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걸은 죽었다 - 5

_공유천사_ 작성일 05.07.24 20:3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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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걸은 죽었다 - 5












-챔피언-












초등학생치고 생각이 너무나 깊었던 아이..장형식.

그런 장형식을 보고 있으면 책으로 접했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가 생각이 난다.

녀석은 우리 또래들보다 주먹질은 물론..행동,말,사고방식 모든 것이 한단계 위였다.

하지만 형식이 못하는게 딱 한가지 있었는데...그건 공부였다.

축구부에서 운동을 하는 형식은 시험도 제때 안치는 경우가 수두룩 했고

시험을 쳤다고 한들 성적표엔 대부분 양,양,양,가,가 혹은 미도 보인다.

얼굴 잘 생기고 똑똑하고(반장까지 하면 더 좋고)운동까지 잘하는 남학생들이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은 반면에 형식은 같은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건 어찌보면 남자들 사이에서 가장 강한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그 당시엔 그랬다.

학교생활을 편하게 하고 싶다거나 학교에서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들을려면

주먹 대장과 친해지는 건 필수였던 것이다.

아마 장형식은 아직도 모르겠지만 나처럼 비리비리 하고 약했던 녀석들 중엔

녀석과 친해지고 싶어서 별에 별짓을 다하는 녀석도 있었고 관심,호기심이 아닌

이성적으로 좋아하던 애들도 꽤 됐던걸로 안다.

그리고..어쩌면 나도 그 부류중 한 명 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너 나 싸이코라는 거 모르지?그러니까 넌 나한테 잘못 걸렸다는 거야.
찍혔다는 말 아냐?너 지금 나한테 찍힌 거야.알겠어?
내가 분명히 말하건데 너 오늘부로 애들한테 맞고 다니면 내가 너 가만안둬.
최대한 짧은 시간내에 강해지고 쎄져라.
안 그러면 6년이란 시간동안 나 때문에 꽤 고달프게 될꺼다."




난 변해가기 시작했다.

녀석 말대로 6년이란 시간을 끔찍하게 보내기 싫어서?

물론 처음엔 맞기 싫어서,살아남기 위해서 변하려 했었지만 나중엔 그게 아니였던 것 같다.




장형식은 축구부였던지라 수업에 안들어 오는 경우가 꽤 많았고..

그럴때면 녀석의 빈자리를 보며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껴야만 했다.

그러다가 교실에서 녀석을 볼 수 있는 날엔 하루종일 기분이 들떠있었고

혹시라도 녀석의 시선이 나를 잠시라도 스쳐가는 순간이 찾아오면

난 최대한 예쁜척,귀여운척-_-; 행동을 하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생각이지만 당시 녀석의 관심을

너무나 받고 싶었던 나는 내 자신이 남자라는 사실에 정말 증오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처음으로 주먹을 쥐고 싸우던 날이였다.

형식이 없는 틈을 타 한 녀석이 나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백곰,하이에나,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배웠던 것들을 실전에 써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정작 그런 상황이 찾아오니 더럭 겁부터 났고 벌써 저 멀리 도망가 있는

나의 투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병신..내가 그러면 그렇지..하는 자책감에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던 찰나

교실 앞문으로 들어오던 장형식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은 마음,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

아마 그런 것과도 비슷한 걸지도 모른다.

나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녀석을 향해 나도 모르게 주먹을 내질렀고

내 주먹은 녀석의 얼굴을 정확하게 명중했다.

단 한방이였다.그렇게 비웃으면서 시비를 걸던 녀석이 나의 주먹 한방에 쓰러져 버린것이다.

물을 끔찍히 싫어하는 사람이 물에 들어가듯 ..

내가 두 주먹을 쥐고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 한 것이였다.

장형식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내 마음은..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을 정도로 간절한 것이였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날 보는 반 아이들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강한자의 보호아래에 있는 것과 내 자신이 강해진 것의 차이를..

우리 반 아이들은 형식이 교실에 있거나 없거나 나에게 함부러 대하지 못했고 쉽게 보지도 않았다.

내가 만만한 녀석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느꼈기 때문이다.




나의 그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형식은 여전히 날 거들떠 보지 않았다.

아니 녀석은 애초부터 또래 아이들과는 어울려 다니지 않았다.

녀석은 자기 자신이 마치 고독한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항상 혼자 다니는 걸 좋아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어울리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건 같은 축구부 사람들이였다.

녀석은 교실에 있을땐 웃는 모습을 단 한번도 보여주지 않지만

축구복을 입고 운동장으로 나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축구부 아이들과 운동장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녀석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미소를 내 앞에서 지어 주었더라면...

장형식은 아직도 모를 것이다.

내가 녀석 몰래 축구부에 가입하러 갔다가 떨어졌다는 사실을..-_-;




2학년에서 5학년이 될때까지 형식과 나는 다른 반이 되어야만 했다.

아마도 녀석의 머릿속에 나라는 인간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나에게 찍혔다는 등 그런 말을 한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랬기에 내가 2학년때부터 5학년때까지 숱한 싸움질과 주먹질로 인해 ..

