병 공로로 자작작위 수여받음. 아들 이홍묵(자작작위 승계), 증손 이진(12대 국회의원, 현 웅진그룹 환경경영담당 부회장)민병석경술국적. 한일합병 공로로 자작작위 받음. 총독부 중추원 고문 다섯 차례 역임. 아들 민홍기(자작작위 승계), 민복기(일제시대 사법부 근무, 5~6대 대법원장) 손자 민경성(일본계 기업체 사장), 민경택(서울지법 판사, 서울지검 검사), 민경삼(기업인)박제순을사오적. 한일합병 공로로 자작작위 받음. 중추원 고문 역임. 아들 박부양(중추원 서기관), 손자 박승유(성악가, 강원대 음대 교수)이해승조선왕족 종친. 한일합병 공로로 후작작위 및 매국공채 16만2천원 받음. 손자 이우영(그랜드 힐튼 서울 호텔 회장) 2007년 경기도 포천 일대 시가 300억원대 토지 국가 귀속 결정김연수호남지방 대지주. 친일 기업인. 중추원 참의. 61년 전경련 전신인 전경협 회장 역임. 장남 김상준(삼양염업 명예회장), 차남 김상협(16대 국무총리), 3남 김상홍(삼양사 명예회장), 5남 김상하(삼양사 회장)최남선3.1 운동 후 변절. 어용단체 조선사편수회 참여. 중추원 참의. 장남 최한웅(서울대 의대 소아감염학 권위자), 손자 최국주(피부과 전문의), 최득주(경기대 경영학부 교수)문명기제지업, 수산업, 금광개발로 부 축적. 태평양전쟁 당시 본인소유 광산을 일제에 기부. 중추원 참의. 맏손자 문태준(7~10대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역임)최준집강릉 갑부. 중추원 참의 역임. 37년 중일전쟁 발발하자 회갑연 취소후 국방헌금 1000원 납부. 아들 최돈웅(8, 14, 16대 국회의원. 02년 대선 당시 이회창후보 불법선거자금 연루돼 징역1년 선고)현준호호남의 대표적 친일 부호. 중추원 참의 임명 후 변절. 손자 현양래(현우실업 대표) 아들 현영원(현대상선 회장), 손녀 현정은(현대그룹 회장)박정희만주군관학교 졸업, 만주군 장교로 근무. 창씨명: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친일경력 논란. 5~9대 대통령 장녀 박근혜(전 한나라당 대표), 차녀 박근령(육영재단 이사장)홍진기일제시대 판사로 근무. 창씨명: 德山進一. 법무부, 내무부 장관 역임. 전 중앙일보사 회장. 중추원 참의를 역임한 김신석의 사위 장녀 홍라희(이건희 부인, 리움 관장), 장남 홍석현(전 중앙일보 회장, 전 주미대사), 차남 홍석조(전 광주고검장)방응모일어 상용운동 주창. 친일잡지 <조광> 발행인.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 9대 조선일보 사주. 손자 방우영, 방일영(전 조선일보 회장), 증손자 방상훈(조선일보 사장)김성수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 2대 부통령. 고려대학교 설립. 동아일보 창간. 손자 김병관(전 동아일보 회장)이병도중추원 산하의 조선사편수회에서 근무한 친일 사학자. 한국 고대사 연구의 권위자. 일제하 식민사관 정립. 손자 이장무(서울대학교 총장), 이건무(문화재청장)백붕제조선총독부 관리 출신 아들 백낙환(도산 안창호 기념사업회 회장, 인제학원 이사장)윤치영침략전쟁 찬양 공로로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 받음. 대표적인 친일파 집안. 안중근 의사 숭모회 초대 이사장 장남 윤인선(국회 사무처 서기관), 손자 윤인구(KBS 아나운서)박희도목사.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으로 2년 복역. 일제말 친일 변절. 아들 연대 세브란스 병원 의료행정직 근무 중 변절자 후손 비난에 못이겨 도미이갑성민족대표 33인. 이후 일제의 밀정으로 일했다는 증언 다수. 창씨개명. 아들 이용희(전 국토통일원 장관), 손자 이재현(서울 성수동에서 물류회사 운영) 독립운동가 후손독립유공자 유족 6283명 가운데 직업이 없는 사람이 60%를 넘고, 봉급생활자는 10% 남짓이며, 중졸 이하 학력이 55% 이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비참하게 산다. 일부는 친일파 후손에 밀려 외국으로 피했다.특징: 대다수가 가난을 대물림하거나 국내에 적응 못하고 해외로 이주. 사회주의 계열은 독립운동가로 인정조차 받지 못함. 봉급생활자 중에 경비원 다수. 안중근독립운동 최고명가. 40명 넘게 독립운동에 투신, 11명 서훈 받음. 부인 김아려(중국 상하이에서 별세), 맏아들 안우생(안분도. 