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본질

갈아먹는뇌 작성일 05.09.22 21: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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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ence du neoliberalisme)
-- 신자유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순수-시장의 논리에 방해가 될 소
지가 있는, 집단적 구조물들을 파괴하는 프로그램이다 --
삐에르 브르디외(Pierre Bourdieu)(프랑스 대학 교수)


1. 신자유주의 유토피아는 순전한 허구, 현실에 대한 과도하고 그릇된 추
상에 의거한 순전한 허구(신고전파 경제이론)를 이론적 기초로 하고 있다
경제라는 세계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담론이 그러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
는 것처럼, 정말로 순수하고(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도 완전무결한
(완벽하게 잘 굴러가는) 질서인가? 그리고 이 질서는 [돌아가는 실상이 투
명하게 외부에 알려지기만 하면] 그것의 귀결을 능히 예견할 수 있다는 논
리(이것은 신고전파 경제학의 논리인데 : 역주)를 가차없이 펼쳐 보여주는
가? 그리고 잘잘못에 대해 상벌을 가하는 방법에 의해서―시장기능의 자동
적인 작동에 의해서든 또는, 그보다는 조금은 예외적으로, 국제통화기금
(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자신의 무장한 팔뚝들과 그 무장한
팔뚝들이 강요하는 정책들, 예컨대 노동력 가격(임금)의 저하, 공공지출의
삭감, 및 노동의 유연화 등을 매개수단으로 해서든―제반 잘못들을 제때에
바로바로 처벌함으로써 교정하는가? 과연 경제라는 세계는 참으로 그처럼
이상적인 질서인가?
경제라는 세계는 [그처럼 이상적인 질서이기는커녕 오히려] 실제로는 신
자유주의라는 하나의 유토피아, [우리들이 최근에 경험하고 있는 바와 같
이] "정책 프로그램"(신자유주의 사상의 원조인 하이에크가 이야기하는 바
와 같은 '자생적인 질서'라기보다는 지극히 '인위적인 전략'인 : 역주)으로
전환된 하나의 유토피아, 그것도 자신이 내세우는 경제 이론(신고전파 경제
이론 : 역주)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자신을 현실에 대한 과학적인 묘사인 양
착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른(거짓 이데올로기화한 : 역주) 하나의 유토피아를
실행에 옮긴 것일 뿐이지는 않은가?
이 변호론(신고전파 경제이론)은 수학 공식의 형태를 띤 순전한 가공물이
다. 그것은 애시당초부터 가공할 정도의 추상화(抽象化)에 기초하여 만들어
진 하나의 허구이다. 그것은 '개인주의적 합리성'과 동일시되는 부류의 합
리성을 사유(思惟)의 엄밀하고도 엄격한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합리적인 지
향들이 나오게 되는 경제적.사회적인 제조건들(처지로서의 조건들 : 역주)
과 그러한 지향들을 실행에 옮기는 데 있어서 그 제약조건이 되는 경제적.
사회적인 구조들을 [모조리] 괄호 속에 넣어버리는, 가공할 만한 추상화에
기초하고 있다.
[이 변호론이 얼마나 현실에 대한 과도하고 그릇된 추상(抽象)인지는] 간
단한 예로서 교육제도만을 생각해 보면 충분하다. 오늘날 사람들은 생산자
를 생산함(노동자를 키워내는 데 : 역주)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재화와 용
역을 생산함에 있어서도 체계적인 교육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시기, 바로
그런 시기에 행해지는 교육에 대해서 결코 "명실상부한 제도교육"으로 셈해
주지 않고 있다(교육과 노동을 절대적으로 분리시키는 추상화를 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공고생의 산업연수는 교육이기보다는 임금노동에 가깝다.
반면, 신제품 생산을 위한 신기술 습득 과정은 노동이기보다는 교육에 가깝
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기술혁신이 빠르게 진행되는 시기에 있어서는 노동
과 교육을 절대적으로 구분짓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 역주).
