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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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或者)는 나를 걸어다니는 `위키대백과`라고 하기도 하고,
구글링 짜즙기 편집으로 자방에 글을 싸지르며, 댓글을 관음증으로 점철하는 변태라고 얘기하지.
일설에 의하면, 혹자(或者)는 아고라 경방에 `미네르바`가 있었다면.
자방엔 `드리프트K` 있다고 하더군.
이 모두가 나를 말할 때 부족한 표현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야지 뭐... 느흐흐흘~
나는 관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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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인사가 늦었네. 안녕! 나는 드리프트K 라고해~
짱공은 뭐한 대략 10여년동안 눈팅만한것 같은데
이렇게 글을 올리기는 처음이야
잘부탁해
mazda 마쯔다엔진을 까보자.
마쯔다의 로터리엔진의 자료를 수집하면서. 새롭게 느끼게 되는 무엇인가가 있었어!
뭐랄까?
과거는 슬프고 괴롭지만,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너무나 아름답고 뜨거웠던 시절이란걸 새삼 깨닳게 되더군.
댓글중에 마쯔다엔진을 쎄워달라는 형들이 있었는데.
내가 오히려 형들에게 고마움을 느낄만큼 좋았어.
그리고 구글링의 힘은 이미 신의 영역같더군.
알라뷰 구글! 베리알라뷰 위키!
mazda가 쎄우고, mazda만이 만들고 있는 로터리엔진을 까보자구~
우선 로타리엔진 커버를 까올리기전에 로타리엔진의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봐야지?
나의 개똥철학은 말이야.
기계의 성능이나 효율성을 따지기 이전에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지 알고있어야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고 생각해.
외우고 공부하라는 말이 아니야. 보고 느껴보라는거야.
사람의 정신은 쇠를 담금질하는 것 처럼,
한번의 담금질로도 그것을 새로운 시선과 관점으로 볼수 있다고 생각해.
그게 인간이라는 우월한 유전자의 동물이니깐. 하지만 인간이란 동물은 뜨거움을 고통으로 느끼기 때문에
인간은 담금질이란 현실의 고통보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책을 드는 것 이겠지?
난 많은 화상과 내상을 당해봤지... 난 상처도 많은 사람이야.
형들은 상처받지 말어~ 아프늬꺄! 제발~
사람을 겉만 봐서는 모르는 것 처럼.
기계들도 아무리 뛰어나고 멋진녀석이라도.
겉만봐서는 그것에 내용을 모르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마쯔다도 담가따 빼보자!
개똥같은 철학은 그만 접고 mazda를 까보자!
로터리엔진은 `펠릭스 하인리히 반켈`(Felix Heinrich Wankel - 1902년 8월 13일~1988년 10월 9일)이라는
독일의 기계 기술자가 처음 발명했어. (역시 유럽이야)
반켈은 스위스 국경과 인접한 독일 남부지방 스와비아(Swabia)주의 라르(Lahr)에서
현재의 라르
산림관청의 책임자인 아버지 루돌프 반켈(Rudolf Wankel, 1867~1914)과 어머니 마르타 하이도프(Marta Gertrud Heidauff, 1879~1934) 사이에 외동 아들로 태어났지. 산림관청의 책임자인 공무원 집안이라. 부유하진 않치만 넉넉하게 자랐을꺼야.
근데 초등학교 재학중이던 반켈에게 시련이 온거지. 전쟁이야!
제1차 세계대전.
히틀러... 끄으으으으으으~
세계자동차역사에서 `히틀러`는 빼놓을수가 없구만...
1914년 8월 반켈의 아버지는 1차대전 전장에서 전사했지,
반켈은 다음해 1915년에는 어머니를 따라 하이델베르크로 이사했는데.
1921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그는 `대학교육`은 물론 ""도제교육""도 받지 못했어.
가세가 너무 기울어서. 안받은게 아니라 공부하고싶어도 돈이없었거든.
여기서 독일의 "도제교육"을 설명하자면 말이야.