여섯살 때 일제 밀정에게 독살) 사촌동생 안경근(4.19혁명후 '민주구국동지회' 설립, 5.16 군사정권 하에 7년간 투옥) 조카 안민생(평화통일 운동에 매진 중 5.16 군사정권 하에 10년간 징역), 안진생(80년 전두환정권 하에 강제해직 당한 후 8년간 투병 뒤 별세) 이후 후손들 해외로 이주: 손자 안웅호(미국 심장병 전문의), 손녀 안선호(LA), 안연호(시애틀), 외손녀 황은주(미국에서 살다가 귀국), 황은실(미국), 동생 안공근 가족(북한), 조카 안연생 가족(파나마), 사촌 안봉근 가족(독일)안창호임시정부 지도자. 흥사단 창립한 민족계몽운동가 자녀 모두 도미 후 성공했으나 한국과 왕래 전무: 장남 안필립(헐리웃 영화배우), 차남 안필선(하워드 휴즈 항공 부사장), 장녀 안수산(미해군 최초 여성 포격장교, 미국 안전보장국 비밀정보 분석가), 차녀 안수라(미국), 3남 안필영(미국) 김구사회적으로 대접받은 유일한 독립운동가 집안 아들 김인(안중근 조카 안미생과 결혼, 광복직전 요절) 아들 김신(공군참모총장, 교통부장관 역임) 손자 김진(참여정부 주택공사 사장,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 김양(상하이 총영사, 국가보훈처장), 김휘(광고대행사 에에블리 대표), 김미(김호연 빙그레 회장 부인)신채호1912년 망명 후 지금까지 국적 회복되지 못함. 호적이 없다는 이유로 땅과 집 소유권도 인정받지 못함. 아들 신수범(일제하 은행 근무, 광복 후 실직. 신채호가 이승만 정책에 반대하자 자유당 정권에게 신변위협. 넝마주이, 부두노동자로 생활하다 이승만 하야 후 은행 복직) 며느리 이덕남曰 "독립을 위해 목숨 바쳤던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이 땅에서 자부심을 갖는 것은 사치다"차리석임시정부 국무위원 비서장 역임 아들 차영조(백범 암살 후 임시정부 관계자 가족 모두 숨어지냄. 19세까지 성을 申씨로 바꾼 채 생활. 아버지가 귀국하지 못하고 별세하자 광복 후 동냥살이. 초등학교 졸업 앞두고 어머니 중풍으로 쓰러지자 학업 중단)장병준호남 갑부 출신. 임시정부 외무장관 역임. 4형제 모두 독립운동. 장남 장경식(제대로 교육받지 못함), 손자 장하정(경기도 용인 시골마을에서 양자로 입적한 스리랑카 노동자 오산다의 보살핌을 받으며 말년을 보내는 중. 오산다曰 "스리랑카도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기 때문인지 한국에 와서 독립운동 자손이 어렵게 사는 모습을 보니 안쓰러웠다") 조카 장재식(전 산업자원부 장관), 손자 장하준(캠브리지대 교수), 장하석(런던대 교수) 조카 장충식(한국후지필름 사장), 손자 장하성(고려대 교수), 손녀 장하진(전 여성가족부 장관)김성숙조선의열단 선전부장, 조선의용대 정치부장, 임시정부 내무차장, 국무위원 역임. 이승만 독재 반대로 궁핍한 생활. 아들 김정봉(일제 때 징용, 귀국 후 정신이상으로 경제활동 중단), 손자 김덕천(아내 위암, 본인 구강암 진단받았으나 독립유공자 혜택없어 치료 못받음)이원근1919년 4대문 사건 주동자로 옥고 치름 손자 이승봉(경비원으로 근무)방한민조선총독 암살계획으로 옥고 치름 손자 방병건(최근까지 경비원으로 근무)홍병기민족대표 33인. 천도교 장로, 독립선언서 서명 손자 홍재웅(노모 치매와 중풍으로 사망, 본인 사업실패 후 당뇨와 치매 환자, 아내 동사무소 공공근로. 보상금 혜택대상 제외)이승훈민족대표 33인. 3.1운동 당시 기독교 측 수장 5대손 이기대(지하셋방 살며 포장마차 운영. 보상금 혜택 전무)유여대민족대표 33인. 목사. 1919년 의주에서 독립선언문 배포하는 등 독립운동 헌신하다 1937년 작고. 후손 유창근(부친 사망후 의료지원 혜택 중단. 노모 병원비 부담 위해 시간제 아르바이트)신흥식민족대표 33인. 신사참배 거부로 옥고 치르다 1937년 사망. 손자 신덕수(교육 못받고 자라 막노동판 전전. 본인 허리와 부인 뇌수두증 치료하기에 보상금 턱없이 부족)박준승민족대표 33인. 천도교 지도자. 손자 박기수(10년 전 뇌경색으로 와병. 부인 고혈압에도 불구하고 남편 대신해 남의 논농사 도움), 증손자 박정민(미국산 쇠고기 수입 여파로 키우던 소 40마리 헐값에 매각)나인협민족대표 33인. 천도교 교사. 손자 나일선(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 자수성가), 증손자 나명재(평택시 개인병원)
면죄자작성일 2013-01-25추천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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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펌] 한국의 토론문화를 말한다.