이러한 따위의 태생적인 결함, 즉 "순수이론"이라는 왈라스(주1)류(流)의
신화 속에 내재하고 있는 결함으로부터 자연히 경제학의 제반 부족점(한계)
과 잘못된 점(오류)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경제학 자신을 파멸로 이끄
는 옹고집이 생겨나고 있다. 오늘날의 경제학은 그처럼 고집스럽게 '경제
고유의 논리' 즉 경쟁에 기초하고 있고 효율성을 담지하고 있다고 자칭하는
'경제 고유의 논리'와 형평(衡平)의 원칙에 복종하는 '사회적(사회복지적
또는 사회연대적) 논리' 사이에 자의적이고 독단적으로 대립관계를 상정하
고서, 그 자의적으로 상정한 대립관계에 악착같이 집착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그와같은[경제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절대적으로 구별하고 대립시키
는] 대립관계는, 오로지 경제학 자신의 존재 그 자체에 의해 [마치 현실적
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자의적이고 독단적으로 상정(想定)됨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한 대립관계는 이처럼 허구적으로 고안된 것
일 뿐이다.

그런데 원천적으로 탈(脫)사회화되고 탈(脫)역사화된 이 "이론"은 오늘
날,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스스로가 "참으로 되는" 즉 경험을 통한 검
증으로 자신이 진리임을 입증할 수 있는 수단들을 지니고 있다. 과연 신자
유주의 담론은 여타의 담론들과 확실히 차원이 다르다. 에르벵 고프망에 따
르면(주2), 이 이론은 피신처에서의 정신병적 담론이 그러한 것과 같은 식
으로 하나의 "억센 담론"이다. 이 담론은 매우 강력하고 또 논파하기가 어
렵다. 왠고 하니, 이 담론은 자신이 그것의 현상 유지에 기여하고 있는, 힘
-관계의 세계(이성적 관계에 대비되는 의미에서, 힘을 가진 자가 장땡인 세
계 : 역주)의 모든 힘들―기득권적인 것들―을 자기 편으로 삼고 있기 때문
이다. 이 담론은 특히 경제관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들의 경제적 선택에 일
정한 방향(약육강식을 가차없이 추구하는 : 역주)을 부여함으로써, 그리고
그 힘-관계들에게 자기 자신의 고유한 힘 즉 고유하게 상징적인 힘(정당화
하는 이데올로기 : 역주)을 첨가해 줌으로써, 그 힘-관계들의 세계가 현재
의 상태 대로 유지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인식(認識)에 대한 이 과학적인 프로그램(이데올로기임에도 불구하고 과
학의 외양을 띤 사고체계 : 역주)은 오늘날 인식에 대한 프로그램에 멈추지
않고 행위에 대한 정책 프로그램으로까지 즉 전략으로까지 전환되고 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 의거하여 이 "이론"―이 이론이란 다름아닌 "방법론
상의 집단주의를 파괴하는(방법론상의 개인주의만을 강요하는 : 역주) 프로
그램"이다―이 현실화되고 원할하게 작동되는 제조건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
로 하는 엄청난 "정치적, 정책적인 노력"(겉으로 보기에 순전히 부정적, 파
괴적이기 때문에 도처에서 거부되고 있는)이 경주되고 있다. 즉 집단체(국
가, 노동조합, 계급, 민족 등 : 역주)를 파괴, 해체시키고 개인을 원자화시
키려는 엄청난 정책적 노력들이 경주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 '순수하고 완전무결한 시장'이라는 신자유주의 유토피아
를 향해 나아가는 이 움직임은 금융에 대한 탈규제 정책에 의해서 그 실현
이 가능하게끔 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정책수단들(그러한 정책수단
들 가운데 가장 최근의 것으로는 '다자간 투자협정'이 있는데, 이 협정은
민족국가들에 대항해서 외국인 기업들과 그들의 투자를 보호하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하고 있다)을 동원한 변혁적이면서 "파괴적인"―이렇게 파괴적이
라고 말하는 것이 적확하다―활동들을 통해서 그 실현이 달성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유토피아를 향해 나아가는 이러한 움직임은, 순수-시장의 논
리에 대해 방해물로 될 소지가 있는 "모든 종류의 집단주의적 구조물들을
문제시하는 것"을 그 목표로 삼고 있다. 이렇게 문제시되는 집단주의적 구
조물로는, 그 운신의 폭이 부단히 좁아지고 있는 '민족'이 대표적이다. 또
노동집단들(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의 단위 : 역주)도 공격의 주요한 목표물
이 되고 있는데, 노동집단들은 예컨대 임금과 근속기간을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개인별로 결정하는 것 및 그 결과로서 수반되는 노동자의 원자화를 겪
고 있다. 또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 낸 집단체들
즉 노동조합, 사회운동단체, 협동조합들이 목표물이 되고 있다. 심지어 가
족이라는 집단주의적 구조물조차도, 연령계층에 따라 시장이 분단적으로 구
성되는 것을 통해서, 소비에 대한 자신의 [집단주의적] 통제권의 일부분을
잃어가고 있다.
