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수선수의 눈물의 편지

쌍큼발랑쟁이 작성일 06.07.01 19: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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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입니다. 지금쯤 이 글을 보고 계실 때 전 한국에 있겠네요. 오늘 스위스전이 끝나고 그라운드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원래 잘 안 우는 타입인데 오늘 경기는 만감이 교차하게 만들었습니다. 2002년 때보다 훨씬 좋은 컨디션과 체력을 가지고 왔었고 그때보다 훨씬 준비를 많이 해서 이번 월드컵에 임했더랬습니다.

뭔가를 해내야 한다는,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지치고 힘들 때 절 많이 채찍질하면서 운동장으로 내몰았어요.

스위스전. 너무나 이기고 싶었습니다. 전 16강에 나갈 거라고 믿었어요. 확신도 있었구요. 스위스가 아무리 강팀이라고 해도 우리가 무조건 ‘들이대면’ 승산이 있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축구의 벽이 정말 높았어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도 실감했습니다. 이천수의 한계도 절감했구요. 그동안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우리만의 리그’에서 물고 물리는 싸움을 벌이며 자꾸 눈높이를 낮춰갔던 것도 사실이었죠.

절 싫어하는 많은 분들이 ‘혀천수’ ‘혀컴’이라고 뭐라 하시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한때 이천수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전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니 독일 월드컵 이후 더 달라질 것입니다. 이번 대회가 저에게 너무나 많은 공부와 깨달음을 안겨줬거든요. 프리킥의 기술, 스피드 있는 돌파, 한 발짝 빠른 슈팅 등 앞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꼭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병역 면제 혜택을 간절히 소원했던 후배들에게 정말 너무 너무 미안합니다. 어쩜 제가 흘린 눈물이 그들의 절망스런 표정으로 인해 더 강한 울림을 전했는지도 모릅니다. 운동선수에게 병역 혜택이 얼마나 대단한 선물이란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저 또한 다른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운동장에서 쓰러질 각오로 열심히 뛰었거든요. 후배들에게 값진 ‘선물’을 주고 싶어서였죠.

잊을 수 없는 후배가 있습니다. 저랑 같은 방 썼던 이호예요. 후배라고 잔심부름 도맡아 하면서도 싫은 내색 없이 절 많이 도와줬습니다. 경기 전날 컨디션 조절해 준다고 마음 써준 부분도 정말 고맙습니다. 월드컵 이후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 대회를 통해 많은 걸 갖고 가는 선수라 큰 성공을 거둘 거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한국대표팀을 응원해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한국에서, 여기 경기장에서 ‘대한민국’을 외친 응원 덕분에 저희가 갈수록 좋은 경기 보여 드릴 수 있었어요. 그 응원이 K-리그 경기장에도 똑같이 울려 퍼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마음의 눈물까지 깨끗이 닦고 다시 출발선상에 서겠습니다.

하노버에서 이천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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