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21
철이: 공강시간이 되니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 예비역 몇 명이서 족구를 하길래 저도 끼였지요.
공포의 강스파이크다. 날랐습니다. 그리고 찼습니다. 홈런. 참 멀리도 날라가네요.
얼라리요? 공이 떨어집니다. 절묘하네요.
걸어오던 여학생의 머리 한 쪽을 맞히더니 옆에서 같이 걷던 여학생의 머리도 맞춰 버립니다.
너무 우연입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알고봤더니 어제 낯이 익던 여학생은 그녀의 친구였군요.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구요? 그녀의 옆에 있었으니까 말이죠.
내가 찬 공은 공대쪽으로 오던 그녀와 그녀의 친구머리를 맞추었습니다.
잘됐다. 그녀는 어떤 놈의 뒷자리에 애인인양 타고 갔겠다.
그녀의 친구가 탄 자전거는 내 가방을 아프게 했겠다.
나 나쁜놈입니까?
머리를 만지는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오랜만에 뛰어볼까요? 내 친구들은 미안해하며 그녀들한테로 갑니다.
싹싹 빌어라. 나는 도망간다. 공대건물안으로 냅다 뛰었습니다.
다시 나오다 그녀를 만나 흠칫 놀랐지만 내가 찬 줄은 모를 겁니다.
그 둘은 얘기하고 오다가 맞았으니까 말이죠. 미안해요.
그녀가 왜 날 보더니 웃음을 참지 못하고 지나쳐 가는 걸까요?
그리고 공대는 왜 왔을까요?
민이: 과감히 공대에서 듣는 교양을 한 과목 신청을 했습니다.
나 혼자 가기가 그래서 친구를 꼬셨습니다.
난 컴퓨터를 왜 486이니 펜티엄이니 그러는 줄 아직 모릅니다.
친구는 모니터만 크면 다 좋은 컴퓨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냐구요? 제가 들을 과목이 '컴퓨터의 이해'거든요.
친구하고 나하고 공대쪽으로 걸었습니다.
오늘이 그 교양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누가 더 컴맹인 거 때문에 얘기를 막 했었지요.
아무래도 하늘에서 노한 거 같습니다.
컴퓨터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것들이 서로 잘난척한다고 말입니다.
어디선가 축구공이 날라와 내 머리를 맞혔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 공을 꼭 헤딩이나 한 것처럼 재잘거리던 친구의 얼굴도 맞추어 버렸지요.
족구를 했던 학생들 몇 명이 미안해하며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순간 웃음이 났습니다.
솔직히 축구공 날아와 맞은 것은 별로 아프지 않았습니다.
왜 웃음이 나왔냐 하면요 우리에게 다가온 한 사람의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공 찬 개철이 녀석은 어딜 간 거야?"
호호. 그가 찬 공에 제가 맞은 것이었군요.
그렇죠? 도망간다고 안잡힐리 없죠. 그는 공대 안으로 도망을 갔나 봅니다.
내가 갔겠지 생각을 하고 나오다 저하고 딱 마주쳤거든요.
친구는 왜 웃냐고 그럽니다. 머쓱해 하는 그의 모습이 귀엽네요.
철이: 일본어 누가 쉽다고 그랬습니까? 배운 적이 없어서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대를 떳떳하게 올 수는 있었지만 그녀와 만나지지는 않군요.
다시 편지를 써볼까요? 싫습니다. 그것보다 용기가 서지 않네요.
그녀를 다시 보게 되니 단지 짝사랑의 그리움뿐이던 마음이 설레이기 시작합니다.
괜한 기대는 하지 말자.
그대보다 높은 기대로 인해 행여 그대를 잃지는 말아야 겠기에...
민이: 컴퓨터 누가 쉽다고 했습니까? 어려워요. 친구는 왜 나만 쳐다볼까요?
공대는 사대와 달리 사람이 참 많네요. 여기서 그를 마주치기란 참 어려울 거 같습니다.
편지는 언제 줄까요? 봉투는 보내기 어색해 하는 내 마음처럼 낡어만 갑니다.
다시 편지를 쓸까요? 싫습니다. 이 편지 쓸 때의 내맘을 잃기는 싫으니깐요.
그를 다시 보게되니 마냥 잊혀지지 그립기만 하던 마음이 떨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대보다 높은 꿈으로 그대를 꾸며나 볼까요?
철이: 저 녀석이다.
그 때 단 한번 스쳐 지나며 봤는데 바로 알 수가 있겠습니다.
