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7

LYNL 작성일 07.11.12 10: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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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7

철이: 월요일부터 도서관을 줄기차게 나왔지만 그녀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기야 내가 어디에 앉았는지 그녀는 모르겠지요.
      오늘은 좀 일찍 온 탓인지 예전에 내가 앉던 자리를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내 옆자리에 낯이 익은 가방이 걸려 있군요.
      아침이라 졸립니다. 오늘은 시험이 없습니다. 좀 자다가 일어나도 되겠지요.
      일어나니 옆자리는 아직 가방만 걸려있고 사람은 없습니다.
      어라? 내 자리에 생크림빵이 있습니다.
      누가 놔두고 갔을까요? 전 생크림빵을 무지 좋아합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잘 먹겠습니다.
      빵을 먹고 나니 공부가 잘되는군요.
      하하. 내 옆자리는 그녀가 주인이었군요.
      어쩐지 가방이 낯익다 했습니다.
      그녀가 자리에 앉길래 쳐다보았습니다.
      날 보고 웃는군요. 날 안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내 얼굴에 뭐라도 묻어서 일까요?
      아무래도 내가 보낸 편지의 필자를 알아차린 것 같은 웃음 같습니다.
      좀 쑥스럽군요.

 

민이: 오늘은 첫교시부터 시험이 있습니다.
      새벽에 아침도 먹지 않고 도서관을 나왔습니다.
      그 하고 인연이 맺어졌던 자리에 가방을 놓았습니다.
      배가 고프군요. 학교 근처 제과점으로 갔습니다.
      아침 일찍 갓구운 빵이라 맛이 정말 좋군요.
      몇 개 사 가지고 가서 나중에 또 먹어야 겠습니다. 생크림빵 두개를 샀습니다.
      도서관에 돌아오니 내 옆에 누가 앉아 자고 있었습니다. 호호 그군요.
      그가 오늘은 아침부터 잠에 빠져있습니다.
      첫교시 시험 때문에 내가 자리를 뜰 때까지 그는 일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시험을 보러 나갈 준비를 하다가 문득 '그가 아침은 먹고 왔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크림빵 두개를 그의 자리에 놓아두었습니다.
      나갈려고 하는데 그때 자전거를 몰았던 그의 친구가 그의 잠든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행히 그를 깨우지는 않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가 먹으라고 놓아둔 빵하나를 그 자리에서 뜯어
      먹어버렸습니다.
      나머지 한개도 먹어버리면 오늘 도서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날것도 같습니다.
      그의 얼굴을 째려보았습니다.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나머지 빵 한개는 손만 댔다가 그냥 놓아두고 갔습니다.
      시험을 잘 보고 도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잠에서 깨어 공부를 하고 있군요.
      내가 왔음을 의식했는지 쳐다보았습니다.
      호호 그가 빵을 먹었군요. 입가에 생크림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은데 그는 뭔가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려 공부만 합니다.
      그가 먹은 빵이 내가 놓아둔 빵이란 걸 그는 알까요?

 

철이: 이제는 낙엽이 눈에 띠게 떨어집니다. 애처로운 바람이 오후를 여유롭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중간고사가 끝이 났습니다.
      내일은 교양과목이 휴강입니다. 그녀는 언제 나와 마주칠까요?
      오늘은 일찍 집에 들어가야겠습니다. 버스가 빨리 안 오는군요.
      버스정류장 앞에 있는 꽃집의 빨간 장미들이 그 모습들을 웃음으로
      발하고 있었습니다.

 

민이: 내일은 중간고사 시험이 두 개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오후는 차분한 느낌을 주네요.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 겠습니다.
      버스정류장 앞 꽃집의 장미가 너무나 곱습니다.
      가을날 바람은 그 꽃을 사 가지고 가라는군요.
      꽃을 안고 버스에 탔습니다. 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내일은 교양과목이 휴강이군요. 언제쯤 그와 다시 마주치게 될까요?

 