녀석의 바로 밑에까지 치고 올라간 사실도..녀석에겐 별 흥미없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6학년이 되던 해였다.

내가 장형식과 같은 반으로 배치 받던 순간이였다.

당시 남학생들에게 있어 학교에서의 가장 큰 이슈와 관심거리는 장형식과 나와의 충돌이였다.

넘버 원과 넘버 투의 신경전은 지켜보는 입장으로썬 무척이나 흥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녀석과 나의 충돌은 예고 되어있는 시합처럼 너무나 당연한 것이였다.




"너 이새끼.나 모르겠냐?"




날 기억하지 못할꺼라 생각하던 형식은 나의 상상을 완전히 깨고 있었다.

예전과 똑같은 눈빛,똑같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그의 눈에 비춰진 내 모습은 1학년때 비실비실 거리던 기집애 같은 최준의 모습일 것이다.

재회의 순간을 그렇게 기다려왔건만...

날 한참아래 쳐다보듯 하는 녀석의 시선에 실망한 것도 잠시..




"그래 반갑다 새끼야.^^"




라는 생각지도 못한 나의 한마디에 녀석은 깜짝 놀란듯 보였다.

장형식은 그런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엽다고 말했고..

난 그런 녀석의 팔을 강하게 쳐 버린게 충돌의 시작이였다.

방과 후 모든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우리들의 대결은 시작되었다.

어쩌면 장형식과 나는 관중들의 흥미를 채워주기 위한 무대위의 삐에로 였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아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싸움은 금방 끝이 났다.

자신이 당연 최고라 생각하고 똥개를 가지고 놀려는듯 상대하는 장형식과

강해지기 위해 유도,권투,합기도를 전문적으로 배워온 나와의 대결에서

누가 이길지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였다.

나에게 달려들때마다 땅으로 팽겨쳐지는 장형식을 보며 많은 아이들 역시 놀란 표정이였다.

항상 최고라 생각했던 자신들의 우상이 그렇게 쉽게 짓밟히고 무너질 줄은...

예상도 하지 않았을테니까 말이다.

난 장형식에게 단 한번도 공격하지 않았다.

다만 녀석이 덤벼올때마다 방어를 했을 뿐이다.

땅바닥에 쓰러진 녀석은 자신이 기력이 다했음을 느꼈던지 날 향해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너 왜 이렇게 강해졌냐?내가 졌다.."




우리를 지켜보던 관중들은 5년동안의 챔피언이 그 자리에서 밀려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가슴속에 품은채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아이들에게 있어 내일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내일이 될 것이다.

장형식은 애들이 다 사라지고 나자 땅바닥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날 돌아섰다.

힘없이 걷고 있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

항상 자신감있게 당당하게 행동하던 녀석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내가 바랬던건 녀석에게 이기는 것도 아니였고 한 학교에서의 넘버원이 되는 것도 아니였다.

난 단지 녀석에게서 관심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축구를 즐길때처럼 단 한번만 환하게 웃어주길 바랬을 뿐이다.

녀석에 대한 나의 감정은 그때부터 변하기 시작했지만 난 부정하지 않는다.

현재가 변한다고 추억까지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녀석을 볼때마다 떨리고 두근거리던 가슴..

녀석에게 이성으로 보이고 싶었을 정도로 그 간절한 마음들




어렸을때니까 웃으면서 하는 말이지만..

아마 그녀석은 나에게 있어 첫사랑이였을지도 모른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때 느꼈던 그 감정들을 최근들어 다시 느끼고 있다.













내가 일을 마칠쯔음 찾아온다던 털모자는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녀를 기다린건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은 있었다.

그녀가 정말 편의점으로 찾아왔다면 따끔하게 충고해줄 생각이였다.

오전 아르바이트생과 교대를 하고 편의점을 나섰다.

항상 그렇듯 야간에 편의점 일을 하고 밖을 나올때면..햇살이 너무 눈부시다.

하지만 오늘은 눈을 뜰 수 없을만큼 눈부셨던 것 같다.




"아저씨!"




이건 털모자 목소리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기다렸잖아."




털모자는 교복차림이 아니였다.

하얀 털모자에 하얀 자켓 그리고 하얀 미니스커트...

온통 흰색으로 치장한 그녀의 모습에 눈이 부셨고,

그 흰색보다 더 밝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눈이 부셨다.

순간 여고생에게서 진한 여자의 향기를 맡고 있는 나는 변태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돈은 준비해놨겠지?"




털모자의 그 말 한마디에 그 눈부신 모든 환상이 깨져버린다.




"니가 말하는게 혹시 그거냐?"




나의 그 질문에 털모자는 한참을 웃어제꼈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서 쳐다볼 정도로 말이다.




"아저씨.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지마.나 배꼽잡아."




지금 털모자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나의 모습은

영낙없이 어렸을 시절의 내 모습을 연상케 했다.