2.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의 궁극적인 기초는 실업, 불안정 및 해고위협이
라는 구조적인 폭력이다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은, 자신의 사회적 힘을 자신이 그 이해관계를 대변
하고 있는 사람들―즉 주주들, 금융 투기꾼들, 산업가들, 자유방임을 확고
하게 하기 위하여 그것을 조금 포기하는 쪽으로 개종한 보수주의적 또는 사
회민주주의적인 정치인들, 그리고 바로 자기들 자신의 절멸을 교사하는 정
책들을 강요하는 데 너무나도 열중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계의 간부들과는
달리, 그 정책들이 초래할 후과(後果)들에 대해 혹시 자신들이 그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을까(즉 자신들이 희생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위험을 추
호도 느끼지 않고 그러한 정책들을 밀어부치고 있는 금융계의 고위관리들―
의 정치.경제적 힘으로부터 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은 총괄적으로 상호작용하여 경제와
사회현실 사이에 단절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현실사
회에다 이론에서 묘사하는 것과 같은, 다시 말해서 일종의 논리기계의 모양
을 가진, 경제체제 즉 경제 주체들의 움직임에 대한 일련의 강제적인 구속
(절대적으로 순응해야만 하는 제약 : 역주)인 것처럼 나타나지는 경제체제
를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금융시장의 세계화는, 정보기술의 발달과 결합됨으로써, 자본의 이동성을
전례가 없을 정도로 높아지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금융시장의 세계화는]
또 자신들의 투자에 대해 단기-고수익을 얻기를 바라는 투자가들에게 거대
기업들의 수익성을 상시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는 가능성과, 또 상대적인
실패에 대해서 결과적으로(주가의 하락을 통해서) 처벌을 할 수 있는 가능
성을 제공해 주고 있다.
한편 기업들 그 자체는 이같은 항상적이고 항구적인 위협 아래 놓여 있
다. 따라서 기업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신속하게 시장의 요구에 적응하
지 않으면 안 되게 되고 있다. 그리고 시장은, 기업들로 하여금 이른바 "시
장의 신뢰를 잃지 않을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단기-고수익을 얻고자 하는
주주들의 지지를 잃지 않을까 하는 불안에 떨게 만듦으로써 자신들의 의지
를 "경영자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 능력과, 금융적인 지휘.감독을 통해서
경영자들에게 [경영에 관한] 기준과 원칙을 정해 주는 능력, 및 일자리, 고
용 및 임금에 관한 경영자들의 정책을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능
력 등을 점점 더 키워가고 있다.
이와같이 해서 '유연성'의 절대적 지배가 구축되고 있다. 그리고 시한이
정해진 고용계약(계약직) 내지는 임시직 일자리와 "사회복지 계획"의 수혜
가 교대로 반복되는 노동관행이 정착되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 동일한 기업
체 안에서조차도 임금관계의 개인주의화를 통해서 자율적인 지사 또는 지점
들 사이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강제된 작업반들 사이에서,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개개인들 사이에서 경쟁이 제도화되고 나아가 정착되고 있다.
임금관계를 개인주의화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개인별로 업무성
과의 목표를 정해 주는 것, 개인별로 인사고과를 하는 것, 상시적으로 인
사고과를 하는 것, 개인별로 차등 임금인상하거나 또는 개인의 능력과 업적
에 따라 상여금을 수여하는 것, 및 개인별로 경력을 관리하는 것 등이 있
다. 이러한 방법으로는 또 "책임화" 전략도 있다. 이 전략 하에서는 자신의
상급자에게 강하게 종속되어 있는 단순한 봉급생활자이면서도 자신의 업무
로서 책임맡고 있는 판매, 생산, 지점, 상점 등에 대하여 마치 "독립적인
사업주"인 것처럼 무한책임을 부여받고 있는 부류의 간부들로 하여금 필연
적으로 자율적인 자기-착취로 나아가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또 "참여적
경영" 기법도 있다. 이 기법 아래서는 봉급생활자들의 "관여"(업무) 범위를
간부들의 직무 범위를 훨씬 넘는 데까지 확장하는 "자율 통제"가 요구되고
있다(작업 현장의 팀제가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 역주).
