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검색 결과(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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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가수 박지윤, 카카오 대표 결혼
[스포티비뉴스=김원겸 기자] 가수 박지윤(37)과 조수용(45) 카카오 공동대표가 결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2일 연예 관계자 및 IT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두 사람은 3월 말 가족과 친지,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해 조용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던 까닭에 예식은 차분하고 경건하게 진행됐다고 한다. 두 사람은 조수용 대표가 발간하는 월간 ‘매거진 B’의 팟캐스트 ‘B캐스트’를 함께 하며 친분을 쌓았다. 박지윤은 매거진 B의 팟캐스트 진행을 맡았고, 조수용 대표도 출연해 디자인과 마케팅, 크리에이티브 디렉팅 등의 분야를 다루면서 마니아층을 만들었다. 이후 두 사람은 디자인과 예술, 음악과 영화 등에서 서로 공통된 관심사를 발견하면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2년여 교제 끝에 결혼에 이르게 됐다. 앞서 2017년 5월 두 사람의 교제 소식이 전해졌으나, 박지윤 측은 “함께 일하는 관계로 친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연인 관계는 아니다”고 부인한 바 있다. 이후 두 사람은 예술적 감수성과 감각을 공유하며 서로를 솔메이트로 여기며 사랑을 키워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윤은 12살때인 1993년 하이틴 잡지 모델을 계기로 이듬해 해태제과 광고모델이 됐다. 1994년SBS ‘공룡선생’에서 아역으로 활동했고, 1997년 ‘하늘색 꿈’으로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성인식’ ‘스틸 어웨이’ ‘가버려’ 등을 발표하며 아이돌 스타로 큰 인기를 누렸다. 뮤지컬 ‘미녀와 야수’ ‘클레오 파트라’ 등에도 출연했다. 그러다 가수로서 약 6년의 공백기를 가졌고, 2009년 독자회사 박지윤 크리에이티브를 설립, 자작곡을 담은 7집 ‘꽃, 다시 첫 번째’를 발표하면서 포크 음악 계열의 싱어송라이터로 다시 주목받게 됐다. 2017년에는 20주년을 맞아 사진집을 결합한 9집을 내고 20명의 오케스트라 연주자와 공연도 벌였다. 이후 가수로서 꾸준히 공연을 하면서, 사진작가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수용 대표는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창을 초록창으로 디자인한 사람으로 잘 알려진 디자인, 마케팅 전문가다.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포털사이트 프리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2003년 네이버 창립 초기부터 함께 했다.조수용은 2010년 브랜드 디자인 컨설팅 회사 JOH(제이오에이치)를 세웠고, 이 회사를 통해 공간 임대사업과 일호식, 세컨드키친 등 음식점도 운영했다. 국내 최초로 브랜드 다큐멘터리 잡지 ‘매거진B’를 창간했다. 지난해에는 우아한형제들과 손잡고 배달의 민족 잡지 ‘매거진F’를 창간했다.카카오에서 브랜드 디자인총괄 부사장과 공동브랜드센터 센터장을 지낸 뒤 작년 3월 여민수 대표와 함께 공동 대표에 선임됐다. 짱공인 여러분 힘내세요! 탈모인에게도 희망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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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음주운전 처벌이 약한 이유
[나무위키 펌]이름이 굵은 사람은 음주운전 2회 이상 저지른 쓰레기. 2. 정치인 및 고위공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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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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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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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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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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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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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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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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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민x2: 前 안산시장,
現 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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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제35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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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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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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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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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훈: 2007년, 음주 측정수치를 신빙할 수 없다며 인근 병원에서 채혈을 하는 등 시간끌기를 시도했으나 결국 면허취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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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무: 1991년 3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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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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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환: 前 통합진보당 대표 이정희의 남편. 정치적으로 민감한 인물[2]이므로 여기에 있다. 2012년 9월 25일은 이정희가 대선 후보로 출마 선언하는 날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날 음주 상태에서 제네시스를 몰고 가다가 적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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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문재인 정부의 첫 법무부 장관으로 내정되었으나, 음주운전을 비롯한 여러 문제로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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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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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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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관:
前 대통령실 홍보수석비서관. 2009년 청와대 대변인 시절 MBC를 비난하면서 "나도 음주운전을 해 봤지만..."이라고 뜬금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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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기: 씨름선수 출신으로 17대 총선과 20대 총선에 출마. 헌데, 몽땅 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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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2004년 5월 28일에 음주운전으로 면허 취소. 헌데, 2016년 7월에는 소주 1잔만 마셔도 음주운전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대표로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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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주:
현직 국회의원 신분으로 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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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제19대, 20대 성남시장,
現 경기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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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훈: 현직 청주시 상당구청장 + 음주측정 거부. 기사. 현직 구청장이라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고 권고사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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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성:
前 경찰청장이며 그것도 공무원 신분으로 걸린 것을 지금껏 숨겨놓고 있다가 2016년 8월 24일 부로 결국 경찰청장에 취임했다. 음주운전 전과자가 경찰청장을 한다는 것에 국민 여론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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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평: 2003년 4월, 기사. 당시 현직 국회의원 신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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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진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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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석: 현 더불어민주당소속 경상남도 진주시 제1선거구 도의원. 병원을 경영했을 적에 구급차를 몰고 음주운전을 했다. 공보물에서는 회식중에 응급환자가 발생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자기 합리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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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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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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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근:
前 SBS 앵커로, 박근혜 정부에서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였으나 다른 여러 문제들과 엮이면서 결국 낙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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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현: 1998년 3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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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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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엽:
문재인 정부의 고용노동부 장관 지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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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준: 前 KBS 기상캐스터, 대한민국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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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수:
