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8
철이: 일요일 저녁 무렵에 학교를 왔습니다. 내 손에는 장미꽃 다발이 들여있습니다.
금요일날 편지를 못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편지만
남겨 놓기가 그렇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길 건너 꽃집으로 가 전에 보았던 빨간 장미를 샀습니다.
편지와 함께 그 장미를 편지함에다 놓고 왔습니다.
그녀 손에 장미가 안길 때까지 시들어버리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미안합니다. 기분 푸세요.
월요일 캠퍼스내 길을 걷다가 그녀의 꽃을 안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음이 맑아지는군요. 꼭 내가 그녀 품에 안긴 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내 쪽으로 걸어옵니다. 내 뒤쪽엔 아무도 없습니다.
나한테 오는 것 같습니다. 그녀에게 코피까지 터뜨렸는데...
혹시 저 꽃을 나에게 주며 '이런 짓 하지 마세요.' 그럴 것도 같습니다.
하하. 자전거 몰던 친구녀석이 오랜만에 맘에 드는 짓을 하는군요.
저기서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나를 불렀습니다.
오예~ 그에게 달려갔습니다. 친구의 자전거 뒤에 탔습니다. 그의 자전거가 이제
그녀를 지나쳐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안았던 장미꽃을 한 손으로 꽃송이를 땅으로 한 채 들고 걷고 있습니다.
자전거가 그녀를 앞지르자 난 고개를 친구의 등에 고정 시켜야했습니다.
민이: 월요일 아침 편지함에 장미꽃이 미소짓고 있었습니다. 누굴까?
저 꽃 받는 사람은 기분이 좋겠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가 그 꽃을 보더니 내게 온 것이라고 하는군요.
호호 누가 이런 짓을? 편지도 있군요. 무기명입니다.
여섯번째 편지는 장미꽃과 같이 보냈군요.
장미꽃의 향기는 마음을 설레게 했지만 무기명의 편지는 그렇지 못합니다.
편지를 보았지요. 마지막에 쓰인 죄송하단 말. 무슨 뜻일까요?
호호 장미를 들고 캠퍼스내 길을 걷다가 그를 보았습니다.
그가 내 모습을 보고 참 어색해 하는군요. 그때 코피 때문에 그러는 거 같습니다.
괜찮다고 말해 주어야 겠군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자전거 몰던 그의 친구가 그때 마침 그를 불렀습니다.
한동안 날 쳐다보던 그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친구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의 친구 진짜 맘에 들지 않습니다.
내 어떤 일이 있어도 예전에 먹었던 생크림빵 값은 받아내고 말 것입니다.
그가 탄 자전거가 내 옆을 지나쳐 갔습니다.
그를 뒷좌석에 태우고 즐거운 듯 자전거는 내 맘을 스쳐 가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철이: 교양수업 시간입니다. 저기 앞쪽에 그녀가 홀로 앉아 있습니다.
난 뒤에 앉았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지각을 했습니다. 내 옆쪽에 앉아 있습니다.
친구마저 뒤에 앉았으니 그녀의 뒷모습이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군요.
그녀 친구가 필기를 하다가 지우개를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친구가 부탁을 하는데 안 들어 줄 수 있겠습니까?
바로 앞좌석에 앉은 모르는 놈에게 지우개를 빌려서 그녀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나는 지우개가 없었거든요. 그녀의 친구도 자세히 보니 예쁘군요.
하지만 그녀에게 비할 수 있겠습니까?
민이: 오늘 교양수업은 내 친구도 그도 내 주위에 없습니다.
한번 뒤를 돌아봤습니다. 학생이 많으니 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를 만났습니다. 호호 저기 그도 보이는군요.
친구가 그의 옆에 앉았었다 하는군요.
그리고 지우개를 빌려 달랬더니 남의 것을 빌려서 자기한테 준 호의도 베풀었다
합니다.
친구의 웃음띤 얼굴이 얄밉습니다. 그는 정말 내 친구에게 관심이 있는 걸까요?
철이: 시월이 가버리고 십일월이 왔습니다. 오늘은 그녀의 짧은치마 입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싸늘해진 날씨는 그녀의 예쁜 종아리 아래에서 짙은 가을색으로 다시 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 옆에서 걷고 싶습니다.
열번은 채우려고 했던 편지는 어떡할까요?
한번 만나보자는 내용을 적고 싶습니다.
오늘 일곱번째 편지를 쓸렵니다.
