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가 그리울 때 파찌아빠는 권농동 ‘순라길’의 콤콤한 삼합이나, 황학동 ‘30년 홍어찜’의 홍어찜과 통쾌한 국물, 공덕동 ‘전주식당’할머니의 넉넉한 인심을 떠올린다. 세 집 다 진작에 ‘파찌아빠의 아저씨 맛집’으로 소개를 했던 집들이다. 여기에 한 집을 더 보태겠다. 강서구 발산동 골목 안에 박혀있는 ‘토담집’이다.
파찌아빠가 토담집에 대한 첩보를 수집한 것은 최소 2~3년은 됐지 싶다. 파찌아빠에게 첩보를 제공한 이는 강서구를 기반으로 택시영업을 하는 택시기사였다. 파찌아빠는취중에 택시기사와 여러가지 세상사에 대해 얘기를 나누곤 한다. 그러는 와중에 더러는 쓸만한 맛집정보를 취득하기도 한다. 토담집에 대한 첩보도 그렇게 수집됐다.
그 후 오랫동안 토담집을 벼르기만 했었다. 암만 파찌아빠가 홍어를 좋아한다고 해도 혼자서 홍어를 먹어줄 만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어울려 토담집을 맛있게 먹어줬으면 하는 인물들이 강서구는 너무 멀다며 기피를 하는지라 그저 묵묵히 기회만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2년 이상의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기회를 포착했다. 강서지역민의 화합과 지역의 발전을 위해 무지 애를 쓰는 파찌아빠가 동네(?)의 토호들을 규합하여 신정동 언저리에 새로 생긴 막걸리집을 정찰 하고는 2차를 먹어주기 위해 발산동에 있는 토담집을 방문하게 된 것 이다.
‘두근 두근...네근...여덟근...열여섯근...서른두근... .... ...’
파찌아빠는 은근히 조여오는 긴장감에 손바닥에서 땀이 날 지경이었다. ‘과연 어떤 맛일까?’ 토담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도 온통 토담집에 대한 생각 뿐 이었다.
“사실 토담집은 파찌아빠도 2~3년간 벼르기만 했었지 오늘 처음 가보는 집 입니다.”
혹여 토담집의 홍어에 실망하게 될까봐 미리 꽁무닐를 뺄 수 있는 말을 뿌려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와우 밤 9시가 넘었는데 바글바글이네요. 이 집 정말 뭔가가 있는 집인가 봅니다.” “이제 막 일어선 자리가 딱 하나 있네요. 빨리 저 자릴 차지해야 겠는걸요.” “(으쓱)거봐, 3년간 벼른 집이라고 했잖아. 일전에 보니까 이 집이 맛집으로 몇 번 소개된 적도 있더라고...”
파찌일행은 입구에 있는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시간을 못 맞췄으면 이 자리라도 얻지 못할 뻔 했으니 말이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거진 삼합을 먹어주는 분위기다. 파찌아빠네도 삼합에 서울장수막걸리를 청하였다.
테이블 한 가운데 삼합 접시가 들어갈 만큼의 자리를 남겨놓고는 빼곡히 반찬으로 채워졌다. 하나하나의 때깔을 보니 그냥 헛으로 나온 반찬이 아니란 느낌이 전해져 온다. 김치만 해도 묵은지, 백김치, 갓김치에 파찌아빠가 좋아한다는 파김치까지 모두 네 종류였다. 여기에 된장국에 공기밥 하나만 얹어 놓으면 훌륭한 밥상이란 생각이다. 주방 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을 보니 매일 한 가지씩 매뉴를 바꿔가며 점심식사를 내고 있었다. 일곱 가지 메뉴(된장찌개.김치찌개 등)를 한 차례씩 모두 먹어줄려면 최소 7번을 더 방문해야 됐지만 기꺼이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삼합이 나왔다. 당연히 값싼 칠레산 홍어를 삭혀서 내온 것 이지만 쥔장의 솜씨가 좋아선지 그리 나쁘지 않은 때깔을 띄고 있다. 함께 나온 삼겹살 삶은 것은 살코기 부분이 다소 뻣뻣해 보였지만 졸깃한 돼지껍데기가 붙어있어 허접함을 상쇄시킬 수 이었다. 일단 홍어회만 한 점 입안에 넣어봤다.