도제교육은 직업교육의 한형태인데 13C 이후 산업혁명까지 가내 수공업을 하던 유럽 나라들에서 이루어졌어.
10살정도? 매우 어릴 때부터 시작할수도 있었는데.
기계,상업,공업,토목 기술이 들어가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장인(匠人)의 집에 찾아 다니면서.
도제가 되어 봉사하면서 학습하기 시작하지.
그리고 그안에서 스승에게 1:1의 직접적인 훌륭한 인성교육도 같이 병행하게되.
이게 독일기술의 강점이야.
지금도 독일은 도제교육을 하고있는 나라야.
독일애들이 머리가 똑똑한게 아니라.
어릴때부터 스승의 어려움을 배우고, 스승의 자애로움을 느끼면서 선대의 훌륭한 기술을 배웠기 때문이야. 어때?
훌륭한 인성교육과 어른을 공경하는 법을 어릴때부터 몸으로 배우는거지.
평생 쇠깍고, 기름밥 먹어서 자칫 흉폭해질 수도 있는 애들을 정직하고 적절한 인성의 성인으로 성장하게 하는거야.
어때? 당연히 단점도 있겠지만. 훌륭한 교육같지않아?
기름밥? 아다다다다닷닷~ 앗쵸!
기름밥 먹는다고 흉폭해진 다는건 아니고, 웃자고한 말이니깐.
우리나리에 쇠깍고 기름밥먹는 건실한 형들은 오해없길 바래... 다들 건실한 사회의 역군이라고~
아무튼 적절한 집안이였던 반켈의 가정이. 전쟁 때문에 가세가 기울자 어린나이 부터 일을 시작하게됬는데,
첫 직장은 하이델베르크(Heidelberg)에 있는 대학교 근처에 인쇄소였어, 서점도 겸하는 인쇄공장이였지.
그 인쇄소겸 서점은 과학분야 전물출판사였는데, 반켈은 1924년 독일경제불황으로 일자리를 잃기 전까지 일했지.
이곳에서 어린 반켈은 여러분야의 과학서적을 섭렵했어.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얻는다고 했던가?
공부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 못했으니. 얼마나 지식에 목말라 있었겠어...
근데 보이는 책이. 다~ 과학책이였던거지.
우으으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책들이 이~~~~뻐!
그리고 반켈은 선천적으로 콩팥에 문제가 있었나봐.
반켈은 활동적인 인쇄 일보다는 장부정리나 창고의 물건정리를 했는데.
이시기부터 얼마나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일을 할 수 있을까란 부분에 열중했지.
움직이면 아프니깐.
아무튼 이 시기에 인쇄소의 급여로 야간학교에서 청강과정을 수료했어.
그래서 그나마 기술적인 주제에 대해 더 몰두하고, 좀더 지식적인 부분에 주제를 만들어 독학을 했지.
같은 해에는 하이델베르크에 창고빌려서 연구소를 차린 후 엔진에 대한 개념을 쎄우기 시작했지.
시작은 모터사이클 엔진용 로터리 밸브의 실험으로 부터였어
반켈이 엔진 특허를 얻기 위한 첫 시도는 1926년 '구리스 터빈'(grease turbine.구리스넣고 돌아가는거야)이었지만,
목표는 엔진설계 특허였어. 1927년 로터리 피스톤 엔진과 그의 실링 부품의 형상을 그렸는데.
결과가 좋아서 1929년 첫번째 부품형상에 관한 특허를 획득했지(DRP 507 584 <-특허번호야).
1932년 8월 그가 만든 DKM 32가 처음 작동을 시작하면서, 1936년에는 마침내 독학으로 DKM엔진에 특허를 냈지.
1920년 즈음 경제 대공황의 인플레이션 때문에 독일 중산층들과 마찬가지로
반켈도 국가사회주의(나치즘)의 정치 및 경제 철학에 사로잡혔어.
