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이 자신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고 바른것이라고 알고 있는 오류를 바로 잡아 주고싶다.
미국에 70년대 푸드트럭 및 각종 레스토랑은 비닐로 소포장된 케첩이 나오기 전까지 모두 부먹이였다. 아니 부먹이라기 보다 주인장이 뿌려주었다. 그리고 그 소스의 양은 싸구려 감자칩일지라도 적당하고 감자본연의 맛을 살리는 최적의 양이였다.
지금도 서양의 명망있는 푸드트럭이나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소스의 양에 대한 선택권을 절대로 고객에게 넘겨주지 않는다. 명망있는 쉐프들은 감각적 소스의 정량이 있다. 소스의 양! 그것은 쉐프의 자존심이며 고객을 위한 쉐프의 노력이고 배려이기 때문이다.
명망있는 쉐프들은 고객의 잘못된 소스 선택과 잘못된 소스의 양으로 그 음식에 대한 매력이나 본연의 맛과 풍미를 오해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마지막 한입까지 균등하게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양을 찾아서 내어놓는다.
요리사라는 자긍심이 높은 사람일수록 고객이 본연의 음식맛을 곡해하거나 오해하지 않을 소스의 최적 양. 즉, 황금비율을 찾아낸다. 쉐프는 고객 앞에 내어 놓는 음식의 맛이 자신이 의도한 맛으로 느끼게하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1kg에 500원도 하지않는 감자로 만든 감자튀김이라 할지라도...
난 부먹파이다. 아니 부먹 이전에 요리사가 뿌려주지 않는 소스는 입에 대지도 않는 전통파이다. 그래서 난 대부분 뿌려주는 식당을 찾아간다. 내가 알고있는 찍먹은 고도로 인스턴트화된 사회의 효율적 측면이 극대화되어 굳어져 고객배반을 편의로 인식하게 만든 오랑캐의 고려장 같은 문화라고 본다.
부먹이냐 vs 찍먹이냐 라고 묻기전에 고급이냐 vs 하급이냐로 또는 고객을 생각한 정성 vs 혼자 알아서 먹어 라고 왜 반문하지 않는가?
극단적이고 과격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찍먹이 좋다는 식도락을 갖은 사람들은 일평생 단 한번이라도 진정한 정성이 들어간 맛을 느껴본적이 없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당신의 어머니에게서도 조차 말이다. 찍먹? 찍먹이 맛이 있는가?
최상의 식도락가들이 한번쯤 펼쳐봤다는 미슐랭가이드에서 별한개라도 받은 식당들 중 고객 마음대로 소스를 뿌려 드시라는 집이 있던가?
과연 세상의 어떤 진실한 쉐프가 최고의 맛을 내게 해줄 수 있는 소스를. 음악에서는 울티마이며, 요리에서는 꽃이라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 화룡점정의 소스를 고객 마음대로 발라먹게 하는가?
부먹 VS 찍먹 이전에 찍먹은 고객에 대한 사명감과 쉐프의 본질을 단 한번이라도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는 천박한 자본주의 요리사이며 고객을 생각하는 쉐프가 아닌 그저 고객을 돈으로 보고 음식을 도구로만 생각하는 천민 자본주의에 자영업자일 뿐이다. 다시말하면 조화로운 소스의 양이야 말로 음식의 절대적인 기준인 것이다.
어떠한 요리에 필요한 최고의 타이밍에 최적의 맛과 풍미를 낼 수 있는 최고의 기준량을 찾아내 돈을 지불하고 맛보게 하는 것이 요리사의 절대적 최선인데 그것을 외면한체 고객에게 취향대로 입맛대로 알아서 뿌려먹으라고 하는 것은 얼토당토하지 않는 일이며 요리사로서 그리고 쉐프라는 위대한 직업적 자긍심을 쓰레기통에 쳐박는 무지이며 고객을 최악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극악무도한 반인륜적 행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스의 선택권을 조금 더 낳은 조건 이라고 생각하는 고객 또한 멍청하고 천민자본주의에 자신이 소모품이 된 것을 느끼지 못하는 철학없는 사람이며 돈으로 살수 있는 겉모양만 번지르르한 기름진 쓰레기를 입에 쳐넣고 이 식당이 친절하고 맛있다고 생각하는 바보고객인 것이다.
소스는 요리사의 긍지이며 요리의 절대적인 맛을 내는 핵심이다. 그것이 저렴한 요리재료라 해도 말이다. 그리하야 나는 찍먹을 혐오한다. 다시말해 천민자본주의의 표상과 같은 식탁에 소스를 널어놓고 음식을 파는 식당은 돌아보지 않는다.
당신이 진정 맛있다고 생각하는 레스토랑이라면 혹은 명망있는 식도락가들이 한번이라도 손꼽아 추천하는 식당에 들러보라. 과연 소스가 발라져 나오는지를? 그리고 당신 마음대로 발라먹게 하는지를. 만약 마음껏 발라먹게 하는 집이라면 그집은 그저 그런 식당이다. 그리고 그러한 식당을 추천하는 식도락가가 있다면 그자는 식도락가가 아니라 자신의 어줍지않은 허영이 고급스럽게 보이길 희망하며 사진이나 찍어 올리는 지혜가 없는 멍청한 인간이라 단언한다.
내가 아는 70년대 후반에 나온 비닐에 소포장된 케첩의양은 현재 한국패스트푸드점 케첩양에 4배였다. 이것으로 찍먹이 얼마나 자신들의 권리를 멍청하게 놓치고 있는 것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찍먹과 부먹의 발단이 된 탕수육에 대해서 말하자면, 탕수육이 먹고 싶다면 부어주는 탕수육집에가서 먹길 바란다.
쓰레기 배달음식 시켜놓고 부먹이네 찍먹이네! 초등학교 입학한 조카녀석이 두자릿수 산수에 덧셈뺄셈 물어보듯 묻지 말고. 똑같은 돈 주고 튀김옷에 고기 묻혀서 주는 탕수육 말고 고기에 튀김옷 묻혀서 튀기고 소스를 녹차 덕듯이 같이 볶아서 내주는 광동식 탕수육이나 튀긴 후 곳바로 처음부터 부어서 내어주는 홍소육같은 전통을 지키는 한국식 중식당을 찾아가길 바란다.
이후에 당신의 찍먹이 얼마나 무지하고 바보같은 생각이였는지 알게 될 것이다. 맛의 선택권이란 힘든 작업을 강요하는 허접한 음식집을 찾지말고 요리사가 끝까지 책임지는 음식점을 찾길 바란다. 나의 논문이 어그로가 끌릴 것을 예상하나 정통성을 찾길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