‘한국의 토론문화’ 를 토론한다 △ ‘원탁토론아카데미’ 대표(강원대 교수), 허경호 국제스피치토론연구소장(경희대 교수) 강치원 오지선다 ‘고르기’ 익숙 질문 꺼리는 사회허경호 생각 다르면 적으로 ‘왕따’ 두려움 내재 민주주의는 그리스 아테네의 토론 광장에서 시작됐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지구촌의 모든 나라들은 지금도 토론을 통해 원칙을 결정한다. 토론문화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전제 조건이자 한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을 재는 바로미터다. 오랜 세월 군사독재를 경험하고 이제 겨우 민주주의 싹을 틔우기 시작한 한국사회의 토론문화는 어디까지 왔나? <한겨레>는 그동안 토론문화의 정착·확산을 위해 3년째 진행해 온 ‘토론과 논쟁’면을 이번주로 마치면서, 한국의 토론문화를 돌아보고 가능성을 찾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원탁토론아카데미’ 대표인 강치원 교수(51·강원대)와 국제스피치토론연구소 소장인 허경호 교수(47·경희대)가 지난 2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한국의 토론문화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한겨레> 토론 지면을 운영해 온 홍세화 기획위원이 진행자로 나섰다.강 교수와 허 교수는 학교 안팎에서 ‘토론’을 주제로 강의하거나 다양한 토론회를 주재하면서 우리 사회의 토론문화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두 교수는 홍 기획위원을 만나자 “<한겨레>에서 앞으로 ‘토론과 논쟁’을 읽을 수 없게 된다니 서운하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홍세화 기획위원=우선 저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토론의 중요성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토론이란 게 개인의 가치관과 의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거든요. 현재 우리 사회 토론문화가 어느 정도 성숙되어 있는지 점검해보고, 미성숙한 토론문화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얘기해 봅시다. 강치원 교수 =<한겨레> ‘토론과 논쟁’ 지면이 이번을 끝으로 중단된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홍 위원님이 그동안 ‘토론과 논쟁’과 ‘마주보기’를 운영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들려주시면 오늘 우리의 논의가 보다 쉬워질 것 같습니다. 홍=‘마주보기’를 할 상대와 토론자를 섭외하는 게 무척 어려웠어요.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부딪치기를 피하려고 해요. 우리 사회는 토론, 즉 다른 견해를 주고받겠다는 자세가 부족하단 뜻이죠. 또 마주보기를 하거나 토론을 할 때 독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 만큼 치열한 ‘부딪침’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2개 지면을 할애했는데도 견해가 다름이 오롯이 드러나지 못하다 보니 독자들이 지면을 통해 대담이나 토론을 읽는 데에 피곤함과 부담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허경호 교수=대담자나 토론자가 어떤 견해의 지지자로 매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각인되면 ‘후폭풍’이 생기게 되고 이걸 꺼려하는 것 같습니다. 홍 위원님이 마주볼 사람, 토론할 사람을 찾는데 애를 먹은 것도 이런 부담감 탓이 있었을 겁니다. 우리 사회는 ‘다름’을 보는 시각 자체가 너무 짧아요. 다른 사람의 생각이 자기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생각이 좀 다르면 미움·경계심·증오와 같은 감정이 생기는 거죠. 과거 군사정권 때의 문화가 이런 식이었습니다. 독재자의 시각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단자로 낙인찍혀 버리죠. 현재 우리 사회 저변에도 다른 사람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면 ‘주류에서 벗어난다’든지 ‘왕따당한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어요. 사고가 자유롭다는 대학생들 조차도 자기 주장을 말할 때 당당하지 못하고 남의 눈치를 보더라고요. 다름과 차이에 대한 인식·가치관이 편향되어 있다는 얘깁니다. 최근 독도문제도 그렇습니다. 우리 국민이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고 있다면,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주장만 할 게 아니라 왜 일본사람이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 생각과 다르다면 체계적으로 반박을 해야하는데, 무조건 ‘저쪽은 적이니 이야기 들어볼 것도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강/ 진리의 섬광은 이견 충돌때 나와필요한 것은 공정한 절차와 형식 강=토론의 정신은 다름을 인정하고 같음을 지향하는 것, 여럿을 간파하고 하나를 지향하는 것, 부분을 존중하고 전체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창조성, 혹은 주체성과 다른 한편으로 사회성, 혹은 공동체성이 전제될 때 가능합니다. 전자는 개인주의 또는 자유를, 후자는 사회주의 또는 평등을 의미합니다. 이것들은 서로 보완되지 않으면 시장주의나 영웅주의, 그리고 전체주의로 흐를 염려가 있습니다. 요컨대 창조적 공동체 사회를 이루어 내는 것이 토론이고, 그 전제도 역시 토론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겨레> ‘토론과 논쟁’은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진 지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반인,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의제 설정과 진행방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많은 고민을 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홍=프랑스에서 대통령 선거때 결선투표 직전에 벌이는 방송토론회가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던 적이 있어요.그만큼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가치관과 의식을 형성하는데 토론이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자리잡혀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토론을 통해 자기 가치관을 만들어간다는 생각이 부족하고, 토론에 대해 열린 자세도 갖춰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려운 과제입니다. 