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걸은 죽었다 - 6

_공유천사_ 작성일 05.07.24 20: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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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걸은 죽었다 - 6












-가장 지키고 싶은 것-











"저기 혹시..?"




옆 자리에 앉아있던 남학생들의 표정을 보니 털모자를 잘 아는 듯 하다.

나의 시선은 그 남학생들에게서 털모자 쪽으로 옮겨간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바보가 아니고서야 알 수 있었다.

저 남학생들은 우리에게 환영받지 못할 손님들이다.

털모자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남학생들 중 가장 험악하게 생긴 녀석이

"안x여상 박진미 아닌가?" 하고 중얼거렸다.

털모자의 짧은 한숨소리가 나의 귀에까지 들려온다.

도대체 저들은 그녀와 어떤 관계인걸까?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털모자가 이렇게까지 피하려 하는 걸 보면..

그 짧은 시간에 나의 머릿속에선 온갖 상상의 나래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남학생들의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아닌가봐."

"그런가?사람 잘못 봤나?"

"미친.아니긴 뭘 아냐.저 긴머리랑 흰색 미니스커트.박진미 특유의 이미지잖아!"

"맞다.박진미 맞다!"

"하하.그럼 지금 우리를 모른척 하고 있는 거야?귀여운걸?"




그때였다.내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있던 털모자가 고개를 들더니

그 남학생들을 응시한다.자연스럽지 못한 미소를 지으며..




"너희들 오랜만이네.^^;"




그녀가 박진미임을 확인한 그들은 놀란 표정으로 다시 대화를 주고 받는다.




"야 진짜 박진미다!"

"그냥 때려맞춘건데..진짜 맞네?"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물컵만을 만지작 거리고 있던 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걸 느꼈던지 내 자신이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쟤네들 누구냐?"




털모자는 나의 그 질문이 귀찮다는듯 인상을 찌푸린다.




"아저씨가 알아서 뭐하게?나 대신 해결해줄꺼야?"

"아,아니.--;"

"그럼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니..-_-

내가 병신처럼 행동한다고 정말 병신으로 보이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근 며칠간 털모자에게 비춰진 나의 행동들은 충분히 병신 취급을 당할만도 하다-_-;

여태껏 정의의 사도인냥 남의 일에 끼어들어 얼마나 큰 손해를 보았던가.

항상 그랬다.내가 단 한번만 참고 넘어가면 아주 쉽게 잊혀질 일들이였다.

그랬기에 난 지금 박진미와 남학생들이 나누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어이 박진미.혜성이가 너 찾으면 꼭 데려오라던데.."

"너 매일마다 혜성이 피하느라 고생많다?"




혜성?혜성은 또 누구지?




진미(털모자)는 그들의 비아냥거림에 아랑곳 하지 않은채 말한다.




"혜성이와 나는 끝난지 오래야.너희들이 뭔 상관인데?"

"우리?우린 혜성이 친구잖아.
내 친구 애인이 남자 새끼들 만나고 다니며 바람피는데..우리가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




진미는 기가막힌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다른 남자들을 만나고 다니든 말든..너희들이 왜 지랄이냐고!!
말했지?혜성이랑 나랑은 끝났다고..왜 이렇게 말귀를 못알아 들어?"




진미의 그 말에 인상 가장 험악하게 생긴 녀석이 입을 연다.

아마도 이녀석이 이 중에 가장 목소리에 힘이 있는 녀석일 듯 싶다.




"박진미.목소리 제법 크다?"

"내,내가 뭘.;;"

"니가 예전에 혜성이랑 사겼을때야 우리한테 막말 해도 가만히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안그래?




진미를 바라보는 그녀석의 표정에 의미심장한 웃음이 서려있다.




"그 좀 반반하게 생긴 면상가지고 여기 저기 남자들 후리고 다니나 본데..
주먹 좀 쓰는 애들 많이 안다며?그 좆밥 새끼들 다 데리고 와봐!!
우리가 다 박살내버릴라니까.
니깟 기집애가 우리한테 상대나 된다고 생각해?"




진미의 얼굴색이 눈에 띄게 붉어진다.