민이: 학교의 모습이 너무나 노랗게 채색되어 있습니다. 가을색 필터를 끼운 듯 여운
그리움이 있습니다.
그를 보았습니다. 그의 모습이 그리움이었나봅니다.
그와 같이 이 캠퍼스를 걸으면 좋은 추억이 되어 낙엽처럼 내 맘에 내릴 것도
같지만 그와 난 모르는 사이입니다.
아직 아무 말 오고 가지 못한 모르는 사이입니다.
철이: 꽃집앞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와 같이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그녀도 이곳에서 버스를 타나 봅니다. 그런데 왜 한번도 여기선 그녀를 *
못했을까요?
꽃집 버스정류장 그리고 그녀...
매캐한 매연이 시야를 흐리기도 하지만 너무나 정겹습니다.
꽃집 옆에 음반점이라도 있다면 영화를 찍어도 좋을 정도의 화면이 되겠습니다.
아쉽게도 음반점은 없네요.
그녀가 버스를 타고 사라졌습니다.
저 버스를 탄 사람들은 좋겠습니다.
그녀와 같이 어디를 가는 게 될 테니까요.
내가 타야할 버스는 정말 짜증나게 띠엄띠엄 오는군요.
민이: 집으로 가는 길에 시디를 하나 샀습니다. 세미클래식 시디입니다.
클래식은 잘 모르지만 다른 거보다 쌌습니다.
그리고 실내악은 가을에 여린 마음을 가엽게 감싸줄 것만 같아서 듣고도
싶습니다. 내가 타는 버스정류장에는 반가운 사람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꽃집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그의 모습이 시어가 되어 내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 시 한편 적어야겠군요. 오늘 산 시디를 들으면서 말입니다.
아쉽게도 내가 탈 버스가 빨리 와버리는군요.
오늘 그와의 짧은 만남은 이것으로 끝내야 겠습니다.
먼지 낀 버스의 뒷유리창으로 그의 모습이 얼룩져 비추어졌습니다.
철이: 오늘 여덟번째 편지를 썼습니다.
교양수업을 들어가니 그녀 혼자 앞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녀의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참 오랜만이군요. 그녀의 뒷자리에 앉은 것이...
그녀는 여전히 향기 좋은 머리칼로 내 기분을 좋게 합니다.
그녀를 보니 내 자신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녀에게 코피를 안겼다는 죄책감이 나를 작게 만듭니다.
가방 속의 아직 봉합하지 않은 편지 봉투를 꺼내 열어 학번과 이름을 썼었습니다.
민이: 그가 내 뒤에 앉았군요. 친구는 오지 않을거 같습니다. 미팅하러 갔거든요.
그는 내 뒤에 앉아 차분히 수업을 들었습니다.
오늘 저녁 집에 갈 무렵 편지함에서 나에게 온 편지를 보았습니다.
교양수업 들어갈 때만해도 그 편지는 없었습니다.
누굴 까요? 그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학번과 이름이 적혀 있군요.
보낸 사람의 이름은 '성계철'이었습니다.
그의 이름과 비슷하군요. 하지만 그는 아닙니다.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음에 편지가 오면
이런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답장을 해야겠습니다.
철이: 내 이름을 밝혔으니 나에게 그녀가 답장을 해줄 것도 같습니다.
며칠째 과방의 편지함을 기웃거렸지만 나한테 온 편지는 없었습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오니 나한테 온 편지가 있었습니다.
가히 기분 좋은 편지는 아니더군요.
'입영통지서'
소집일이 12월 22일이군요. 한달 조금 더 남았습니다.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대로 군대를 가버리면 그녀와의 인연은 끊어 질 것 같고 영영 남남으로
살아갈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을 보며 말을 걸 용기는 나지 않습니다.
입영통지서에 대한 답장을 그녀에게 썼습니다.
다음주 금요일 교양수업을 마치고 저녁에
교문앞 ○○커피숍에서 기다리겠으니 한번 만나보자는 내용을 적었습니다.
민이: 그는 얼마동안 캠퍼스에서 마주쳐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편지를 받았습니다. 역시 내 생각대로 만나자는 내용으로 이 편지는
마무리되어지고 있습니다.
혹 열번을 채웠다면 한번은 만나줄 용의가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 편지는 아홉번째
의 편지입니다.
이번 주 금요일 교양수업을 마치고 이 편지 보낸 사람은 만남을 기대하는군요.
우연 #9
철이: 오늘 교양수업은 교수가 무슨 말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습니다.