허=토론을 통해 누군가에게 자극받아 생각이 변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토론은 변화의 계기가 될 수는 있지만 변화의 주체는 어쨌든 자기자신입니다. 저는, 토론이 상품 광고처럼 지나치게 누구를 설득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토론자나 청중이 비판적 사고력을 가지고, 여러가지 정황을 읽고 판단해 열린 마음을 갖고 스스로 변화하는 게 토론입니다. 방송 토론을 본 시청자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것이, ‘왜 결론도 안나는 얘기를 저렇게 끝까지 하고 있냐’는 거예요. 이건 토론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어 있고 토론문화가 일천하기 때문에 나오는 소립니다. 토론에서 결론이란 없습니다. 토론으로 꼭 결론을 만들고 변화를 이뤄내야 할 필요는 없어요. 결론이 나지 않아도 토론 전과 토론 후에는 분명한 차이가 생기니까요.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사실을 인정하기도 하고, 공론의 장에서 내 생각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만 해도 성공한 토론이에요. 결론을 내려야만 생산성 있는 토론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강=토론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인식을 생산하는 창조의 의미가 있습니다. ‘진리의 섬광은 서로 다른 견해가 부딪칠 때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제대로 경청하고 그것이 내가 하고자 말과 부딪쳐 스파크가 날 때 ‘진리의 섬광’이 보이는 거죠. 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는, 결론에 이르지 않더라도 토론을 통해 의견의 차이를 제대로 드러내준다면, 즉 의견의 불일치 지점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면, 또 토론을 지켜본 제3자가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한다면 잘 된 토론입니다. 그러나 이나마도 안 되는 토론이 허다하거든요. 홍=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사람은 한번 형성된 의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너무 단단히 굳어버린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이게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마음을 조금이라도 열어야 해요. 이게 교육과정에서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채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고, 스스로 열린 마음을 갖지 못하니 토론 자체에 별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거에요. 뭔가 자기 견해를 밝히고 싶을 때는 인터넷 공간으로 가서 일종의 ‘발설행위’를 합니다. 익명의 뒤에 숨어 욕설을 해대고 …. 허/ 토론으로 결론 보려는 생각 버려야다양한 견해 인정만으로 성공한 것 강=우리가 ‘열린 자세’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일제시대를 겪고 한국전쟁, 이념대치, 개발독재를 거치면서 ‘말 많으면 공산당이다 …’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동안의 민주화 운동, 특히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상당히 열린 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긴 합니다. 조금씩 문화가 달라진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시각이 대립하고 마음을 열지 않는 면이 있어요. 최근의 일본관이나 독도문제라든지 이라크 파병, 광주항쟁, 미국, 서울대학교를 위시한 대학서열화 등을 바라보는 데에 있어 시각의 첨예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죠. 하지만 오늘날의 폐쇄성은 예전의 강압적 대치와 달리 자발적 대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하려면, 이제 필요한 것은 공정한 절차와 형식입니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한자리에 불러 토론하도록 하려면 공정한 절차와 형식, 공정한 사회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아가 의제 설정부터 공정성이 보장되어야 진정한 토론이 가능한데, 의제설정의 공정성이란 주체적 참여를 의미합니다. 홍=토론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힘의 논리’가 관철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힘의 논리가 통용이 되고, 반면 공공성에 대한 인식은 자라지 못한 상태예요. 그리고 일제시대와 분단을 지나오면서 ‘나와 다름’을 서로 부정하기만 해온 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민주와 반민주, 민주와 독재는 서로를 끝없이 부정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한 거죠. 사람들의 의식은 어렸을 때 독서와 토론, 자기 성찰이 아닌, ‘이데올로기 주입’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주입된 의식을 마치 자기 것인 양 고집하고 있고요. 최근에는 한국사회에 ‘물신주의’까지 퍼져 아주 큰 문젭니다. 에리히 프롬의 말을 따면, ‘존재냐 소유냐’의 질문에 대해 요즘 사람들은 소유만 중요시하고 존재는 잊어버린 겁니다. 자기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열린 가치관이 생기는데, 이제는 ‘돈만 벌자’로 가고 있습니다. 소유가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죠.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요새 ‘10억 만들기’가 유행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합리적 논리를 갖추려는 모색이 설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허=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저는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희망을 보기도 합니다. 바로 ‘네티즌의 힘’이죠. 노무현 정부의 탄생, 월드컵 열기, 탄핵을 뒤집은 것 등을 보면, 젊은이들이 꼭 그렇게 아무런 생각없이 물신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문을 열어놓고 있거든요. 얼마전 보도를 보니까, 요즘 대학생들의 58%가 한반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로 미국을 꼽았더라고요. 이건 무슨 전교조 교사가 학생들에게 주입해서 나온 게 아닙니다. 옛날과는 엄청나게 달라진 거죠. 