2003년, 무면허 상태에서 음주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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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동:
음주측정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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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식:
음주측정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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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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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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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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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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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선x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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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준x2: 교통사고를 낸 뒤 경찰이 음주측정을 시도하자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거부했으며 2006년에도 음주운전으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기사. 이전부터 나경원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는데, 2번째 사건으로 인해 나경원 입장에서는 차기 총선 당선조차도 불투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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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철호
3.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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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만: 1985년 3월, 말년 대위이던 시절에 음주운전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제3한강교 교각을 들이받고 얼굴이 뭉그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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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신동학: 2000년 10월,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고 단속 경관을 매단 채 질주해 중상을 입혀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밖에도 마약복용과 폭행 등 잇단 사건으로 온갖 물의를 일으켰으며, 2005년, 태국 여행 도중 실족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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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선: 2005년 4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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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원:
2003년 7월, 기사.
4. 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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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현: 2004년 6월, 기사.
5.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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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1998년 12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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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 1995년 8월, 기사.
6.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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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금택:
1998년
4월, 기사.
7. 연예인
7.1.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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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K(2PM): 2018년 2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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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에: 1997년 3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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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슈퍼주니어)x2:
2009년
10월, 2016년 5월, 총 2번이나 음주 뺑소니, 첫번째 기사, 두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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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타(H.O.T.): 2000년 11월, 기사. 기사를 보면 악명높은
H.O.T. 빠들의 쉴드가 참 가관.
"음주운전이 무슨 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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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명:
2014년
5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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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하: 2006년 2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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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환:
1997년 9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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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혁(클릭비):
2005년
4월,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엄청난 망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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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선: 2001년 10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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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오x4: 가수 겸 배우, 2015년 7월, 음주측정 거부 후 같이 있던 여자친구가 운전했다고 허위진술. 기사.
더불어서 불법 카지노 도박장에도 출입한 것으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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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중(前 동방신기,
現 JYJ): 2006년 4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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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UN): 2011년 7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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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열(DJ DOC): 1999년 7월, 무면허 뺑소니 음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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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산울림):
2003년
10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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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중(SS501): 2017년 3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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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1998년 4월, 사이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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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국x2:
1997년
5월 뺑소니 음주, 2013년 10월 두번째 음주운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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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쿤(2PM): 2012년 7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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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주:
2005년 음주운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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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2003년 10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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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성(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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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영: 2002년 2월 무면허 음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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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섭:
2002년
11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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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슈퍼노바): 2016년 3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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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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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백경(원타임): 2005년 11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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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아(영턱스클럽): 2004년 9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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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김(업타운,
솔타운): 2007년 9월, 기사.
