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영웅 정성공
이 정성공은 매우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아버지는 명나라 사람인 정지룡(鄭芝龍)이라는 인물이었는데 무역과
상업에 종사하던 인물이었고 어머니는 일본인인 타카와 마츠(田川松)라는 사람이었는데 정성공은 일본 땅에서 태어나서 지금의 하라도 시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일곱살에 명나라로 오게 된 그는 그곳에서 유학을 배웠으나 이때 오삼계가 변심하여 청군을 끌고와 명나라는 멸망하게 됩니다.
이때 정성공의 아버지 정지룡은 무역을 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근처의 해적들을 소통하고 군벌로 성장하게 되어 조정에서 벼슬을
받습니다. 명나라 멸망하자 그는 명나라의 황손인 주율건이라는 인물을 융무제로 만들어 이른바 남명(南明) 정권을 만들어 대항하게 됩니다. 남명의
황제는 정성공을 높이 여기어 그에게 명나라 황제의 성인 주씨 성을 하사하여, 사람들은 그가 나라의 성을 받은 사람이라 국성야(?姓爺)라고
부릅니다. 서양에선 정성공을 '콕싱아'라고 하였고 일본에서는 '고쿠센야' 라고 하였죠. 그런데 오래지 않아 정지룡은 배신하여 청나라에 손을 잡게
되고, 융무제는 청군에 잡혀 굶어 죽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정씨 집안 사람들은 이에 반발하여 청군과 싸우고 이 과정에서 정성공의 어머니는 죽게
됩니다.
청나라로 떠난 아버지의 세력을 이어받은 정성공은 청군과 격돌하기 시작합니다. 정성공의 세력이 만만치 않아 청나라는
그를 회유하려고 방법을 모색합니다. 그러나 정성공은 전혀 듣지 않고, 이에 분노한 청나라는 정지룡을 잡아 천천히 살을 떠서 죽이게 됩니다. 이에
정성공은 1645년 무려 15만이나 되는 병력으로 내륙에서 난징을 공격하기 위해 진격하였고, 어느정도 성과를 거두는 듯 하다가 태풍 때문에
대패하고 다시 한번 원정군을 준비하지만 청군에 패배합니다. 거기에 해안선의 사람들을 잡아 내륙으로 전부 옮겨버리죠. 그러자 정성공은 좀 더
장기적으로 상대해야겠고 생각하고 청나라가 쉽게 공격하기 힘든 대만을 근거지로 삼으려 합니다.
1554년 포르투갈의 선원들은
유럽인들로서는 처음으로 대만을 발견 하고 Ilha Formosa(아름다운 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1624년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가
펑후 제도를 점령하고 명나라와 협상을 벌입니다. 여기서 동인도 회사는 펑후 제도를 포기하는 대신 지금의 타이난 시 네덜란드 무역상회를 건설할 수
있게 됩니다. 이곳에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한족들을 이용해서 플랜테이션 경영을 하고 사람들을 모집하여 토지를 개간합니다. 이 과정에서 네덜란드
인들의 무시와 중과세에 반발하여 곽회일(郭懷一)이라는 노동자가 사람들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킵니다(이 사람은 정지룡의 부하였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반란군이 유리했으나 1000여 정의 머스킷 티어가 위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반란은 잔혹하게 진압되고 곽회일은 전사합니다. 그 후
에스파냐의 세력들이 대만으로 진출하자 네덜란드는 이와 경쟁해서 에스파냐를 몰아내고 대만을 독점하게 됩니다.
정성공이 대만에
도착했을때가 이때쯤이었습니다. 정성공은 2만의 군대로 10개월동안 네덜란드인들을 압박했고, 이에 네덜란드 인들은 통치권을 전부 넘겨준다는 문서를
쓰고 물러납니다. 이때부터 정씨 왕조가 이어지게 되었죠. 강희제 때는 정성공이 죽고 그의 아들 전경의 시절이었습니다.
배를 타고 순행하는
강희제
청나라는 오래 전부터 이 골치거리를 해결 하려고 노력했지만, 대만인들은 노련하고 네덜란드와 싸우면서 그 기술을
이어받은데다 배들은 몹시 빨라 바다에선 상대가 될 수 없었습니다. 이에 앞서 말한대로 해안선의 주민들을 내륙으로 옮기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지만,
이 조치는 청나라 쪽에도 타격이 심한 자충수 였습니다. 그 주민들은 무역으로 먹고 살았는데 생업이 끊기게 되어버렸죠. 강희제는 3년동안 그들에게
세금을 걷지 않습니다. 청나라는 방법을 바꿔 많은 뇌물을 동원해 정씨 집안에서의 분란을 유도합니다. 그러자 후계자 쟁탈전으로 대만은 몹시
피폐해졌습니다.
그 후 정경이 죽자 풍석범이라는 인물이 정극상이라는 사람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정극상은 고작 12살이라
실권은 풍석범이 쥐고 있었는데 몹시 전횡을 휘둘러 많은 불만이 발생하게 됩니다. 강희제는 때는 지금이라는 걸 깨닫고 수사제독(水師提督)
시랑(施琅)을 파견하여 대만을 공격하게 됩니다. 이 시랑으로 말할것 같으면 과거 정경의 부하로서 대만의 사정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고,
대만군은 패배하고 그들은 청나라에 항복하게 됩니다.
대만을 점령한 강희제는 영리한 방법을 취하는데, 항복한 대만인들을
탄압하지 않고 오히려 "끝까지 명나라에 충성을 다하였으니 이들은 칭송할만 하다" 는 식으로 정성공에게 충절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정극상을
공(公)에 봉하게 됩니다.
출처 : 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gugji&no=286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