그는 그처럼 개성 있는 얼굴입니다. 자전거가 달려옵니다.
시비를 걸고 싶습니다. 왜냐구요? 그녀와 친한 거 같으니깐요.
이제 저도 학번이 그런대로 됩니다.
슬며시 그가 오는 자전거 앞으로 발을 디밀어 넣었습니다.
으... 예상한 거 보다 아픕니다. 자전거 바퀴가 내 발을 밟고 지나쳤습니다.
야 임마. 니가 그러면 안되지... 엄청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를 하는데 제가 다
미안할 정돕니다.
"됐어요 그냥 가세요."
"죄송하구먼유. 브레이크가 잘 안 들어서요. 정말 다치신데는 없이유?"
"괜찮다니까요."
별 시비도 못 걸고 발등만 아팠습?br>求?
민이: 흠. 또 한 명 맘에 드는 후배가 들어왔군요. 그녀석이요. 현철이요.
생긴 건 영 아니지만 재미있네요. 순진한 것 같구요. 그래 내가 넌 잘 봐줄께...
앗 뜨거! 얘 어딜 만지니? 잘 봐준다는 거 취소해야겠습니다.
녀석이 커피를 뽑아와 가지고 들고 있다가 나한테 쏟았습니다.
바지가 더렵혀졌군요. 이래가지고 어떻게 집에 가죠?
녀석이 커피를 닦아 준다는 게 허벅지를 만지는 꼴이 되었습니다.
손을 세게 치며 화를 냈습니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네 의도는 내가 오해 없이 받아들이는 건데 미안해.
큰 눈망울에 눈물까지 맺히며 슬픈 얼굴로 사과를 합니다. 내가 다 미안할 정도입니다.
"괜찮아. 옷이야 빨면 되지."
"죄송하구먼유. 커피를 거기 놓아두는기 아니었는디... 그리고 그냥 닦아줄려구요. 여기 제
손수건..."
오늘 제가 왜 이러지요?
철이: 뭐야? 이럴 줄 알았으면 오전에 저 녀석이 사과를 했건 말았건 대놓고 화를 내버리는건데
그랬습니다.
그녀는 왜 또 저렇게 즐거운 표정입니까?
다리를 이상한 모양새로 한 채 자전거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나도 자전거를 살까보다. 진짜 사귀는 사람이 생긴 걸까?
기분이 안 좋네요.
해지는 캠퍼스의 그녀가 사라진 정문길로 나도 퇴교를 합니다.
버스는 또 한참 만에야 오겠지요.
민이: 얼룩이 심하게 졌습니다. 버스타고 가기가 뭐 합니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가야겠습니다.
그런데 큰길까지는 어떻게 걸어가지요?
호호 녀석이 부끄러운 듯 말을 했습니다. 자기가 자전거로 집까지 태워준답니다.
서울이 자기 동네처럼 작은 줄 아나 봅니다.
그래 자전거 뒤에 타면 얼룩이 안보일수도 있겠다.
학교앞 큰길까지만 태워 달라고 했습니다. 떨지마. 괜찮다니까...
자전거에 타고 해지는 캠퍼스를 거니는 것도 참 좋군요.
그렇게 볼려고 해도 잘 안보이던 그가 이상하게 이럴 땐 또 마주쳐지네요.
아참 커피얼룩. 다리를 오므렸습니다. 떨어질뻔 했습니다. 바로 그의 앞에서요.
그도 바로 나앞으로 자전거에서 떨어진 적이 있었지요.
떨어졌으면 나도 그처럼 도망을 쳤어야 했을까요? 괜히 웃음이 납니다.
"야 천천히 가."
"브레이크가 말을 잘 안 들어요."
우연 #22
철이: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있었던 껀수는 시체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나쁜 형아.
그녀가 놓고 간 책은 그녀와 나를 인연맺어주기 위해 하늘이 내리신 연줄이었는데
내가 것두 모르고 침발랐고,
그녀가 얼떨결에 준 테이프는 내 잘못을 용서하시고 하늘이 마지막으로 준 연줄이었는데
우리형이 다른 노래로 녹음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메탈리카? 오지 오스본? 이니 맘스틴은 누구여?
민이: 메탈 뭐라고 하는 그룹이 우리나라에 왔다고 합니다.
다 늙은 아저씨들이 배까지 나와 가지고 빽바지에 머리까지 기르고 노래를 희한하게도
부릅니다.