이후 대마초도 걸리면서 현재 출연금지 명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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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구피) : 2008년 12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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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성(신화): 2007년 4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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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수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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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클래지콰이): 2012년 7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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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원(젝스키스)x2:
2001년,
2004년
4월, 기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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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x3: 1990년 5월 뺑소니, 기사,
2003년 6월 음주운전, 2004년 1월 무면허 음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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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우: 2005년 2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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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욱(R.ef): 2013년 3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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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NRG): 2014년 5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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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2010년 11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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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진(젝스키스):
2011년
11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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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2016년 6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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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2007년 2월 무면허 음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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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신화): 2005년 10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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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1993년 12월 무면허 음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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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前 디바): 2003년 6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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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재훈:
2003년
2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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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근:
2018년
8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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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란(클래지콰이)x3:
2004년,
2007년,
2016년
9월, 기사.
7.2. 래퍼·
길(리쌍)x3:
2004년,
2014년
4월, 2017년 6월. 2014년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나라가 어수선하던 시절이었는데, 그럴 때에 음주운전을 해서 더 비판을 받았다. 거기에 이 당시 무한도전에서는 카레이싱 관련 특집을 진행하던 도중이었는데,
이런 시기에 음주운전이 적발되면서 더더욱 까였다. 기사 1. 이후 자숙하고 그 이후 힙합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서 네티즌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3년만에 또 다시 음주운전을 하면서 정신 못 차렸다고 엄청나게 까였다. 기사 2. 그리고 검찰이 징역 8월의 실형을 구형했는데,
알고보니 2004년에도 음주운전 전력이 또 있었다. 결국 KBS 출연금지 연예인에 이름이 있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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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벌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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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수:
2017년
7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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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2013년
11월, 기사.
7.3.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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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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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현:
1998년 1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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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영:
1999년
1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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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2003년
6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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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이:
2017년
6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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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중:
2011년
12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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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해효:
2005년
10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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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용우:
2003년
12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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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2003년 10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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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1999년
3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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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성[5]: 2004년 2월 음주운전 + 폭행,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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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아:
2007년
7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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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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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x2:
2000년
7월 무면허 음주, 기사,
2010년
10월 음주운전 + 뺑소니,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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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태: 1992년 6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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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x3: '사고 안났걸랑요?' 정작 사고났다. 음주측정 거부하면서 한 발언. 1997년 6월, 기사,
2004년
8월, 기사,
2014년
11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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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주:
2002년
12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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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범:
2004년
9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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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민욱x2: 1993년 12월 무면허 음주, 기사, 1996년 11월 무면허 음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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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민x2: 기사,
2011년
2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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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원:
2009년
8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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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2010년
9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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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1994년 3월 음주운전 + 뺑소니,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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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
2004년
12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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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변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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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2005년
10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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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금식:
1999년
12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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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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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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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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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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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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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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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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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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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오성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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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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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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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문x3: 전날 과음을 한 채로 다음 날 인터뷰에 참석해 논란이 되었고, 이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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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영:
2018년
5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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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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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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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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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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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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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
·
이이경
·
이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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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포x3:
2003년
9월, 2008년 11월, 2009년 9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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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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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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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식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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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장진영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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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전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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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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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인
·
정유진
·
제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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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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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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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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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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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혁(前 남녀공학): 2016년 10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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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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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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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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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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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정x2:
1997년
6월, 1997년 9월, 기사. 덤으로, 1990년에는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적도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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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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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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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욱
7.4. 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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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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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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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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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늘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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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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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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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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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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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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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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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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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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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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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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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우:
2017년
4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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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윤:
음주운전 후, 직접 경찰서에 찾아가 자수를 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강남구에서 일산신도시까지 무려 30km를 음주상태로 운전했단 거다.
이쯤이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중범죄라는 것은 전혀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명백한 범법행위를 저지르고도 자수한 사실 하나만으로 그에 대한 긍정 여론이 상당했던 것을 보면, 지금도 한국 사회 전반이 여전히 음주에 대해 관대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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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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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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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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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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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석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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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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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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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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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인봉(틴틴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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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희
7.5.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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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욱환:
음주운전에 뺑소니까지 했으며 거기에 경찰서에서 난동까지 피웠다고...