철이: 밤의 어둠은 마음을 떨리게 하는군요.
      음악을 들으며 그녀에게 편지를 씁니다. 언젠가 인연이 닿으면 서로 알게
      될 날이 오겠지요.
      다음날 수업도 없었지만 오후에 편지 때문에 학교를 갔었습니다.
      시험이 끝난 선배들과 친구들에게 붙잡혔지요.
      할 수 없이 한 잔 해야겠습니다.
      해질 무렵 캠퍼스 잔디밭은 시끄럽습니다.
      띄엄띄엄 가로등이 자신의 존재를 알렸지만 조금 어둡군요.
      예비역 선배 3명과 그 중 한명의 여자친구 선배 한 명,
      그리고 자전거 몰던 친구녀석과 잔디밭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근처 여기저기에 우리와 같이 술판을 벌인 학생들이 많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선배들은 취해 갔습니다. 여자선배는 뭐가 좋아 저렇게
      히죽거릴까요?
      저기 열장걸음 떨어진 곳에 열명 정도가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그쪽은 여자들이 참 많군요. 일본말 소리가 들립니다.
      일교과 학생들일까요? 그녀가 일교과 학생이지요.
      일본말 좀 하는게 뭐 그리 기분 나쁜 일이라고 술 취한 선배 하나가 그쪽을
      보고 한소리 했습니다.
      그쪽에선 그렇게 큰 반응은 보이지 않았지만 남학생하나가 이쪽을 쳐다보기는
      했습니다.
      사건은 조금 뒤 술이 떨어졌다며 여자 선배가 술을 사러 자리를 비웠을 때
      일어났습니다.
      예비역 선배들은 여학생들이 들으면 참 민망할 것 같은 노래를
      아주 크게 아까 일본말이 들렸던 곳을 향해서 대놓고 불렀습니다.
      저 노래는 군대가서 배운 것이겠죠?
      열장밖 일본어가 들렸던 자리에는 여학생들이 많았던 탓에 시비건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쪽에서 반응이 왔습니다. 누군가 일어서더니 이쪽을 보고 조용히 하라고
      하더군요.
      그 소리가 썩 듣기 좋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술을 먹었겠다 선배들이 부르는 노래의 욕나오는 부분만 따라 부르며
      우리 쪽의 반응은 오히려 거세어 졌습니다.
      드디어 쌈나게 생겼습니다. 그 쪽의 남학생 전부가 이쪽으로 왔습니다.
      에게? 겨우 세명입니다. 우리 쪽의 기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그쪽에서 온 남학생 중 하나는 엄청 덩치가 좋았습니다.
      조용히 좀 하라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무식하게 컸습니다.
      하지만 군대까지 갔다온 선배들은 술까지 먹었는데 쫄리 있겠습니까?
      대들었습니다.
      그 덩치 좋은 남학생이 우리과 선배 하나의 목부분을 잡았습니다.
      선배는 달랑 들려 올라가더군요.
      그들의 대화를 잠시 들어볼까요?
        "놔라! 우쒸 너 몇학번야~ 얌마?"
        "쌍팔학번이다. 왜 한판 붙을래."
        "난 팔칠이야~ 마. 놔 빨리."
        "팔칠같은 소리하고 있네. 더 힘줄까?"
        "잘못했시유. 팔구에요. 놔줘유~ t.t"
      힘없이 꺾이는 선배를 보았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는군요.
      다른 선배들도 기가 꺾이었습니다.
      우리 쪽은 남자가 다섯이나 되었지만 한번 꺾이고 나니 조용해 졌었습니다.
      그때 술사러 나갔던 여자선배가 돌아와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짜고짜 그 덩치 큰 남학생에게 대들었습니다.
      하하 그 여자선배는 목을 잡혔던 선배의 애인이었습니다.
      덩치 큰 남학생은 황당해 하더군요.
      때리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다 툭하고 밀었는데 불쌍한 선배 그만 잔디밭에
      픽 꼬꾸라졌습니다.
      목을 잡혔다 놓인 선배가 한쪽에서 목을 캑캑거리고 있다가 그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까와는 달리 용감하게 달려와 날라차기를 하더군요.
      코메디였습니다. 덩치 큰 남학생은 쉽게 피해버렸거든요.
      그 선배도 잔디밭에 꼬꾸라졌습니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던지 덩치 큰 남학생 무리의 여학생들도 이쪽으로 왔습니다.
      넘어졌던 선배가 머리를 갖다대며 덩치 큰 남학생에게 대들었지만 상대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선배의 애인이었던 여자선배가
      구두를 벗더니 덩치 큰 남학생에게 엉겨 붙었습니다. 그 모습이 가관입니다.
      안되겠습니다. 저라도 말려야 겠습니다.
      난 말릴려고 했을 뿐인데 그 덩치 큰 학생은 날 지원군이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내 팔을 잡더니 세 차게 밀어버렸습니다. 에구구 그는 힘이 천하장사였습니다.
      싸움을 보러왔던 상대편 여학생들 쪽으로 난 힘없이 날아갔습니다.
      하하 일본어 쓸 때부터 혹시나 했는데...
      그쪽의 여학생들 중에 그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내가 그녀 쪽으로
      밀려가고 있습니다.
      빠른 속도로 밀렸기 때문에 그녀는 날 미처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 또한... 난 손을 흔들었습니다. 속도를 죽여야겠기에...
      하지만 잘못했다간... 잘못했다간 말입니다... 그녀의 가슴을 만질 수도
      있겠습니다.
      흔들던 손을 뒤로 홱 빼버렸습니다. 저 참 단순하지요?
      머리로 바로 그녀의 얼굴을 받아버렸습니다.
      고개를 들었더니 그녀의 그 이쁜 얼굴에서 코피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진짜 미안합니다!"
      그 말만 하고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을 쳤습니다.
      헥헥... 난 왜 이럴까?
      예전엔 안그랬던거 같은데... 그녀 볼 면목이 없습니다.