“(오물오물)흠...흠...흠...착한 맛이구만. 그리 꼬리지는 않지만 제법 괜찮네.” “확 삭은 감이 떨어지네요. 조금 더 셌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러게요. 조금 모자르다. 홍어는 코가 뻥 뚫려야 제 맛 인데.” “글쎄...과연 그럴까? 홍어를 즐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홍어를 먹어준다면 무작정 팍 삭혀서 꼬릿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입 천장이 한 꺼풀 홀라당 까져야만 맛있는 홍어라고 하는데 파찌아빠의 의견은 좀 다르거든. 같은 발효식품인 김치를 예로 들어 보자구. 여기에 네 가지의 김치가 있다구. 묵은지는 묵은지대로 백김치는 백김치대로 각각의 맛이 있는 거라구. 파김치와 갓김치도 제각각의 맛이 있는거고...또 어떤 경우에는 일부러 겉절이로 만들어서 배추의 아삭한 맛을 즐기기도 한다구. 지역에 따라서는 생고추를 갈아서 넣어주기도 하고 고추가루를 넣기도 하잖아. 젓갈도 제각각이고...이북에서는 육수를 부어주기도 한다구. 묵은지를 좋아해야 김치를 잘 먹는 것이 아니잖아. 자신의 기호에 따라 각자 맛있는 김치를 먹어주면 되는 거라구. 실제로 우리는 다양한 김치들을 제각각의 맛으로 먹어주고 있잖아. 홍어도 마찮가지라구. 꼭 팍 삭힌 홍어를 먹어줘야 홍어를 잘 먹는 것은 아니라고 봐. 물론 덜 익은 김치의 맛이 애매하듯이 홍어도 삭힘의 정도에 따라 맛의 차이가 크지만 이 정도라면 충분히 제 맛이 나는 홍어라구. 순라길이나 여수집의 홍어를 먹어봐도 대게는 이 정도로만 홍어를 삭여서 손님 상에 낸다구. 목포나 흑산도엘 가도 홍어를 제대로 만질 줄 안다는 집에서는 꼬릿내가 진동을 하는 홍어를 내놓지 않는다구.” “그렇기도 하겠네요. ^^;;” “여기에 우리 집사람을 데려오면 무지 좋아 하겠는걸요. 우리 집사람이 홍어를 좋아하거든요.”
파찌아빠의 잘난 척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 남자 중 한 남자가 불쑥 아내가 홍어를 좋아한다며 나중에 아내와 함께 토담집에 와서 삼합을 먹어줘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런 생각은 저 혼자서 마음 속으로 할 것이지 괜히 밖으로 끄집어 내 놓아서 옆에서 열심히 홍어를 먹어주던 파찌아빠를 죄책감에 빠져들게 한다. ‘같이 좀 먹자구...아빠 맛있는 거 먹고싶어요....맨날 혼자만 먹고 다니구....아빠 나도 좀 사주라요...’ 어디선가 환청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으쓰...알았다구.’
접시에 담겨진 삼합이 거의 사라져 갈 때 쯤 플라스틱 뚝배기에 담긴 홍어탕이 나왔다. 홍어탕은 상시 서비스로 제공되는 것 이란다. 맛은 홍어를 살짝 토렴만 한 듯 무지무지 순한 맛이다. 홍어집에서 나온 서비스 국물이 아니었다면 홍어탕인줄도 몰랐을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홍어탕은 홍어내장을 듬뿍 넣고 끓여서 속이 뻥 뚫리는 청량감이 감돌아야 제 맛인데...아쉽다.
========================== ! 잠깐정보 : ‘토담집’ 찾아가기 ========================== 폭 삭힌 홍어를 기대한다면 토담집에 가 봐야 헛일이다. 토담집의 홍어는 콤콤한 냄새가 코끝을 살짝 스치는 정도의 홍어를 내는 집이기 때문이다. 입안에서도 은근히 시원하다는 느낌 뿐이지 코가 뻥 뚫리고, 귀 까지 뻥뚫릴 정도로 얼얼한 맛이 아니다. 파찌아빠의 심심한 입맛으로도 약간의 아쉬움이 들 정도다.
1. 가는길 : 서울 강서구 발산동의 골목 안에 있다.전화번호 02-3661-1077. 발산역 사거리에서 강서구청 사거리로 가다 보면 중간 쯤에 작은 사거리가 나온다. 그 사거리에서 훼미리마트를 끼고 우회전을 한 후 길을 따라 150m쯤 들어가면 길 왼편에 있다.
2. 메뉴 : 사진에 다 나와 있다.
3. 총평 : 저렴한 가격에 허접하지 않게 먹어줄 수 있는 집이다.
4. 파찌아빠 따라먹기 : 8명이 두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서 삼합 둘에 홍어찜 하나를 먹어주면 좋겠단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