하지만 그런 얼굴색과 달리 진미가 내뱉는 말들은 예상외였다.




"머,먼저 시비를 건 쪽은 너희들이잖아."




이건 정말 내가 봐오던 그녀의 모습이 아니다.

도대체 저 녀석들이 누구길래 이렇게 기어드는 목소리를 내뱉는가?

하긴 나보다 더 하겠냐만은..-_-




"혜성이가 항상 너희 학교 앞에 찾아가는 거 알지?"

"그,그랬나.."

"넌 맨날 애들 사이에 숨어서 도망가거나 그러잖아.우리가 모를 줄 알았냐?"

"................"

"혜성이가 너 진짜 좋아하는거 같더라.
우리가 보다 못해서 너 잡아오겠다니까 깜짝 놀라며 말리질 않나.쯧쯧.."




이새끼들 지금 영화찍나?도대체 누가 누굴 잡아 간다는 거야?




"뭐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 줄이고..
혜성이 지금 학교에서 수업 받고 있는데 너 있다고 하면 바로 텨 올꺼다.
그러니까 어디 도망갈 생각 하지 말고 여기 딱 있어.도망치다가 잡히면 아주 그냥 시발.."




이제서야 대충 상황이 돌아가는걸 알 것 같다.

진미는 저 남학생들이 말하는 혜성이란 친구와 사겼었고..

둘이 어떤 이유로 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혜성은 여전히 진미를 좋아하고

진미는 헤어진 후 마음이 변했다?그래서 혜성이란 녀석에게서 도망치려한다?

뭐 대충 이정돈가?




"어 혜성이냐?나 성호인데..지금 진미 그 기집애 우리 옆에 있거든?
그럼.당연히 진짜지..야 진짜라니까.그러니까 수업 째고 어서 와라.
우리 여기 항상 오는 김밥xx 알지?그쪽으로 와."




그렇게 전화를 끊던 녀석은 진미와 나를 번갈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근데 니 옆에 앉아 있는 새끼는 누구냐?"




진미는 날 슬쩍 쳐다보더니 말했다.




"내 남친."




-_-...이건 또 뭔소리?




"풉..박진미 너도 저런 기생호라비 같은 스타일 좋아하냐?
쟤 한 주먹이면 날아가겠는걸?"




지금 혹시 내 얘기하는건가?-_-;




"말 함부러 하지마.이 사람 너희들 보다 나이도 많어."

"오 그래?그럼 우리한테 행님이네?"




녀석이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며 나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난 그런 녀석을 향해 수줍게 웃어주었다.

지금의 내 모습..정말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다-_-;

내 자신이 이렇게까지 견딜 수 있다는게 존경스러울 뿐이다.




"아저씨."




그 인상험악한 녀석이 날 노려보고 있다.

난 손가락으로 내 자신을 가리키며 묻는다.



"나?"

"그럼 여기 아저씨가 댁 말고 더 있수?"

"어 그래.왜 불렀니?^^"

"아저씨 저 기집애랑 사귀유?"

"아니 무슨..아악;;"




맞은편에 앉아있던 진미가 자신의 발바닥으로 나의 발등을 꾸욱 누르고 있었다.




"내가 아저씨한테 충고 한마디 하겠는데..
좀 있으면 우리학교에서 가장 무섭고 성격 드러운 녀석 하나 오거든요?
이 근처 학생들은 통x상고 이혜성이라고 이름만 대면 다 아는데..
뭐 아저씨야 그런건 잘 모를테니까 됐고...
하여튼 걔 오면 아저씨 절라 맞을텐데..적당히 하고 사라지는게 어때요?"




왜 요즘 나에겐 이런 일들만 겹치는 것일까?

마치 하늘이 나의 인내심이 어디까진지 시험해보는 것만 같다.

1단계를 이겨내면 2단계를 시험하고 2단계를 이겨내면 3단계가...

조용히 살겠다는데!!왜 날 가만히 두질 못하는 거냐고!!왜!!

애초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 따위를 하는게 아니였는데..

모든게 편의점에서 일하고 박진미를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그녀라는 사람을 모르고 있었더라면 난 지금 이런 자리에서 수모를 당하고 있진 않았겠지.