 

민이: 드디어 시험이 끝났습니다.
      과내 어학동아리에서 시험도 끝났고 해서 잔디밭에서 술이나 한잔하자고 합니다.
      캠퍼스에 저녁이 물들고 있습니다.
      가로등이 그 빛을 애써 외면하려고 했지만 잔디밭에는 어둠이 깔렸습니다.
      잔디밭에는 우리말고도 술을 마시는 학생들 무리가 많았습니다.
      한쪽 편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동아리회장 오빠는 인기가 ?윱求?
      우리 동아리에는 일본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닌 여학생도 있습니다.
      한국말이 서툴러 자주 일본어를 썼었습니다. 물론 전 잘 못 알아듣지요.
      그녀도 회장 오빠를 좋아하나 봅니다. 회장 오빠가 뭐가 좋을까요?
      덩치는 산만하고... 그 오빠는 고등학교 때까지 씨름을 했다고 했습니다.
      요즘도 유도학원을 다닌다고 들었는데...
      술이 조금 되니까 일본에서 온 여학생은 어눌한 한국말 대신 일본어를 계속
      썼습니다.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선배들은 일본어로 답해주곤 합니다.
      아직 우리 나라는 일본에게 감정이 있나봅니다.
      우리 옆에서 술을 마시던 한 무리에서 어디서 쪽xx 말을 쓰냐고 신경질적인
      반응이 왔습니다.
      쳇... 기분이 안 ?윱求? 회장 오빠가 그쪽을 험한 인상으로 쳐다보았습니다만
      주위에서 말렸죠.
      사건은 조금 뒤 일어났습니다.
      아까 그 무리의 학생들이 일어서 이쪽을 보며 이상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민망한  
      가사가 많았습니다.
      드디어 회장 오빠가 일어섰습니다.
      회장 오빠가 일어서자 옆에 있던 두 선배 오빠들도 일어서 회장 오빠를 따라 노래           

      부르는 무리에게로 갔습니다.
      쌈이 났습니다. 회장 오빠가 그 무리의 한 남학생의 목을 잡아들었습니다.
      호호 회장 오빠가 거짓말을 쳤군요.
      회장 오빠는 구공 학번인데 팔팔 학번이라고 속였습니다.
      어머 그 무리에 여학생도 있었군요. 쌈잘하는 언니 같았습니다.
      역시 회장오빠는 힘이 세었습니다.
      가볍게 손을 댄 것처럼 보였는데 그 언니는 땅바닥에 넘어졌습니다.
      아까 목을 잡혔던 남학생이 회장 오빠한테 달려들더군요.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큰 싸움이 나겠습니다.
      우리 쪽 여학생들은 모두 그쪽으로 가 싸움을 말리기로 했습니다.
      호호 그 무리에 그가 있었습니다.
      회장 오빠한테 당하고 있는 남학생 하나와 여학생이 딱해 보였나봅니다.
      그는 한 손을 걷어붙이고 회장 오빠에게 갔습니다.
      그도 키가 작은건 아니었지만 회장 오빠에게 비하면 왜소해 보였습니다.
      안 되는데... 저러다 그가 다칠 것 같습니다. 말려야 겠습니다.
      싸움을 말리려고 한발짝 걸음을 옮겼을 때 그는 회장 오빠에게 팔을 잡혀
      내 쪽으로 던져졌습니다.
      피해야 하는데 그의 크게 뜬 맑은 눈동자를 보니 움직일 수가 없군요.
      그가 나보고 비키라 손을 흔듭니다. 저대로 달려오면 날 안을 것도 같습니다.
      으이구 손을 빼버리는군요. 한순간 내 눈앞에 별이 반짝였습니다.
      그가 머리로 내 얼굴을 받았거든요.
      그가 고개를 들어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왜 그랬을까요? 또 빠른 뜀박질로 도망을
      쳤습니다.
      콧물이 흐르는 느낌같아 만져봤는데 어제 산 장미빛의 피가 나고 있었습니다.
      으아앙... 어린아이도 아닌데... 피를 보니 울음이 나왔습니다.
      저 때문에 싸움은 끝이 났지요.
      그는 그렇게 싸움을 말려놓고 어디로 뛰어갔는지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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