앞에 앉은 그녀에 대한 두근거림이 너무도 큽니다.
이 소리를 그녀가 들을까 두렵습니다.
그녀가 오늘 약속한 장소에 모습을 나타낼까요?
수업을 끝마치고 화장실 거울 앞에서 옷맵시를 보고 머리도 빗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커피숍으로 들어섰습니다.
30분 정도 일찍 들어왔습니다.
커피를 한잔 시켰습니다.
그녀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3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서빙보는 아가씨의 눈치가 보여 콜라를 한잔 더 시키고 또 한시간을 커피숍에서
보냈습니다.
결국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밖으로 나왔습니다. 시린 달빛이 내 심장을 관통해 나갔습니다.
내 마음은 지금 공허합니다. 하하. 웃음이 나오는군요.
민이: 교양수업 그가 내 뒤에 앉았습니다. 왠지 안절부절 못하며 나의 눈길을 피했습니다.
그는 알까요? 이 강의실에서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학생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람이 오늘 나와 만나자는 제의를 했다는 것을 그는 알까요?
그의 모습이 애처롭게 맑아 보입니다.
교양수업을 끝내고 동아리 방에서 편지의 답장을 썼습니다.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은 원치 않지만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편지는 이제 그만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편지를 받으며 기분은
좋았습니다. 안녕히...
우표를 붙이고 편지함에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편지 보낸 사람은 항상 손수 갖다 놓았지만 전 그럴 자신은 없군요.
편지 보낸 사람이 날 기다리며 커피숍에서 쓸쓸히 시간을 허비했겠군요.
미안합니다.
철이: 다시 한번 편지를 보내 볼까요?
하지만 편지함에서 발견한 그녀의 편지내용이 그럴 내 마음을 여지없이 꺾어 놓는군요.
훗. 편지를 받아보며 기분이 좋았다는군요.
그것이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 말인지 그녀는 알까요?
편지는 기분 좋게 하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는 말이니까요.
어쩔까요? 당분간은 그녀를 마주치는 것도 두렵습니다.
곧 기말고사가 다가올 겁니다.
민이: 편지 보낸 사람한테 내가 너무 했나요?
아무리 자기가 좋아서 편지 보냈지만은 그래도 정성이 담긴 글이었는데...
한번 만나는 줄걸 그랬습니다.
오늘 교양수업은 그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결석을 한 것 같습니다. 다음주가 시험이라는데...
철이: 오늘 그녀를 보았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그녀를 지나쳐 갔습니다.
내 발자욱에 찬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가을은 내게 많은 설레임을 불러다 놓고 서럽고 아쉽게 끝이 날려나 봅니다.
다음주가 시험인데... 시험이 끝나면 그녀의 기억은 저물어 갈 겁니다.
민이: 오늘 그를 보았습니다. 나는 밝은 미소를 지어주었지만 그는 나의 그 모습을
외면하는군요.
왜 그는 저렇게 고개를 숙이며 힘없이 걷고 있을까요?
찬바람이 불고 있지만은 자기 때문에 내 마음은 아직 가을이란 걸 그는 알까요?
이 마음이 지쳐 낙엽이 다 떨어져도 나는 그 때문에 춥지 않을 거 같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다시 도서관에서 여름방학 때처럼 나란히 앉기를 기원합니다.
철이: 시험기간입니다.
도서관 자리를 잡아놓고 커피를 뽑아 밖으로 나왔습니다.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 입김과 함께 담배 연기 날려보았습니다.
그녀가 이제 도서관을 나오는군요.
따뜻한 외투를 걸치고 따뜻한 미소를 품으며 그녀는 나를 스쳐 도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녀가 지나친 자리에 나의 차운 마음이 남았습니다.
도서관에 빈자리가 이제 없을 텐데...
민이: 아직 이른 아침이지만 도서관 자리가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시험기간입니다.
도서관 앞에서 그를 보았습니다. 일찍 나왔나봅니다.
그는 차운 공기 속에 그의 존재를 알리듯 담배연기를 입김처럼 뿜었습니다.
그의 앞을 스쳐지나갔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를 느껴 봅니다.
철이: 오늘 교양시험을 끝으로 시험도 끝이 나고 학교생활도 당분간 접어야겠지요.
교양시험 강의실에서 그녀가 내 근처에서 앉았습니다.
나의 마음을 담아 보낸 편지는 아쉬운 결과를 주었지만
그 아쉬움을 준 그녀의 모습은 그래도 아름답습니다.