이런 핏덩이 같이 어린새끼들한테 멱살 잡힐 일들이 벌어질지 정말 상상도 안했었는데.. -_-

하지만 어쩌겠는가?돌리고 싶어도 돌릴 수 없는게 과거임을...




"그럼 슬슬 사라져볼까..-_-a"

"아저씨!!!!"




박진미가 무척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와 아저씨 진짜 절라 치사하네?"

"내가 뭐?"

"도망갈 길이 생겼다고 그렇게 냉큼 혼자 도망가냐?"

"이건 나랑은 상관 없는 문제잖니?"

"상관 없다구?아저씨 내 남친이잖아!!근데 왜 상관없어??"

"뭐,뭐시라?남친?;;-_-;"




나와 진미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남학생들 중 한명이 중얼거린다.




"저 아저씨..솔직히 좀 치사하긴 하다."




박진미는 그녀석이 말에 힘입어 날 다시 추궁하기 시작한다.




"거봐.아저씨 들었지?쟤네들도 아저씨 치사하대잖아!!!
자신의 여자도 못 지키는 남자새끼가 고추 달고 사는게 부끄럽지도 않아?"

"너 지금 약먹었니?;;"

"와 말하는 것좀 봐라?정말 어이없다...그래.가라.가라구 이새끼야!"




..처음으로 여자를 패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흥분해선 아니된다.

괜히 흥분해서 잘 되어 가고 있는 일을 망칠 필요는 없단 말이다..




"그래 나 진짜 갈께-_-;재밌게들 노세염."




자리에서 일어나 날 향해 코웃음을 치는 박진미를 돌아서서는 계산대 앞으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박진미의 결정타...




"으이구 생긴것만 여자같다 했더니 하는 짓도 여자같네.
지 보다 나이 어린 것들한테 맨날 쫄기나 하고..
너 같은 겁쟁이 새끼들은 학창 시절 말안해도 뻔하다.뻔해."













내가 이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

계집애 같다는 말..

그건 내가 제어할래야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의 문제..

절대 건드려선 안될 부분이다.

예전에 아버지가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다.




"권투 선수들의 시합은 링위에 올라가서 종이 울리는 순간이 아니라
링위에 올라가서 서로의 눈빛을 마주했을때 부터다.
니가 수 많은 상대들과 맞서다 보면 ..
간혹 상대방의 덩치,눈빛,기에 지레 겁부터 먹게 되는 경우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럴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거라.
지금 니 앞에 있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으려 한다고 ...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사람은 무엇을 지키기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그 힘은 2배,아니 10배로 증가하게 된단다."




그녀가 건드린 나의 약점은 내가 가장 지키고 싶은 것..

나의 가장 민감한 부분...상처,그리고 자존심..

내가 참는다고 노력한다고 되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란 말이다.













"김밥 삼인분에 라면 이인분 맞죠?6000원 입니다."




계산을 하고 곧장 밖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난 그러지 않았다.

몸을 돌려서는 박진미와 그 남학생들에게 다가갔다.

날 쳐다보던 남학생 중 하나가 피식 웃는다.




"저 아저씨..표정봐바.절라 심각해."

"뭐야?우리한테 설교라도 할 모양인가 보네?풉.."




나의 귀는 그들이 지껄여대는 얘기들을 더이상 인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남학생들 앞에 멈춰 선 나는 목소리를 잔뜩 깐채로 입을 열었다.




"긴말 안한다.조용히 나 따라와라."




그러자 라면을 먹고 있던 남학생들이 미친듯이 웃어제꼈고 ..




"푸하하.지금 이 새끼가 우리보고 따라오라고 그랬냐?"

"응 내 귀가 정상이라면 나도 분명히 그렇게 들었어.ㅋㅋ"




옆 자리에 있던 진미 역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아저씨 내말에 충격먹은거야?갑자기 왜 그래?미쳤어?"




난 그런 진미를 응시한다.




"넌 여기서 대기."







난 그들의 이 웃음소리가 낯설지 않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입학할때마다 들어왔던 웃음소리니까..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나의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나면..

그 웃음소리가 비굴함으로 바뀐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Written by Lovepool




리플은 저에게 큰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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