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연의에서 외척에 의한 조조 주살 계획은 두 번 일어납니다. 첫 번째는 '연판장'으로 유명한 동승의 조조 제거 계획이었고, 두 번째가 황후가 직접 연관된 복완-복황후의 조조 제거 계획이었지요.
두 사건 모두 사전에 계획을 감지한 조조가 선수를 쳐 계획을 무산시킨 뒤 관련자와 그 일족까지 철저하게 학살하는 것으로 끝납니다만, 정사를 보면 동승과 달리 복황후는 조금 억울하다 싶을 듯한 구석이 있습니다.
동승은 실제로도 조조 제거를 계획하다가 들통나서 살해당합니다만, 복황후는 뭐랄까, 폐출과 죽음에 이르는 전후사정이 다소 애매하거든요.
연의에서는 건안 19년(214) 즈음에 복황후가 조조를 죽일 요량으로 그 아버지인 복완에게 밀서를 보내고 복완도 알겠다는 답서를 썼는데 이것이 조조에게 발각되어 일족이 처형되었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정사에서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연의에서 공모가 일어났다고 하는 건안 19년 시점에 이미 복완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 복완은 건안 14년(209)에 죽었거든요.
복황후의 죽음에 대한 기사를 정사 무제기(조조전)에서 찾아보면 이렇습니다.
十一月, 漢皇后伏氏坐昔與父故屯騎校尉完書, 云帝以董承被誅怨恨公, 辭甚醜惡, 發聞, 后廢黜死, 兄弟皆伏法.
대충 해석하자면, 황후 복씨가 예전에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 복완에게 밀서를 보냈는데, 거기 적기를 황제가 동승이 죽임당한 일로 조조를 원망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심히 추악했고, 일이 드러나자 황후는 폐출되어 죽고 형제들은 모두 법에 따라 처분당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일이 바로 건안 19년(214년)의 일이죠.
이게 참 미묘한 것이, 동승은 말 그대로 '조조를 죽인다'는 의도로 움직인 게 맞는데, 복황후는 정말 조조를 죽이라고는 한 게 맞기는 맞는지조차 좀 애매합니다. 그냥 조조가 황제 친척도 마구 죽일 정도로 세력을 너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게 무서워서 아버지한테 하소연 비슷한 걸 한 것을 가지고 억지로 끌어다 붙인 건 아닌가 싶은 의심이 좀 들죠.
그 방증이 바로 편지를 받은 당사자인 복완의 행동입니다. 209년에 죽을 때까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거든요. 뭔가 있었다면 조조가 바로 잡아내서 죽였겠지요. 하지만 정말 아무 것도 없이 평온하게 죽습니다.
그러니까, '조조를 황제가 원망합니다' 라는 편지만으로는 황후의 의도를 정확히 이거다 하기도 어려워 보이고, 실제로 편지 받은 복완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설령 뭔가 있었다 해도 209년 복완이 죽으면서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게 된 셈인데, 조조는 복완이 죽은 지도 이미 5년이나 지난 뒤인 214년에 느닷없이 이걸 끄집어내서 황후를 폐출시키고 그 형제를 죽여버린 겁니다.
그리고 214년 11월 복황후가 쫓겨나고 채 몇 달도 되지 않은 215년 초에 조조의 딸이 새 황후가 되지요. 제반 준비기간까지 고려하자면 말 그대로 '예전 황후가 쫓겨나자 마자' 라고 해도 될 법한 타이밍입니다.
뭐 일의 진행이 이렇다 보니 냄새가 안 날 래야 안 날 수가 없죠.
이렇다 보니 후세의 어느 선비는 이 일을 평하여 말하기를,
이 일은 반드시 곡절이 있다. 설령 복후가 조 공을 죽이라 하였다고 한들 이미 아무 일 없이 그 아비가 죽은 지 오래이니 실상 그 글월은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본디 혐의가 있다는 글도 실제로 과연 죽이라 하였는지조차 명확치 않아 동승의 일과는 다르다 할 수 있다.
그러한데도 이미 오래 전에 보낸 단순한 하소연 글을 시기가 한참 지난 뒤에야 끄집어내어 복후를 폐하고 곧바로 자기 딸을 황후에 올렸으니, 이는 오히려 조 공이 일족의 영달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은 바가 아닌가 한다.
지각이 있는 사람들은 곡절이 없다 여기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여 조조가 복황후를 폐하고 자기 딸을 황후로 올리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고 쓰는 과정에서 이미 오래 전에 보낸 글발을 핑계거리로 끄집어내어 조조 살해 음모를 꾸몄다는 무리한 해석을 덧붙여다가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했었죠.
아무래도 조조의 이미지가 이러저러하다 보니 사람들은 '조조라면 능히 그럴 만도 하다' 라고 생각하였는지 이 평은 순식간에 널리 퍼졌으며, 이후로 사람들은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 사용하는 무리한 수단 을 가리킬 때 조조가 복황후에게 죄를 씌우기 위해 무리하게 해석해다가 트집을 잡았다고 하는, 이미 오래 전에 보낸 복황후의 편지에 종종 빗대었다 합니다.
이 말이 바로
전기고문(前寄告文)
-옛날에 보낸 하소연 글-
입니다.
용례
A : 그놈 독한 놈인데요. 아무리 두들겨패도 우리가
써준 조서에는 싸인을 안 해요. 어떻게 뒤집어씌우죠?
B : 야, 내일이면 기사 내야 한다고 위에서 X랄인데
어떻게든 조서 받아야 할 거 아냐. 전기고문이라도 써.
-절대평범지극정상인-
P.S : 물론, 진지하게 들으시면 지는겁니다.(후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