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라이프의 몰락ㅜㅜ) 이미 그 전조는 어린나이에 몰두하던 게임과 외로운 저였습니다 당시 12년전(10살) 저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이될 큰범죄를 저질렀지요 (전...사기꾼의 피가 흐르나봅니다ㅜㅜ) 그당시 코흘리게들 게임라이프의 전부였던 최강의 보급기(패밀리)는 아이들마다 퍼지기 시작했던 전성기였습니다 당시전 골목에선 알아주는 대장였고 따르는 무리가 한다스;;는 넘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아버지에게서 들었습니다 그소식의 내용은 이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신다는 것이였죠 어린 꼬맹이였던 전 그때에도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을 느꼈었더랬습니다 친구들과 해어져야 했으니까... 하지만 왜 그 스트레스 상황을 그렇게 해소했던 것이였을까요? 전 아이들에게 게임팩을 빌리기 시작했고 방과시간후 그것들을 신팩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악랄하게도(미안하다 얘들아~)그곳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답니다...그것은 제인생에 최초이며 최악의 도덕적 범죄였고...외로운 상황을 타개하려던 아이의 발악이였답니다..(이후 아이들을 만났고 사과는 했답니다)
(1996 충격과 전율의 시작) 게임월드 라는 잡지를 기억하시나요? 그당시 과월호 (95?)의 표지를 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8비트 도트만 봤던 문명과는 거리가 먼 원시게이머^^;; 에겐 모델3 기판의 버파 (파이 였던걸로 기억) 의 캐릭이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불그스름한 얼굴로 웃고있던(기억하는분 있으3?)것이였고 전 충격과전율에 몸둘바를 몰랐지요 잡지안엔 월화무환담(맞나?) 나이츠 의 개발기사를 볼수있었는데 솔직히 그땐 이게 뭐하는거야? 했답니다....
(삼성새턴 매장과 lg 3d0매장) 기억하시남? 그당시엔 이런것도 있었답니다 시연하던 게임들은 대부분 삼성에선 팬져드래군 3d0는 아마겟돈 였던걸로 기억합니다 당시새턴의 가격은 충격과 전율의 60만원 였으니까... 당시 게이머들은 좋은 대안을 찿아야만 했죠
(닌텐도 도데체 넌뭐야?) 슈퍼마리오보다 더기억나던 킬러인스팅트2와 웨이브레이서64 그리고 영화를 주제로한 최초의 게임(저에게는)007..그리고 튜록 과 스타폭스64 네게의 진동연동 대형 아날로그스틱 흠.....이런것도 있었어?.. 그래 언젠가는 손에 넣어..야할까? 라는 생각이 그당시 게이머들의 반응이였고 저의 반응역시 비슷했답니다...사실 32비트와 그다지 구별은 가지않았는데..
(슈패미의 몰락과 전혀 상관없던...나) 이 해의 게임 잡지는 대부분 이런 주제를 다루었던걸로 기억해요 아마 게임잡지기자들이 일부로 지면을 내서 특집으로 슈패미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그리워하며 어거지? 공략을 냈던 시기이기도 하죠 트래져 헌터와 슈퍼마리오rpg의 공략스샷은 최시기종을 의식해서인지 디오라마를 연상시키는 아이템공략사진과 게임화면을 내보냈었고 바하무트라군과 드퀘3 리메이크같은 일부로 뽀대나는 게임들로 채워넣던 시기였고 말그대로 최후까지 수축하다 아름답게 폭발하는 항성처럼 마지막이므로 아름다웠던 시기였슴당