이것들은 말하자면 '이성에 입각한 복종' 기법 같은 것인데, 책임지는 직
위에 있는 간부들뿐만 아니라 그 밖의 일반적인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일 속
에서 정신적.육체적 에너지를 초과투입하도록 강요함으로써, 또 화급하고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일하는 것을 강요함으로써, 제반 [인간적인] 기준 내지
규준들과 집단적인 연대를 약화시키거나 절멸시키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
다.(주3)
위계질서의 모든 층위에서 만인(萬人)에 대한 만인(萬人)의 투쟁―이런
세계에서는 사람들은 불안정, 고통 및 스트레스 속에서 일과 직장에다 자신
의 소속감을 구하고 그것에 집착한다―이 벌어지는 다윈주의(생물의 세계처
럼 인간의 세계도 적자생존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의.주장 : 역주)
세계의 실천기관(오늘날의 기업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 역주)은, 불
안정이 만들어내는 "불안 분위기"로부터 방조(傍助)를 받지 못한다면 그처
럼 완벽하게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위계질서의 모든 층위에서 그리고
특히 간부직들 가운데에서―그것도 최고위층에서까지도―보여지고 있는, 불
안정화와 만성적인 실업의 위협에 의해서 순치된 산업예비군이 존재하지 않
는다면 결코 그처럼 완벽하게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
다.
자유라는 휘장 아래 펼쳐지고 있는 이 경제질서의 궁극적인 기초는 결국
이 질서가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는 실업, 불안정 및 해고위협이라는 "구조
적인 폭력"인 것이다. 즉 개인주의적인 미시경제 모델이 "조화롭게" 작동하
기 위한 전제조건은 대중들의 질병 상태, 즉 실업자라는 산업예비군의 광범
위한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폭력은 사람들이 노동계약("계약 이론"에 의거하여 교묘하
게 합리화되고 있는 반면에 실제적으로는 계약―대등한 당사자간의 거래―
이라는 의미를 잃을 정도로 되어버린)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도 또한 영
향을 미치고 있다. 즉 기업의 담론은 시간상의 보장을 일체 사라지게 만듦
으로써(일자리의 3/4은 계약직이고, 전체 고용 가운데 불완전 고용이 차지
하는 비중은 부단히 증가하고 있으며, 개인해고{대량 정리해고만이 아니라}
는 더 이상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로 하
여금 매 순간순간 새롭게 자신의 소속처를 획득해야 하게 되어 있는 시기
에, 신의, 성실, 협력 및 기업문화라는 말들을, 그러한 상황이 요청하는 것
만큼 결코 쓰지 않았다. [신의, 성실, 협력과 같은 것들이 매우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시기에 그런 것들을 강조하는 대신에 폭력적인 수단들을 마
음껏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은 지금, 신자유주의 유토피아가 어째서 실제의 현실
속에서는 일종의 폭탄(사람을 지옥으로 보내는 기계장치)으로 구현되어 버
리기 쉬운지를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이렇게 "파괴하는 무
기"가 될 수밖에 없는 필연법칙은 지배자들 자신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즉 지난 시기에 마르크스주의(현실 사회주의를 의미한다 : 역주)가 그러
했던 것처럼―신자유주의는 이렇게 그 지배자들의 존립까지 파괴한다는 점
에 있어서는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점이 많은데―이 유토피아는 어마어마한
신뢰 즉 "자유무역 신념"(자유무역에 대한 신
을, 금융인들이나 대기업의
주인들처럼 사실상 자유무역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자유무역 신앙을 가질만
한 처지에 있는 : 역주)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사람들 즉 자본주의체제의
지배자들 일반에게도 신앙으로 삼으라고 교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라는 유토피아는 정부 고위관리들이나 정치인들처럼 자신들
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자유무역에서 끌어내고 있는 사람들; 경제
적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시장의 권력을 신성화하는 사람들(대표적으로
경제학자들 : 역주); [개인주의적] 합리성의 모델에 입각해서, 개인적인 이
윤 극대화를 순전히 사적으로 추구하는 자본 보유자들을 난처하게 만들 수
있는 행정적 또는 정치적 장벽들을 철폐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예컨대 시
민운동단체들 : 역주); 민족국가로 하여금 노동시장을 필두로 모든 시장에
대하여 모든 규제를 철폐하고,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을 절대로 금하고, 공
공 서비스를 전면적으로 사유화하고, 공공적.사회적 지출을 삭감하는 등등
을 하면서, 경제의 주인들에게 복무하기 위하여 경제적인 자유라는 그들의
요구에 복종하라고 설교하는 사람들(예컨대 지식인들 : 역주) 등에게도 자
유무역 신앙을 교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지배자들 자신의 자멸을
교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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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서 않읽을 것 같은 느낌이지만..^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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