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범곤 순경 사건
원인
우범곤 순경(1955년 11월 5일 부산 출생[1], 당시 27세)은 당시 서울 청와대에서 근무하기도 하였으나,
인사 과정에서 의령군으로 좌천되었고, 동거녀 전말순 씨(당시 27세)와의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았다.
[2] 당시 경찰은 평소 술버릇이 나빴던 우순경이 동거녀와 말다툼을 벌인 뒤 흥분 상태에서 우발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지었다.[3]
경과
1982년 4월 26일 오후 7시 30분경에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소총 2정, 실탄 129발, 수류탄 6발을 들고 나왔다.
우 순경은 우선 우체국에서 일하던 전화교환원을 살해하여 외부와의 통신을 두절시킨 후, 궁류면 내 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깃불이 켜진 집을 찾아다니며, 총을 쏘고 수류탄을 터뜨렸다.
우순경은 생후 1주일된 영아부터 70세가 넘은 할머니에게도 총질을 하며 무려 8시간 동안 토곡리 등 4개 마을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주민 신고로 1시간 20분 뒤 사건을 접수한 의령경찰서는 뒤늦게 사살명령을 내리고 기동대를 출동시켰지만 우순경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우순경은 자정이 지나자 총기 난사를 멈추고 27일 오전 5시 30분쯤 평촌리 서인수씨의 외딴 농가에 몰래 들어가 서씨 일가족 5명을 깨운 뒤 수류탄 2발를 터뜨려 자폭했다.
이 사건으로 주민 62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으며, 3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4]
결과
이 사건으로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서정화가 자진 사임하고,
당시 근무지를 이탈했던 의령서장 등 3명의 경찰관과 방위병 3명이 구속됐다.
우순경 사건은 '짧은 시간에 가장 사람을 많이 죽인 단독 살인범'으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5]
한편 당시 의령경찰서장은 직무유기죄로 기소되었으나 법원은 주관적으로 직무를 버린다는 인식이 없고
객관적으로는 직무 또는 직장을 벗어나는 행위가 없다고 보고 무죄판결을 선고했다.
(펌/ 엽기혹은진실 카페 / 크히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