이전에는 만취상태에서 폭행 혐의도 있어서 결국 현재 출연금지 연예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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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학영:
2018년
2월, 기사.
7.6.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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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홍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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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우종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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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종환
7.7. 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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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범x3
8. 작곡가/작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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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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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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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훈
9. 전/현직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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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새봄:
면허 취소 수준인 0.152%나 나왔다. 2017년 8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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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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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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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진
10. 스포츠
10.1.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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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x3:
2016년 음주운전 적발 이후 이전의 두 차례의 음주운전 사실도 추가로 까발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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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혁:
2000년
8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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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천:
1996년
1월, 음주 뺑소니,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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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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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제:
음주운전 후 차량 전복 사고로 선수 생명이 그대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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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 무면허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고 뺑소니까지 3중으로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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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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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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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혁x3:
2010 시즌 후 비시즌 중 음주운전이 걸린 직후 2011년 시즌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활동하여 징계를 면했다. 헌데, 이게 징계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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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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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
2003년
6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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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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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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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복:
음주운전 후 반성의 의미랍시고 한 인터뷰가 참 가관인데,
"이것을 계기로 선수들이 음주운전을 조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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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웅:
2017년 7월
10일 오전 6시 30분 경, 자신의 벤츠 차량을 운전해서 가다 송파구 잠실역 인근에서 다른 차량에 의해 접촉 사고를 당했다.
당시 혈중 알코올농도 수치는 0.151%로 면허 취소.
여기까지로도 충분히 범법행위에 악질적이지만, 변명이랍시고 전날 은퇴식을 가진 팀의 레전드까지 팔아먹었다. 이 때문에 팬들에게까지 빅엿을 먹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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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X2 1991년과 1997년 총 2차례 음주운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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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찬: 음주운전 후 뺑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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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삼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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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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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근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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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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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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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
10.2.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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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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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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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태: 2018년 6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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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성: FC 서울에서 뛸 당시 음주운전하다 차를 치고 뺑소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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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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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민
10.3. 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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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
향후 10년 간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의 가드진을 이끌 선수로 기대되었으나 교통사고 후 부상으로 운동 능력을 크게 잃었다. 음주운전으로 선수 생활을 말아먹은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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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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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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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호: 2018년 9월, 기사.
그리고 동승한 김기윤도 같이 처벌이 내려질 예정이라고 한다. 김기윤은 무슨 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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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훈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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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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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x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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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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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인
10.4. 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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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실:
1998년
9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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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낙길: 1996년 4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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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식:
2004년
12월, 기사.
10.5.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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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연:
음주운전에 경찰관 폭행. 기사.
10.6.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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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x3: 무면허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접촉사고를 냈으며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마다 한번씩 음주운전을 하다 걸렸다.
10.7. 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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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규:
1991년
1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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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화: 본인의 재규어를 타고 음주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냈다.
10.8. 레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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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한봉:
2002년
5월, 기사.
10.9. 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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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근:
2007년
12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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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조:
2001년
12월, 기사.
10.10. 펜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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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x4
10.11. 쇼트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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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
10.12. 복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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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동균:
1998년
9월, 기사. K리그 승부조작 사건으로 영구제명된 前 축구인과는 동명이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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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우:
1997년
1월, 기사.
10.13. 승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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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10.14. 태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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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름: 기사.
11.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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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x3: 하트시그널 시즌2에 출연한 일반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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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호:
무면허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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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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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순:
2016년
12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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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 박해미의 남편. 구리시 강변북로 음주 사망 사건 문서 참조.
