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하고 아주 먼 옛날...
'도키메키 메모리얼'이라는 게임이 일본열도를 달궈놓고 한반도까지 열기가 전해지던 그 때...
한 게임회사에서 제작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성공을 부러워하면서도 자신들도 그런 게임을 만들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마침내 그들은 새로운 게임으로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아성을 무너뜨리겠다고 다짐했고,
결국 새로운 게임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제작발표가 나자 게이머들은 새롭게 나온다는 이 게임을 기대했고 열광했으며 기다렸다.
얼마나 잘 만들려고 하는지 발매일을 연기하기 수차례...
드디어 게임이 나오게 되었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게이머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이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게이머들은 제작사에게 박수를 보내기는 커녕, 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제목 : Sentimental Graffiti(센티멘탈 그래피티)
제작사 : NEC 인터채널
장르 : 연애시뮬레이션
발매기종 : 세가세턴
발매일 : 1998년
이 게임은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주인공은 어렸을때부터 아버지의 일때문에 전국 방방곡곡을 이사다니며 많은 여자들과 추억을 남깁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다니던 주인공에게 한통의 편지가 도착하죠.
'기억하고 있나요...처음 만났던 그 날을...그리고 추억을...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이 편지를 본 주인공은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누군지 모를 추억의 여자가 자신을 잊지못해 편지까지 보내며 애태우고 있다는 사실에 눈이 뒤집히죠.
그리고는 전국 방방곡곡 자신과 어렸을때 만났던 여자들은 다 찾아다비며 누군지 확인하려합니다.
때로는 비행기를...때로는 여객선을...돈이 없으면 히치하이킹으로...
돈을 아끼려고 아르바이트에 노숙질까지 해대며 여자친구를 하나 만나기 위해 일본열도를 다 뒤지고 다니죠.
냉정히 생각해보면 제 정신이 아닙니다만, 뭐 게임이니까...하고 너그러이 넘어가봅니다.
그리고 결국 편지의 주인공을 찾아내고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는 내용이죠.
다들 아시겠지만...
호감도 제일 높여서 공략되면 편지쓴 장본인이 되는겁니다.
..........
게임 설명은 대충 이 정도로 하고...
이 '센티멘탈 그래피티(이하 센티멘탈)'라는 게임은 어떤 의미로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게임입니다.
일본 전국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 것...
실제로 그 지역에 존재하는 교복과 배경을 등장시킨 것...
여주인공 12명의 성우를 공개오디션해서 선발한 것...
한창 잘나가던 원화가 토모히사 카이(성인물 그리는 미즈타니 토오루와 동일인물)를 기용한 것...
이런 것 때문이 절대 아닙니다.
광고낚시로 수많은 게이머들을 설레게 만들고 기대하게 만들고 돈을 쓰게 만들고 허탈하게 해줬기 때문이죠.
어떤 낚시인고 하니...
일단, 제작발표를 하면서 제작사는 엄청난 퀄리티의 CG를 선보입니다.
이런거라든지...
...이런 CG를 말이죠.
당시에 대세는 '도키메키 메모리얼'이었습니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CG는 대충 이렇습니다.
..........
한 눈에 봐도 위에 있는 센티멘탈이 훨씬 낫습니다.
때문에 게이머(특히 미소녀에 끙끙 앓는 게이머)들은 열광했죠.
'도키메키 메모리얼의 시대는 끝났다!'
'이젠 센티멘탈로 대동단결!'
게이머들은 이렇게 열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열광하는 게이머들을 본 제작사는 생각했죠.
'오호라, 이거......돈 좀 되겠는걸?'
그리고는 신나게 캐릭터 상품을 내놓고 팔아치우기 시작합니다.
캐릭터 설정 화보집부터 시작해서...
피규어...
캐릭터CD...
달력...
티셔츠,브로마이드,책받침,트럼프,시계......심지어는 여성 캐릭터들이 다니는 학교뱃지까지...
만들수 있는건 다 만들어 정말 엄청난 수의 캐릭터 상품을 판매합니다.
이미 화려한 CG에 반한 게이머들은 미친듯이 캐릭터 상품을 사기 시작합니다.
덕분에 정작 게임을 발매하기도 전에 제작사는 돈을 긁어 모았죠.