(주술(부두)의 시대) 역시 이해의 사건으로 (다음해인가?) 깔끔한 mmx전용 소프트와 부두1을 지원하는 괴물소프트들의 개발발표가 시작되던 한해였습니다 mmx로는 미래형 pod레이싱 (기억해세용?) 부두전용으로는 모토레이서(mmx호환) 가 각각 하드의 번들로 많이 제공되던 시기였습니다 메시아(인터플레이,샤이니) 블레이드러너(?) 킹스퀘스트8(?) 피파97 액츄어사커 세가렐리 다크포스2 테스트 드라이브4 모두 게임잡지의 단골주제들였죠 아무튼 신기한 세상이였답니다
(플스... 오버 버닝) 토발no.1 오버블러드 킹즈필드? (여하튼 별걸다했구나..) 반달하츠 에이스컴뱃1 ㅎㅎㅎ 스타글래디에이터...그중 가장기억에 남는 오버블러드는 어드벤쳐라는 장르를 처음접하게 해준 그런게임였습니다 당시 중년의 털보주인공과 그를 도와주는 r2d2같은 안드로이드의 활약상과 우정은 아직도 깊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반달하츠의 엔딩곡도 꿈에서듣는 음악같았는데....(인생최초로 엔딩을 본게임)
(1997 보따리상과 10만원짜리 정품 일어소프트;;; 아르바이트 그리고 파이널판타지7) 중딩2년 그당시에도 당근 미성년자는 알바가 힘들었죠 하지만 부모님의 지인이 운영하는 세차장에서 일을 할수있었고 첫주급을 받은 그날 이미 전 게임매장에 있더군요...더블 시디케이스(플스용) 의 희고 고품스런 표지에 찍혀있던 심플한 파판7의 로고는 저의 첫주급을 몽땅 앗아가고도 행복했던 이유였습니다 명품을 사면 이런기분였을까? 그땐 그렇게 순수하던 시절이였네요 요즘은 도저히 느낄수없는 그런....
(게임라이프의 몰락 지독한 불감증 그리고 이별 year of 2000) 최후를 함께한 저의 마지막 콘솔은 p3-550 pc와 드림캐스트였습니다 언뜻보니 글쓰는 지금도 옆에 케이스가 있네요^^;; 배틀죤2입니다만 언리얼1도 있고....셴무는 두번째시디만이 남았군요 (올릴수는 없음 케이스만 있네요) 최후의 시대 역시 그때도 잡지는 있었습니다 당시의 이슈하면 당연히 플스2였고 기억하기론 플스2의 그래픽능력을 보여준다며 과시했던 수많은 꽃과 물 (일본식 정원인듯)의 데모영상이 스샷으로 올려져 있었네요 ...하튼 그때부턴 왜그랬는지 그런 우수한 영상은 와닿지 않더군요..이후 x-box의 무술하는 여자와 뒤에서 여자를 따라하는 로봇의 프로덕션 영상도 게임이외의 다른분야 때문에 관심을 가졌지요(이때부턴 영화에 관심이 생기던시기) 사람냄세가 나지않는 게임들 아버지와 한이불속에 누워서 하던 슈퍼마리오와 남극탐험과는 다른 이질적인 화면들은 이미 재미보단 그저산업과 판매량만을 위한 게임들 같았고 세가로고이후의 셴무 영상 살해당하는 주인공의 아버지와 그를 추적하는 마지막 플레이... 요코즈카의 미국인 음반도매상과의 흥겨운 대화 게임센터에서의 애프터버너... 다트등.....이모든것을 뒤로한체 경제적인 상황이 많이 좋지않아서 더이상기계를 유지할 자금도 없던 저는... 대입준비까지 겹치자 드림캐스트를 처분하고 피시게임 대부분을 음식물 쓰레기와 같이 ㅜㅜ 휴지통에 쳐박고서야 게임인생에 대한 장례를 마쳤답니다
저는 저의 불감증을 불감증이라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최초 패밀리로부터 시작된 게임인생은 전성기인 1996년부터 2000년 까지 단 4년이란 기간동안 매우 급하게 수많은 게임들을 접해왔고 오히려 그시기는 별로 행복하지는 않았던것같아요 첫 이별을 경험했던때부터 이후 32비트 64비트 128비트를 거치면서 게임을 플레이하고 그때문에 알게됬던 사람도 의외로 많았습니다 단순히 게임은 놀이만이 아닌 추억이되버린 지금 아버지의 한마디는 저로하여금 이글을 쓰고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답니다 웹서핑중 발견한 남극탐험의 익숙한 멜로디를 들으신 저희 아버진 아련한느낌이 드신다면서 패밀리를 한번구해서 해보고 싶으시다더군요 그것은 그시절 추억을 플레이 하는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