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없는 12월 리뷰 - 세계관(네타없슴)

물빛다프네 작성일 05.05.27 15: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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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내공 : 상상초월


왜 설정을 따져보아야 하는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설정이라는 뼈대를 이해하지 않으면 주인공이나 그 외의 인물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소설이 대체로 그렇듯이 작가가 문장 사이에 숨겨둔 전달하고자 하는 것들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소설을 읽어도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서머셋 모옴의 ‘달과 6센트’를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천재 예술가의 광기어린 삶과 예술혼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어느 개념없는 바람둥이의 비참한 삶의 괘적 정도로 밖에 해석할 수가 없다. 이 게임 또한 주인공이 어떤 인물이냐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막연히 읽어나간다면 한 비뚤어진 고딩의 ‘귀축소년 형성기’에 지나지 않는다.

(1) 주인공 기타

본 게임의 주인공으로서 인생은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별 상관이 없고 단지 변화없는 쳇바퀴도는 일상만이 인간의 삶이라는 아주 기특한(?) 인생관을 가진 예비귀축소년^^;. 게임내에서는 아무도 없는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때우는 것이 일과다. 우연히 옥상에서 내버린 꽁초를 토우코가 주우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독설과 냉소를 주저없이 내뱉지만 그의 내면은 사실 너무나 상냥한 사람이다. 단지 그걸 깨닫고 있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만큼 자기도 상처를 받는 특이한 체질이기 때문에 그는 인간 관계를 기피한다. 어디까지나 인간관계는 가볍고, 얇고, 적게를 모토로 한다. 인간관계를 맺지 않으면 그래서 사람과 얽히지 않으면 그만큼 상처받을 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게임 내 최약의 주인공.

극단의 감정은 정반대로 통하듯이 상냥한 감정은 역으로 그에게서 사람을 멀리하게 한다. 사람에게 상처받을 일이 두려워 주저하는 그에게 인간관계는 오히려 갈등과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일 뿐이다. 게임 중에서 토우코에게 심하게 대하는 것처럼 일견 보일런지도 모르나 그것은 그가 무엇이든 받아주는 토우코에게 부리는 어리광일 뿐이다. 이것은 노멀 앤드인 토우코 솔선수범 엔드(笑)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런 어리광의 와중에서도 토우코와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 두려워 말끝마다 ‘육체뿐인 관계’라는 딱지를 붙이지만 토우코를 잃고나서 가슴앓이를 하는 주인공을 보면 역시 그는 토우코보다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천사의 의미

천사라고 하면 어떤 의미가 생각나는가? 바로 인간 이상의 상냥하고 특히 ‘죄없는’ 순결한 존재이다. 일반적인 에로게에서는 걸어가다 차이는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천사 같은 히로인이 이 게임에는 없다. 바보 같이 착하기만 하고 모든 것을 받아주는 토우코에게도 자신의 목소리가 있고 완벽해 보이는 시노부에게도 뿌리깊은 죄의식이 자리잡는다.

싹싹한 마호는 공허한 관계의 와중에서 이리 저리 휘둘리고 기타와 동류의 인간인 유키오도 결국은 한계에 부딪힌다. 토우코 시나리오에서는 조언도 해주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아스나도 자기의 내면에 상처를 지닌 불완전한 존재로 드러남으로써 결국 천사는 아무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상냥하고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의 존재이다. 그것은 주인공 기타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 생각만을 가졌다고 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가 하는 부분을 보면 역시 그것은 아니다. 그런 상냥함에서 나오는 애매함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쌍방에게 주는 것을 보며 우리는 잠시 과연 진실함과 정직함만으로 다른 사람과의 상처주지 않는 교류가 가능한 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주인공 또한 천사가 아니다.


천사는 없다. 누구나 상처받고 상처입히며 잠시 동안이라도 상대의 온기로 자신을 덥히는 불완전한 존재일 뿐이다. 거리에는 캐롤이 울려퍼지고 상점가에는 천사 인형이 진열되어 분위기를 돋우고 있는데도 천사는 없다.

12월… 예수님이 탄생한 거룩한 달에 응당 하늘로부터 찬송하며 내려와야 할 천사가 없다. 이것은 일종의 선망과 희망, 거룩함이 거세된 무미건조한 게임 속의 공간을 가르키는 말이자 등장인물의 공허한 심리상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일견 성경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나니’는 말과 상통한다고 볼 때는 주인공 및 모두가 불완전한 죄인임을 선포하는 말이기도 하다.

죄인은 죄로 인해 죽는다. 그래서 죄인에게는 죄를 용서해줄 어떤 권위가 필요하다. 그러나 신의 명령을 받고 그들의 죄를 사해줄 사자인 천사는 없다. 그들에게 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 채 죄를 짊어지고 불완전한 상태로 영원한 고통의 상태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더 이상의 구원을 바랄 수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불완전하게나마 서로에게서 위안을 찾으려하나 결국 서로에게 얻는 것은 순간의 쾌락과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갈증으로 채색된 암담한 현실일 뿐이다.

(3) 실낙원과 메시아에 대한 부정

마음 속의 어찌할 수 없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서로에게 자신에게 없는 것을 구하지만 결국 그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그들 각각이 죄인이기 때문이다. 낙원을 잃어버리고 쫓겨난 그들 자신의 신분으로는 서로에게 구원을 해 줄수 없다. 단지 서로에게 의지하여 낙원 바깥의 차가운 바람을 견뎌내는 일 뿐.