==============================================================================================음주운전 걸린 놈이 방송에 나오는 세상.음주운전 걸린 놈이 공직자가 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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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유머] "죽는 것이 효도다"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1862~1927) 여사와 안중근(1879~1910) 의사.한국일보 자료사진“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아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다.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모두의 분노를 짊어진 것이다.”유난히 길었던 1910년 겨울, 어머니는 때 아닌 여름 옷감을 꺼냈다. 아들이 입을 수의를 짓기 위함이었다. 3년 전, 국경을 넘어 대륙으로 간 아들은 사형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죄명은 살인. 그의 총구가 겨냥한 것은 힘없는 조국의 주권을 훔친 원수, 이토 히로부미(1841~1909)였다.어머니는 끝내 아들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아우들이 가져온 수의를 받아 든 안중근은 항소를 포기했다. “나는 처음부터 무죄요, 무죄인 나에게 감형을 운운하는 것은 치욕이다.” 어머니의 전언대로 의연히 죽기로 결심한 그 때, 그의 나이 서른 하나였다. 절대로 삶을 구걸하지 말라던 어머니와 그 뜻을 따른 아들을 두고 적국의 신문은 이렇게 적었다. ‘시모시자(是母是子)’. (아사히 신문, 1910)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고. 안중근이라는 거대한 이름에 가려진 뿌리, 조마리아는 지사의 어머니이자 지사였던 시대의 여걸이었다. 조마리아 여사가 직접 지은 수의를 입고 순국하기 5분 전의 안중근 의사 모습. 안 의사 순국 108주기 추모식에서 한국의 안중근함 장병들이 헌화한 뒤 경례하고 있다. 류효진기자“중근아, 글보다 활이 좋다면 그리 하여라”사서오경을 펼치기 전에 활부터 들었다. 글을 제법 읽을 줄 알게 된 후로는 서당으로 향하는 발길도 서서히 끊겼다. 서책을 넘기는 것보다 표적을 쫓는 것에 빠진 소년을 어머니는 말리지 않았다. 몰래 포수를 따라다니며 사냥을 익힌 아들이 제 손으로 잡은 들짐승이라도 들쳐 매고 오는 날엔 뚝딱 삶아내 모두가 함께 먹었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조마리아는 아들 중근이 황해도의 너른 산과 들을 누비도록 풀어두었다. 회초리로 엄히 다스려 서책 앞에 주저앉히는 것만이 어머니의 도리로 여겨지던 시대였다. 남다른 어머니 덕에 아들은 저격수의 자질을 기를 수 있었다. 반면, 글을 익히는 데 두각을 보였던 안중근의 두 동생 정근과 공근에게는 책을 읽혔다. 아이가 타고 난 기질을 거스르지 않았던 슬기로운 양육법이었다.조마리아는 현명한 어머니 역할에 그치지 않았다. 항일 투쟁의 전면으로 나섰다. 일본은 대한제국을 옭아매고자 거액의 차관을 강제로 들이밀었고 나라는 빚더미에 앉았다. 그는 아들 중근이 적극 가담한 국채보상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여자는 나라의 백성이 아닌가?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데 패물은 무엇에 쓰리오.” 패물까지 팔아 나라 빚을 갚는 데 보태고자 하는 여성들이 움직이자 온 나라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은가락지부터 은장도, 은투호노리개는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었다. 한치 앞을 모르는 혼란의 시대, 식솔들의 생명줄이 될 요긴한 것이었다. 하지만 없는 살림을 털어 보내는 것만으로는 나날이 조여오는 일제와 맞서기엔 부족했다. 국채보상운동 최전선에서 힘을 쏟던 맏아들 중근은 독립운동을 위해 떠날 결심을 알려온다. “집안일은 생각지 않아도 된다. 최후까지 싸워라.” 어머니는 단호하게 아들을 보냈고, 아들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이토 히로부미 저격 후 뤼순 감옥에 수감된 안중근이 가족들과 면회를 하고 있다. 국가보훈처 제공.“독립 운동을 한다는 놈들이 엎드리기만 할 것이냐”그가 잃은 것은 맏아들 하나뿐이 아니었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자마자 두 동생 정근과 공근은 공모자로 몰려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간신히 풀려난 아들들과 함께 끊임없이 타국을 떠돌 때, 중근이 남기고 간 일곱 살 난 손자마저 잃었다. 안중근 가족을 끈질기게 쫓은 한 밀정이 건넨 과자 속엔 독이 들어 있었다. 아이는 타인의 호의를 의심할 줄 모르는 나이였다. “어머니, 자식의 막심한 불효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 아들 분도는 장차 신부가 되게 하여 주기를 희망합니다. 