젊은시절 그는 히틀러 유겐트회원이 되었고, 나중엔 국가사회주의당(NSDAP) 당원이 되었지.
( Hitler-Jugend :독일의 청소년들에게 나치당의 이데올로기인 나치즘 교육을 위해 설립된 조직이야 )
유겐트는 넥타이가 없고, 갈색의 노타이 셔츠를 제복으로 유명하지
옷보니까 알겠지? 청소년`유겐트` 영화에서 자주나왔어. 1차대전 전쟁영화에...
1932년 자신의 생각과 맞지않아서 사회주의당을 탈당했는데,
1933년 나치가 정말 권력을 얻게 되면서 주위에 사회주의당원들한테 반켈은 눈밖에 난거지... 소위말해 찍혔지.
그래서리 반켈은 지역 책임자와 분쟁이 생기게 되었다. 이유는 반켈이 당의 비리를 밝히려고 했기 때문이었어.
그는 체포되어 옥살이를 했는데, 그의 건실함을 알고있는 주위의 실업가들과 명망있는 기술자들이 중재하기 전까지
나치에 의해 몇 달간 투옥되었어. 역시 빨간 완장이 무섭긴하지...
`펠릭스 하인리히 반켈`(Felix Heinrich Wankel - 1902년 8월 13일~1988년 10월 9일)
몇달간 공밥먹나가 나온 후에는 이름이 꾀 알려졌어... 원래 대판 지지고 볶아야 뭔가 이름이 나잖아?
여튼... 다임러벤츠 기술책임자 `한스 니벨`(Hans Nibel)이 로터리 엔진에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 했었는데,
이듬해 `한스 니벨`이 경쟁사인 BMW로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또 다시 좌절했지.
그후 1936년... 아! 1936년이라고 하니 생각나는게 있구만...
1936년은 나치독일이 베를린올림픽을 개최됬던 시기야.
제11회 베를린올림픽 개최식에 경기장을 가득매운 나치 독일 시민들의 경례모습은
나치당의 이념과 결속력을 전세계에 보여줬지.
무서운 이념이지만 뜨거웠지. 손을 올리는 제식경례는 지금봐도 장관이야. ㄷㄷㄷ경기장에 뻣친 저손
베를린올림픽하니 생각 나는 분이 있겠지? 없어도 괜찮아! 사진보면 다 아니깐...
베를린올림픽 마라토너 `손기정`(1912년 8월 29일 - 2002년 11월 15일)옹께서
뜨거운 열망의 발자국을 독일땅에 찍으며, 한민족이 건제함을 전세계에 알린 날이기도해.
그 후 나치의 독일인들도 한국인에 대해서 좋은 감정이 많이 생겼다더군.
이념은 틀리지만 자신들 만큼 뜨거운 가슴과 불굴의 의지를 갖고있는 민족이라고 말이야.
독일언론이나 시인들도 한국인이란 민족을 인정했지.
그 작은 땅덩어리의 나라에서 뜨거운 심장의 고동소리가 울려퍼진다고.
한국의 안타까운 식민사회와 식민지 속에서도 자긍심을 잃지않는 한국이이란 내용으로
일장연설을 할만큼 한국인은 당시 베를린올림픽에서 재조명 받았어.
담배한대 피고오지...후우...
내가 이렇게 책상에 멍때리며 글을 쓰는 순간에도 이 자리가 민족을 위해 피땀흘린,
나의 선조들이 있기에 가능한거라 생각하며, 경건한 마음을 갖게되더군.
아... 이얼마나 가슴 벅찬 감동이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작위적이늬? 난 진심이야.
담배한모금에 경건한 마음을 추슬렀으니. 이제 더 까보자구!
아무튼 1936년 쯤엔 엔진기술력을 인정받아 독일 항공성에서 `반켈`에게 정부의 항공연구소에서 연구해보라고 초청했지만
권력에 반대입장이던 `반켈`은 가난을 선택했지.