저런 노래는 누가 들을까요?
공연 녹화방송을 하는데 사람들이 참 많네요.
호호 그하고 닮은 사람이 참 많이도 발광을 하는 모습이 비추어 졌습니다. 우습네요.
언니가 딴거 보자는 군요. 알았어.
철이: 봄이 완연해졌습니다. 돋는 새싹들처럼 내 마음도 파래집니다.
남자는 가을을 탄다는데 난 봄도 타고 있습니다. 사대로 난 길에서 봄바람이 날 간지럽히고
가네요.
강사님 진도좀 천천히 나가요. 하나도 못 알아듣겠습니다. 내가 왜 이걸 들었지?
교양과목을 듣고 나오다 그 개성 있는 놈을 보았습니다. 어쭈.
이제는 아주 어려보이는 여학생들한테도 찝쩍되는구만.
여학생 많은 과는 좋겠다.
저렇게 생겨도 과내에서 여학생들하고 친해지는구나. 그것도 후배들하고 말이야.
저녀석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이 건물을 웃으며 다니겠지요.
민이: 친구가 짧은 스커트를 입고 왔습니다.
오늘 공대 교양수업이 있는 날입니다. 아예 작정을 하고 온 모양입니다. 4학년이나 되어가
지고... 쯧쯧.
공대 남학생들 전 하나도 쳐다보질 않네요. 모두 친구에게만 시선을 주었습니다.
친구는 아예 수업을 포기했습니다. 수업시간에 거울은 왜 보냐?
이번 교양수업에도 그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공대 앞에도 봄의 따사한 햇살이 너무나 기분 좋게 내리고 있습니다.
이 건물 어딘가에 그가 있겠지요.
철이: 일요일에 도서관을 나왔습니다.
내가 자주 앉던 자리는 이미 누가 앉아 버렸네요. 그녀의 모습도 보이질 않습니다.
조금 있으면 중간고사
지만 아직 몇 주 남았습니다. 가방만 차지한 자리가 많습니다.
시험 몇 주전부터 교양공부 해보긴 처음인 것 같습니다.
기초 일본어. 기초는 무슨... 전공보다 어렵다.
교양 한과목 때문에 사전사기가 아까웠습니다.
수업시간에 토달고 뜻달고 무던히 노력을 했지만 모르는 글자들이 많이 눈에 띱니다.
커피나 한잔하고 와야 겠습니다.
자판기 앞에 사람이 없네요.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를려고 했는데... 누군가 맹물이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아릿따운 소녀의 목소리였습니다.
고개를 돌려보았습니다. 이럴 수가 그녀가 휴게실에 있었군요.
그녀의 친구와 자판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왜 못 봤을까?
그녀를 한동안 쳐다보다가 아무 말 못하고 머쩍한 표정만 짓고는 돈을 뽑아 돌아섰습니다.
가만... 오늘따라 왜 그녀에게 말을 걸 용기가 났을까요? 다시 돌아섰습니다.
"저기요..?"
이거 제가 한말 아니에요. 그녀가 한말이에요.
전 "저기..." 까지만 말했어요.
민이: 일요일에 도서관을 나왔습니다.
내가 자주 앉던 자리와 그가 자주 앉던 자리는 어느 씨씨가 차지해버렸네요.
한쪽 구석에 친구자리와 내자리를 맡았습니다.
친구는 좀 늦게 나왔지요. 내가 맡아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잘못이 크니까요. 컴퓨터 교양 때문이었습니다.
모래까지 레포트를 내야 하는데 둘다 아는 게 있어야지요.
뭘 짜오라는데 컴퓨터가 실입니까? 뭘 짜오게...
책을 펴서 한동안 끙끙 앓았습니다. 컴퓨터 참 쉬워요.
책제목부터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제 주위에 컴퓨터 잘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컴퓨터에 언어가 있다는 것도 이주전 처음 알았는데
벌써 포트란(?) 그걸로 뭘 짜오라고 했습니다.
모르겠다. 커피나 한잔하고 오자.
호호. 고소해라. 친구가 뽑은 컵에서는 따뜻한 물만 매정하게 고여 있었습니다.
휴게실에 앉아 친구와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그가 도서관에 있었군요.
흠 친구도 옆에 있고 오늘 편지를 가져왔더라면 눈딱감고 줘 버릴 수도 있었겠는데.. 아쉽네요.
그는 나를 못 본 모양입니다.
자판기 앞으로 가서 동전을 넣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