왜곡된 입시제도 아래서 교육을 받았지만, 인터넷이란 공간을 통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양한 정보를 서로 주고받고 전파하면서 생긴 변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인터넷이란 게 부정적 측면이 분명 있긴 하지만, 오히려 이 공간을 적극 토론문화 정착을 위한 장으로 키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만큼 인프라가 잘 갖춰지고 사용자가 많은 나라가 또 어디 있습니까? 또 일부에선 인터넷 문화를 ‘쓰레기’라고 하는데 그건 좀 단면적 시각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문화라는 게 겨우 10년도 안된 것 아닙니까? 이제 시작이에요. 지금부터 초등학생들에게 토론을 본격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 교육을 받고 자라야 자연스럽게 네티즌십, 즉 ‘네티켓’을 갖게 돼요. 우리 사회, 공공기관·단체가 좀더 사명의식을 갖고 네티즌들에게 건전한 토론문화를 교육시키고, 익명이 아닌 실명을 쓰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인터넷 문화를 자꾸 ‘쓰레기 문화’라고만 하는 것은 지나친 표현입니다. 역동적이고 빠른 네티즌들이 토론문화를 창조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강치원감정 앞서는 한국인 기질도 걸림돌누리꾼 댓글문화 밖으로 끌어내야 강=한국 사회의 토론문화가 풀어야 할 어려움들을 말씀하셨는데,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한국인들의 감정적 기질입니다. 감정이 앞서기 때문에 토론을 쉽게 시작하지 못합니다. 토론이 한번 붙으면 감정이 격해져서 금방 욕설을 하거나 비방으로 몰고 갑니다. 그러다 또 금방 식어버리죠. 이른바 ‘냄비근성’이에요. 미국이 외교 협상을 할 때 일본사람보다 쉬운 상대가 한국사람이란 말도 나옵니다. 감정이 올라오면 쉽게 속을 펼쳐보인다는 겁니다. 토론은 이성과 감정의 조화입니다. 토론을 활성화한다는 것은 한국사람의 감정과 이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터넷 문제에 대해 얘기하자면, 우리 인터넷 토론문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리플 문화’라고 봐요. 리플 문화는 한국의 독창적인 문화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그동안 닫힌 사회에 살다보니 참여의 기회가 없었고, 그래서 온라인이란 공간을 통해 사회문제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티즌들은 리플을 다는 것으로서 개인적 주체성을 확립하게 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습니다. 반면 개인주의에 빠지거나 어떤 현상에 대해 전체를 보지 못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또 익명성으로 인해 진정한 토론문화라 볼 수 없는 면이 있습니다. 긍정적 부정적 양면성이 있는 인터넷 문화를 현실의 토론문화와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가 중요해요. 리플 문화를 오프라인으로 끌고 나와 바람직한 토론문화로 바꾸려는 노력이 시도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두 교수는 한국사회의 토론문화가 전반적으로 일천하다는 점엔 동의하면서도 가능성과 잠재력을 부인하지 않았다. 예컨대 강 교수는 ‘원탁토론’이라는 토론 운영 방식에 자신감을 내비쳤고, 허 교수는 젊은 네티즌들의 잠재력에 주목했다. 홍 기획위원에게는 <한겨레>가 앞으로도 다른 지면을 통해 토론문화를 계속 이끌어갈것을 주문했다.홍=요즘 젊은 세대는 ‘탈정치화’ 되어 있습니다. 냉소적이에요. 탈정치화와 정치 혐오를 자랑스럽게 말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탈정치도 정치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걸 알아야 하거든요. 손오공이 아무리 재주를 부려도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는 겁니다. 우리 대학생들이 탈정치 역시 정치의 한 모습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토론문화의 가능성을 찾을지 걱정입니다. 강=토론문화 개선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교육은 크게 네 가지 과정으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연구·교수(티칭)·학습·평가가 그것입니다. 우리 교육에서 문제가 되는 게 이 과정이 각각 분리되어 있다는 겁니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지만 평가는 오엠아르 카드가 합니다. 한 사회의 교육 평가 시스템의 수준은 그 나라의 대학입시제도가 핵심입니다. 그리고 교수·교수 양*식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학입시에서도 오지선다형으로 오엠아르 카드가 평가합니다. 교사를 뽑을 때도 그렇고 고급 공무원을 뽑을 때도 그렇습니다. 독일에선 초등학교에서 대학을 거쳐 사회에 나갈 때까지 사람을 평가할 때 ‘고르기’란 아예 없습니다. 주관식·단답형이나 약술형·서술형·구술형으로 하는 거죠. 우리는 사람을 뽑는 거의 모든 과정이 오지선다형입니다. 주관식·단답형·서술형·구술형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쪽으로 가야하고 이게 바로 토론문화와 직결된다고 봅니다. 교육의 분리된 4가지 과정을 연결시키는 고리는 토론입니다. 토론식으로 연구하고, 토론식으로 교수(티칭)하고, 토론식으로 평가해야 돼요. 그것은 가르친 사람이 평가할 때 가능합니다. 허경호토론 없는 기업은 생산성 기대 못해방송토론 한계 인쇄매체가 채워주길 허=‘토론문화’ 하면 그 상징이요 전형의 공간이 국회죠. 그런데 사실 초등학생이든 어른이든 ‘국회’ 하면 떠오르는 것이 싸움이요 드잡이입니다. 이것 하나만 봐도 우리 토론문화 수준을 알 수 있는 겁니다. 토론을 통해 생산성을 지향하고 그 결과물을 내놓아야 할 국회가 비생산적 토론의 전형으로 비치는 건 정말이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어요. 미디어의 문제도 있습니다. 언제나 미디어는 국회가 잘 굴러가는 것보다는 드잡이하는 모습, 갈등에만 초점을 맞춰 왔으니까요. 해결책은 의사진행의 규정을 합리적으로 바꾸고 원칙과 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국회의원들 스스로도 남의 토론을 음미하고 생산적인 토론을 벌일 역량이 있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기업의 토론문화도 한번 짚고 가야겠습니다. 보통 기업문화라고 하면 ‘왕회장’이나 ‘제왕적 총수’의 이미지를 떠올리죠. 이런 문화 속에서 총수가 비전을 만들어서 밀어붙이면 되지 토론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앞으로는 기업 문화도 토론문화 쪽으로 가야합니다. 기업이든 어떤 공동체든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한 용인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기업·공동체 구성원의 만족도는 낮아집니다. 특히 생산성과 관련된 아이디어는 토론을 통해 나올 수 있습니다. 강=<한겨레> 토론 지면 중에 ‘왜냐면’이란 것도 있죠? 