`헤르만 괴링`(Hermann Goering 괴링은 나치의 돌격대장이야. 권력이 대단했지)이 그래도 그의 연구실적을 높이산다면서
독자적인 연구소를 세울 수 있도록 허가해줬어.
반켈은 괴링의 똑똑한 회유책에 끝내는 독일정부를 위해 일하게 되.
괴링이야... 결국 전범재판후 감옥에서 독약 먹고 자살을 하지~
반켈은 그후 독일정부를 위해 릴리엔탈(Lilienthal), BMW, DVL, 융커(Junker), 다임러 벤츠(Daimler-Benz)와
독일 공군 항공기, 해군 어뢰에 들어가는 로터리 밸브와 실링 기술을 개발하는 데 천재적인 실력을 발휘하지.
알지? 독학으로.
아무튼 이기간에 그는 다양한 DKM 프로토타입을 개발했하고 로터리 펌프와 컴프레서도 개발했어.
권불십년이라고 했던가.
잘나가던 니찌의 시절을 뒤로하고 1945년 프랑스군이 독일에 들어온 후 그는 연합군에 의해 1946년까지 콩밥을먹어.
그는 점령군에 의해 연구실을 폐쇄당했고, 그가 연구한 모든 내용은 몰수당했지.
프랑스를 내가 짱깨로 부르는 이유지. 레지스탕스? 프랑스는 유럽의 약탈자야.
약탈, 살인, 강간 수도 없이 자행했지. 문제는 정작 프랑스는 인정안하지.
나찌에 가담한 프랑스여인
개발자에게 더 이상 연구를 금지당한다는건 어떤 기분일까?... 대충 알끄야?
하지만, 반켈은 비밀리에 로터리 피스톤 엔진 구성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했어.
그는 1951년 린다우 암 보덴지(Lindau am Bodensee)에 TES(Technische Entwicklungsstelle)를 쎄우고,
같은 해 NSU(NSU Motorenwerke AG)와 계약을 맺고 로터리 엔진 개발을 계속하지.
그리고 마침내1954년 그는 로터리 피스톤엔진(Drehkolbenmotor, DKM)의 첫 설계를 완료하게되...
1957년 2월 1일 움직이는 프로토타입을 만들었고.
5월에는 프로토타입 로터리엔진은 21마력의 출력으로 2시간 연속 작동이 가능하게 되었지...짝짝짝!
그 후 첫 KKM 엔진은 'FIFA 스웨덴 월드컵'이 끝난 몇일 후 1958년 7월 7일 `칠석날` 작동됬어...
Enke(자료가 영~ 없구만)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로터리엔진을 생각한 후 수많은 사람들이 로터리엔진에 대한 설계를 했었지만.
펠릭스 반켈 만큼 오랫동안 끊임없이 로터리엔진을 연구한 사람은 없었어.
반켈은 로터리엔진에 실링, 스파크플러그 위치, 포트 타이밍, 냉각, 윤활, 연소, 소재, 생산 허용치(manufacturing tolerance) 등
모든 기술적 관점을 조사했지... 가만보니 자연과학같은걸 좋아했나봐... 아닌가? 클클클
결국 다른 이들은 모두 실패했지만, 독창적인 발명과 과학 기술을 결합 함으로써 로터리엔진을 개발해낸거지.
반켈이 독일의 패전후 로터리엔진을 끝까지 연구할 수 있었던 이유중에 하나가 NSU라는 회사가 있었기 때문인데.
원래 NUS는 재봉틀만드는 회사였어. 연합군에 폭격에도 살아남은 몇 안되는 회사라고 하지.
NSU는 알아서 찾아보도록해. 좋은 회사야 아직도 있어.
노년의 반켈은 그의 파트너인 에른스트 후첸라웁(Ernst Hutzenlaub)과 함께
1957년부터 자신이 특허를 낸 기술에 로열티를 거둬들이기 시작하지.
이후에 후첸라웁과 `반켈 주식회사`(Wankel GmbH)를 설립후 뛰어난 사업수완을 발휘하지.