마지막이자 처음으로 이 교양수업이 출석을 부릅니다.
큰일이군요. 그녀가 내가 편지 보낸 놈이란 걸 알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뭐 쪽팔릴 것도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학교와는 끝이니까요.
내 이름을 부를 때 큰소리로 답했습니다.
내 위치를 알리 듯 말입니다.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오랫동안 쳐다보았습니다.
그래요 내가 편지를 보냈습니다. 하하.
그때 만남을 원한 장소에서 네시간동안 당신을 기다린 놈이 접니다.
답지를 아주 빠른 속도로 적고 백지 낸 학생들 빼고는
아마 내가 제일 처음 시험장을 나온 거 같습니다.
그녀가 답지를 적다가 내 모습을 또 쳐다보았습니다.
시험이 끝났습니다. 교학과에 입영통지서를 보여주며 휴학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내가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하면 그녀는 4학년이겠군요.
그때 혹시 또 볼 수도 있겠군요. 그럼 그때까지 안녕히...
그 동안 그녀 때문에 난 조그만 행복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민이: 오늘 교양시험이 내 신입생 생활의 마지막 시험입니다.
그가 저기 뒤에 앉았군요. 시험 잘 봐요.
기말고사라 수강생 파악차 처음으로 마지막 출석을 부릅니다.
전자과 출석을 부르는데 그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수강신청이 잘 못 됐을까요?
"전산과 신계철."
그 이름이 불려 졌을 때 그가 크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 이름은 나한테 편지 보냈던 사람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그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럼 그의 연습장에서 보았던 이름은 누구의 이름입니까?
한동안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습니다. 어색하게 나를 보며 웃는군요.
그가 편지 보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고맙습니다.
그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난 그가 어렵게 보냈던 편지의 내용을 거절했었습니다.
이거 난처하군요.
편지 보낸 사람이 그 인줄 알았다면 난 분명 그 커피숍을 나갔을 터이고
그토록 바라던 그와의 인연을 맺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오늘 그에게 다시 편지를 써야 겠습니다.
그가 답지를 제출하고 나갔습니다.
어쩌면 이번 겨울은 사연이 생길 것도 같습니다.
우연 #10
철이: 학교 과방에 입대하기 전 마지막으로 선배들과 친구들에게 인사를 할려고
들렸습니다.
술이나 한잔하고 가라고 했지만 거절을 했습니다. 오늘 내일은 일찍 집에가
가족들과 보내야지요
과방을 나왔습니다. 교내 우편배달부가 우편물들을 한아름 들고 들어가네요.
크리스마스카드들도 많이 눈에 띠는군요. 메리 크리스마스다.
곧 입대를 할려니까 그녀가 보고 싶네요.
하지만 캠퍼스에서 그녀와는 마주쳐지지 않았습니다.
짧게 깍은 내 머리가 조금은 어색한 모습입니다.
안 마주쳐지길 잘 했네요.
민이: 어제 그에게 조금 긴 내용의 성탄절 카드를 보냈습니다.
그때 만남 장소에 못나가 죄송하다며
22일날 다시 만남을 가지실 의향은 없는지 물어보았지요. 그 시각, 그 장소에서
말입니다. 그가 답장을 줄까요?
그도 나한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왜 그렇게 서로 모르는 척 눈치만 봤을까요.
아쉬운 미소가 맺힙니다.
철이: 드디어 소집일 입니다. 집에서 엄마는 그냥 잘 갔다 오라는군요.
제가 어디 놀러갑니까? 하여간 잘 다녀오겠습니다.
의정부로 갔습니다. 진짜 총을 매고있는 군인을 보니 좀 무서웠습니다.
날씨는 또 왜 이리 춥습니까? 입대하는 사람들 따라온 사람도 많습니다.
늙은 국군 아저씨가 여러 말을 하는군요.
집에 가고 싶은 사람 손들라고 했습니다. 들어버릴까?
누가 하나 손을 들었는데... 연예인 누구였습니다. 신기합니다. 사인이나
받을까요? 누가 그를 데리고 나가는군요. 진짜 집에 보내줄려고 저러는 걸까요?
나중에 군기가 들어 돌아온 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민이: 그가 답장이 없군요.
계속 도서관을 나왔었지만 그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도서관 여름방학 때 앉던 자리에 계속 앉아*만 그는 제 옆자리에 없습니다.
혹시나 하는 맘에서 약속 시간이 되어 커피숍을 가보았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한잔했습니다. 분위기가 좋군요.