저는 어린 자녀들에게 던질 수 있는 최고의 질문이 ‘왜냐면’이라고 생각해요. 하나 더 있다면, ‘예를 들면 뭐가 있을까’란 질문이고요. 그런데 우리 사회에 이런 질문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젭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냥 ‘오지선다형’이에요. 질문할 시간이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학생이 질문을 하면 진도를 나갈 수 없으니 아예 질문을 하지도, 받지도 않아요. 질문하지 않는 사회, 질문을 싫어하는 사회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대학생들의 탈정치화를 말씀하셨는데, 자기 주체성이 망각되어가는 현상이고, 질문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겁니다.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잘 던졌고, 공자는 답변을 잘 하였습니다. 한국사회의 토론문화를 말할 때 국회와 법정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한국 국회는 토론 중심이 아닙니다. 이것은 국회가 소위원회나 상임위 중심이 아닌 본회의 중심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본회의의 일방적 연설 중심이 아니라 소위원회 상임위 중심으로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아울러 선거에서 후보 토론회를 활성화는 것도 절실합니다. 법정 토론에 관해서는, 우리 법정은 토론을 못해도 재판이 벌어지는 구조예요. 판사가 검사와 변호사의 토론을 듣지 않고 혼자 조서의 서류만 보고 일도단칼에 용단을 내리는 식의 재판 방식입니다. 참심제나 배심제와는 거리가 먼 거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변호사가 “말 잘 못해도 돈 잘 번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잖습니까? 요즘 사법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공판중심주의와 검찰수사권 등 논란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법정 토론문화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허=3개 지상파 방송이 모두 토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송 토론을 보면 방송사가 지나치게 시청률을 의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쟁점에 대해 심도있는 이해를 주기 보다는, 갈등을 부추기는 쪽으로 토론을 끌고 가는 게 아니냐는 냄새가 납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토론을 진행하고 시청률도 높여야 하는 방송의 구조는 이해합니다만, 시청자는 토론에서의 발언이 문제의 전부인 것처럼 이해할 위험도 있거든요. 사실 방송 토론에서는 어떤 주제에 대해 제한된 시간에 극히 일부만을 다루게 되고, 그래서 핵심에서 비켜갈 수도 있고 피상적일 수도 있습니다. 생방송이라는 특성 때문에 피상적 분제를 본질인 양 오도하기도 하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흘러 토론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기도 하죠. 그래서 이런 부분을 인쇄매체가 해야합니다. 신문같은 인쇄매체는 좀더 짜임새있는 토론을 할 수 있습니다. 미디어 토론회에서는 미리 쟁점을 주고 양쪽이 똑같이 토론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이게 안되면 토론자들이 활용하는 용어가 다르고 이야기 전개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를 두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펼쳐실질적인 논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토론자들이 어떤 부분에서 충돌하는지 드러나지 않게 되죠. 토론의 ‘묘미’라는 것이, 이쪽에서 논리를 제기하면 저쪽에서 촘촘한 반론을 가하는 것인데, 이런 묘미가 나타나지 않으면 시청자나 독자는 지루해집니다. 강=저는 우리나라 방송사들이 토론문화 확산에 기여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주변에 물어보면 사람들이 토론 프로를 그렇게 많이 보지 않더라고요. 방송이 토론의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어떻게 개선할 것이냐? 우선 저는 방송사 피디와 기자의 월급 등 소득수준이 너무 높아 일반 서민의 계층적 수준과 좀 거리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진정한 참여 프로를 만들려면 리플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토론 진행과정과 의제설정에 청중과 시민들이 보다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로, 전문성과 대표성이 있는 패널 토론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각적인 노력으로서 외부인사로 구성되는 시청자위원회 등을 활성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로 진행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패널 토론자들이 상대가 말하는 중에 말허리를 자르고 끼어들기,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기, 말을 경청하지 않고 비아냥거리기 등을 극복해야 합니다. 공정하고 유익하고 재미있는 토론을 위해 진행의 형식과 절차와 방법에 대한 보다 다양한 차원의 접근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참다운 토론문화를 위해서는 토론의 개념이 논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토론은 일차적으로 대외적 논쟁을 의미합니다만, 나아가서 대화와 구별되는 공식적 절차적 소통으로서 대내적 토의까지를 포함합니다. 더 크게는 비공식적 비절차적 소통으로서 대화까지를 말합니다. 처음부터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토의에서 논쟁을 거쳐 토의’로 나아가는 토론이 좋은 토론입니다.--------------------------------------------------------------------------------------------------------------2005년도에 있었던 내용인데.. 지금바도 젬써요... 요즘은 많이 바뀌었을거에요.. ㅎ요즘 세계는 왜 굶주리는가 라는 책을 보고 있는데.. 젬써요... 여러분도 시간나면 한번 추천해볼만한 책입니다.그냥 사견으로는 박정희가 너무 거품이 심했다능....~~~뭐~~ 지금도 그렇지만..ㅎ날씨가 점점 추워 집니다. 짱공유 여러분도 감기 조심하세용 ^^
다당면작성일 2011-12-02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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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안철수,박경철님의 강연 및 참석 한나라당 의원 탄식!