후일에도 잊지 마옵시고 천주께 바치도록 키워 주시오.” 천주교의 교리에 반하는 죄를 지은 바, 자식만큼은 평생 신의 은총 속에서 살기를 바랐던 안중근의 유언은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이 됐다.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잃었지만 그는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해졌다. 식솔들이 일제의 위협을 피할 곳을 찾아, 블라디보스토크 북쪽으로 110㎞ 떨어진 낯선 땅에 간신히 정착했다. 춥고 척박했지만, 오히려 그 거친 땅은 여사가 종횡무진 활약하는 독립운동의 무대가 됐다.“안중근 의사의 모친은 쉬는 날이 없었다. 동쪽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로 서쪽으로는 바이칼호수에 이르기까지 분주히 동포들을 각성시키는 사업에 종사했다” (독립신문 1920년 1월 30일자)이미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거대한 대륙을 누비는 고행길에 맹수와 산적이 끊이질 않았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총탄, 사납게 아가리를 벌리는 짐승들 앞에서도 조마리아는 대담했다. “같이 가던 청년들 수십 명이 땅에 엎드려 꼼짝 못할 정도였죠. 이 때 여사께서 내려오더니 ‘이놈들아, 독립운동 한다는 놈들이 이렇게 엎드리기만 할거냐? 이렇게 엎드려 있다간 다 죽어’ 라고 대갈일성을 했다는 겁니다.” (독립운동가 정화암) 마부를 밀쳐내고 스스로 고삐를 쥔 조마리아는 벼락처럼 소리쳤다. “죽는 한이 있어도 가고 보자.” 내지르듯 달려나간 마차가 적들의 혼을 빼놓아 결국엔 모두가 무사했다는 후문. 당시 여사를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독립운동가 이강이 ‘범을 낳은 범, 세상에 다시 없을 여걸’이라 회상할 만했다. 조마리아 여사의 생전 모습. 국가보훈처 제공아무도 지켜주지 못한 조마리아의 후손들그가 임시정부 터가 잡힌 상하이로 이주한 것은 1920년. 어지러운 시대였던 만큼, 다툼도 잦았던 곳에서 그는 어른이자 중재자의 역할을 자처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쉽게 다루는 일이 없고, 누구의 말이든 반드시 끝까지 들었던 그는 곧 김구를 비롯한 현지 운동가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너그러우면서도 대의에 밝은 분이었습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 아들을 조국에 바쳤듯이 자신의 인생 또한 그 앞에 헌신했다. 손주들이 돈이 없어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궁핍한 상황이었지만 어떻게든 돈을 모아 임시정부에 헌납했을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사력을 다한 탓이었을까. 조마리아는 1927년 7월 15일, 암투병 중 66세의 나이로 타국에서 끝내 숨을 거뒀다.남은 자식들은 어땠을까. 김구를 도와 한인애국단을 이끌었던 넷째 안공근은 해방을 보지 못하고 충칭에서 암살당했고, 독립군단을 통합시켰던 셋째 안정근은 해방 이후에도 귀국하지 못한 채 상하이에서 객사했다. 딸 안성녀는 몰래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어 입히며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나 연구자들의 무관심 속에 아직까지 독립 유공 서훈을 받지 못했다. 5대째에 이르러 수백 명 가까이 불어난 후손들은 몰락의 길을 걷다 뿔뿔이 흩어졌다. 해방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과거 우리는 안중근 집안이라는 이유로 왜놈에게 죽어야 했죠. 광복 뒤에는 왜놈의 앞잡이 노릇을 한 놈들이 권력을 잡아 그 때와 다를 것 없습니다” (안중근의 조카 민생이 사촌 동생 경옥에게 보낸 편지) 해방된 조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이들은 국경 너머 북으로, 바다 건너 미국으로 건너가 영영 소식이 끊어졌다.조마리아의 유해는 상하이 내 프랑스 조계지에 묻혔으나 지금은 무덤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도시개발로 묘지를 갈아내고 건물을 세우며 사라진 탓이다. ‘하얼빈에 묻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던 아들 안중근의 유해 또한 중국 땅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15일은 조마리아 여사가 세상을 뜬 지 91년이 되는 날. 어머니의 혼도, 아들의 혼도, 그 후손들의 삶도 제대로 보듬지 못한 우리에게는 여전히 부끄럽기만 한 날이다.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http://v.media.daum.net/v/20180714140256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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