게임 내내 구원을 받는다거나 해준다는 대사가 공허하게 울린다. 그러나 신을 부정한 그들에게는 그들의 불완전함을 해소해줄 신의 자비 같은 것은 없다. 그래서 결국은 그들 자신의 한계에 부딪치며 괴로워하고 그래도 살아나가야 할 뿐이다. 일견 그들의 모습은 낙원을 잃은 인간의 허무하고 어두운 군상을 대변해준다.

(4) 속죄 및 대속

본 게임에서는 의외로 여기 저기 죄에 관한 표현이 많다. 또한 죄에 대한 관점 및 태도에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미약하게나마 모티브가 되어있다. 특히나 시노부의 자책은 죄를 짓고 죄의 무게로 인해 살 수 없다는 카인의 고백과 유사하다. 카인이 여호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자 여호와는 그에게 특별한 징표를 내려주어 카인의 삶을 연명하게 한다. 그것은 카인에게 있어 생의 표시이자 죄의 무게를 짊어진 속죄의 낙인이다.

시노부는 정의로운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전에 다른 이를 평가하던 그 잣대는 이제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역으로 시노부의 가슴을 찌른다. 미쳐 깨닫지 못한 속물적인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여 시노부는 죽는다. 죄의 무게, 죄를 지었다는 자책감의 무게에 시노부는 짓눌려버린다.

GEN 4:13 And Cain said unto the LORD, My punishment is greater than I can bear.
(창세기 4장 13절: 카인이 하나님께 아뢰어, “내 죄가 내가 견디기에는 심히 중하나이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닌 상태. 그런 상태에서 시노부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오직 자해를 하는 순간뿐이다. 파고드는 듯한 아픔과 흐르는 붉은 피. 시노부에게 자해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동시에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결코 근원적인 무거움을 벗어던질 수는 없는 단발적인 행위.

속죄(贖罪, redemption): 어떤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하여 그 대가를 치르고 속량받는 일. 어원을 거슬러가면 대가를 치르고 포로나 노예를 되찾아오는 일을 뜻한다.

시노부는 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죄를 대신 짊어져 줄 누군가를 구한다. 그리고, 기타에게 자신의 죄를 대신 짊어져 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속죄를 할 수 있는, 그래서 누군가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죄가 없는 완전무결한 영혼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들은 인류를 위해 무죄의 영혼으로 대속한 그리스도의 흉내를 내고 있지만 그것은 공허한 가짜 대속일 따름이다.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과 이브처럼 그들 자신의 행위로는 결코 죄가 없던 시절의 낙원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러는 와중에 기타는 2중의 괴로움을 겪게 되고(자세한 것은 나중에 본문에서 언급) 영원할런지도 모르는 속죄의 괴로움을 시노부와 함께 나눠지기로 결심한다.

(5) "~なのに" 혹은 "~できない"의 게임

게임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게임에서 위의 두 단어는 너무나도 빈번히 등장한다. 자신이 생각했던 혹은 예상했던 짐작이나 상황과는 빗나가는 전개를 나타내는 나노니는 주로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어떤 흐름을, 데키나이는 그런 상황 앞에서 무능력한 주인공을 나타내는 말로 자주 쓰인다. 이런 단어를 통해 게임 속의 주인공은 한없이 무력하고 불완전한 자신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거친 세상 속에서 너무나 미약한 존재들인 주인공 및 히로인들의 상황을 대변해주기도 한다.


(6) 게임 내에서의 섹스의 의미

이 게임속에서는 섹스가 만연하는 게임이다. 시작부터 토우코와의 신을 포함해서 여러 번 되풀이되는데 대체로 퇴폐적이고 암울한 느낌이다. 보통의 에로겜에서 나오듯이 모든 갈등이 해결되고 나서 해피엔드의 수순으로 밟게되는 그런 섹스가 아니라 뜬금없이 혹은 공허하게 ‘살을 섞는다’라는 느낌이 어울리는 쪽이다.

서로가 바라고 있는 것은 몸을 섞는 일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이어졌다는 느낌, 어떤 유대를 찾는 것인데 그들은 너무나 ‘서툴러서’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오로지 혹은 막연히 몸을 섞는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서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언제나 섹스 후에는 허탈감을 되씹으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에 무의미한 과정을 되풀이할 뿐이다. 섹스는 그들에게 있어서 현재 그들의 마음이 이어져있음을 확인하는 행위이자 실제적인 증거이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그들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절망적이고 필사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언제나 그걸로는 ‘부족’하다.

(7) 결론적으로 게임 내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신이 없는 인간의 비극'쪽에서 바라본, 그래서 혹은 부각되는 '소통'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로 자기가 부족한 무언가를 다른 사람에게 찾으려고 하고 혹은 원하던 것을 찾지 못하더라도 동질감을 확인하며 안도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어떤 사람을 안다고 할때 그것이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인가? 이야기를 하고 웃기고, 그리고 살을 섞는다고 그 사람과 마음이 통한 것인가? 에로게에서 남발하는 '만병통치 에로스포츠'를 통해서 갈등이 해결되고 이후 잘먹고 잘사는 관계가 될 것인가는 의문이다.


이 게임은 어설프게 '그래서 그들은 잘먹고 잘살았습니다'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엇갈리고 잘 풀리지 않는 실타레 같은 관계들을 반복하여 보여줄 뿐이다. 신을 버린 인간... 그래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불완전한 인간 관계를 통해 결국은 영원히 소통되지 못하거나 혹은 서로의 쓰라린 상처를 감싸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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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글의 필자는 촛불과 채찍님입니다.
천사가 없는 12월을 철저하게 파헤치고 분석하는 글입니다.
좋은 글이라 올려봅니다. 공감한다면 다른 분들도 보게 추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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