안철수,박경철님의 강연 및 참석 한나라당 의원 탄식!
아래 내용은 내일신문 엄경용 기자님이 7월 24일 춘천 강원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안철수 박경철님 청춘 콘서트를 직접 보고 작성한 기사입니다!
안철수 박경철님의 강연 내용 요약이지만 꼭 보세요! 보고 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식 및 어떻게 변화를 이룰지 정확하게 진단 후 희망을 가져야 하고
그 희망을 생각하며 세상을 바꿔 보자구요!!!!
강연을 본 한나라당 의원이 왜 탄식을 하는지 그 이유는 하단에 있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서 mb 정권의 장관이나 총리로 안철수 선생님 영입 시도는 뭐였을까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최근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내년 총선에 안철수나 김제동은 영입해야 유권자 감동이 있다나 뭐라나....mb정권이나 한나라당 그 속내가 보입니다 그려! ㅉㅉㅉ)
안철수 선생님의 이 말을 꼭 기억하자구요!
"정의롭지 못한 사회는 책임의식 없는 대중 때문이다
제가 얘기한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해 많은 분이 공감하고 해결하려는 행동으로 나설 때 문제가 해결된다.
그게 우리의 조그만 기대다"
박경철 선생님의 이 말을 꼭 기억하자구요!
"같이 화를 낼 줄 아는 공분이 필요하다."
"한진중공업 노동자가 고통받는데 공분하지 않으면 내가 피해를 당했을 때 공분해주지 않는다.
내가 우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으면 내가 강물에 빠졌을 때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다.
재벌개혁 해야 한다. 처벌의 공정성 이뤄야 한다. 탈세한 기업인은 사면해주고 분유 훔친 엄마는 감옥 가는 세상은 안된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줘야 한다"
출처 내일신문
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sid=E&tid=1&nnum=616143
2011년 7월 24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춘천 강원대학교 강당. 1700석을 가득 메운 20·30대 앞에 50대 안철수(서울대 교수)와 40대 박경철(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 섰다. 선배들은 20·30대에게 익숙한 토크쇼 형식을 빌려 2시간동안 "후배여, 나보다 '우리'를 보자"고 호소했다. 사회적 모순을 갈파했다. 때론 이명박정부를 때렸다. '의식화'의 자리였지만 일방적이지도, 음습하지도 않았다. 웃음이 터지고 박수가 쏟아졌다. 정치권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20·30대 공략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의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20·30대 아이콘으로 떠오른 안철수·박경철의 '2011 희망공감, 청춘콘서트'가 대학가에서 대박을 터트린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았다. 등록금과 취업난, 육아에 발목 잡히고 양극화에 치인 20·30대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자리였다. 20·30대를 몰고 다니는 콘서트에서 쏟아진 말을 통해 그들이 감동받는 비밀을 알아봤다. 안철수(이하 안) - 고민해라. 한국국적으로 최초의 동경대 교수가 된 강상중은 "고민은 행복의 열쇠"라고 했다. 고민하면 내가 진정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알게 된다. 로또 100억 당첨된 이들을 10년 뒤 조사해보니 90%가 자살하거나 파산, 이혼했더라. 실제 내게 중요한 것과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덧씌운 것은 다르다.안 -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어떤 기준으로 하는가) 첫번째로 의미있는 일을 해야한다. 컴퓨터 백신을 만드는 사람 없었지만 의사는 많았다. 두번째로 열정을 지속할 수 있는 일 을 해야한다. 7년간 새벽 3시에 일어나 3시간씩 백신 연구를 했다. 10분 일했나 싶은데 3시간이 흘렀다. 세번째로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의사도 그랬지만 백신연구는 잘하는 일이었다.박경철(이하 박) - 공부 잘하는 재능을 가진 아이가 서는 줄에 모두가 따라 서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재능은 다르다. 각자의 가슴에 숨은 불꽃은 다르다. 각자에게 숨은 재능의 불꽃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매일 30분 일찍 일어나 재능을 찾기 위해 노력하자. 안 - 지난 50년간 우리는 패스트 팔로우(fast follow)였다. 빠르게 남을 쫓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동료가 넘어지면 밟고 지나가는 문화였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았다. 정부조차 새로운 전략으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꼽는다. 이게 되려면 실패를 용납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세계적인 천재가 낸 아이디어도 성공확율은 10%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신화를 만든 노하우가 우리의 미래를 막고 있다. 박 - 빨간신호등을 눈치 보면서 건너가고, 교수는 논문베끼기를 주저하지 않고, 검찰총장 되려는 사람은 딸이 친한 친구와 학교 다니게 하려고 위장전입을 해왔다. 