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우린 혜성이 친구잖아. 내 친구 애인이 남자 새끼들 만나고 다니며 바람피는데..우리가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
진미는 기가막힌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다니든 말든..너희들이 왜 지랄이냐고!! 말했지?혜성이랑 나랑은 끝났다고..왜 이렇게 말귀를 못알아 들어?"
진미의 그 말에 인상 가장 험악하게 생긴 녀석이 입을 연다.
아마도 이녀석이 이 중에 가장 목소리에 힘이 있는 녀석일 듯 싶다.
"박진미.목소리 제법 크다?"
"내,내가 뭘.;;"
"니가 예전에 혜성이랑 사겼을때야 우리한테 막말 해도 가만히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안그래?
진미를 바라보는 그녀석의 표정에 의미심장한 웃음이 서려있다.
"그 좀 반반하게 생긴 면상가지고 여기 저기 남자들 후리고 다니나 본데.. 주먹 좀 쓰는 애들 많이 안다며?그 좆밥 새끼들 다 데리고 와봐!! 우리가 다 박살내버릴라니까. 니깟 기집애가 우리한테 상대나 된다고 생각해?"
진미의 얼굴색이 눈에 띄게 붉어진다.
하지만 그런 얼굴색과 달리 진미가 내뱉는 말들은 예상외였다.
"머,먼저 시비를 건 쪽은 너희들이잖아."
이건 정말 내가 봐오던 그녀의 모습이 아니다.
도대체 저 녀석들이 누구길래 이렇게 기어드는 목소리를 내뱉는가?
하긴 나보다 더 하겠냐만은..-_-
"혜성이가 항상 너희 학교 앞에 찾아가는 거 알지?"
"그,그랬나.."
"넌 맨날 애들 사이에 숨어서 도망가거나 그러잖아.우리가 모를 줄 알았냐?"
"................"
"혜성이가 너 진짜 좋아하는거 같더라. 우리가 보다 못해서 너 잡아오겠다니까 깜짝 놀라며 말리질 않나.쯧쯧.."
이새끼들 지금 영화찍나?도대체 누가 누굴 잡아 간다는 거야?
"뭐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 줄이고.. 혜성이 지금 학교에서 수업 받고 있는데 너 있다고 하면 바로 텨 올꺼다. 그러니까 어디 도망갈 생각 하지 말고 여기 딱 있어.도망치다가 잡히면 아주 그냥 시발.."
이제서야 대충 상황이 돌아가는걸 알 것 같다.
진미는 저 남학생들이 말하는 혜성이란 친구와 사겼었고..
둘이 어떤 이유로 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혜성은 여전히 진미를 좋아하고
진미는 헤어진 후 마음이 변했다?그래서 혜성이란 녀석에게서 도망치려한다?
뭐 대충 이정돈가?
"어 혜성이냐?나 성호인데..지금 진미 그 기집애 우리 옆에 있거든? 그럼.당연히 진짜지..야 진짜라니까.그러니까 수업 째고 어서 와라. 우리 여기 항상 오는 김밥xx 알지?그쪽으로 와."
그렇게 전화를 끊던 녀석은 진미와 나를 번갈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근데 니 옆에 앉아 있는 새끼는 누구냐?"
진미는 날 슬쩍 쳐다보더니 말했다.
"내 남친."
-_-...이건 또 뭔소리?
"풉..박진미 너도 저런 기생호라비 같은 스타일 좋아하냐? 쟤 한 주먹이면 날아가겠는걸?"
지금 혹시 내 얘기하는건가?-_-;
"말 함부러 하지마.이 사람 너희들 보다 나이도 많어."
"오 그래?그럼 우리한테 행님이네?"
녀석이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며 나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난 그런 녀석을 향해 수줍게 웃어주었다.
지금의 내 모습..정말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_-;
내 자신이 이렇게까지 견딜 수 있다는게 존경스러울 뿐이다.
"아저씨."
그 인상험악한 녀석이 날 노려보고 있다.