제작사도 신났고 게이머들도 신났던 정말 꿈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몇번의 발매 연기 후...
드디어...
게임이 나왔습니다.
<센티멘탈 그래피티 오프닝>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연애게임 오프닝이 아니라...한 편의 태극권 시범을 보는 것 같았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아낙들이 허우적대는게 참 코믹하더군요.
그런데 태극권을 제쳐두더라도 좀 이상했죠.
캐릭터의 퀄리티가 너무 떨어지는겁니다.
오프닝까지 본 게이머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합니다.
'설마...아닐거야...난 믿어 의심치 않아...내가 산 상품이 몇갠데...날 배신하지 않을거야...'
하지만...
결국 제작사는 게이머들을 배신했습니다.
이럴거라고 기대했던 그녀가......
이렇게 등장했던 것입니다...
막상 게임이 발매되자,
당시 정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제기랄, 속아도 제대로 속았다!!!'
'캐릭터 상품 판 돈으로 대체 뭐했냐!!'
'내 호노카짱이 왜 이렇게 됐냐능....ㅠㅠ'
기대를 많이한 저도 정말 허탈했죠.
물론, 게임에서 그래픽이 전부가 될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건 '연애시뮬레이션'이자 '캐릭터게임'이었습니다.
발매전에 이런 그림을 보여줘서 기대하게 해놓고...
정작 게임에서 이런 그림을 보여주니 하고 싶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
이런 그림을 미리 보여주길래 게이머들은 스토리에도 많은 기대를 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12명의 소녀들이 서로 어떻게 얼키고 설키며 이야기를 진행해나갈까...하는 기대였죠.
그런데 왠걸?
막상 플레이 해보니 12명의 소녀들은 서로 전혀 모릅니다.
12명 모두 주인공과 1:1의 관계일 뿐....그녀들은 서로 전혀 연관이 없었죠.
때문에 또 한번 많은 이들이 실망하게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센티멘탈은 무참히 망하고 맙니다.
하지만 제작사는 이미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그리 신경쓰지 않았죠.
그저 게이머들만이 한숨을 쉬며 조용히 CD를 부쉈을 뿐입니다.
그래도 소수의 매니악한 팬들은 남았습니다.
'CG가 거지같긴 하지만 그래도 즐길만 하다...'
'속편을 기대해보겠다!!'
그리고 제작사는 정말 정신이 나갔는지 '센티맨탈 그래피티2'라는 속편을 제작합니다.
전작에 하도 욕을 먹어서 그런지 CG에는 신경을 좀 썼더군요.
그리고 게임의 진행과 시스템도 전작보다는 꽤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시는 속지 않겠다며 사지 않았고...
소수의 매니악한 팬들만이 이 게임을 플레이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수의 매니악한 팬들마저 등을 돌리게 만드는 만행을 저질렀으니......
<센티멘탈 그래피티2 오프닝>
전작의 주인공을 죽여버린겁니다.
......
정말 이 무슨 해괴망칙한 짓인지 어이가 없더군요.
장르가 장르이니 만큼 게이머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 정말 된것처럼 플레이를 하게 되는거죠.
그런데 전작을 즐겼던 모든 유저들을 죽인거나 다름없는 짓을 저지르고 만겁니다.
아니 이게 무슨 취작도 아니고 주인공을 죽여버리나요...
그런데 이걸 참는다고 해도...
버그때문이 진행이 안돼........................OTL.......................
화낼 기운도 잃어버린 게이머들은 그저 조용히 CD를 분리수거 할 뿐이었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CG에 대해서만 불평을 많이 했지만...
솔직히...
게임도 별로 재미없습니다.
말이 연애시뮬레이션이지...시간&돈관리게임이나 다름없는 시스템에 질려버리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기심삼아 해보시려면...
참으세요.
재미있는 다른 게임이 아주 많습니다.
방청소를 하다가 어릴때 친구가 용산에서 사 생일선물로 저에게 준
센티멘탈 그래피티 화보집을 발견해서 한 번 써봤습니다.
더 이상...
이런 낚시게임이 나오진 말았으면 좋겠네요.
그럼 오늘도 모두 열렙하시고 득템하시고 헤드샷 맞추시고 연승하시고 감동의 엔딩을 보시길 바랍니다.
즐겜하세용~
아 진짜 애들은 무지 이쁜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