죄의식없이 법을 어기는 사람이 총장되고 장관되고 대통령됐다. (대통령 빼고를 붙였음) 아무 생각없이 달려왔다. 바꿔야 한다. 한탄만할 게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요구해서 만들어야 한다. 안 - 최근 3년간 국민 세금으로 대기업 지원해줬다. 대기업 지원하면 이익이 국민과 국내 중소기업에게 돌아간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97년 이후 구조가 바뀌었다. 대기업 주식은 대부분 외국인이 갖고 있고 일본·대만 중소기업과 거래한다. 대기업 밀어줘봤자 혜택은 국민과 중소기업에 돌아가지 않는다. 대기업 도왔는데 사회 공헌 안한다고 정부가 강압적인 제스쳐를 보이는 건 누워서 침 뱉기다. '내가 해봤는데'란 말은 하면 안된다. 박 - 같이 화를 낼 줄 아는 공분이 필요하다. 한진중공업 노동자가 고통받는데 공분하지 않으면 내가 피해를 당했을 때 공분해주지 않는다. 내가 우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지 않으면 내가 강물에 빠졌을 때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다. 안 - (사회공헌적 삶을 살게 된 사연을 묻자) 주말마다 봉사활동을 하다 할머니와 손녀가 사는 집을 알게 됐다. 어린 손녀가 신문을 배달해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와 생계를 이어갔는데, 어느날 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셨더라. 손녀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면서, 할머니가 아사한 것이었다. 국가는 왜 있나. 약자를 보호해주기 위해서다. 박 - (대한민국에 필요한 3가지를 묻자) 재벌개혁 해야 한다. 처벌의 공정성 이뤄야 한다. 탈세한 기업인은 사면해주고 분유 훔친 엄마는 감옥 가는 세상은 안된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줘야 한다. 안 - 정의롭지 못한 사회는 책임의식 없는 대중 때문이다. 제가 얘기한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해 많은 분이 공감하고 해결하려는 행동으로 나설 때 문제가 해결된다. 그게 우리의 조그만 기대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희망콘서트를 보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 "좌파에는 대중을 끌어모으는 사람이 저리 많은데, 우파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래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치르겠는가." 한나라당 의원의 고민은 절박해보이지만, 거꾸로 이른바 우파의 저명인사가 왜 대중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가에 대한 반성이 없다. '우리'보다 '나'를 챙기기에 급급한, 위장전입 군면제 부동산투기를 밥먹듯 하는 대한민국 보수로는 대중에게 감동을 주기 어려운 것 아닐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안철수-박경철의 '나'보다 '우리'를 외친 콘서트가 대박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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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사회] 이대통령 '국민들도 국운융성 기회 왔다는 것 느껴'
李대통령 "국민들도 국운융성 기회 왔다는 것 느껴"
"강원도가 녹색성장 표본지역"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한국에 국운융성이라는 기회가 왔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도 느끼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강원도청에서 열린 2010년도 강원도 업무보고에서 "밴쿠버 올림픽에서 정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작년 위기 속에서 많은 위기설이 있었다. 4월 위기설, 9월 위기설 등이 있어 주가가 반토막 나고
해외자금이 빠져나가고 해서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데 우리 스스로 위기설을 조장해서 더 어려웠다"며 "그러나
과감한 재정지출, 선제적 집행노력을 지자체, 기업들, 국민 모두 합심해서 일사불란하게 해서 한국은 국운융성의
기회를 맞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대한민국이 세계에 녹색성장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세계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을 한국이 먼저
가고 있다"며 "이런 녹색성장에 강원도가 가장 표본적인 지역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
강원도도 많이 연구하고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미래 강원도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날 업무보고에는 김진선 강원지사, 최재규 강원도의장, 허천 한나라당 도당위원장, 유인촌 문광부, 최경환 지경부,
정종환 국토부, 주호영 특임장관, 최상철 지역발전위원장, 박영준 국무차장, 권영중 강원대 총장, 유재천 상지대 총
장, 김정호 강원발전연구원장, 시장ㆍ군수, 지역 언론사 대표, 사회단체장 등이 참석했다. 청와대에선 윤진식 정책실
장,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진동섭 교육과학문화수석, 지역발전비서관, 김은혜 대변인 등이 배석했다.
혼자만 맨날 뭘 그렇게 느끼시는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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