난 손가락으로 내 자신을 가리키며 묻는다.
"나?"
"그럼 여기 아저씨가 댁 말고 더 있수?"
"어 그래.왜 불렀니?^^"
"아저씨 저 기집애랑 사귀유?"
"아니 무슨..아악;;"
맞은편에 앉아있던 진미가 자신의 발바닥으로 나의 발등을 꾸욱 누르고 있었다.
"내가 아저씨한테 충고 한마디 하겠는데.. 좀 있으면 우리학교에서 가장 무섭고 성격 드러운 녀석 하나 오거든요? 이 근처 학생들은 통x상고 이혜성이라고 이름만 대면 다 아는데.. 뭐 아저씨야 그런건 잘 모를테니까 됐고... 하여튼 걔 오면 아저씨 절라 맞을텐데..적당히 하고 사라지는게 어때요?"
왜 요즘 나에겐 이런 일들만 겹치는 것일까?
마치 하늘이 나의 인내심이 어디까진지 시험해보는 것만 같다.
1단계를 이겨내면 2단계를 시험하고 2단계를 이겨내면 3단계가...
조용히 살겠다는데!!왜 날 가만히 두질 못하는 거냐고!!왜!!
애초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 따위를 하는게 아니였는데..
모든게 편의점에서 일하고 박진미를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그녀라는 사람을 모르고 있었더라면 난 지금 이런 자리에서 수모를 당하고 있진 않았겠지.
이런 핏덩이 같이 어린새끼들한테 멱살 잡힐 일들이 벌어질지 정말 상상도 안했었는데.. -_-
하지만 어쩌겠는가?돌리고 싶어도 돌릴 수 없는게 과거임을...
"그럼 슬슬 사라져볼까..-_-a"
"아저씨!!!!"
박진미가 무척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와 아저씨 진짜 절라 치사하네?"
"내가 뭐?"
"도망갈 길이 생겼다고 그렇게 냉큼 혼자 도망가냐?"
"이건 나랑은 상관 없는 문제잖니?"
"상관 없다구?아저씨 내 남친이잖아!!근데 왜 상관없어??"
"뭐,뭐시라?남친?;;-_-;"
나와 진미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남학생들 중 한명이 중얼거린다.
"저 아저씨..솔직히 좀 치사하긴 하다."
박진미는 그녀석이 말에 힘입어 날 다시 추궁하기 시작한다.
"거봐.아저씨 들었지?쟤네들도 아저씨 치사하대잖아!!! 자신의 여자도 못 지키는 남자새끼가 고추 달고 사는게 부끄럽지도 않아?"
"너 지금 약먹었니?;;"
"와 말하는 것좀 봐라?정말 어이없다...그래.가라.가라구 이새끼야!"
..처음으로 여자를 패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흥분해선 아니된다.
괜히 흥분해서 잘 되어 가고 있는 일을 망칠 필요는 없단 말이다..
"그래 나 진짜 갈께-_-;재밌게들 노세염."
자리에서 일어나 날 향해 코웃음을 치는 박진미를 돌아서서는 계산대 앞으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박진미의 결정타...
"으이구 생긴것만 여자같다 했더니 하는 짓도 여자같네. 지 보다 나이 어린 것들한테 맨날 쫄기나 하고.. 너 같은 겁쟁이 새끼들은 학창 시절 말안해도 뻔하다.뻔해."
내가 이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
계집애 같다는 말..
그건 내가 제어할래야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
절대 건드려선 안될 부분이다.
예전에 아버지가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
"권투 선수들의 시합은 링위에 올라가서 종이 울리는 순간이 아니라 링위에 올라가서 서로의 눈빛을 마주했을때 부터다. 니가 수 많은 상대들과 맞서다 보면 .. 간혹 상대방의 덩치,눈빛,기에 지레 겁부터 먹게 되는 경우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럴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거라. 지금 니 앞에 있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으려 한다고 ...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사람은 무엇을 지키기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그 힘은 2배,아니 10배로 증가하게 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