"나 아저씨 때문에 일찍 일어난다고 밥도 안먹고 나왔거든?
지금 배고파 죽겠으니까 얼른 밥 사줘."




밥이고 자시고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따끔하게 혼을 내야겠다는 생각으로 큰 소리로 말했다.




"비싼건 안돼!!;"




털모자와 나는 근처 분식집으로 향했다.

무턱대고 보쌈집으로 들어갈려는 그녀를 간신히 말린 결과였다-_-;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궁시렁 궁시렁대기 시작했다;




"다른 아저씨들은 비싸고 맛있는거 사주는데 이게 뭐야."




난 그녀의 컵에 물을 따르며 물었다.




"아는 아저씨들이 많은가 보지?"

"몰라서 물어?그 사람들 다 고객이야."

"고객?"

"뭘 거래하든 내가 하는 것도 결국은 거래잖아?
그러니까 그들은 내 고객인셈이지.일단 날 만나고 나면 모두 나만 찾아오니까."

"만나서 뭘 하는데?"

"아저씨."




난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응시한다.




"아저씨는 아무것도 모르는척 순진한척 하지만..사실 다 알고 있잖아?"

".............."

"결국 아저씨도 나랑 섹스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안그래?"




순간 물을 마시고 있다가 그 자리에서 다 뱉어버렸다.




"내가 좋아서 내가 하고 싶어서 하겠다는건데 왜 안되는데?
내가 내 몸을 이용해서 돈을 벌겠다는데 왜 지들이 지랄하는 건데?안그래?"

"으음.그게 그렇기도 한데.."




야 최준 이새꺄!!!지금 무슨 소릴 하는거야?정신차려!!!-_-




"그리고 아저씨가 돈 주고 쾌락을 사겠다는데 그걸 누가 뭐래?
내가 올해 19살인데 내 나이 되면 알꺼 다 알잖아?
요즘 10대에 못 해본 애들보다 해본 애들이 더 많을껄?
솔직히 아저씨도 많이 해봤잖아.안그래?
아저씨 나이에 아직 못해봤다면 그건 병신이겠고.."




그럼 난 병신인가?;;




"어쨋든 난 우리나라 아저씨들 정치하는 거 보면 좆가태.
솔직히 나보고 정치 하라고 하면 걔네들보단 더 잘하겠다."




그렇게 털모자의 열띤 헛소리;;가 계속 이어지다가..

아까 주문했던 김밥 삼인분과 라면 두그릇이 나왔다.

젓가락을 들고 라면을 먹을려고 하는데...

털모자가 그런 날 유심히 쳐다보더니 말한다.




"아저씨..라면 먹고 본전이나 찾을 수 있겠어?!"




-_-;;




정말 말 한마디 한마디가 놀라움의 연속이다.

이 지지배야.넌 까져도 어떻게 이렇게까지 까졌니?;;




그렇게 그녀와 나는 열심히 먹으며 배를 채우고 있는데..

분식집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난 고개를 들어 출입문 쪽을 쳐다보니 낯선 교복을 입고 있는 남학생 다섯명이

분식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고 나의 맞은 편에 앉아있던 털모자도 고개를 돌려

그 남학생들을 쳐다보더니 재빨리 벽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야 만다.

난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래?아는 사람들이야?"




그러자 털모자는 날 향해 인상을 쓰며 자신의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대고는

조용히 하라는 무언의 암시를 건넨다.

갑자기 무슨 일일까?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 남학생들을 슬쩍 쳐다보았고 ..헐..;




요즘 만나는 고등학생들마다 인상이 왜 저럴까-_-;;




그 남학생들은 내가 자기들을 쳐다본 걸 느꼈던 것일까?

남학생들 중 한명이 날 향해 씨익 웃는다.

내가 저 웃음의 의미를 모를리가 없다.

저건 약자에게 겁을 줄때 짓는 비웃음과도 비슷한 것이다.

기분이 무척 상했지만 티를 낼 필요는 없는 법이다.

남자들 심리가 그렇잖은가?

쟤네들은 남자들 다섯이고 난 여자와 함께 앉아있으니 당연히 얕볼 수 밖에..




"쳐다보지마."




털모자는 고개를 최대한 벽쪽으로 향한채 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난 다시 "왜?"라고 묻고 싶었지만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는 털모자 말대로 ..

벽을 향해 대가리를 돌렸다..-_-

비굴했지만;상황을 모르는 나로써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털모자와 나의 그런 행동도 이미 늦었나보다.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을만큼 심각해진 상태였다.

아까부터 날 계속 쳐다보던 녀석이 나에게서 그녀쪽으로 시선을 옮겨가더니..

자신 옆에 있는 애들에게 뭐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리고는 곧 들려오는 한 녀석의 목소리..




"저기 혹시..?"




그러자 내 앞에 있던 털모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아 씨;파..쳐다보지 말래니까...."




험악하고 살벌한 분위기가 분식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들이 우리에게 환영받지 못할 손님인건 분명했다.









Written by Love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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