이젠 씨를 뿌렸으니 거둬들여야지 않겠어? 맞는말이지.
이후에 로열티를 빨던 시절을 지내고, 1971년 8월에 `반켈주식회사`는 `론로(LonRho)`에 그들의 기술을 1억 마르크에 팔지.
지금돈으로 1억마르크는 500억정도해... 이 `론로`라는 회사는 지금 세계적으로 굉장히 큰 다국적기업이 됬는데.
우편,출판,기술,공학,과학,약품등 여러가지 지적재산권이나, 특허권등 손안대는데가 없지.
워낙 돈많은 부자가 만든 기업인지라. 론로에게 1억마르크는 껌이야.
그후 프라우엔호퍼연구소(Frauenhoffer Institute)에서 `반켈`을 영입하고 독일 린다우(Lindau)지역에
연구소 TES 를 만들어줬는데. 돈을 많이 벌어드린 반켈이 이 연구소를 매입했지.
TES는 1993년까지 다임러 벤츠에 후원도 해줬지, 반켈은 1969년 12월 5일 독일 뮌헨공대(Technische Universitat Munchen)에서
기술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독일연방에 수여하는 독일 엔지니어 골드메달을 수상했지.
1987년에는 교수로 활동하기도 했고... 재밋는 사실은 반켈이란 사람은 자동차용 엔진을 개발자였는데.
자동차 면허를 가진적이 없는 사람으로도 유명하지. 그리고 단 한번도 독일을 떠나본적도 없었고.
그는 독일에서 임상실험용 동물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반대파인걸로 도 알려져있어.
그후 1978년 그의 아내는 세상을 떠났는데,
반켈은 결혼은 했지만...자녀가 없이 살았어.
아내가 별세한 10년뒤 1988년 86세의 나이로 독일 린다우(일부 출처에서는 하이델베르크(Heidelberg))에서 별세했다고해~
어때 장황했나?
이제 mazda 로터리엔진에 대해서 썰을 풀어야 하는데. 아아아~~~~~~~ 어디부터해야할까.
아아 힘들어... 너무 힘든일이야.
누구나 쉽게.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하는데...
막막하지만...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풀어서 이야기 해줄께.
V형6기통 엔진이나 8, 혹은 직렬4나 6기통은 4행정(흡입, 압축, 폭발, 배기)으로
피스톤이 상하왕복으로 운동하면서 구동축을 원운동으로 바꿔 동력을 전달하지.
이해되?
근데 이 신기한 로터리엔진은 말이야...피스톤이 필요없는 엔진이야.
왜냐하면 엔진 내부의 로터(안에 회전하는 부분을 로터라고해)라는 부분의 구조상 공기와 연료가 동시에 유입되면서,
돌아가는 로터의 빈공간안에 진공상태로 만들며, 진공상태의 그 흡입력으로 자동압축이 이루어지면숴~~~~~~
스파크에 불꽃이 폭발하면숴~~~~~~ 그 힘으로 배기되는 구조지...
답을 얘기하자면 일반엔진은 2회전해야 1번폭발하고, 이 신기한 로터리엔진은 1회전에 3번을 폭발하지.
그래서 파워를 생산하는 효율이 높은거야. 이런 빠른 폭발로 구동축에 빠르게 토크를 전달할수 있고,
아주 작은 배기량으로 높은출력을 얻게되지. 2000cc엔진의 파워를 로터리엔진에서 얻고싶다면 3/1이하의 cc로만들면 되는거야
이 신기한 로터리엔진은 말이지.
컴퓨터 CPU와 같아, 싱글코어(cpu1개) 듀얼코어(cpu2개) 트리플코어(cpu3개)
말하자면 일반엔진이 싱글코어라면, 로타리엔진은 트리플코어 이상의 쿼드코어정도의 성능을 낸다고 봐야지.
괴로워 지기 시작하는데...
다음편도 빠르게 추스려서 올리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