설레이는 맘으로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내게로 와서 나와 좋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호호 내가 30분 정도 졸았군요.
3시간동안 그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편지를 못 받았을까요?
그때 그도 이렇게 나를 기다렸을까요?
아쉬운 맘으로 커피숍을 나왔습니다.
오늘 그와의 만남이 있었다면 크리스마스 때 영화도 보러가고 했을 터인데...
철이: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 본격적으로 훈련소로 배치되어 신병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날씨가 더 춥군요.
그래도 우리는 행운아라며 군발이 아저씨가 초코파이를 돌렸습니다.
하하 그것이 그후로 6주 동안 한번도 볼 수가 없었던 사제 간식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지요.
우쒸. 크리스마스인데 아침부터 운동장을 돌리는군요.
민이: 야 신난다. 크리스마스가 내일입니다.
언제나 이날은 설레였지만 올해는 대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인지 더 설레이네요.
고등학교 친구들과 명동을 나갔습니다.
오늘밤을 장식하는 많은 조명들과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밝은 표정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리는 캐롤송들... 이런 날은 사랑을 해야지요.
눈송이라도 떨어진다면 정말 그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날씨가 추웠지만 거리를 마냥 돌아다녔습니다.
철이: 새해를 훈련소에서 맞이하다니 기분이 개떡같습니다.
그래도 1월 1일이라고 훈련은 안 시킵니다.
담배도 피고 싶고 초코파이도 먹고 싶습니다.
훈련을 시작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손등이 다 깨졌습니다.
날씨가 추워서 그렇습니다.
민이: 새해가 되었습니다. 올해가 나의 만 20세 되는 해입니다.
조금 있으면 내 생일이 다가 옵니다.
올해는 모두들 행복하시고 나에게 진하게 잊혀지지 않는 사연하나 남기게
해주옵소서. 그는 계속 마주쳐지지도 않습니다.
철이: 오늘도 눈이 오는군요. 지겹습니다.
이런 얼어죽을 날씨에 무슨 명상입니까? 운동장에 앉혀놓고 무슨 명상을 하라고
하십니까? 이러다 얼어죽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손등도 다깨지고 복숭아뼈
다 까지고 발가락도 불어터졌습니다.
이제는 목까지 쉬어 갑니다. 어머니 서럽습니다.
명상을 해야하는데 잘 안 되는군요. 그녀의 모습이 아련히 스쳐갑니다.
요즘은 그녀의 모습도 잊고 살았습니다.
민이: 눈이 조금 더 왔으면 했는데 조금 밖에 오지를 않는군요.
차운 날씨에 입김을 뿜으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묘미도 참 좋네요.
도서관 앞에서 사람들의 오고 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도서관을 나오지 않을려나 봅니다. 한달 째 그를 * 못했습니다.
그의 편지에 대한 나의 태도가 그에게 많은 아픔을 주었을까요?
잘못된 이해로 그렇게 되었던 건데...
철이: 내일은 훈련소 퇴소를 하고 자대로 배치를 받아 떠납니다. 부모님이 내일
오시겠지요. 오늘 건빵을 받아들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알아보기 쉽게 엄청 크게 쓴 어느 초등 학생의 위문편지는 내가 국군아저씨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눈물 젖은 건빵을 받아들고 울먹거리는 녀석들이 저 말고도 많군요.
지금 내 목소리는 내가 아닙니다.
겨울에도 사람 피부가 탈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붉고 시커멓게 탄 얼굴, 손톱 한쪽은 피가 맺혔고 손등은 다 깨지고 발도
엉망이지만 오늘은 즐겁습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간식과 편지 그리고 내일은 부모님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립네요. 많은 것들이... 바깥세상이, 친구들이,
그리고 그녀의 모습이 오랜만에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민이: 오늘이 바로 나의 20번째 생일입니다.
동아리 선배들과 친구들이 장미꽃 20송이를 주었습니다.
케익에 작은 촛불을 스무개 꽂고 생일축하 노래를 들었습니다.
생크림을 얼굴에 묻혀주며 앞으로 성인으로서 삶을 아름답게 꾸미라는 선배들의
모습에 감사의 마음이 담깁니다.
집에서도 케익에 초를 꼽고 부모님과 언니들과 동생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행복합니다. 오늘 받은 장미를 화병에 꽂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도 예전에 장미를 나한테 준 적이 있군요. 그때는 그가 준 것인지
몰랐지만... 오늘 잊혀지지 않고 있는 그를 떠올려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